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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213화 (213/306)

< 213화. 17-18시즌 챔피언스 리그. (12) >

전반 17분.

조용하던 양 팀의 경기에서 첫 번째 불꽃이 터졌다.

-터어어엉!

어찌나 강력한 슛이었던지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골대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조쉬 킹! 드디어 첫 번째 슈팅을 내질렀습니다! 각도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지만 상단 골포스트를 호쾌하게 강타했습니다!]

[AS 로마의 오른쪽 측면을 혼자서 완전히 부숴버리고 골까지 만들어낼 뻔했습니다. 오늘 컨디션이 매우 좋아 보이는데요?]

놀라운 플레이의 주인공은 바로, 조쉬 킹이었다.

측면의 중앙선 부근부터 무지막지한 돌파로 슛 기회까지 만들어냈다.

측면이 아닌 중앙이었다면 충분히 골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 엄청난 돌파!

슈팅 각이 너무나도 좋지 않아 그냥 골키퍼 정면으로 ‘맞고 죽어라’ 슛으로 마무리 지은 플레이였다.

그런데도 골키퍼의 얼굴 위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 상단 골대를 맞추는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한 조쉬 킹. 기세가 남다르다.

“음. 킹이 오늘 묘하게 폼이 좋아 보이네요. 안 그래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킹은 원래 폼이 일정한 녀석인데 말이죠···.”

소하와 밀러는 킹의 몸 상태가 유달리 좋다는 걸 금방 눈치챘다.

조쉬 킹이라 하면 단순무식할 정도로 저점과 고점이 없다시피 한 선수였거늘.

좋게 말해 일관성이 좋았고 나쁘게 말해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하지 못하는 선수였다.

이랬던 조쉬 킹이 유달리 몸이 가벼워 보이자 소하의 선택은 한결 쉬워졌다.

“오늘의 핵심은 조쉬 킹이다! 녀석에게 공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전혀 예상치 못했지만, 유리한 부분이 튀어나오자 소하는 선수들에게 곧장 지시를 내렸다.

살아있는 생물처럼 쉴 새 없이 꿈틀거리는 경기 속에서 유리한 부분을 빠르게 찾아내는 소하의 능력!

그리고 이 능력은 덜 익은 고구마처럼 퍽퍽하기 그지없던 경기를 단박에 바꾸었다.

-뻐어어엉!

전반 21분, 또다시 터진 조쉬 킹의 슛!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 모서리에서 터진 16m 중거리 슛이었다.

-툭.

엄청난 속도로 공간을 찢어발긴 조쉬 킹의 강슛을 손가락 한 마디로 건드려 막아내는 알리송 베커!

잘 차고 잘 막았다.

월드클래스 골키퍼다운 슈퍼세이브였다.

“아오···.”

엄청난 세이브를 보여준 알리송 베커는 막아낸 손가락이 얼얼했는지 손가락을 거듭 털어낸다.

조쉬 킹이 내지른 슛의 무게는 차원이 달랐나 보다.

“오···. 뭐야. 오늘 좀 긁히나 본데?”

“감독님의 명령에 일단 아무 생각 없이 따르긴 했는데, 확실히 좋아 보이긴 하네.”

“갑자기 왜 저러지?”

“경기 시작 전에는 그냥 평소의 조쉬 킹이었는데.”

“뭔진 몰라도 기회입니다.”

이제야 포츠머스의 선수들도 조쉬 킹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좋은 상황!

영민한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유기적인 움직임을 통해 조쉬 킹에게 더욱 길을 열어준다.

[포츠머스가 조쉬 킹에게 집중합니다!]

[좋은 선택입니다. 오늘 조쉬 킹은 정말 좋아 보이거든요.]

조쉬 킹의 폭주.

소하의 통찰력.

선수들의 유기적인 협력.

이 세 가지 요소가 모두 합쳐지자 팽팽했던 경기는 순식간에 포츠머스 쪽으로 확 기울었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회에서, 록 페스티벌로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해버린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4차전.

