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화. 17-18시즌 챔피언스 리그. (16) >
소하가 공격적인 전술로 승부수를 건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1. 먼저, 우리는 수비가 좋지 않다.
2. 따라서, 언젠간 실점한다.
3. 마침, 상대의 무게가 앞으로 쏠렸다.
4. 그리고, 1골 앞선 상태다.
5. 그러면, 난타전의 부담감이 적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이었다.
보통 골을 서로 주고받는 난타전이 된다면, 이미 한 골 앞선 팀이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다.
연달아 실점하는 상황만 없다면, 아무리 못해도 무승부는 거둘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계속 공격해라! 골만 넣으면 우리가 이긴다!”
중간휴식, 라커룸에서 맹렬한 기세로 선수들에게 요구하는 소하. 그를 바라보는 선수들만큼이나 활활 불타오른 모습이다.
“넷!”
“오랜만에 공격하니까 좋네요. 골 넣고 오겠습니다!”
“역시 우리는 수비보다는 공격이지.”
모처럼 공격적으로 임한 덕분에 평소보다 선수들의 사기가 장난이 아니다.
‘흠. 그거지. 매일 먹는 치킨보다 일주일쯤 굶었다가 먹는 치킨이 더 맛있는 법!’
억제해놨던 공격본능을 풀어버리자 세계최강이라는 바이에른 뮌헨의 공격력과 대등한 모습을 일시적으로 보여주는 포츠머스였다.
“감독님. 그래도 사전 계획과는 다른 방향의 경기라 큰 줄기 정도는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주장, 케빈 도슨이 손을 번쩍 들며 의견을 표출했다. 하긴, ‘사전 준비’란 경기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기에 합당한 질문이다.
소하 또한 매우 합리적인 질문이라고 받아들이며 그려둔 큰 그림을 말해준다.
“아주 훌륭한 질문이다. 흔쾌히 대답해주마. 나머지 녀석들도 귓구멍 파고 잘 듣도록.”
“넷.”
“첫째. 골을 먼저 넣었을 때다. 이럴 땐 내가 교체를 하기 전까지 계속 공격해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계속 공격해.”
먼저 골을 넣었다는 뜻은 2-0으로 앞선다는 뜻!
경기를 거의 다 잡았다는 뜻이기도 하며 바이에른 뮌헨이 서서히 무너질 거라는 뜻이기도 했다.
즉, 무너지는 바이에른 뮌헨을 더욱 두들겨 패서 완전히 침몰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둘째. 동점 골을 허용했을 때다. 이때도 계속 공격해라. 더 거세게 공격하면 좋겠지. 내가 교체를 지시하기 전까지는 말이야.”
이럴 땐 공격의 목표가 달랐다.
수비를 위한 공격이랄까.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이다.
동점 골을 넣은 바이에른 뮌헨은 더욱 기세를 올릴 거고, 이럴 때 움츠리면 눈탱이가 밤탱이가 될 때까지 두들겨 맞지 않겠는가.
궁지에 몰린 초식동물이 발광하듯 역으로 기세를 올려 상대의 분위기를 꺾어놓겠다는 전략이었다.
“셋째. 역전 골까지 허용했을 때다. 이때는···.”
잠시 말을 줄인 소하.
정말 최악의 상황이기 때문에 상상만 해도 솜털이 곤두섰다.
“뭐, 죽기 살기로 계속 공격해야지. 뒤에서 엄청난 근육질의 남성 전문 강간범이 쫄쫄이 팬티만 입고 쫓아온다는 심정으로 앞으로 달려나가라.”
“···.”
“···.”
“···.”
오싹. 오싹.
상상만 해도 비명이 절로 나오는 소하의 묘사에 선수들은 절로 마른침을 내 삼켰다.
“···그러니까···. 결국은 계속 공격을 해야 한다는 말이군요?”
그나마 침착함을 유지한 케빈 도슨이 소하의 말을 정리했다.
그렇다. 소하가 주절주절 떠들긴 했지만, 이야기는 간단했다.
