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그 남자의 우울. (2) >
소하의 조쉬 킹 살리기 프로젝트는 바로 다음 날부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사용한 방법은, 가장 정석적인 개인 면담이었다.
“정석이 곧 왕도다.”
일단은 한번 제대로 부딪쳐봐야 꼼수를 고려할 틈이 보이는 법이다.
게다가 정석은 괜히 정석이 아니다.
가장 효율적이기에 정석이다.
“일단, 회유책을 써볼까.”
정석 중에서도 정석!
칭찬은 고래도 탭댄스를 추게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소하는 조쉬 킹에게 별일 아니었다면서 네 덕분에 무승부를 거둘 수 있겠다고 크게 칭찬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넌 정말 최고야!”
“···아니에요···. 전 박테리아예요.”
“···?!”
소하는 두 번이나 놀랐다.
하나는, 단순무식 쾌활남에게 칭찬이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는 점과,
또 하나는, 조쉬 킹이 박테리아라는 단어를 안다는 것이었다.
“···그럼 전 가볼게요···.”
훌쩍 사라지는 조쉬 킹.
그의 등을 바라보며 소하는 일이 제법 어려울 거란 예감이 드디어 들었다.
“···그럼 같은 정석이지만 정반대의 전략을 사용해야겠군.”
칭찬이 통하지 않을 땐, 질책이란 채찍이 통할 때가 왕왕 있었다.
그리고 조쉬 킹은 원래부터 칭찬보다는 가시 돋친 채찍이 더 잘 먹혔던 선수!
칭찬하면 맨날 자만하던 선수였던지라 이번에야말로 소하는 통할 거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참담했다.
“넌 쓰레기였어!”
“아닙니다. 너무 고평가하시는군요. 사실 전 재활용도 되지 않는 음식물 쓰레기입니다.”
“···?!”
소하는 이번에도 두 번이나 놀랐다.
하나는, 채찍질을 칭찬으로 받아들일 만큼 부정적인 상황이라는 점과,
또 하나는 조쉬 킹이 정중한 단어로 답변을 했다는 것이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또다시 훌쩍 사라지는 조쉬 킹.
이번에도 그의 등 뒤를 바라보던 소하의 미간에는 모처럼 식은땀 한줄기가 가로질렀다.
“정말 큰일 났나 본데?”
이제야 보통 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사실 소하는 조쉬 킹이 금방 원래의 쾌활함을 되찾으리라 생각해서 더더욱 당혹감을 느꼈다.
“원체 타고난 천성이 밝고 쾌활한 놈이었으니까···.”
배신 플래그를 지워버린 조쉬 킹은 정말 다루기 쉬운 선수였다.
힘든 훈련도 마다하지 않으며,
끊임없는 향상심을 지녔으며,
사기도 항상 빨간불로 빨딱 섰다.
심지어 사생활도 매우 깨끗해서, 이 단순, 쾌활한 어린 청년은 소하처럼 머릿속에 축구밖에 없었다.
집-클럽하우스-집-클럽하우스.
이 루틴만 무한으로 반복하는 선수가 조쉬 킹이다.
물론,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이 종종 동료들이나 친구들과 유흥을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 한참이나 지났으면서도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을 정도로 몸 관리에 철저한 선수였다.
“이런 녀석이 고장이 나버리니 정말 난감하구만···.”
이 정도로 망가져 있을 줄은 몰랐다.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이다.
심지어 지금은 시간마저 촉박해서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전환하기도 힘들다.
“당장 파리 생제르맹과의 조별리그 6차전에서 녀석을 기용해야 한다고···. 아니, 애초에 그사이에 프리미어 리그 경기가 두 경기나 잡혀있고.”
6차전은 2주가 남았고, 그 사이에는 프리미어 리그 13, 14라운드를 진행해야 한다.
시간도 없고 해답은 보이지 않는 상황! 보통 감독이었다면 일단 문제를 덮어두고 뒤로 밀어도 아무도 손가락질하지 못할 거다.
“물론, 난 보통 감독이 아니지···. 그래도 암만 머리를 굴려봐도 지금 쓸만한 패는 한 가지뿐이야. 조금 매콤하지만 해보긴 해야겠지.”
조금 매콤함을 넘어 상당히 극단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이 계책은 바로, ‘접대 축구’.
말 그대로 조쉬 킹에게 한 경기를 바치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럼 이제 조쉬 킹에게 몰아 줄 전술을 마련해 볼까? 여기서 해트트릭이라도 박으면 금세 자신감을 되찾겠지.”
시기도 적절하다.
13라운드 상대는 포츠머스와 비교해서 매우 약팀이라고 단정을 지어도 무리가 없는 왓포드였고, 덤으로 홈경기였다.
요컨대, 굉장히 쉬운 경기라는 뜻.
조쉬 킹을 위해 맞춤 전술을 짜더라도 승점을 얻어갈 기회가 넘쳐난다.