물론, AS 로마의 에우세비오 디 프란체스코 감독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팀의 무게 중심을 오른쪽으로 이동시켜라! 상대는 그쪽에 집중하고 있어!”

조쉬 킹의 폭주를 막기 위해 스테판 엘샤라위까지 내리며 벽을 촘촘하게 만들었다.

아예 앞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게 두툼한 정지선을 만들었고, 꽤 효과는 좋았다.

[음, 조쉬 킹의 멈추지 않던 발걸음이 조금 느려졌습니다.]

[조쉬 킹을 막기 위해 상당한 강수를 둔 에우세비오 디 프란체스코 감독이에요.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파상공세를 막기 위해 좌우 측면의 균형을 무너뜨린 선택이다.

그렇다는 건 즉,

“흥! 반대가 빈다는 거지!”

좋은 폼이 지능마저 끌어올린 걸까?

발걸음이 조금 느려졌던 조쉬 킹은 단박에 상황을 파악했다.

하지만 그의 패스 실력으로는 반대편으로 예쁘게 떨어지는 중장거리 패스나 크로스는 무리다.

그렇다면,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고!”

소하가 들었다면 물구나무를 서며 즐거워했을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무식하기로 소문났던 조쉬 킹이 드디어 축구에 눈을 뜨다니. 정말 되는 날인가보다.

-툭.

다시 한번 질주를 하려는 ‘척’을 하며 어그로를 끈 조쉬 킹은 덕분에 상대적으로 굉장히 여유로워진 그의 동료에게 짧고 간단한 전진패스를 한 방 찔러 넣어줬다.

그 동료란, 바로 앤디 로버트슨.

조쉬 킹과 함께 포츠머스의 왼쪽 측면을 담당한 이 뛰어난 왼쪽 수비수는 거침없이 오버랩을 시도했고 조쉬 킹은 놓치지 않았다.

정말 놀라운 조쉬 킹의 축구 지능!

그리고.

패스를 받고 앞으로 질주하는 앤디 로버트슨은 ‘원래’ 축구 지능이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공을 반대로.’

이미 패스를 받기도 전에.

아니, 오버랩을 시도하기도 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완전히 숙지한 상태였다. 덕분에 조쉬 킹의 괜찮은 패스를 받은 그는 그대로 한 번 더 앞으로 치고 나가서 멋진 크로스를 올렸다.

-슈르르르륵.

높고, 빠른 회전이 잔뜩 걸린 앤디 로버트슨의 크로스.

그 끝은,

페널티 에어리어로 침투한 스티븐 데커도 아니었고,

마찬가지로 침투한 델리 알리도 아니었으며,

중앙공격수인 에링 홀란드도 아니었다.

목표는 왼쪽으로 상대의 수비가 집중되며 너무나도 편해진 포츠머스의 11번!

바로, 모하메드 살라였다.

-팡.

정확히 모하메드 살라의 왼발에 떨어진 앤디 로버트슨의 크로스는 바로 모하메드 살라의 다이렉트 슛으로 전환되었다.

-철썩.

너무 강하지도, 너무 약하지도 않은 적절한 세기를 자랑하는 모하메드 살라의 정확한 슛은 그대로 골망을 갈랐다.

[골입니다! 전반 26분, 포츠머스가 드디어 선제골을 뽑아냅니다!]

[전형적인 골 패턴입니다. 한쪽 측면에 공격을 집중시킨 뒤 반대쪽으로 순식간에 전환하는 포츠머스의 짜임새 있는 전술!]

포츠머스는 물론, 현대축구의 선두 주자들이 모두 사용하는 전형적인 공격패턴이었다.

“···.”

다만, 골을 넣고 난 뒤의 상황은 전형적인 것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선제골을 득점한 모하메드 살라가 멋진 셀레브레이션 대신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달아오른 분위기는 진정시키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보기 드문 장면은 소하가 매우 좋아하는 ‘축구계의 로망’ 때문에 나왔다.

