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화. 17-18시즌 챔피언스 리그. (10) >
숨이 가빴던 포츠머스의 9월.
프리미어 리그 4라운드부터 시작해서 리그컵 32강, 챔피언스 리그 조별 3차전까지.
한 달 동안 총 8경기라는 미친 일정을 3승 2무 3패로 마무리한 포츠머스에게 10월이 찾아왔다.
10월을 일정은,
[프리미어 리그 8라운드, 스토크 시티와의 원정 경기.]
[프리미어 리그 9라운드, AFC 본머스와의 홈경기.]
[리그컵 16강, 에버튼 FC와의 홈경기.]
[프리미어 리그 10라운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
이렇게 4경기 밖에 없었다.
더해서, 10월 1일부터 A매치 기간이 2주 가까이 잡혀있어 체력적으로 힘들던 포츠머스에게는 모처럼 휴식의 기회였다.
“너희 그냥 차출 거부하면 안 되냐? 나라가 너희에게 해준 게 뭔데! 세금이나 존나게 떼가고!”
이런 기회에 주축 대부분이 국가대표에 소집되자, 소하는 떠나는 선수들에게 망언을 쏟아냈다.
“···.”
“···.”
“···.”
당연하게 돌아오는 선수들의 황당한 눈빛. 제정신임이 의심된다는 눈길들이다.
“뭘 그렇게 봐. 확 눈깔을 마! 솔직히 다른 애들은 몰라도 너희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은 애국심 없기로 유명했잖아!”
뻔뻔함이 하늘을 찌르는 소하!
되려 성질을 내며 더욱 닦달한다.
사실, 소하의 폭언처럼 다른 나라는 몰라도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은 엉망이긴 했다.
클럽 간의 경쟁이 너무나도 심해 국가대표에서도 클럽끼리 파벌을 만들었던 놀라운 역사를 자랑했기 때문이다.
괜히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말고는 우승해본 적이 없는 ‘축구 종가’가 아니었다.
“감독님···. 요즘에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님이 팀을 하나로 만들고 있습니다.”
소하의 팬클럽 회장인 케빈 도슨이 나서서 달라진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 대한 변론을 펼치었다.
이에, 소하는 눈썹을 찡그리며 사나운 눈초리를 만든다.
“뭐라고?”
“그러니까···. 요즘에는 국가대표팀의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국가를 위해 우승컵을 들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보기보다 훌륭한 감독입니다.”
거듭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감독인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을 칭찬하는 케빈 도슨.
무뚝뚝한 눈빛 속에서 작은 존경심의 빛이 일렁인다.
그리고 소하는 그 눈빛에 실연당한 총각처럼 좌절한다.
“도, 도슨이 네, 네 이놈! 나, 날 버리고 다른 놈한테 마음을 뺏긴 거야? 그런 거야? 그랬던 거야?!”
마치, 깜짝 프러포즈를 위해 몰래 여자친구의 자취방에 찾아갔더니 외간 남자와 함께인 상황을 목격한 순정남의 비명이었다.
“가, 감독님, 그, 그게 아니라···.”
케빈 도슨은 소하의 비명에 당황스러운 듯 손발을 마구 휘저었다.
‘북해의 빙벽’이라는 별명이 참으로도 어울리지 않는 행태!
이렇듯 엄청난 당혹스러움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케빈 도슨이었지만 소하의 비명은 더욱 커질 뿐이었다.
“으아아아! NTR 당했어! 내가 버림받았다고!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금발 태닝 양아치’였다니! 이 개자식이이이이!”
머리를 쥐어 헝클이며 당장이라도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멋들어진 수염을 쥐어뜯으러 가려는 소하.
지랄 염병도 이 정도면 예술의 경지가 아닐까 싶다.
“제, 제 말 좀 들어보십시오. 그, 그게 아니란 말입니다. 제 마음속에는···.”
“됐어! 더러운 놈!”