공격!
공격만이 살길이었다.
“맞아. 이미 호랑이 등위에서 탭댄스를 추기 시작했으니까. 이젠 멈출 수 없다.”
“네?!”
“응?!”
소하의 알 수 없는 말에 의문을 느끼는 포츠머스의 선수들. 하지만 소하에게선 변론이 들려오지 않았고, 이내 그들은 후반전을 위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잔디 위로 향했다.
***
후반전은 전반전의 중반부터 시작된 뜨거운 접전이 계속 이어졌다.
[모두 두려움을 모르고 계속해서 공격을 시도하는군요. 정말 빠른 속도의 경기입니다.]
[골키퍼들이 정말 고생하는 경기입니다. 게다가 오늘따라 양 팀 공격수들의 슛 정확도가 조금 아쉽네요.]
해설자의 해설처럼 페트르 체흐와 마누엘 노이어 키퍼의 엄청난 퍼포먼스와 공격수들의 좋지 않은 결정력 때문에 1-0 상황이 이어질 뿐.
분위기만으로는 언제든지 대량 득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피 터지는 혈투였지만, 급소에는 타격이 들어가지 않아 마무리되지 않는 상황!
그래서인지 이내 뜨거웠던 분위기는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후반 75분.
경기 종료가 15분 남짓 남은 시점.
쉴 새 없이 공격을 시도하던 양 팀은 따로 약속이라도 한 듯 공을 앞이 아닌 옆이나 뒤로 보냈다.
[아, 드디어 지쳤나 봅니다. 경기의 속도를 확 떨어뜨리는군요.]
[지칠 만도 합니다. 50분 이상을 쉴 새 없이 뛰어다녔으니까요.]
결국 체력적 한계에 부딪힌 양 팀이었고, 거친 숨을 몰아 내쉰다.
“하아···. 하아···.”
“후우···.”
“헉. 헉.”
굉장히 지친 선수들.
현대 축구가 강한 압박에서 압박과 점유를 혼합한 형식으로 변화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항상 템포가 높은 경기는 재밌고 강하다.
그렇다면 왜 항상 빠른 템포를 가져가지 않는 걸까?
이유는 간단했다.
체력문제다.
90분 내내, 시즌 내내 빠른 속도를 유지할 체력을 지닌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양 팀은 한 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말 그대로 ‘맹렬히’ 공격을 강행했다.
템포가 빠른 공격축구를 길게 풀어쓰자면, ‘평소보다 활동량도 많이 가져가며, 스프린트 횟수도 많은 축구’다.
쉽게 말해 평소보다 훨씬 더 체력소모가 크다는 이야기였다.
괜히 리버풀의 클롭이 초창기와는 다르게 속도 배분을 한 것이 아니었다.
적당히 점유도 해가며 필요할 때만 스퍼트를 거는 축구가 바로, 진화형 게겐프레싱이었다.
하여튼, 빠른 속도의 공격축구 때문에 순식간에 지쳐버린 포츠머스와 바이에른 뮌헨. 이제는 교체가 필요할 때였다.
그리고 먼저 움직인 사람은 오히려 앞서나가는 쪽인 소하였다.
“홀붕이, 쌀라, 헬창. 준비해라.”
에링 홀란드.
모하메드 살라.
아다마 트라오레.
기존에 사용하려고 했던 카드를 그대로 꺼내 들었다.
[아! 어떤 목적인지 너무나도 확실한 포츠머스의 움직임입니다!]
[지친 바이에른 뮌헨을 빠르고 강한 선수들도 꺾어버리겠다는 의지에요!]
100% 정확한 해설이다.
애당초 이 셋은 바이에른 뮌헨이 체력이 떨어졌을 때 투입하려던 선수들 아닌가.
과정은 달랐지만, 결과는 기존의 계획과 똑같은 상황이었기에 고민 없이 결정을 내린 소하였다.
이에 맞서는 바이에른 뮌헨이 손에 쥔 교체 카드는 단 두 장.
