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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202화 (202/306)

< 202화. 17-18시즌 챔피언스 리그. (1) >

파리!

프랑스 최대의 도시이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을 가진 도시 중 하나이다.

천만의 인구를 수용한 초거대도시이며 이름만 들어도 ‘낭만’이 흘러넘치는 이미지를 가졌다.

‘낭만은 개뿔.’

소하는 에펠탑이 훤히 보이는 최고급 호텔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하긴,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짙은 법이지 않던가.

낭만의 상징으로 유명했지만, 치안이 좋지 않기로 소문난 도시였다.

특히나 소매치기는 악평이 자자해 여행 시에 귀중품은 얌전히 숙소에 보관하는 것이 상책이다.

게다가 여러 민족, 종교가 섞인 터라 테러도 번번이 일어날 정도로 흉흉하다. 덤으로 개판 오 분 전인 위생 상태까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의 전형적인 예시였다.

‘조금 늦긴 했어. 예상대로라면 2년 전에 왔어야 했는데.’

2년 전, 리그컵에서 우승했었다면.

유로파 리그에 출전하며 들렸을 가능성이 컸었다.

‘그래도 만약 2년 전에 파리에 왔다면 파리 테러 사건에 휘말렸을지도 모르지···. 불행 중 다행이었어.’

소하가 간과했던 부분이었다.

2015년 최악의 참사인 파리 테러.

재수가 없었으면 그 참변에 휘말릴뻔했다.

그야말로 전화위복이라 할 수 있겠다.

‘그건 그렇고···. 흠. 이길 수 있으려나.’

창밖에서 시선을 뗀 소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재중에 팀이 패배하지 않은 점은 다행이었으나, 리그 경기에 너무 힘을 빼고 챔피언스 리그를 맞이한 것이 문제였다.

‘선수들도 컨디션이 썩 좋아 보이진 않고. 마음이 좀 붕 떴다고 할까나. 프리미어 리그 데뷔도 잘했던 애들이지만 챔피언스 리그는 무리였나 보군.’

챔피언스 리그.

이것 하나 때문에 수년을 몸담은 구단을 떠나는 선수가 셀 수도 없이 많다.

즉, 축구선수로서는 꿈에서라도 뛰고 싶어 하는 무대였다.

이 때문에 포츠머스는 팀원 대부분이 첫 출전인 만큼 마음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밀러가 잘해주기는 했지만, 챔피언스 리그를 고려하지 않은 선수단 운영은 치명적이었다.

‘그래도 필살기는 준비를 잘했다니까. 여기에 걸어보자.’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하는 소하. 그의 두 눈에는 다시금 승부욕이 활활 타올랐다.

***

“파리 생제르맹과의 경기는 어떻게 풀어내실 예정입니까?”

그간 기자회견장에서 지겹게 받아왔던 질문이었으나 이번에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이유는 영어가 아닌 불어였기 때문.

덕분에 소하는 옆에 훌륭한 통역사를 끼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경기를 어떻게 풀어나갈 거냐고 물어봤습니다. 감독님.

통역사가 통역해주자 소하는 거침없이 영어로 답변한다.

영어와 비슷해서 제법 프랑스어도 할 줄 아는 소하였지만, 나름의 기 싸움이었다.

프랑스 쪽 기자단도 분명히 영어를 할 줄 알면서도 같은 의미로서 프랑스어로 물어본 것이었을 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이다.

“포츠머스의 스타일을 프랑스, 파리에 보여드리겠습니다.”

“포츠머스의 스타일이라면 강한 전방 압박과 빠른 속도의 공격축구를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보인다면 그렇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경기전에 자세한 전략을 유출할 수는 없으니까요.”

두루뭉술한 소하의 답변!

사실 경기전에 어떤 전략을 준비했는지 물어보는 행위는 썩 예의가 바른 질문이 아니었다.

선발명단을 보고 전술 수정을 해서 승부가 갈리는 경우도 왕왕 있지 않던가.

하루 전에 전략을 공개하면 더더욱 불리한 싸움을 해야만 했다.

이 때문에 질문을 던진 기자도 소하의 적당한 답변에 만족하고 뒤로 물러났다.

“포츠머스로서는 처음으로 챔피언스 리그에 나섭니다. 목표는 무엇입니까?”

이번에는 영어로 질문을 받은 소하. 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목표라.

현실적으로 보자면 16강 진출이겠지만 소하의 생각은 달랐다.

“모든 팀이 그렇듯, 저희는 모든 대회를 우승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합니다.”

소하의 답변이 끝나자 장내는 웅성웅성, 술렁였다.

최약체임이 명백한 상황에서도 우승을 노린다는 발언을 한다니.

소하를 처음 마주한 프랑스 기자들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린다.