“가, 감독님···. 지, 진정하시고···.”
“시끄러워! 조강지처를 버리는 쓰레기 같은 녀석!”
난데없이 벌어진 촌극.
마침, 이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 소하를 진정시킬 진정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음? 무슨 일이십니까.”
“부주장님. 그냥 못 본 척 돌아가는 게 신상에 이로울 듯싶습니다.”
잭 해리슨과 데클렌 라이스.
소하의 팬클럽의 부회장과 열혈 회원을 담당한 선수들이다.
무뚝뚝하고 성실한, 제법 비슷한 성격인지라 팀 내에서는 나이를 뛰어넘는 단짝이었다.
평소 소하의 신임을 무척 받는 이들이라면 소하의 광증을 진정시킬 절호의 비약일 터.
마침, 발광하던 소하도 이들을 발견하고선 쪼르르 달려가서 칭얼거린다.
“얘들아, 들어봐봐. 저 주장이란 놈이 날 버리고 새살림을 차렸다고! 어떻게 생각하냐?”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나쁜 행동이라고 사료됩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내용만은 케빈 도슨이 천하에 둘도 없는 나쁜 자식이었기에 잭 해리슨과 데클렌 라이스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충신들이다! 이참에 잭 해리슨은 주장으로 승격, 쌀이는 새로운 부주장으로 임명해야겠는데?”
소하는 매우 즐거워하며 둘의 어깨를 세차게 두들겼다.
“엇?! 저, 정말입니까? 제가 드디어 길고 긴 부주장 생활을 끝내고 드디어···!”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겠습니다. 제가 부주장이라니···. 믿어지지 않네요.”
둘에게 있어서 ‘주장단’이란 당근은 너무나도 큰 미끼였기에 동요한다.
“농담이 아니야. 내가 저 녀석이 없는 동안 심도 있게 고민해볼 테니까···. 근데 말이야···.”
신이 나서 마구 혓바닥을 놀리던 소하는 문뜩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말을 멈췄다.
절대적인 아군이라고 믿었던 둘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기 때문이다.
“음?! 근데, 너희들은 짐을 그렇게 싸고 어딜 가냐?”
마치, 국가의 부름을 받고 대표팀으로 합류하기 위해 짐을 잔뜩 싼 케빈 도슨과 똑같지 않은가!
부들부들.
온몸이 서서히 떨리기 시작한 소하였지만 애써 현실을 외면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눈치 없는 둘은 이번에도 아무 생각 없이 사실을 실토했다.
“어? 모르고 계셨습니까? 이번에 저와 라이스도 국가대표에 차출되었습니다.”
“정말 영광입니다. 국가대표팀에서 좋은 모습을 선보여, 포츠머스의 위상을 알리겠습니다.”
홈 그로운을 위해 잉글랜드 국적의 유망주들을 싹쓸이한 행동의 악영향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도 소하의 발작 버튼이었다. 그것도 최상급 발작 버튼!
“으아아아아! 남대문, 이 새끼! 마누라뿐만 아니라 재산은 물론, 자식까지 모조리 통째로 후려치려는 수작이구나! 이 개자식! 안 되겠어. 그냥 묻어버리는 게 안전하겠어.”
기어코 분노가 골수가 치민 소하.
훈련용 철제 막대를 들고 길길이 날뛴다. 눈에 살기를 줄줄 흘리는 모습이 귀신이 따로 없다.
“지, 진정하세요! 감독님!”
“고, 고정하세요!”
“오해입니다. 감독님 제가 가장 존경하는 감독님은···.”
“다들 여기 와서 말려! 살인 난다!”
소하를 말리는 선수들과 이 난장판 속에서도 꾸준히 오해를 푸기 위해 변명하는 케빈 도슨이 만들어내는 개판이었다.
그야말로, 포츠머스다운 10월의 첫 번째 날이 아닐 수 없었다.
