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206화 (206/306)

< 206화. 17-18시즌 챔피언스 리그. (5) >

2차전을 앞둔 챔피언스 리그 B조의 상황은 이변의 연속이었다.

2강, 바이에른 뮌헨, 파리 생제르맹.

1중, AS 로마.

1약, 포츠머스 FC.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2강이 무난하게 16강에 진출하는 그림이었지만, 1차전 결과는 파란 그 자체였다.

[1위. 포츠머스 FC. 1승 5pt 3점.

2위. AS 로마. 1승 1pt 3점.

3위. 바이에른 뮌헨. 0승 –1pt 0점.

4위. 파리 생제르맹. 0승 –5pt 0점.]

오히려 상대적인 약팀으로 평가받던 포츠머스와 AS 로마가 1승을 거두는 이변을 만들어냈다.

포츠머스야, ‘파르크 데 프랭스의 비극’을 만든 주인공으로 유명했지만 AS 로마가 바이에른 뮌헨의 홈에서 승리한 것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죽음의 조’에 걸맞은 이변 중의 이변!

덕분에 소하와 포츠머스로서는 더욱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을 흘긴다···. 각이 제대로 섰군.”

한숨을 푸욱 내쉬는 소하.

바이에른 뮌헨이 어떻게 나올지는 너무나도 뻔했다.

1차전의 패배를 면하기 위해 포츠머스를 난타하기 위해 단단히 벼르고 있을 터.

엄한 포츠머스만 샌드백 신세가 될 위기가 다가왔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인 법.

잔뜩 뿔이 난 바이에른을 물리친다면 16강 진출에 매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물론···. 누구에게나 계획은 있지. 존나게 처맞기 전까지는 말이야···.”

유달리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소하.

그도 그럴 게 바이에른 뮌헨의 선수진은 너무나도 뛰어났다.

발롱도르를 강탈당한 ‘프랑크 리베리’.

시간이 거꾸로 가는 ‘아르연 로번’.

인간계 최강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

스페인산 축구 교수 ‘티아고’.

공간 연주자 ‘토마스 뮐러’.

21세기 최고의 골키퍼 ‘노이어’.

독일의 벽 ‘마츠 후멜스’.

눈이 부신 선수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이뿐만이 아니다. ‘요주아 키미히’, ‘제롬 보아텡’, ‘데이비드 알라바’, ‘하비 마르티네스’라는 쟁쟁한 선수들이 쉴 새 없이 튀어 나온다.

과장 없이 전 포지션에 걸쳐 월드 클래스 선수들로 꽉꽉 채운 엄청난 구단이었다.

특히나 ‘로베리’로 일컬어지는 로벤과 리베리의 측면 조합은 수년째 유럽 최강의 측면 조합으로 군림한 상황이다.

덤으로 그들의 방점에는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라는 폴란드의 역사에 영원히 남을 선수까지.

얼핏 보기만 해도 절로 현기증이 난다.

이것만으로도 5-0 대패는 예약이었거늘. 심지어 감독이 ‘유프 하이켄스’라는 전설적인 명장이다.

유프 하이켄스.

전 세계의 강호들을 모조리 때려 부수며 ‘트레블’을 달성한 위대한 감독.

소하의 최종점이라 봐도 과언이 아닌 명장 중에서도 명장이었다.

이래저래 선수단은 물론, 감독으로서도 열세에 처했다.

하지만 소하는 단지 ‘바이에른의 강함’ 때문에 자신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일정 차이.”

바로, 독일 1부리그인 분데스리가의 여유 있는 경기 일정 때문이다.

즉, 참가팀이 2팀이나 적은 18팀밖에 되지 않아 상당히 여유로운 선수단 운영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더해서 압도적인 강자이기 때문에 챔피언스 리그에 집중해도 리그 우승에 그리 어려움이 없다는 혜택까지 따라왔다.

가뜩이나 빡빡한 일정 때문에 선수단 운영에 큰 차질을 안은 포츠머스와는 정반대다.

