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223화 (223/306)

< 223화. 그 남자의 우울. (6) >

너무나도 아쉬운 포츠머스의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 진출 실패는 축구계에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2승 2무 2패, 아쉽게 3위로 떨어진 포츠머스. 그래도, 잘 싸웠다.

-유럽 축구의 절대 강호, 바이에른 뮌헨과 파리 생제르맹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포츠머스.

-조별리그 내내 1위를 유지했지만, 단 1분 만에 3위로 마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아쉽긴 하지만 다음 시즌의 활약이 어떨지 더욱 기대된다.

-잊지 말자. 포츠머스는 챔피언스 리그는 물론, 유럽대항전도 처음이었다.

속칭, ‘운명의 1분’은 유럽 축구계의 호사가들이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할 정도의 비극이었다.

역사상 최악의 조에서,

조별리그 6경기 내내,

마지막 1분을 제외하고선 계속 1위를 유지했건만.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과 바이에른 뮌헨의 ‘스타디오 올림피코의 기적’이 연쇄작용을 일으켜 참사가 나고 말았다.

그야말로 인간의 힘이 아닌, 축구의 신의 장난질로밖에 보이지 않는 결과!

이 때문인지, ‘조별리그 광탈’이라는 불명예를 떠안게 되었음에도 포츠머스에 대한 찬사는 끊이질 않았다.

게다가 애당초 포츠머스는 4년 6개월 전만 해도 잉글랜드 프로리그의 가장 낮은 곳에 머물던 팀이 아니던가.

심지어 그 4부리그에서도 팀이 사라지니 마니 하던 최악의 구단이었다.

그런 그들이 ‘전세계에서 축구 제일 잘하는 팀’들이 서로의 실력을 겨루는 별들의 리그에서 호성적을 거두었다는 건, 또 한편의 동화였다.

“뭐···. 잔혹한 어른의 동화겠지만···.”

6차전에서의 과격한 항의로 UEFA에서 1경기 출전 금지 처벌을 받은 소하가 쓴웃음을 지었다.

항의는 심사가 뒤틀리고, 오심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UEFA의 처사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까라면 깔 수밖에 없지.”

포츠머스의 프런트는 국제스포츠 재판소(CAS)에 제소하자고 길길이 날뛰었지만, 소하가 거부했다.

일단 뭐가 됐던 좀, 아니, 많이 거친 항의긴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별일 아닌 일로 팀의 분위기를 헤치기도 싫었으며 솔직히 출전 금지 따위에 신경을 쓸 여력도 없었다.

“난 지금 매우 우울하거든.”

밖에서는 ‘운명의 1분’이라 불렸으며, 소하에겐 ‘지랄의 1분’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소하의 정신건강을 크게 망가뜨렸다.

굳이 따지자면 ‘번 아웃’이랄까.

모든 걸 다 불태웠는데 너무나도 아쉽게 떨어지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어찌나 축 늘었던지, 클럽하우스는 물론, 선수단 내부에서도 말이 오갈 정도였다.

“감독님 표정이 죽었어···.”

“그만큼 충격이 크신 거겠지.”

“저런 모습은 처음인데?”

“아니야. 경리 누나한테 탕비실 간식 삥땅 치다가 걸렸을 때도 저랬어.”

“그건 좀 너무 하긴 했지. 인스턴트커피를 상자째로 차에 옮기다가 걸렸다면서. 쪽팔릴만하지···.”

사실 소문이 조금 와전되긴 했다. 말이 상자지, 그냥 50개짜리 한 묶음을 들고 나가던 것뿐이었다.

하여튼, 소하가 우울하다는 소문은 금세 클럽하우스 밖을 벗어났다.

소하로 말하자면, 스타 감독 중에서도 스타 감독 아니던가. 일거수일투족을 염탐하는 기자들이 수두룩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곧바로 기사까지 나왔다.

[성소하 감독! 의욕 저하!]

[충격을 크게 받은 듯한 성소하 감독. 설마 은퇴를 고려?]

[장군이 쓰러졌다. 병사들의 사기도 흔들릴 소지가 다분하다.]

[신의 우울. 포츠머스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가?]

[성소하 감독에게 찾아온 첫 번째 시련. 그가 어떻게 부활할지 모두의 관심이 쏠려.]

온갖 말도 되지 않는 기사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다른 건 그렇다 치더라도 은퇴라니.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이상 죽어서 백골이 되더라도 포츠머스의 감독을 할 인간이 소하다.

그야말로 개소리의 범람!

하지만, 모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고로 장수가 쓰러지면 병사들은 오합지졸이 되지 않던가!

소하의 우울은 곧 포츠머스의 우울이었고, 이제 겨우 반환점에 들어선 포츠머스의 앞날에 큰 먹구름인 것은 자명했다.

더군다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음 경기인 프리미어리그 15라운드에는 숙적, 사우스햄튼과의 ‘사우스 코스트 더비’가 기다리고 있다.

아쉬운 16강 탈락 때문에 속상한 상황에서 철천지원수에게까지 패배를 당한다면 팀의 사정은 더더욱 나빠질 터.