***
A매치 기간이 끝나고 다시금 재개된 포츠머스의 험로.
겉으로 보기엔 제법 긴 휴식기였지만, 국가대표를 잔뜩 배출한 포츠머스에게는 또 다른 레이스였다.
체력적인 문제는 물론이었고, 혹시라도 불운한 부상을 당할지도 몰랐다.
“휴식은 포기했으니까, 제발 부상만은 피하자. 제발. 진짜.”
썩 기분이 좋지 않은 A매치 기간을 보낸 소하는 냉수 한 접시를 떠서 천지신명에게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신이란 존재는 필요할 때만 찾는 자에게 매우 쪼잔한 존재!
결국 부상을 입은 선수들이 소하에게 배송되었다.
[마리오 발로텔리, 루마니아의 거친 플레이에 종아리 부상을 당하다.]
[방주호, 발목부상!]
[도봉산, 새끼발가락 골절. 한 달간 결장이 불가피하다.]
[유리 틸레만스, 3주 아웃!]
놀랍게도 걱정했던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은 선수들을 멀쩡하게 보냈지만, 다른 국가대표팀에서 사고를 쳤다.
특히나 대한민국 국적의 선수들이 모두 부상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소하는 자연스럽게 상대 팀을 검색해봤다.
“중국? 이런 씨발! 되놈 새끼들, 하라는 축구는 하지 않고 격투기를 했나!”
중국과의 친선경기에서 도봉산과 방주호가 다친 참사였다.
중국 축구라면, 좋지 않은 의미로 ‘소림축구’로 유명한 나라.
프로의식이 의심될만한 개태클을 서슴지 않는 스타일이라 사달이 났다.
“이정재 선수도 가벼운 무릎 부상이라고? 진짜 지랄이 났나 보군···.”
포츠머스뿐만 아니라 토트넘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A매치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었다.
“아니···. 좀···. 국가대표팀도 중요하긴 한데···. 선수한테 주급 쏘는 건 우리잖아···. 월드컵 예선도 아니고, 좀 위험한 경기는 쉬게 해 줘도 되지 않나?”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서 쉬고 있을 신용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게 한껏 불만을 표출하는 소하.
소하 혼자만의 불만이 아니었다.
뭉치지 않기로 유명한 유럽의 명문 구단들도 ‘A매치’ 문제로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불만을 표출할 정도였다.
아무래도 천문학적인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들을 단지 애국심만으로 뽑아서 마구 다루는 건 시대에 역행하는 행위지 않은가.
특별한 대책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FIFA와 UEFA, 각 대륙과 국가의 축협이 이견을 조율해야 하는데···. 오히려 모두 경기를 늘리자고 외치니···.”
갈려 나가는 선수들을 외면하고 그저 경기 수를 늘려 돈을 긁어모으려는 전 세계 축협의 행태는 절로 한숨이 나오게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나만 고통받는 건 아니니까. 우리 팀만 억울했으면 화병이 도져서 못살지.”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을 함께 나주면 절반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조금 왜곡된 방식이었지만 다른 팀의 부상자들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화를 찾는 소하였다.
그렇게 썩 좋지 않은 A매치 기간이 끝나고 포츠머스는 다시금 경주를 시작했다.
첫 번째 상대는 스토크 시티.
첫 만남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지라 소하는 조심스럽게 경기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로마전에서 선보였던 민주적인 선발진까지 멈추지 않았고, 경기는 무승부로 끝나게 됐다.
[경기 종료! 이번에도 독특한 선발명단을 준비한 포츠머스였지만, 단단한 스토크 시티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로써 포츠머스는 챔피언스 리그까지 합쳐서 5경기 동안 승리를 단 한 번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0-0.
아쉬운 무승부.
원정 경기에서 스토크 시티를 거칠게 몰아붙였지만 2%가 부족했다.
마치, 여름에 양말을 신고 쪼리를 신은 느낌의 경기력이었다.