물론, 소하를 자주 접했던 잉글랜드 기자들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저거지. 저런 마음가짐이 지금의 포츠머스를 만든 거다.’

정확한 평가였다.

소하가 늘 주창하듯, 항상 최고를 노리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는 큰 법. 작아 보여도 이 차이가 일류와 이류를 나누는 요소였다.

“우승이라. 참으로 뜬구름 잡는 말씀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파리 생제르맹의 네이마르 선수를 막으셔야 할 텐데요. 대책이 있으십니까?”

작은 조소를 담은 질문이었다.

감히 너희 따위가 네이마르도 막지 못하면서 우승을 논하냐는 거다.

“네이마르라. 정말 뛰어난 선수죠. 그보다 뛰어난 선수가 몇이나 있을까요?”

소하는 일단 순순히 동의했다.

솔직히 네이마르보다 뛰어난 선수가 몇이나 있겠는가. 현역 선수 중에서는 열 명도 되지 않을 거다.

“하지만, 축구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죠. 전 팀으로서 상대할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파리 생제르맹에는 네이마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음바페도 있죠.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런, 팀으로서도 밀리네요.”

“···.”

슬슬 신경을 긁음에도 계속 모범적인 답변을 내놓던 소하의 미간이 기어코 좁아졌다.

이것은 제대로 성질을 건드렸다는 증거. 덕분에 소하를 지켜보던 포츠머스 관계자들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한다.

‘아, 안 돼.’

‘참으세요! 챔피언스 리그 첫 번째 기자회견이라고요!’

‘아···. 내일 신문의 1면을 장식할 기사 제목이 떠오르는군···.’

‘하긴, 사실 많이 참긴 했어.’

‘아직 극대노는 아니야. 참을지도?’

간절한 얼굴로 소하에게 참아달라는 제스처를 날려내는 포츠머스 관계자들.

그리고 그 간절함이 닿았던지 소하의 미간이 원상태로 돌아온다.

‘그래. 나도 이제 펄펄한 20대도 아니니까. 30대의 중후함을 보여줘야지.’

웃기는 이야기였다.

이미 회귀 덕분에 정신상태는 40이 넘었거늘. 그래도 늦었지만 이제라도 철이 들었다는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프랑스 측 기자는 매우 눈치가 없는 작자였다.

“음바페 말고도 수두룩합니다. 앙헬 디마리아는 물론이고, 마르코 베라티, 티아고 실바 같은 월드 클래스가 즐비한 팀이 바로, 파리 생제르맹입니다.”

“···.”

“솔직히 말하자면 우나이 에메리 감독이 1.5군을 낼지도 몰라요. 사실 2군도 버거울 겁니다, 포츠머스는.”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은 역사였지만 선을 넘은 발언이었다.

진검승부인 챔피언스 리그에서 2군이라니. 포츠머스를 무시해도 정도가 지나쳤다.

그리고, 이것은 소하라는 폭탄에 또다른 폭탄을 던진 격이었다.

“새끼가. 아가리에 기름을 처발랐나.”

“···뭐, 뭐라고요?”

걸쭉한 한국어 욕설에 프랑스 기자단은 의미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귀를 의심하며 분개했다.

일단 어감 자체가 얼핏 욕이란 사실을 내포했으니까.

그래도 아직 수습할 기회는 있었지만 소하는 그간 숨겨왔던 제법 훌륭한 프랑스어로 못을 박는다.

“귓구멍 파고 잘 들으세요. 제발 1군으로 내달라고 전해주세요. 나중에 1.5군이니 뭐니, 치졸한 변명 듣기 싫으니까.”

“···.”

“아직도 이해가 안 돼? 내일 박살을 내줄 테니까 미리 마음의 각오를 하라고!”

쾅!

탁자를 후려친 기세를 이어 그대로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간 소하. 회장이 난리가 났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기어코 역사적인 챔피언스 리그 첫 출전에서도 사고를 저질러버린 소하였다.

***

다음 날, 경기 시작 한 시간 전.

포츠머스와 파리 생제르맹의 선발진이 공개되었다.

[GK: 아론 람스데일.

LWB: 앤디 로버트슨.

CB: 케빈 도슨.

CB: 데클렌 라이스.

CB: 찰스 말로리.

RWB: 도봉산.

MC: 칼빈 필립스.

MC: 델리 알리.

LW: 조쉬 킹.

ST: 에링 홀란드.

RW: 모하메드 살라.]

놀랍게도 소하와 포츠머스는 3백을 준비해왔다.

5-2-3 대형.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공격으로 공격을 막는다.]

어차피 측면에서 슛을 해 골을 넣기는 힘들다. 이 때문에 중앙에 수비를 셋이나 두며 블록을 쌓고 측면은 맞불을 넣겠다는 뜻이었다.