큰일이 나도 단단히 났다.

-큰일이다.

-이번에는 조금 힘들지도?

-하. 망했다. 망했어.

-제발 무승부라도.

-그래, 지지만 말아줘.

포츠머스 서포터들을 필두로 모두가 불안에 떨었다.

물론, 이와는 정반대로 매우 신이 나서 어깨춤을 들썩이는 이들도 있었니.

그들은 바로, 사우스햄튼의 서포터들이다.

-요즘 진짜 우울한 나날들이었지.

-비루한 포츠머스가 날뛰자마자 우리가 동네북이 됐어.

-이번 기회에 남쪽 해안의 주인이 누군지 제대로 확인시켜줘야 한다.

-다시는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

-작년에는 우리가 더블을 당했지만 올해는 우리가 더블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어.

포츠머스의 상황이 좋지 않자 복권에라도 당첨된 듯 기뻐했다.

하기야, 사돈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데, 철천지원수가 잘나가다 못해 날아다니니 그동안 얼마나 배가 아팠을지 감히 상상도 어렵지 않은가.

배가 아파서 복통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들이었기에, 모처럼 원수에게 깊숙한 상처를 내줄 기회를 잡자 미쳐 날뛰지 않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세등등한 꿈은 한마디로 ‘개꿈’이었다.

-삑! 삑! 삑!

[경기 종료! 포츠머스가 9-0으로 사우스햄튼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습니다.]

[너무 잔인한 경기였어요···. 남쪽 해안의 주인은 포츠머스라는 사실을 사우스햄튼 서포터들의 뼛속 깊이 각인시킨 경기네요.]

9-0 대참패!

10분당 한 골을 헌납한 격이다.

눈물을 흘린 조쉬 킹의 포트트릭(해트트릭+1골)은 이 경기의 백미였다.

심지어, 사우스햄튼은 유효슈팅을 하나도 성공하지 못하며 90분 내내 두들겨 맞다가 실신해버리고 말았다.

“킥킥. 뭐래.”

소하는 홈에서 믿을 수 없는 패배를 당하자 망연자실한 사우스햄튼의 서포터들을 바라보며 비릿한 미소를 날렸다.

혹시 우울한 모습도 연기였던 걸까?

소하가 그간 보여줬던 속임수를 보자면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의심이었지만, 아쉽게도 우울한 건 사실이었다.

다만, 그 우울함을 사우스햄튼에게 모조리 전가했을 뿐!

“무척 우울했는데 마침 사우스햄튼하고 만나다니. 무척 운이 좋았어. 우울을 떠넘길 상대가 필요했는데.”

실제로, 소하는 다시 생생해졌고, 사우스햄튼의 서포터들은 매우 우울해졌지 않은가.

“자고로 좋은 건 나만 가지고 나쁜 건 남한테 떠넘겨야 하는 법이지.”

소하만의 우울증 해결법이었다.

“그럼 잘 요양하고 갑니다.”

방긋 웃으며 예전 모습으로 돌아온 소하의 모습은 사우스햄튼의 서포터들에게 그저 악신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

프리미어리그가 15라운드까지 진행된 현재, 소하는 전략회의에서 매우 냉정하게 미래를 입에 담았다.

“사실상 리그 순위로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기는 힘들어요.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요.”

“···.”

“···그렇죠.”

“알고는 있지만 직접 감독님에게 전해 들으니 막막하군요.”

전략회의에 모인 각 분야의 헤드 스태프들은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 순위표는,

[1위, 맨체스터 시티. 40점.

2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32점.

3위, 토트넘. 30점.

4위, 리버풀. 29점.

5위, 첼시. 27점.

6위, 아스널. 25점.

7위, 레스터 시티. 23점.

8위, 포츠머스. 21점.]

맨체스터 시티가 독보적인 1위였고, 포츠머스는 6승 4무 5패로 8위에 안착한 상황이었다.

4위인 리버풀과의 승점 차는 무려 8점.

얼핏 보면 따라잡기 불가능한 승점 차이까지는 아니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망했다.

“소위 빅6로 불리는 팀을 상대로 단 한 번의 승리도 없어요. 즉, 자력으로 진출하기엔 글렀다는 거죠.”

이미 포츠머스는 빅6와 전반기 경기를 모두 마쳤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첼시전, 1-1 무승부.

리버풀전, 3-2 패배.

토트넘전, 5-0 패배.

맨유전, 2-0 패배.

맨시티전, 1-0 패배.

아스널전, 2-1 패배.

1무 5패라는 비참한 성적!

서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두고 다투는 사이라고 봤을 때, 이미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저 팀들이 중하위권 팀들에게 발목이 잡히면 조그만 가능성이 생기긴 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의 수는 포츠머스가 중하위권 팀들을 모조리 때려잡아야 한다는 매우 어려운 전제조건이 붙었다.

“현실상 그건 불가능하죠. 객관적으로 우리 팀의 전력은 중위권이니까요.”

즉, 빅6에는 중하위권 팀이겠지만, 포츠머스에는 대등하거나 근소하게 약한 팀이라는 뜻이다.