해도 괜찮지만 뭔가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
조금 아쉬운 경기 결과였다.
이번 무승부로 포츠머스는 5경기 동안 패, 패, 패, 무, 무라는 역대급으로 좋지 못한 성적표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3연패에 이은 2연속 무승부는 기어코 서포터들의 불만을 야기하기에 이르렀다.
-뭐 하는 거야? 지금 선발명단으로 장난칠 시간이 아닌데?
-드디어 성소하 감독의 총기가 사라진 건가? 하긴 그동안 너무 잘났지.
-운을 다 쓴 거지. 그동안 실력이라기보다는 운으로 잘나가던 사람이었으니까.
-바닥 드러났죠? 성소하 아웃!
-장기 집권의 폐해가 드디어 드러난 거지. 선수진은 좋으니까 이참에 스태프진의 물갈이를···.
수년 동안 꾹 참아왔던 악성 냄비 서포터들이 고개를 쳐들었다.
인내심이라고는 개미 오줌만큼도 없는 악성 종자들!
이들은 모처럼 긍정적이지 못한 포츠머스의 성적에 물을 만난 물고기로 변했다.
물론, 이 세상에는 악함만 가득한 것이 아니었다. 악만 날뛴다면 이미 인류는 진작에 멸망했을 터.
균형의 수호자이자, 아직도 절대다수를 차지한 선한 서포터들이 몽둥이를 들고 폭동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대가리 구멍 났냐? 뭐? 성소하 아웃? 너나 인생에서 아웃 해라.
-철새 새끼들, 팀이 잠깐 못하니까 금방 본색 드러내네. 꺼져.
-성소하 감독은 강등당해도 괜찮아. 이 새끼들아. 해준 게 얼만데.
-진짜 유입한 애들은 티를 못 내서 안달이야. 그냥 이참에 깡그리 소독하자.
-조금 이상한 선발이지만 분명 성소하 감독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야. 항상 그래왔듯이.
오랜만에 랜선에서는 고지전이 펼쳐졌다. 기습적으로 화력을 집중한 악성 종자들이 전쟁의 초반을 이끌었지만, 이내 명분과 숫자를 앞세운 진압군에 무참히 진압되었다.
솔직히 지금 잠깐 좋지 않다고 소하를 깎아내리는 건 어불성설이지 않던가.
다른 팀도 아닌, 4부리그에 처박혀 있던 포츠머스를 챔피언스 리그에 이끈 감독이 바로 소하다.
20년 만에 리그 우승을 달성한 위르겐 클롭 감독도 깎아내리는 것이 축구팬이라지만 이건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은 격이었다.
“후후후···. 이 은혜도 모르는 개 잡종들. 다시 4부리그로 가볼래?”
소하는 무참히 박살나는 악성 종자들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여담으로, 큰 그림 어쩌구 하는 댓글은 소하 본인이 단 댓글이다.
“추천이 쏟아지는군. 동의하는 댓글도 수두룩하고. 제법 축구를 아는 놈들이 많아서 다행이야.”
품위라고는 하나도 없는 여론조작에 성공한 소하. 해서, 아직도 유지 중인 막대한 지지를 등에 업고 민주적인 선발을 계속 이어나갔다.
흔들리지 않는 뚝심이랄까.
꾸준히 괴상한 선발을 내보냈고 기어코 연이어 승전고를 울렸다.
본머스와의 홈경기, 2-1 승리.
리그컵 4라운드, 2-0 승리.
시원한 2연승에 더불어 프리미어 리그 10라운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힘들었던 경기에서 기적적인 무승부까지 거두었다.
2승 1무라는 호성적!
드디어 소하가 바라던 세 번째 효과, ‘신구의 조화’가 무르익기 시작한 것.
이제 챔피언스 리그 4차전, AS 로마의 홈경기가 코앞까지 다가온 포츠머스였다.
< 211화. 17-18시즌 챔피언스 리그. (10)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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