그리고 쉬운 상대인 덕분에 맞춤 전술로 기회를 몰아받을 조쉬 킹이 대활약을 펼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자고로 자신감이 떨어진 공격수에게 가장 좋은 보약은 골이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진리였다.
죽을 쑤던 공격수가 마수걸이 골에 성공, 각성해서 펄펄 날아다니는 모습은 드물지도 않았다.
게다가 조쉬 킹이라고 한다면 이미 펄펄 날아다니던 선수.
아무리 봐도 성공할 확률이 높았고 소하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삑! 삑! 삑!
포츠머스와 왓포드의 프리미어 리그 13라운드가 종료되었다.
[오늘 경기의 결과는 1-0! 포츠머스가 오랜만에 리그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모처럼의 승리에 홈 서포터들이···. 음, 편안하게 귀가할 수 있겠군요.]
포츠머스의 승리를 축하하는 장내 아나운서와 해설. 하지만, 어투가 조금 이상하다.
마치, 라쿤 라면에 실수로 달걀을 까놓은 듯한 반응이다.
사실 아직 자리를 떠나지 않은 서포터들도 이긴 팀의 표정이 아니다.
“이게···. 뭐라고 해야 하나···.”
“하, 그냥 져버리지, 그랬어.”
“역대급 경기다···.”
“이건···. 와···.”
“내가 진짜 최애라 욕 참는다···.”
모처럼 이를 바득바득 가는 서포터들의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우면서도 흉흉하다.
혹시 소하의 전술이 잘못된 걸까?
요즘 계속 이상한 전술로 일관한 업보가 터진 걸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왓포드와의 경기에서 소하가 선보인 즉흥적인 변주곡은 솔직히 걸작이었다.
조쉬 킹을 띄워주기 위한 날치기 전술이었지만 왓포드를 완벽하게 손아귀에 쥐고 가지고 놀았으니까.
평소에 사용하던 전술도 이 정도 퍼포먼스는 보여주지 못했을 거다.
다만, 문제는,
[조쉬 킹. 오늘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도대체 기회를 몇 번이나 날린 겁니까?]
[이번 경기에서 조쉬 킹의 개인 xG값이 5.1이 넘어요. 그런데 오늘 한 골도 넣지 못했습니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경기일 거예요.]
조쉬 킹의 버러지 같은 경기력이 문제였을 뿐이었다.
xG값.
기대 득점이라고 불리는 축구계의 통계다. 즉, xG값이 5.1이라면 최소한 5골은 넣어야 줬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조쉬 킹은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세 번의 완벽한 득점 기회를 얻었으며 이를 제외하고 18개의 슈팅을 때렸음에도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단 말이다.
[팀은 승리했고 풀타임을 뛰었는데, 평점이 3점대가 나왔습니다. 이건···. 포츠머스가 또다시 새로운 역사를 썼군요.]
[잉글랜드 최고의 유망주 중 하나라는 평가가 무색할 지경이었어요.]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는 경기가 끝났음에도 자리에 남아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압도적인 경기를!
슈팅 한번 허용하지 않은 경기를!
고작 1-0으로, 그것도 후반 89분에 코너킥으로 득점하며 극적인 승리를 거두다니. 좋지 않은 의미로 충격적인 경기였다.
“···허허···. 허허···. 허허헛.”
다른 이들도 이토록 충격을 받았는데, 당사자인 소하는 어떻겠는가.
반쯤 정신이 나가 실성한 사람처럼 허탈한 웃음과 한숨을 무한으로 반복할 뿐이었다.
“···이건 안 되겠다. 당분간 명단 제외하면서 애 정신부터 돌려놔야겠다···.”
결국 소하가 포기 선언을 해버리고 말았다. 아직 시즌은 고작 절반도 돌지 않았기에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만 다가올 프리미어 리그 14라운드와 챔피언스 리그 조별 6차전 파리 생제르맹과의 경기에는 아예 빼버리기도 작정했다.
아무리 봐도 단시일 내로 고치기는 어려울 만큼 중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축구의 신은 사기적인 능력을 얻은 소하에게 또다시 골머리를 썩이게 만드는 문제를 던져주었다.
***
[마리오 발로텔리 5주 아웃!]
[부상이 재발한 마리오 발로텔리. 2017년을 이대로 마감했다.]
[국가대표팀에서 얻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조기 출전한 악영향으로 보인다.]
소하에게는 매우 슬프게도 마리오 발로텔리가 쓰러졌다.
유리몸이 된 것은 아니다.
그저 부상을 완치하지 못했지만, 승리를 위해서 조기 출전시킨 소하의 용병술이 화를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미안하다.”
클럽하우스의 재활센터에 출근한 마리오 발로텔리에게 소하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물론, 당시에는 마리오 발로텔리의 동의를 얻긴 했다. 부상 부위에 대한 의료 보고서도 자세히 검토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무리한 출전을 부탁한 여죄는 부정하기 힘들었다.