쉽게 말해,

“선수단 전력도 후달리고, 체력적이나 컨디션적인 문제에서도 밀린다는 거지. 정말 어려운 싸움이야.”

200경기에 가까운 경기를 치른 소하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힘든 경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

“미스터 성은 무척 뛰어난 감독입니다. 단언컨대, 10년 뒤에는 축구계의 최정상에서 모두를 내려다볼 겁니다.”

포츠머스에 도착한 전설적인 명장, 유프 하이켄스는 기자회견장에서 소하를 크게 칭찬했다.

“그리고 그의 지도로 최고의 폼을 보여주는 포츠머스 또한 장래가 아주 밝습니다. 젊고, 재능 넘치는 선수가 한가득합니다.”

거듭 이어지는 극찬 릴레이. 이 정도 칭찬이라면 소하가 기뻐할 만도 했지만, 표정은 점점 굳어만 간다.

왜일까? 유프 하이켄스급의 감독에게 이런 극찬을 받는 감독과 팀은 정말 극소수였거늘. 좀체 이해가 어렵다.

하지만 곧 이유가 밝혀진다.

“그래서, 우리는 포츠머스를 절대로 가벼이 여기지 않을 겁니다. 최정상에 오른 팀이라고 생각하며 전력을 다할 겁니다.”

그렇다. 유일한 약점이었던 ‘방심’의 방자도 보이지 않았다.

‘제기랄. 틈이 없다.’

기자회견 구석에서 짙은 선글라스와 검은색 보자기를 둘러쓴 채 몰래 관람하던 소하는 침음성을 흘렸다.

저 이글거리는 유프 하이켄스의 눈빛을 보라! 흡사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한다고 해도 믿을 만큼 진지하며 열성적이다. 방심 따위는 한 톨도 보이지 않는다.

약팀이 강팀을 잡는 경우의 대다수는 강팀의 방심에서 나오는 법이지 않던가.

방심이란 작은 틈을 이용해 팀을 균열시키는 전략을 즐겨 사용하는 소하로서는 사형선고였다.

‘이렇게 된 이상 남은 방법은 거의 없다.’

그나마 해볼 수단은 변칙적인 전술을 사용하는 것뿐.

하지만, 굳건한 ‘정도’는 ‘사도’가 꼬꾸라뜨리기엔 너무나도 곤란했다.

“후우···.”

절로 깊은 한숨이 나오는 소하. 머릿속으로 수십, 수백 개의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며 고뇌에 빠진다.

아니, 빠지려고 할 때.

“무척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성소하 감독. 전 괜찮으니 변복을 푸셔도 됩니다.”

“히익!”

움찔.

난데없이 유프 하이켄스 감독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소하는 화들짝 놀랐다.

제법 훌륭한 변장이라고 자부했거늘. 제대로 얻어걸려버렸다.

“뭐야? 성소하 감독이 왔어?”

“상대 감독의 기자회견에 참여해도 되는 거야?”

“그러니까 몰래 왔겠지. 예의가 아니니까. 그런데 어떻게 알아봤지? 귀신같은 변장인데.”

“오오. 전설과 전설의 길을 걷는 감독이 만났어!”

“뭐가 됐든 재밌겠는데?!”

웅성웅성.

순식간에 기자회견장은 굉장히 소란스러워졌다.

사실, 다른 감독의 기자회견장에 참가하는 건 경우도 없었고 예의도 아니다.

하지만 소하는 직접 유프 하이켄스 감독의 속마음을 엿보고 싶었기에 무리수를 둔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들통나버리자 암만 뻔뻔한 소하라도 멋쩍게 뒤통수를 긁을 수밖에 없었다.

“하. 하하. 죄송합니다. 워낙 존경하는 감독님이라 멀리서 용안이라도 훔쳐보고 싶었습니다.”

혓바닥에 기름칠한 듯 유려한 변명을 내뱉는 소하. 뻔뻔함이 입신의 경지에 오른 철면피의 모습이었다.

