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화. 17-18시즌 챔피언스 리그. (6) >
바이에른 뮌헨의 파상공세는 전반 20분까지 줄기차게 이어졌다.
어찌나 격렬한 공격이었던지 포츠머스 선수들이 중앙선을 아예 넘어가지도 못할 정도!
경기내용은 숫자로도 증명되었다.
슈팅 숫자 11:0.
점유율 76:24.
고작 20분 동안 두들겨 맞은 것치곤 너무나도 호되게 혼났다.
그런데도 아직 0:0이라는 점수는 소하의 선택과 페트르 체흐의 선방 능력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보여주는 증거였다.
“말년에 고생이 많군요. 체흐 옹···.”
슬슬 은퇴할 나이가 가득 찬 페트르 체흐에게 소소한 고마움을 표현한 소하.
그가 전성기 시절의 포스를 뿜어내지 않았다면 이미 경기는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두들겨 맞으면 머지않아 실점할 텐데···.”
소하는 근심 가득한 눈빛으로 경기장을 주시하며 읊조렸다.
이미 3골 이상을 막아준 체흐에게 남은 70분을 더 기대한다는 건 너무나도 과한 바람이다.
이 때문에 포츠머스 측에서도 바이에른 뮌헨의 파상공세를 잠재울 플레이가 나와야만 했다.
“모 살라. 넌 푹 쉬었잖아? 우리 구단 역사상 최고 이적료의 힘을 보여달라고.”
소하가 기대하는 선수는 역시나, 일주일 내내 푹 쉰 덕분에 가장 펄펄한 모하메드 살라였다.
모하메드 살라.
5,000만 파운드에 가까운 이적료를 달성한 포츠머스 역사상 가장 비싼 선수!
그가 한 건 해주어야만 했고 한 건 해주기 딱 좋은 상황이기도 했다.
“파상공세라 하면, 최종 수비 라인이 중앙선까지 올라왔다는 뜻이지. 게다가 20분이나 지난 상황. 수비수들이 약간 마음을 놓기에는 충분하다.”
바로 이것이 소하가 패배를 감수하면서도 모하메드 살라를 일주일이나 쉬게 한 이유였다.
구단 내 최속의 선수를 이용해 공격에 정신이 팔린 바이에른 뮌헨의 뒷공간을 후벼파려는 계략!
리그컵과 프리미어 리그 6라운드를 꾹 참으면서 그렸던 큰 그림이었다.
연이은 중요한 경기들 속에서도 승리를 위한 최후의 한 수를 준비한 소하의 놀라운 혜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모 살라, 아직 푸른 유니폼이 어색한 이 남자는 소하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준비가 된 선수였다.
-툭.
[케빈 도슨이 놀라운 집중력으로 아르연 로번의 공을 탈취했습니다!]
[그대로 오른쪽 측면을 향해 수비수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엄청난 긴 패스를 뿌립니다!]
포츠머스의 위대한 주장, 케빈 도슨이 첫 출발을 끊었다.
어지간한 미드필더들의 뺨따귀를 후리고도 남을 놀라운 정확도와 속도의 패스는 경기장을 창연하게 가른다.
-슈와아악.
최대 높이에 도달하자마자 뚝 떨어지는 탑 스핀이 걸린 최고의 구질!
이 훌륭한 패스는 케빈 도슨이 패스를 뿌리자마자 전방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모하메드 살라의 진로에 정확히 떨어졌다.
[정말 대단한 팀플레이입니다! 설마 성소하 감독이 노리던 플레이였나요? 너무나도 깔끔합니다!]
[이건 오프사이드가 아니죠! 포츠머스의 자로 잰 듯한 플레이! 덕분에 바이에른 뮌헨은 엄청난 위기에 빠졌습니다!]
바이에른 뮌헨의 전원이 질주하는 모하메드 살라를 따라잡으려고 달리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로써 모하메드 살라의 앞길을 막을 선수는 오로지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밖에 없는 상황!
-툭, 툭!
골키퍼만 남은 상황인지라 가속도를 제대로 받은 모하메드 살라는 거침없이 치고 달리기를 전개했다.
그리고 이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어?!”
깜짝 놀라는 모하메드 살라!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모하메드 살라 앞에 어느샌가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덮쳤던 것이었다.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가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튀어나와 모하메드 살라를 가로막습니다!]
[골대를 버려두고 앞으로 튀어나오다니! ‘스위퍼 키퍼’의 창시자다운 모습입니다!]
-촤아아악!
장내 아나운서의 비명과 함께 골키퍼가 맞나 의심스러운 멋진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하는 마누엘 노이어!
전설적인 이탈리아의 수비수, ‘알렉산드로 네스타’가 떠오르는 정말 깔끔한 태클이었고, 공만 깔끔하게 빼내는 슈퍼 플레이였다.
“미친···. 저, 저, 사기 캐릭···.”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 모하메드 살라는 경기장을 주먹으로 후려쳤고, 소하는 입을 떡 벌린 채 혼이 나갔다.
“이건 정말 너무 하네!”