[아! 모하메드 살라의 친정팀이 AS 로마 아닙니까? 친정팀에 대한 예우를 보여주는 모하메드 살라 군요.]

[지금까지 축구계에 로망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첼시에서 망한 유망주라는 평을 듣던 살라를 영입해 키워줬던 팀이 AS 로마 아니던가.

감사함을 잊지 않은 모하메드 살라가 중요한 골을 넣었음에도 기뻐하지 않는 모습으로 보답하는 모습이었다.

“오오. 바로 이거지. 모 살라는 근본이 있는 녀석이라고.”

로망에 매우 약한 소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연이어 박수를 보내기 바빴다.

하여튼, 전반전에 선취 득점을 달성하며 매우 유리한 고지에 오른 포츠머스.

이대로만 진행한다면 16강 진출에 매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

***

-삑! 삑! 삑!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 B조 4차전의 끝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최종 점수는 2-1.

포츠머스가 AS 로마를 홈으로 불러들여 승리를 거두며 단박에 조 1위로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오늘의 MOM은 당연하게도 조쉬 킹.

오늘 그의 뛰어난 모습은 AS 로마에 선택을 강요했다.

조쉬 킹을 막으려면 반대쪽 측면을 취약하게 열어줘야 했고,

그렇다고 균형을 맞추면 날뛰는 조쉬 킹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저건··· 될 선수다.”

AS 로마의 감독은 그저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보통, 실력 차이가 존재해도 같은 1부리그 선수인 이상, 두 명이 한 명을 막지 못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하는 1부리그 팀의 수준 차이는 지극히 적었으니까.

하지만 종종 ‘리오넬 메시’ 같은 규격 외의 선수들이 다수의 선수를 혼자서 박살 냈고, 오늘의 메시는 조쉬 킹이었다.

“와. 미쳤냐? 오늘 뭔 날이야?”

“최고의 경기였다.”

“오늘은 캐리한 거 인정한다.”

티격태격하던 동료들마저도 인정할 만큼 대단한 활약!

포츠머스의 지속적인 반대쪽 측면 공략은 결국 AS 로마가 조쉬 킹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조쉬 킹은 이를 놓치지 않고 기어코 골까지 넣었기에 이견의 여지가 없는 대활약이었다.

“넌 앞으로 오늘만큼만 계속해라. 그러면 다시는 갈구지 않을게.”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내는 소하마저도 조쉬 킹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이로써 승점 7점으로 순식간에 2위와 승점 차이를 벌린 포츠머스.

바이에른 뮌헨과 파리 생제르맹의 4차전의 결과에 상관없이 일단은 1위를 유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또한, 남은 조별리그 두 경기 중 한 경기만 승리해도 자력으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

“비겨라! 비겨라! 비겨라!”

“제발···. 제발!”

“균형의 여신이 강림하길···.”

포츠머스로 돌아온 소하와 잭 밀러, 에밀리아 존슨. 다 같이 포츠머스의 작은 선술집에 모여 바이에른 뮌헨과 파리 생제르맹의 경기를 관람하는 중이다.

원래는 에밀리아 존슨이 용기를 낸 덕분에 생긴 단둘이 지내는 시간이었지만, 눈치 없는 잭 밀러가 우연히 이야기를 듣다가 합류한 상황이었다.

“코치님 침 튀니까 조금 조용히 해주실래요?”

“···죄, 죄송합니다.”

평소의 온화한 모습은 사라진 채, 북극의 냉기를 풀풀 날리는 에밀리아 존슨!

어찌나 서릿발을 흩날리던지 잭 밀러는 새파랗게 질려 고개를 떨구었다.

하긴, 평소에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화를 내면 더욱 무서운 법이지 않던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밀러였지만 이제 빼기도 뭐한 상황이라 죽을 맛이었다.

하여튼, 이들이 바라는 경기의 결과는 한결같이 바이에른 뮌헨의 승리였다.

[1위. 포츠머스 FC.