유프 하이켄스 감독은 공격진의 강화보다는 중앙에 변화를 주었다.
[하메스 로드리게스와 톨리소를 투입하는군요. 이렇게 된다면 4-1-2-3에서 4-2-3-1로 바꾸겠다는 뜻이겠군요.]
[정확합니다. 좀 더 지공에 힘을 실어보려는 의지 같습니다.]
콜롬비아 국적의 미남 공격형 미드필더, 하메스 로드리게스.
세계급 왼발 킥력을 가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낳은 슈퍼스타!
“중거리 슛이라는 한 방을 가졌으며 지공 상황에서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지. 제법 좋은 선택이야.”
하메스 로드리게스의 투입이 의미하는 법을 단박에 파악한 소하. 좋은 통찰력이었지만 그에 반해 표정은 매우 좋지 않다.
예상외의 등장이라서가 아니다.
그저,
“더럽게 잘생겼네. 잘생겼는데 축구도 잘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퉷.”
불량스럽게 침을 내뱉은 소하는 시선을 코랑탱 톨리소에게 돌렸다.
“코렁탕···. 이 아니라 코랑탱 톨리소. 별거 아니지. 이름을 부를 때만 조심해야 할 선수다.”
소하는 깎아내렸지만, 단단한 신체 능력을 갖춘 전형적인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다.
현시점은 좋은 유망주였으나 1년 뒤에 십자인대와 반월상 연골판이 파열되며 만개하지 못하는 비운의 선수이기도 했다.
“포메이션을 바꾸면서 붕 떠버린 수비형 미드필더, 하비 마르티네스의 대체자일 뿐.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
자신감을 내비치는 소하.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표정이다.
이렇듯 양 팀의 교체는 감독의 성향에 따라 확연히 갈렸다.
한번 폭발했다가 식어버린 경기에 다시 기름을 붓는 소하와 완전히 진화시키려는 유프 하이켄스.
너무나도 다른 경기의 접근법이었지만, 모두 확실한 근거가 있었기에 경기는 절묘한 균형을 이루었다.
이 때문에, 어느 한쪽도 우세를 점하지 못했고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만 갔다.
[아, 점점 시간이 흘러갑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3분! 이대로 가다간 포츠머스의 역사적인 챔피언스 리그 진출 16강이 확정됩니다.]
[또한, 바이에른 뮌헨은 치욕적인 조별리그 탈락이 코앞까지 닥치게 됩니다. 과연 이 경기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남은 시간은 3분.
남은 시간은 2분.
남은 시간은 1분.
순식간에 지나간 3분.
알리안츠 아레나에 모인 7만이 넘는 사람들의 시선은 동시에 추가시간을 알리는 전자판으로 향했다.
[3분]
평균적인 추가시간이다.
딱히 경기가 멈추었던 적이 없었기에 매우 적절한 시간이기도 했다.
“후우···. 3분이다. 3분만 더 힘을 내라.”
3분만 이대로 유지한다면.
길고 길었던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의 여정은 조기 종료다.
두근두근.
긴장 때문에 세차게 뛰기 시작한 심장을 애써 억누르는 소하의 손에는 어느덧 땀이 고이기 시작했다.
모처럼 긴장한 소하. 오랜만에 매우 간절한 마음으로 선수들을 응원하며 승리를 바란다.
그리고 이런 소하의 간절함이 닿은 걸까. 교체 투입한 아다마 트라오레가 일을 만들어냈다.
“우오!”
성난 고릴라처럼 돌진하는 아다마 트라오레! 조금 높은 오른쪽 수비수의 자리에서 바이에른 뮌헨의 페널티 박스 중앙까지 무지막지한 돌파를 보여줬다.
난데없는 질주에 당황한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의 허점을 본의 아니게 파고든 날카로운 돌파!
“아, 안 돼.”
어찌나 당황했는지 아마다 트라오레는 마무리가 형편없다는 사실마저 망각해버렸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조급해진 제롬 보아텡.