그야말로 포츠머스 스타일의 정점이었다.

“흥. 난 거짓말하지 않았다고.”

병상에서도 미리 밀러에게 언질을 줘서 준비해왔던 필살기!

3백 자체는 포츠머스가 종종 사용했던 터라 선수들도 무리가 없이 받아들였다.

다만,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2명의 미드필더가 세계급 미드필더 세 명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으니까.

하지만, 소하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칼빈과 알리의 실력은 셋을 상대해도 충분히 해줄 거다.’

선수들에 대한 굳건한 믿음!

잉글랜드 국가대표는 어중이떠중이나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큰 신뢰를 보낸 소하였다.

여기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숨겨진 비밀무기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데클렌 라이스의 중앙 수비수 선발.

중앙 수비와 수비형 미드필더 중간의 자리에서 공격과 수비를 모조리 지원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상당히 높은 축구 지능과 포지션 적합도가 필요한 역할이었지만, 데클렌 라이스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는 중앙 수비수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소하는 라이스를 중앙 수비수 자원으로 보고 선수단을 운영할 정도였다.

당찬 승부수를 던진 소하. 전날의 난동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고 부르짖는듯하다.

이에 맞서는 우나이 에메리 감독의 파리 생제르맹의 선발은 기자단의 도발과는 달리 짱짱한 1군이었다.

[GK: 케빈 트라프.

LB: 레뱅 퀴르자와.

CB: 티아고 실바.

CB: 마르퀴뇨스.

RB: 다니 알베스.

DMC: 티아고 모타.

MC: 아드리앙 라비오.

MC: 마르코 베라티.

LW: 네이마르.

ST: 에딘손 카바니.

RW: 킬리앙 음바페.]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화려한 이름들이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월드 클래스’거나 찍었던 선수들이다.

특히나 조심해야 할 부분은 역시, 네이마르-카바니-음바페로 이어지는 공격진.

저 셋이 하모니를 이룬다면 어떠한 수비진이라도 막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제아무리 전설의 말디니-네스타-스탐-카푸로 이어지는 ‘말네스카’ 라인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약점이 없는 라인업은 아니었다. 수비진은 얼른 보면 신구조합이 잘된 듯 보였으나, 어린 선수들의 실력은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조쉬 킹-홀란드-모하메드 살라로 이어지는 포츠머스의 창끝을 막아낼 만큼 튼튼해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기동성이 매우 느린 중원 조합은 포츠머스가 공략할법했다.

결국, 이래저래 창과창의 대결이 성립된 챔피언스 리그 B조 1차전.

어떤 창이 더욱더 치명적이고 날카로울지 곧 알게 되었다.

***

-삑!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선공은, 포츠머스.

파리 생제르맹의 홈구장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포츠머스의 역사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가자!”

우렁찬 기합과 함께 일단은 공을 뒤로 보내는 조쉬 킹. 겉보기에는 의욕이 매우 넘쳐,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잠시 공을 뒤로 보낸 포츠머스는 일제히 전방으로 전체적인 진형을 올린다.

심지어 윙백마저도.

이에, 파리 생제르맹의 선수들은 조금 당황하기 시작한다.

‘어? 나보다 더 깊숙이 움직인다고?’

‘무슨 생각이지?’

특히나 좌우 윙 포워드인 음바페와 네이마르가 의아해한다.

자신을 지나쳐 더욱 올라가는 모습은 평소 경험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롱패스 한방에 뚫릴 텐데? 그렇다고 윙백들이 나보다 빠를 리는 없을 테고.’

언제나 밀착 마크에 시달리던 그들로서는 생소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나도 맞춰서 내려가야 하나? 아니야. 오히려 잘됐지. 약팀을 과대평가하면 독이 된다.’

수비를 위해 조금 내려갈까 했지만 일단 기존의 계획을 이행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소하의 노림수였다.

“지금이다!”

버럭! 외치는 소하!

기회였다.

상대의 수비 숫자가 아군의 공격 숫자보다 적은 찰나의 시간.

아직 실력을 눈치채지 못하고 방심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을 시간.

이 시간이야말로 이번 승부를 가를 가장 중요하면서도 빠른 시간이었다.

“알겠습니다.”

소하의 명령을 들은 케빈 도슨은 주저 없이 전방을 향해 롱패스를 내질렀다.

-뻥

강맹한 힘을 담은 채 멋들어지게 떨어지는 시원한 롱패스.

훗날 ‘파르크 데 프랭스의 비극’이라고 불리는 역사적인 승리의 시작이 되는 패스였다.

< 202화. 17-18시즌 챔피언스 리그.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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