매우 아쉬워하는 소하. 완벽한 실점 위기에서 저런 대범하고도 아름다운 플레이를 펼칠 줄 정말 꿈에도 몰랐다.
만약 모하메드 살라가 단 ‘한 번’만 덜 치고 나갔으면 가벼운 칩슛만으로도 그대로 실점할 상황이었거늘.
골키퍼란 자리를 두고 ‘역대’를 논하는 선수는 수준이 달랐다.
“와···.”
“이건 적이지만 박수가 절로 나온다.”
“미쳤다···.”
“리스펙 한다.”
“이런 플레이를 라이브로 보다니···.”
-짝짝짝짝!
연이은 확장공사 덕분에 25,000석이 된 프래튼 파크에는 때아닌 기립박수가 나왔다.
이것은 평생 축구를 봤음에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플레이를 보여준 ‘마누엘 노이어’를 향한 존경심의 표출이었다.
암만 적이라도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은 기본적으로 한 사람의 축구 애호가였기에 나온 훈훈한 장면!
그리고 이뿐만 아니라, 열세에 처한 상황에서도 바이에른 뮌헨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소하의 부분 전술에 대한 찬사도 섞인 기립박수였다.
“후후. 확실히 축구 좀 볼 줄 안다니까. 우리 팀의 서포터들은. 그러니까 응원에 좀 더 힘내라고!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이제 숨통이 트일 거다! 이길 수 있어!”
골을 넣지 못해 아쉬운 장면이었지만 소하 또한 싱긋 웃으며 선수들과 서포터들에게 더욱더 힘을 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파리 생제르맹과의 경기와는 전혀 분위기를 뽐내는 프래튼 파크.
진심으로 이기겠다는 마음이 서로 부딪치며 튀어나오는 스포츠의 정신이었다.
물론, 소하는 단지 좋은 스포츠 정신을 보여줬다고 마음이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비록 골은 넣지 못했지만, 계획의 절반 이상은 달성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전과 같은 파상공세는 취하지 못할 거다. 이제야 해볼 만하겠군.”
바로 이것이었다.
만약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가 아니었다면 백중 백은 실점을 했을 상황 아니던가.
즉, 모하메드 살라의 플레이는 바이에른 뮌헨의 수비진에 큰 부담을 줄 거다.
이는 자연스럽게 최종 수비라인이 뒤로 물러날 것이며, 숨도 쉬지 못했던 포츠머스에 여유를 선물할 터.
최악에서 해볼 만한 수준으로 상황을 한 번에 역전시킨 소하와 포츠머스.
경기는 이제 결과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혼돈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
-삑! 삑!
포츠머스와 바이에른 뮌헨,
바이에른 뮌헨과 포츠머스의 챔피언스 리그 2차전 전반전이 끝이 났다.
전반전 45분을 마친 양 팀의 점수는 놀랍게도 0-0.
또다시 이변을 만든 포츠머스였다.
전반전 중반의 단 한 번의 멋진 플레이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고 포츠머스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며 대등한 경기력으로 전반전을 마치었다.
“좋아. 잘했다. 이번 경기는 기회가 몇 없을 거야. 그러니 집중력을 잃지 말고 기회를 반드시 잡아라. 알겠냐?”
“넵!”
“알겠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휴식 시간, 라커룸에서 소하는 다시 한번 선수들을 독려하며 전술 지시에 들어갔다.
상당히 지쳐있는 포츠머스의 선수들이었지만 의욕만은 확실했기에 분위기는 제법 괜찮다.
다시 한번 기적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좋은 상황.
하지만 소하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확실히 상당히 힘들어하는군. 정신력이 체력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도 일시적일 뿐. 후반부로 넘어가면 퍼질 거야.’
모하메드 살라 빼고는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그나마 평균 정도 되는 선수는 조쉬 킹과 중앙수비수들뿐.
페트르 체흐도 간만에 강제 레벨업을 한 덕에 골키퍼임에도 제법 힘들어하는 눈치다.
‘그렇다면 벤치 자원을 써야 하는데···.’
소하는 슬쩍 오늘 서브 명단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을 훑어봤다.
[아론 람스데일, 아담 웹스터, 니콜로 바렐라, 마이클 반즈, 잭 해리슨, 마리오 발로텔리, 도봉산.]
일단 잭 해리슨은 꼭 투입해야만 했다.
오른쪽 윙포워드가 아닌 왼쪽 윙백으로 말이다.
앤디 로버트슨은 팀의 핵심 중에서도 핵심이었기에 그간 열심히 구른 선수 아니던가. 바꿔주지 않으면 사달이 날지도 몰랐다.
‘그럼 남은 선수는 두 명···.’
두 명.
팀 전체가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겨우 두 명이라니.
너무나도 적은 숫자다.
5인 교체가 적용되려면 수년이나 남았기에 더욱 골치가 아프다.
“흐음···.”
깊은 고민에 빠지는 소하. 교체는 단순히 체력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경기의 흐름도 바꾸는 중요한 수단이었기에 쉽게 선택할 수가 없다.