불꽃 튀는 경기의 영향으로 체력적으로 한계였으며,
지고 있었기에 심적으로도 한계에 다다라 판단력이 흐려졌다.
덕분에 그는 적당히 유도 수비만 해도 막을 선수에게 깊은 태클을 하고 말았다.
그것도 페널티 박스 안에서.
-삑!
깊은 태클은 당연히 반칙이었고,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반칙은 치명적이었다.
[PK입니다! 포츠머스가 PK를 얻습니다!]
[됐어요! 이제 16강입니다. 포츠머스가 또다시 기적을 만들어낼 확률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경기 막바지에서, 그것도 추가시간이 1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페널티 킥을 얻어낸 포츠머스였다.
“됐어! 됐다고!”
소하는 자기도 모르게 환호하며 머릿속으로는 재빨리 계산기를 두들겼다.
‘키커를 정해야 한다. 일단···.’
포츠머스의 페널티킥 전담 선수는 마이클 반즈와 마리오 발로텔리다.
1순위는 마이클 반즈.
2순위는 마리오 발로텔리.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 마이클 반즈는 명단 제외였고, 마리오 발로텔리는 에링 홀란드와 교체로 나간 상태다.
‘그렇다면 3순위인데···.’
포츠머스의 3순위 페널티킥 전담 선수는 바로, 조쉬 킹이다.
꽤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특유의 단순무식함 덕분에 의외로 페널티킥을 잘 차는 선수였다.
아무 생각 없이 때리는 ‘맞고 죽어라’ 슛은 상당히 높은 성공률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정해둔 순서대로 차라! 킹! 너다!”
페널티킥의 중요성에 대해 누구보다 자라는 선수들이 소하를 바라봤고, 소하는 곧 큰 소리로 외쳐 대답해줬다.
“좋았어! 내가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모 만화의 외팔이 해적의 대사를 읊고 자신감 있게 킥을 준비하는 조쉬 킹.
한점의 걱정도 보이지 않아 모처럼 굉장히 든든하다.
-삑!
이윽고 킥을 차라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후아.”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한 조쉬 킹은 주저 없이 달려들어 강력한 킥을 선보인다.
-쾅!
빛살처럼 날아가는 조쉬 킹의 킥!
전설적인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가 몸을 날리기도 전에 이미 공간을 압축해 목표지점에 도착했다.
-터어어어엉!
하지만, 골네트가 아닌 골대를 강타했고 공은 엄청난 속도로 조쉬 킹을 스쳐 지나가 뒤로 튕겨 나갔다.
[아앗! 실축입니다!]
[고, 공이 영 좋지 않은 방향으로 튀었습니다!]
단순히 실축이 문제가 아니었다.
골대를 강타하고 튕겨 나온 공은 공교롭게도 뒤에서 대기하던 아르연 로번의 발밑에 떨어져 버렸다.
“?!”
난데없는 기회에 조금 당황하는 아르연 로번. 하지만, 당황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곧장 앞으로 드리블을 시도했다.
-툭. 툭툭.
특유의 모습으로 드리블하며 텅텅 비어버린 포츠머스의 영토에 한줄기 붉은 선을 만들어냈다.
가장 좋은 기회인 페널티킥이 만들어낸 가장 치명적인 위기!
그리고 이번 위기는 위대한 골키퍼 페트르 체흐도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었다.
-톡.
현란한 스텝 오버로 체흐를 가볍게 벗겨버린 아르연 로번은 비어버린 골대 안으로 정확히 공을 차넣었다.
경기 종료 몇 초 전에 터뜨린 마수걸이 골! 동시에 경기 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삑! 삑! 삑!
바이에른 뮌헨에는 천운이었으며, 포츠머스에는 최고의 악재였다.
“뭐···. 이런 날도 있는 법이지.”
다잡은 승리를 놓치자 씁쓸한 미소를 짓는 소하. 너무 아쉬웠지만, 애초에 무승부가 목표였기에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표정이었고, 곧바로 최후의 결전인 6차전을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 217화. 17-18시즌 챔피언스 리그. (16)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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