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화. 17-18시즌 챔피언스 리그. (2) >
우나이 에메리.
현재는 파리 생제르맹의 감독이며 훗날 아스널의 전설적인 감독인 ‘아르센 벵거’ 감독의 뒤를 잇는 감독이다.
미래에는 ‘Good evening’을 독특하게 ‘구디브닌’이라 발음하며 놀림감이 되지만 결코 만만한 감독이 아니다.
그의 별명은 ‘유로파 리그의 제왕’, 혹은 ‘유로파 리그의 최종 보스’.
세비야 FC 시절에 유로파 리그 ‘3연패’를 달성했던 대단한 감독이었다.
오죽했으면 유로파 리그(UEL)를 우나이 에메리 리그(Unai Emery League)라고 불렀겠는가.
이래저래 능력 하나만큼은 모래알만큼 많은 감독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감독이었다.
이후 스페인의 중위권 구단인 비야레알을 이끌며 챔피언스 리그에서 기적을 써 내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의 능력은 중위권 클럽을 이끄는데 특화되어 있었을 뿐. 거대구단을 이끄는데 뛰어난 감독은 아니었다.
[우나이 에메리 감독은 뛰어나지만, 유명선수들을 이끌 지도력이 없다.]
전문가들의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
이것은 유명선수들이 잔뜩 있는 파리 생제르맹에서 치명적이었다.
덕분에 16-17시즌, 네이마르-카바니의 PK 사건부터 시작해서 ‘캄노우 기적’까지 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캄노우의 기적.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에서 바르셀로나를 4:0으로 이겼지만,
2차전에서 6:1 대패를 당하며 16강 탈락이라는 치욕을 당했던 파리 생제르맹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역시나 가장 큰 이유는 선수들의 ‘자만’을 억누르지 못한 우나이 에메리 감독의 지도력 문제가 컸다.
이렇듯 지도력에 큰 문제를 안고 있던 우나이 에메리 감독.
치욕적인 패배에서 배우지 못했는지, 이번 포츠머스 경기에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포츠머스는 약팀이다. 적당히 상대해도 충분히 승리할 만하다.”
자신만만을 넘어서 자만하려던 선수단의 분위기에 기름을 붓는 발언이었다.
“맞습니다. 별거 아니죠.”
“솔직히 리그에서 만나는 팀보다 쉬울 거 같네요.”
“쉬지 않고 공격을 퍼부어서 전반전에 경기를 끝내야겠군.”
“16강은 이미 예약해뒀지.”
이 때문에 강력한 리그인 프리미어 리그에서 ‘4위’를 달성했던 포츠머스를 우습게 봤던 파리 생제르맹.
이제, 자만의 대가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
-슈와악.
맹렬한 기세로 허공을 가른 케빈 도슨의 패스는 네이마르보다 조금 앞에 있던 오른쪽 윙백, 도봉산의 발밑에 정확히 떨어졌다.
왼쪽에서 오른쪽.
경기장의 끝과 끝을 대각선으로 가르는 멋진 패스였다.
“좋아!”
쉽게 공을 받아낸 도봉산.
만약, 네이마르가 옆에 있었다면 받아내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툭.
도봉산은 공을 받자마자 곧바로 전진 드리블을 시작한다.
[오늘 독특하게도 오른쪽 윙백으로 나온 도봉산이 전방으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이에 맞춰 측면에서 중앙으로 움직이는 오른쪽 윙 포워드 모하메드 살라!]
장내 아나운서와 해설의 외침을 뒤로 한 채 거침없이 내달리는 도봉산!
이에, 파리 생제르맹의 선수들은 작은 혼란을 느꼈다.
먼저, 오른쪽 미드필더인 아드리앙 라비오.
‘어? 내가 붙어줘야 하나?’
측면에는 네이마르도 있고 레벵 퀴르자와도 있다. 게다가 자신은 발이 느리기에 지금 도봉산에게 따라붙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어차피 뺏길 거다. 역습을 준비하자.’
압박 대신 역습을 준비하기로 마음먹는 아드리앙 라비오였다.
그렇다면, 왼쪽 수비수인 레벵 퀴르자와의 생각은 어땠을까.
‘모하메드 살라는 위험한 선수다. 그를 전담 마크하지 않으면 실점의 위기다.’
왼쪽 윙백은 상대의 오른쪽 포워드를 막아야 하는 법. 자연스럽게 모하메드 살라를 따라갔다.
결국, 유달리 튀어나와 있던 도봉산을 막을 사람은 네이마르밖에 없었다.
하지만 네이마르는 작은 방심 때문에 도봉산보다 뒤에 있던 상황이다.
‘제길. 조금 늦었지만 내가 따라붙어야겠다.’
뒤늦게 도봉산을 저지하기 위해 네이마르는 열심히 다리를 놀리기 시작한다.
네이마르.
엄청난 드리블로 유명한 선수여서 간과되지만, 엄청난 스피드까지 갖춘 선수다.