2승 1무 1패. 5pt. 7점.

2위. 파리 생제르맹 FC.

1승 1무 1패. 1pt. 4점.

3위. FC 바이에른 뮌헨.

1승 1무 1패. 0pt. 4점.

4위. AS 로마.

1승 1무 2패. -6pt. 4점.]

현 B조의 테이블이다.

한 경기를 더 치른 포츠머스가 승점 3점을 앞서며 1위를 차지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양 팀이 비기면 더욱 유리해지건만, 바이에른 뮌헨을 응원하는 소하가 이상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아, 로벤아! 우리랑 할 때는 펄펄 날뛰더니 오늘은 개같이 못하네!”

“오른발은 의족인가? 너희가 이겨줘야 파리랑 승점 차이를 벌리지!”

“우린 원정에서 너희를 이길 자신이 없다고. 그러니 제발 이겨주라.”

이들의 외침처럼 먼저, 남은 홈경기와 원정 경기의 차이가 중요했다.

남은 두 경기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원정 경기와 파리 생제르맹과의 홈경기.

시대가 아무리 변했다고 하더라도 홈경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컸다.

자고로, 시골집 똥개도 자기 안마당에서는 한 수 먹고 들어갔으니까.

즉, 바이에른 뮌헨의 홈 경기장에서는 질 확률이 매우 높았고, 이것은 소하도 인정하는 바였다.

[1위. FC 바이에른 뮌헨. 10점.

2위. 포츠머스 FC. 7점.

3위. 파리 생제르맹 FC. 4점.

4위. AS 로마. 4점.]

만약, 바이에른 뮌헨이 파리 생제르맹과 포츠머스를 이겼을 때의 테이블이다.

파리와 로마의 경기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16강을 결정짓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가 포츠머스의 홈에서 벌어지게 된다.

중요한 경기를 홈에서 치룬다라.

매우 좋은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렇게 되면 승자승 때문에 우리가 매우 매우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지.”

5차전에서 파리와 로마, 둘 중 아무나 승리해서 승점 7점으로 동률을 이루어도 굉장히 유리해졌다.

일단 로마와의 전적은 1승 1무였기에 비기기만 해도 승자승으로 16강 진출이었고, 이것은 파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만약에 뮌헨이 비기거나 지면? 난리 나는 거지.”

바이에른 뮌헨이 승점을 따가지 못한다면 일이 커졌다.

왜냐하면, 포츠머스는 홈에서 바이에른 뮌헨에 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가오는 5차전에서도 패배를 면하기 힘든 상황. 거의 상수라고 치고 계산을 해야 하면, 결국 두 가지 경우의 수가 나오게 된다.

하나는 파리가 승리했을 때다.

[1위. 파리 생제르맹 FC. 7점[email protected]

2위. FC 바이에른 뮌헨. 7점.

3위. 포츠머스 FC. 7점.

4위. AS 로마. 4점[email protected]]

승자승으로 3위까지 밀려나게 되며 16강을 자력으로 진출하려면 무조건 이겨야 하는 좋지 않은 결과다.

그리고 또 하나 무승부가 나왔을 때다.

[1위. FC 바이에른 뮌헨. 8점.

2위. 포츠머스 FC. 7점.

3위. 파리 생제르맹 FC. 5점[email protected]

4위. AS 로마. 4점[email protected]]

언뜻 보면 파리와 승점 차이가 나지만, 이것은 AS 로마와 파리의 경기 결과가 반영되지 않았다.

혹여라도 파리가 이겨서 승점 8점을 달성하게 된다면 포츠머스는 3위로 주저앉게 되었고, 마지막 경기에서 무조건 이겨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바이에른 뮌헨은 이기지 못한다.]

라는 상수가 만들어낸 경우의 수!

그저, 지옥에 조에 걸린 악운 때문에 먼저 2승 고지를 점했으면서도 경우의 수를 돌려봐야 하는 포츠머스였다.

< 213화. 17-18시즌 챔피언스 리그. (1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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