그에 반해 유프 하이켄스 감독은 누구처럼 경우가 없지도 않았고 예의가 없지도 않았다.

“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성소하 감독님과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큼큼. 여, 영광입니다.”

“이리 단상에 올라오셔서 악수나 합시다. 예상보다 조금 이르지만요.”

“그, 그러죠.”

떨떠름한 표정으로 엉거주춤하게 단상 위에 오르는 소하. 볼이 살짝 붉어져 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런 소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름이 자글자글하지만 강인함이 엿보이는 손을 내미는 유프 하이켄스 감독.

이에 소화 또한 체념하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손을 마주 잡는다.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립니다.”

꽈악.

힘차게 두 손을 마주 잡는 양 팀의 감독들. 과거의 전설과 미래의 전설이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임을 알았는지 기자단은 벅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의 실상은 조금 달랐다.

“보자기 색이 조금 아쉽습니다. 조금 더 짙은 갈색이었다면 못 알아봤을 겁니다.”

“역시 그랬군요···. 고민했는데 말이죠.”

“제 경험으로는 딥브라운이 은신에 효과가 막대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음에는 절대 들키지 않겠습니다.”

“기대하도록 하죠.”

이런 얼빠진 대화를 소곤거리는 중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고, 굳이 알려지지 않아도 괜찮을지도 몰랐다.

하여튼, 유프 하이켄스 감독에게 같은 괴짜의 동질감을 느낀 소하.

이제 본격적인 진검승부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

챔피언스 리그 B조 2차전, 포츠머스의 선발진은 완벽하지는 못했다.

[GK: 페트르 체흐.

LB: 앤디 로버트슨.

CB: 케빈 도슨.

CB: 후벵 디아스.

RB: 아슈라프 하키미.

DMC: 데클렌 라이스.

MC: 칼빈 필립스.

MC: 델리 알리.

LW: 조쉬 킹.

ST: 에링 홀란드.

RW: 모하메드 살라.]

제대로 휴식을 취한 선수는 모하메드 살라 하나였을 뿐.

나머지 선수들은 근 일주일 내에 최소 한 경기 이상 소화한 상태였다.

심지어 몇몇 선수들은 3일 전에 리버풀전을 치르기도 한지라 체력적으로 완벽한 열세에 처했다.

이래저래 체력적으로 가용 가능한 인원을 억지로 짜내고 짜내서 완성한 선발명단이다.

조금 주목해야 할 점은 1차전을 나왔던 아론 람스데일 대신 페트르 체흐가 나왔다는 사실일 뿐.

골키퍼가 뭐가 다르겠냐 싶겠지만, 엄밀히 따지면 페트르 체흐와 아론 람스데일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선수다.

페트르 체흐, 일반적인 선방형 골키퍼.

아론 람스데일, 스위퍼 키퍼.

스위퍼 키퍼란 골키퍼의 기본적인 임무는 물론, 뒷공간 커버와 빌드업 임무까지 함께 해주는 ‘현대식’ 골키퍼다.

즉, 공격이 중요했던 1차전은 빌드업에 유리한 아론 람스데일을,

많은 슈팅을 허용할 2차전에서는 보다 선방의 능력이 뛰어난 페트르 체흐를 소하였다.

이에 맞서는 원정팀, 바이에른 뮌헨의 선발명단은 말 그대로 휘황찬란했다.

[GK: 마누엘 노이어.

LB: 데이비드 알라바.

CB: 마츠 훔멜스.

CB: 제롬 보아텡.

RB: 요주아 키미히.

MC: 하비 마르티네스.

MC: 티아고.

AMC: 토마스 뮐러.

LW: 프랑크 리베리.

ST: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

RW: 아르연 로번.]

아직 시즌 초반인 덕분인지 부상선수 하나 없이 깔끔한 1군으로 나왔다.

자주 드러누우며 모습을 점차 보기 힘들어지던 아르연 로번까지 펄펄한 모습을 보니, 참으로 암담하다.