그런 팀들에게 모조리 이길 수 있다면 애당초 빅6를 상대로 이런 성적표를 받지는 않았을 거다.

“그래도 우린 할 수 있습니다!”

“후반기에 저들을 모조리 때려잡는다면 매우 가능하죠.”

“1무 5패를 5승 1무로 바꾼다면···?”

승부욕의 화신, 소화가 엄선한 스태프들답게 의욕은 잃지 않은 모습이다.

당연하게도 소하의 취향 저격인 모습이라 절로 칭찬의 목소리가 나왔다.

“오오. 역시 내 참모들! 저쪽은 한신, 이쪽은 장량, 당신은 소하, 또 이분은 진평의 환생이었군요!”

“···그게 누구입니까···?”

물론, 유럽인들이 한고조, 유방의 참모들을 알 리가 없었다.

하여튼, 매우 신난 소하였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머리는 계속해서 차가웠다.

“우리는 유로파 리그도 뛰어야 하잖아요. 체력적으로 더 힘들 거예요. 이미 망했고 앞으로도 망할 거예요.”

뒤를 보지 않고 챔피언스 리그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 실패했다.

이것의 후폭풍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유로파 리그를 포기하는 게 어떻습니까?”

“모든 대회를 다 뛰기엔 아직은 무리입니다. 신입생들과 주전들의 실력 차이가 아직 크니까요.”

“재정적으로 볼 때 유로파 리그를 포기하는 게 이득일지도 모릅니다.”

유로파 리그 포기.

유럽대항전을 포기하자는 미친 소리 같지만, 의외로 굉장히 합리적이다.

유로파 리그를 버리고 프리미어리그의 순위 상금과 챔피언스 리그의 진출권을 따낼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버리는 게 맞다.

하지만 소하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요. 우린 전력으로 유로파 리그에 임할 거예요. 모든 것을 다 바쳐서요.”

소하의 단언에 전략회의실은 잠시 차가운 정적이 내려앉았다가, 화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

“어, 어째서···.”

“유로파 리그 우승으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따내기엔 너무 큰 도박입니다.”

“유로파 리그가 아무리 챔피언스 리그보다 격이 떨어질지라도 결코 만만한 대회가 아닙니다!”

유로파 리그.

챔피언스 리그와 비교해서 이름값은 좀 많이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스태프들의 주장처럼 만만한 대회는 아니었다.

현 17-18시즌, 유로파 리그의 참가팀들의 이름만 봐도 감이 온다.

노란 잠수함, 비야레알.

우크라이나의 강호, 디나모 키예프.

최고의 명문, AC 밀란.

네라주리, 아탈란타.

포병대, 아스널.

7공주 시절의 일원, SS 라치오.

러시아의 명문, 제니트.

이 정도가 기본적으로 참가한 명문들이었고 대단한 전력을 보유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뿐만 아니다.

포츠머스처럼 챔피언스 리그의 각 조 3위들 중에서도 대단한 팀들이 흘러들어왔다.

알레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독일의 신흥강호, 라이프치히.

포르투갈의 명문, 스포르팅.

사리 볼, 나폴리.

꿀벌군단, 도르트문트.

왜 유로파 리그로 떨어져 나왔는지 모를 팀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이 정도 이름값이면 유로파 리그인지 챔피언스 리그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

괜히 소하의 참모들이 대경실색해서 반문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 팀들을 꺾고, 유로파 리그 우승을 해서,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한다?

그냥 유로파 리그를 버리고 리그에 집중해서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는 편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큼큼. 생각보다 더 반대가 심하네요···. 예상외인데···.”

생각지도 못한 극심한 반대에 한줄기 식은땀을 한줄기 흘린 소하.

참모들이 진정할 때까지 뒤통수를 긁적이며 딴청을 피운다.

그리고 분위기가 조금 진정되자 조금 어이없다는 투로 이야기를 꺼냈다.

“흠···. 우린 모두 같은 곳을 바라고 있는지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요?”

“···.”

“···.”

작은 질책에 분위기가 가라앉았지만 소하는 개의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우리의 꿈이 뭡니까.”

소하가 내놓은 질문은 답을 하기가 매우 쉬웠다. 적어도 핵심 인사들 사이에서 꿈을 모르는 이는 없었으니까.

“그야, 트레블 아닙니까.”

그렇다. 트레블. 잉글랜드에서는 리그 우승과 FA 컵 우승,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한 시즌에 모조리 하는 업적이다.

“잘 알고 있네요. 그럼 잘 보세요. 여기서 리그를 제외하면 다 토너먼트네요.”

“아···!”

드디어 전략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 깨달음의 빛이 어렸다.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선 토너먼트에 대한 경험을 쌓아야 해요. 그것도 유럽대항전이라는 큰 무대에서 말이죠.”

경험이란 매우 중요한 성공의 바탕이다. 토너먼트의 끝까지 가보지도 못한 자가 우승을 컵을 손에 쥘 리는 만무하다.

“뭐, 겸사겸사 우승해서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면 더 좋고요.”

주목표에 사심, 그것도 아주 큰 사심을 집어넣은 소하였다.

< 223화. 그 남자의 우울. (6)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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