[네이마르! 조금 늦었지만 서둘러 도봉산을 따라갑니다!]
[엄청난 속도입니다!]
경기장의 측면에 선을 그리며 전력 질주를 한다. 기세만 보자면 금세 도봉산의 돌파를 따라잡을 것만 같다.
허나, 도봉산은 만만한 선수가 아니었다. 이미 포츠머스에 몸을 담은 지 3년 차인 시점이다.
그간, 소하의 지도와 부활하기 위한 본인의 부단한 노력으로 이미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선수였다.
“녀석은 모르겠지만 도봉산의 실력은 이미 부활을 수백 번도 더했다. 볼턴 시절의 도봉산? 그깟 선수 따위는 상대도 안 돼.”
경기장을 바라보며 묵묵히 단언하는 소하! 그의 말처럼 도봉산은 이미 과거와 과거의 미래와는 수준이 다른 선수였다.
[이, 이게 뭔가요! 좀처럼 도봉산과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습니다!]
[저, 저렇게 빠른 선수였나요?]
좀처럼 따라 잡히지 않고 오른쪽 측면을 송곳처럼 뚫는 도봉산의 모습에 경기장이 떠들썩거렸다.
“바로 그거지!”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질주에 소하도 흥이 돋아 버럭 소리쳤다.
“녀석의 강점은 속도가 아니야. 어디까지나 우리 팀 안에서는 다른 선수들이 너무 빠르기 때문이지!”
바로 이것이었다.
도봉산은 빠르지 않다.
어디까지나 포츠머스 선수단 내에서는 말이다.
조쉬 킹, 모하메드 살라, 에링 홀란드가 버티는 공격진에서 속도로 1등을 먹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기에 드리블과 민첩성을 강점으로 내세웠을 뿐이었다.
이런 그가 몇 미터 이상 앞에서 출발했는데 네이마르에게 따라잡힐 리가 없었다.
[도봉산 정말 빠릅니다! 순식간에 엔드라인 근처까지 내달렸어요!]
[파리 생제르맹은 그를 이대로 그냥 두면 안 됩니다! 크로스와 드리블이 치명적인 선수란 말이에요!]
결국, 순식간에 측면의 공간을 압축해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까지 당도한 도봉산이었다.
“제길.”
이에, 살라에게 붙어있던 레벵 퀴르자와가 참지 못하고 도봉산을 향해 접근한다.
그리고 레벵 퀴르자와는 참으로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부상때문에 만개하지는 못하지만, 패스의 길을 교묘히 차단하며 접근하는 모습은 왜 그가 각광받는 유망주였는지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결국 도봉산은,
좌에는 레벵 퀴르자와.
우에는 네이마르.
리그앙, 최고의 선수들에게 둘러싸인 형국이 돼버렸다.
시원한 돌파가 무색하게도 절체절명의 상황! 하지만 소하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말하지 않았나? 녀석의 특기는 드리블과 민첩성이라고.”
해낼 수 있을 거란, 해낼 거란 굳건한 믿음이었고 도봉산은 소하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휘릭.
그 옛날, 대한민국 축구팬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던 마르세유 턴이 다시금 작렬!
어찌나 완벽하고 아름다운지, 드리블이 아닌 한편의 춤사위 같다.
아마, 마르세유 턴을 상징하는 지네디 지단이 봤다면 완벽하다고 극찬했을 거다.
[아니! 이게 뭔가요! 도, 도봉산이 신의 경지에 이른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뛰어난 선수들을 한 번의 회전으로 무력화시켰습니다! 저 상황에서 빠져나갈 유일한 기술을 완벽하게 성공시켰어요!]
장례식장에서 틀어도 될만한 스페셜 장면을 찍은 도봉산.
그의 선택은 쉬웠다.
-툭.
낮게 깔리는 컷백!
목표는 레벵 퀴르자와가 떨어지며 자유로워진 모하메드 살라!
멋진 도봉산의 퍼포먼스에 모하메드 살라도 화답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도 놀라운 슛 기술을 선보인다.
-촤악!
도봉산의 힘이 실린 컷백을 그대로 ‘감아’차는 신기를 보여줬다. 정말 대단한 발목 힘이 아닐 수 없다.
-휘리리릭.
거의 각이 없는 상황에서 엄청난 회전과 함께 파포스트로 날아가는 모하메드 살라의 슛.
‘설마 이게 들어가겠어?’라는 파리 생제르맹 선수들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골포스트를 맞추고 그대로 골망에 안착한다.
-텅. 철썩.
독일의 케빈 트라프 골키퍼가 몸을 날렸어도 막지 못했을, 완벽한 슛이었다.
[고올! 골입니다! 골! 포츠머스가 전반 1분이 채 지나기 전에 선제골을 달성합니다!]
[포츠머스의 역사적인 챔피언스 리그 첫 득점의 주인공은 모하메드 살라! 입니다!]
장내를 찢을 듯한 함성에 귀가 먹먹해진다.