사소한 선택 하나로 결과가 아예 바뀔지도 모르는 세계 속에서 십 년을 넘긴 소하로서도 어려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소하가 고뇌에 고뇌를 거듭하든지 말든지 시간은 무정하게 계속 앞으로 달리는 법.
이윽고 승부를 결정지을 후반전이 찾아왔다.
***
다시금 재개된 포츠머스와 바이에른 뮌헨의 숨이 막히는 경기.
전반전 초반과는 다르게 양 팀이 서로 공격과 수비를 주고받으며 치열하게 시간을 태운다.
물론, 5:5로 싸우는 용호상박의 싸움은 아니었다. 굳이 숫자로 표현하자면 6.5대 3.5의 싸움이다.
포츠머스가 공격을 한번 하면 두 번 정도는 수비해주는 경기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다.
실력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분명한 약팀은 포츠머스였으니까.
그리고 이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에너지 레벨이 점점 떨어지는 포츠머스입니다. 슬슬 교체가 필요한 시점인데요.]
[바이에른 뮌헨은 아직 쌩쌩한 것에 비해 포츠머스의 발이 점점 느려지고 있어요!]
6.5대 3.5의 싸움.
이것은 점점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히며 7:3의 싸움으로 변질하였다.
즉, 전반전 초반과 비슷한 상황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후반, 15분.
완전히 수세에 몰린 포츠머스!
이에 소하는 기어코 교체 카드를 먼저 꺼내기에 이르렀다.
“가라. 잭 해리슨. 앤디 로버트슨보다 위에서 공격적으로 임해라.”
“알겠습니다.”
소하의 명령에 잭 해리슨은 벌떡 일어나 몸을 풀기 시작했다.
창의력은 부족하지만, 명령의 의도는 잘 파악하는 잭 해리슨.
대번에 소하의 의도를 눈치챘다.
‘골이 필요하다는 뜻이시군. 골을 넣고 체력적인 부담을 단단한 수비로 극복하겠다는 의도다.’
한 골을 앞장선 채 수비적으로 나서는 것과 무승부인 상황에서 수비적으로 나서는 것은 아예 다른 이야기 아니던가.
일단 골이 필요했기에 잭 해리슨에게 공격을 주문한 소하였다.
잘만 통한다면 기적을 불러올지도 모르는 결단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포츠머스에게만 교체 카드가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교체 카드 석 장은 쌩쌩한 바이에른 뮌헨도 가진 권리!
잠잠히 상황을 지켜보던 유프 하이켄스 감독이 소하가 움직이자 드디어 행동에 나섰다.
[포츠머스가 잭 해리슨을 투입합니다. 윙백으로도 자주 나오던 선수죠.]
[이에 맞춰 바이에른 뮌헨도 움직입니다. 프랑크 리베리 대신 킹슬리 코망을 투입하는군요.]
킹슬리 코망!
엄청난 주력으로 측면을 분쇄하는 클래식 윙어 스타일의 선수다.
다만 마무리가 좋지 않아 스탯 생산력은 썩 좋지 않다는 단점을 가진 선수이기도 하다.
‘이런. 우리 팀의 오른쪽 측면을 코망의 속도로 괴롭혀서 체력적인 부하를 더 주겠다는 뜻이군···.’
소하는 이번 교체의 의도를 단박에 파악했다. 스탯 생산력이 좋지 않더라도 이렇게 지친 상황에서의 킹슬리 코망은 저승사자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법 리베리를 잘 막고 있던 신예, 아슈라프 하키미에게도 난감한 상대였다.
프랑크 리베리를 뒤처지는 경험과 실력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속도로 막아냈던지라 상당히 지친 아슈라프 하키미.
이런 그가 자신과 비슷한 속도를 가진, 전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상대를 만난다면 뚫릴 수밖에 없었다.
“하하···. 하이켄스 감독은 정말 대단하군. 하긴 트레블을 그냥 할 순 없는 노릇이지.”
소하는 순순히 유프 하이켄스에게 찬사를 보냈다. 대단한 인내심과 침착함이 아닐 수 없었다.
“상대적인 약팀을 뚫지 못함에도 침착하게 할 때를 기다리다니···. 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강팀이 약팀을 상대로 골을 넣지 못한다면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프 하이켄스 감독은 결국 체력과 실력의 우위로 이길 거란 믿음을 가졌고, 소하가 ‘잭 해리슨’ 카드를 꺼내 들기를 기다렸다.
만약 먼저 득점하기 위해 킹슬리 코망을 꺼냈다면 소하는 왼쪽이 아닌 오른쪽으로 잭 해리슨을 투입했을 터.
정말 거인이 따로 없었다.
“그래. 이렇게 된 이상 하는 데까지 해보자···!”
다음번 카드로 만지작거리는 소하.
선수는 물론, 감독들의 지략싸움마저도 훌륭한 이 명경기는 어느새 종반으로 치달았다.
< 207화. 17-18시즌 챔피언스 리그. (6)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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