너무나도 멀쩡한 선수단에 소하의 입에서는 절로 불만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제기랄. 저 월남전 참전용사는 왜 이렇게 펄펄한 거야? 인류의 미스터리야.”

유달리 몸 상태가 좋아 보이는 아르연 로번에게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소하였다.

“그래도 나는 너희들을 믿는다.”

기어코 소하가 선택한 최후의 방법은 바로, ‘믿음 축구’. 권모술수가 통하지 않으니 최후의 수단을 꺼내고 말았다.

어찌 됐든 선수들이 한 차원 높은 실력을 보여준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지 않은가.

비록 현재의 실력은 떨어지더라도 최소한 바이에른 뮌헨 급의 ‘재능’은 갖춘 포츠머스였기에 약간의 가능성이 존재했다.

-삑!

드디어 울린 챔피언스 리그 2차전의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

선공은 바이에른 뮌헨이었고 독일의 절대강자는 바로 기어를 올리기 시작했다.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전방으로 올라가는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의 눈빛은 진지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점의 방심도 없어요. 포츠머스가 뭘 해보기도 전에 숨통을 끊어놓을 작정으로 보입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외침을 뒤로 한 채 바이에른 뮌헨의 공격은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유려한 몸동작으로 탈압박에 성공한 티아고가 좌측면으로 벌려주는 장거리 패스를 시도,

이를 프랑크 리베리가 여유롭게 받아내며 주위를 살핀다.

‘흠. 빠르군.’

프랑크 리베리는 포츠머스의 압박이 바로 코앞까지 쇄도하자 제법 놀란다.

‘게겐프레싱’의 원산지인 독일에서도 이 정도로 신속하고 짜임새 있는 압박 전술은 만나기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원산지에서 뛰는 선수답게 강한 압박 전술의 단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독일식 게겐프레싱은 좋게 말하면 적극적이거나 열정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공 쪽으로 우르르 몰려드는 꼴 아니던가.

이런 형태는 반드시 반대쪽에 만주벌판같이 큰 공간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즉, 공을 반대편으로 보낼 수만 있다면 치명적인, 의외로 약점이 큰 전술이었다.

어디까지나 이 강한 압박을 벗어날 수 있다는 전제가 필수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소하와 포츠머스에는 아쉽지만, 프랑크 리베리는 강한 압박을 손쉽게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선수였다.

아니, 전 세계를 뒤져봐도 그만큼 탈압박에 능한 선수가 적었다. 아무리 전성기에서 내려온 노장일지라도.

-휙, 휙.

유려한 상체 페인팅과 폭풍 같은 발놀림으로 순식간에 아슈라프 하키미와 델리 알리를 녹여버린 프랑크 리베리.

바로 반대편 공간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늙지 않는 남자, 아르연 로번에게 긴 패스를 찔러준다.

-슈와악.

잔뜩 회전을 먹인 멋진 롱 패스!

유도장치라도 달렸는지 정확히 아르연 로번의 주발인 왼발에 착지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르연 로번의 막을 수 없는 매크로 플레이!

중앙으로 치고 들어와 슛을 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못 막는 필살기가 터져 나왔다.

-팡!

파 포스트가 아닌 니어 포스트를 노린 강력한 왼발슛!

워낙에 날카로워 그대로 골망을 가르는 듯싶었지만, 골키퍼의 영원한 친구가 포츠머스의 목숨을 이어준다.

-텅! 지이이잉!

종이 한 장 차이로 사이드 포스트바를 때리고 골 아웃이 돼버린 아르연 로번의 슛이었다.

“와. 미친···.”

경기 시작이 1분 만에 일어난 매우 위험한 장면에 소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거, 저거 언제 은퇴하더라?”

위협적인 바이에른 뮌헨의 공격에 소하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20년이나 늙지 않는 전설적인 축구선수를 노려보는 것뿐이었다.

< 206화. 17-18시즌 챔피언스 리그. (5) > 끝

ⓒ 블라님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