포츠머스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챔피언스 리그 첫 골이었고,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한 골이었다.
***
“괜찮다. 불의의 일격은 언제나 강팀이라면 감수해야 하지. 우리가 하던 대로만 하면 역전은 쉽다.”
1분 만에 선제골을 실점한 우나이 에메리 감독. 아쉽게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저, ‘럭키 펀치’라는 느낌으로 받아드렸을 뿐이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전술적으로도 완벽한 패착이었다.
일단 너무 공격적으로 앞에 쏠린 팀의 균형은 첫 번째 패착이다.
그리고 수적 불리함을 안은 포츠머스의 중앙 미드필더들이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너무나도 쉽게 들어오게 허락했다.
이 때문에 순식간에 파리 생제르맹의 페널티 에어리어는 오히려 포츠머스 선수들의 숫자가 더 많아졌고, 모하메드 살라가 편하게 기회를 잡을 원인이 되었다.
현대 축구의 공격은 어떻게든 최대한 많은 숫자를 상대의 페널티 에어리어에 넣느냐가 중요한 과제 아니던가.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전술적인 패착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운’이라고 단정을 지은 건 매우 큰 실수였다.
물론, 파리 생제르맹이 침착함을 되찾고 원래의 계획대로 경기를 풀어나갔으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거다.
결국, 수많은 슈퍼스타를 보유한 파리 생제르맹이 천천히 체급 차이로 찍어 눌렀을 테니까.
하지만, 파리 생제르맹 선수들은 감독의 말과는 정반대로 ‘포츠머스를 과대평가’하기 시작했다.
과소평가에 이은 과대평가.
이것은 팀의 균형을 완전히 부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악조건이었다.
몇몇 선수들은 아직 자만을 품었으며,
몇몇 선수들은 오히려 겁을 집어먹었다.
그렇다면 결과는 뻔하지 않겠는가.
말 그대로, ‘오합지졸’이었다.
[파리 생제르맹이 홈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수들끼리 너무 합이 맞지 않는데요?]
[이건···. 이건···. 냉정히 말하자면 ‘팀’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길을 보고 있어요!]
완전히 엉망이 돼버렸다.
이럴 때일수록 감독의 지도력이 중요했지만, 오히려 그 부분이 약점이었기에 더더욱 엉망진창인 경기를 보여주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포츠머스는, 그리고 소하는 이를 놓칠 팀과 인간이 아니었다.
“지금이 기회다! 정신 차리기 전에 아예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버려!”
길길이 날뛰는 소하.
예상치 못한 선제골에 기운을 잔뜩 받아 리그 경기의 피로를 잊은 포츠머스 선수들은 곧바로 화답했다.
전반 20분.
2대 3의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유유히 압박을 벗어난 델리 알리!
티아고 모따, 마르코 벨라티, 아드리앙 라비오 보다 훨씬 우위를 점한 그의 기동성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읏차.”
여유만만한 표정의 델리 알리가 하프 스페이스를 가르는 멋들어진 전방 패스를 시도.
그 끝에는 에링 홀란드가 있었다.
‘축구 괴물’이란 별명이 붙은 에링 홀란드. 그의 강점은 엄청난 골 결정력도 있었지만, 연계 플레이에도 대단한 재능을 가진 선수였다.
-툭.
델리 알리의 패스를 잡는 척하다가 그대로 뒤꿈치를 이용해 방향만 바꿔줬다.
“바로 그거야. 미남.”
놀랍도록 현실과 동떨어진 칭찬을 날린 선수는, 바로, 조쉬 킹.
측면에서 중앙으로 들어오는 왼쪽 윙 포워드로서 만개 중인 그가 멋진 연계의 종착역이었다.
-콰앙!
16M, 페널티 에어리어 바로 앞에서 터진, 우렁찬 대포의 발포 음!
공간을 찢어발기며 순식간에 오른쪽 상단의 골네트를 찢어발긴다.
[골입니다! 포츠머스의 조쉬 킹! 추가 골을 달성합니다! 챔피언스 리그 데뷔골!]
[흡사 나폴레옹의 대포가 불을 뿜은 듯한 강력한 슛이었어요! 아쉽게도 아군 사격이었지만요!]
“우오오오오오오!”
온몸의 핏줄기를 세우며 우렁차게 포효하는 조쉬 킹! 그가 달려가는 곳은 셀레브레이션을 위한 코너 플래그 쪽이 아닌, 테크니컬 에어리어다.
[아! 조쉬 킹이 감독에게 달려갑니다!]
[하하. 성소하 감독이 환한 미소와 함께 그를 품속으로 빨려 들어가는군요! 파리 생제르맹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연이은 실점에 감독 탓을 하며 감독을 흘겨보는 파리 생제르맹과,
골을 넣고 감독에게 달려가 감사함을 표하는 포츠머스.
이것이 바로 축구가 어째서 감독 놀음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두 팀이 어째서 다른지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 203화. 17-18시즌 챔피언스 리그.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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