“요! 난 괜찮아! 모처럼 FC 호스피탈에서 신나게 쉬어 볼 테니까! 레츠 뮤직 스타트! 부상회복엔 음악이 좋다고!”
다만 사과를 받는 처지인 마리오 발로텔리가 너무나도 즐거워 보여 조금 께름칙할 뿐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악재가 겹치는 건 어차피 예상한 일이었으니까. 설마 여기서 더 무슨 일이 나겠어?”
마리오 발로텔리의 부상 재발은 어느 정도 계산했던 일이라 큰 우환거리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무슨 일이 더 일어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존 말로리. 심한 독감으로 10일 아웃.]
[마리오 발로텔리에 이어 존 말로리까지 잃은 포츠머스. 6차전은 어떻게 풀어나갈까?]
[쏠쏠한 벤치 멀티 자원마저 사라졌다.]
존 말로리까지 부상당했다.
사실, 부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긴 하다.
감기라니. 그것도 독감이라니!
일반인을 아득히 초월한 운동량 덕분에 매우 ‘건강한’ 축구선수가 감기에 걸리는 건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거늘.
믿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음···. 글쎄요. 어지간해서는 멀쩡할 텐데요. 혹시 찬 음료를 한꺼번에 많이 드셨나요? 너무 차가운 음료를 많이 마셔서 일시적으로 체온이 확 떨어진 것이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겨울이잖아요? 아무리 튼튼한 선수라도 탈이 날지도 모르죠.”
팀 닥터의 소견에 소하는 얼어붙었다.
찬 음료!
얼마 전 소하의 사무실에 들어와 냉차를 마구 퍼마시고 가지 않았던가.
아무리 봐도 이것이 원인인 것만 같았다.
“···저, 전 아무것도 몰라요.”
“네? 당연히 그러시겠죠. 감독님이 선수의 식생활을 모두 통제하기란 어려운 법이니까요. 일단 격리 조치부터 하셔야···.”
팀 닥터의 뒷말은 소하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날의 그놈들을 바로 내쫓지 않은 자신에게 원망을 퍼붓느라 바빴다.
“큼, 큼큼. 그, 그래도 아직 이 정도면 괜찮다. 할만해.”
존 말로리는 어차피 조커다.
특수한 상황에서 맛을 확 돋워주는 독특한 향신료일 뿐. 주식으로 삼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곧 주식인 도봉산이 돌아온다. 킹이 없어도 충분히 해볼 만해.”
중국과의 A매치에서 5주짜리 부상을 당했던 대한민국의 스타, 도봉산.
제법 빠른 회복세를 보여 이미 팀 훈련에 합류한 지 며칠 됐다.
이 기세라면 프리미어 리그 14라운드는 무리일지라도 챔피언스 리그는 충분하다는 의료진의 보고서까지 받은 상태.
정말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원래 운은 파도 같은 거야. 운이 나쁘면 좋을 때도 있는 법이지. 또 무슨 일이라도 생기겠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소하.
하지만, 그는 말을 아꼈어야만 했다.
[도봉산, 훈련 중 부상 재발.]
[경기장에 나오려면 최소한 2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포츠머스에 드리운 부상의 악몽.]
도봉산마저 쓰러졌다.
이번에는 소하의 잘못이 아니다.
‘팀이 가장 중요할 때 부상으로 누워있었어. 어떻게든 보탬이 되어야 해.’
도봉산의 과도하게 흘러넘치는 의욕이 문제였다. 동료들이 팀의 운명을 건 승부를 펼칠 때 병상에 누워서 쉬던 자기 자신에게 분노가 차오르던 도봉산.
결국 그는 적당히 해도 될 복귀 훈련에서 100%로 모조리 가동했고 그대로 펑크가 나버렸다.
심지어 혼자만 퍼진 것도 아니다.
같이 경합하던 잭 해리슨까지 휘말려 발목염좌라는 부상을 선물했다.
“···그, 어···. 좀 살살하지, 그랬어···.”
“죄송합니다···. 감독님.”
고개를 숙이고 손바닥이 찢어질 만큼 주먹을 움켜쥔 도봉산에게 소하는 차마 나쁜 말을 할 수 없었다.
“후우. 결국 킹을 선발로 써야 하는구나. 아아. 어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절로 한숨이 나오는 너덜너덜한 팀의 상태였다. 29명이나 보유했으며, 챔피언스 리그에는 25명이나 등록했는데, 왼쪽 윙포워드 자리에 넣을 선수가 없다니.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포츠머스는 프리미어 리그 14라운드 아스널과의 원정경기에서 시원하게 패배했고, 어느덧 파리 생제르맹과의 결전을 코앞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 219화. 그 남자의 우울.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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