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험로. (3) >
다음 날 잉글랜드 축구계는 챔피언스 리그 조 추첨 결과로 시끌벅적했다.
최종적인 조 추첨의 결과는,
[A조: 벤피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젤. CSKA 모스크바]
[B조: 바이에른 뮌헨. 파리 생제르맹. 로마. 포츠머스.]
[C조: 첼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안데를레흐트. 카라바흐.]
[D조: 유벤투스. 바르셀로나. 올림피아 코스. 스포르팅.]
[E조: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세비야. 라이프치히. 마리보르.]
[F조: 샤흐타르. 리버풀. 나폴리. 페예노르트.]
[G조: 모나코. 포르투. 베식타스. 셀틱.]
[H조: 레알 마드리드. 도르트문트. 토트넘. 아포엘.]
5개의 프리미어 리그 팀 중에서 두 팀을 제외하고서는 16강 진출이 확정적인 조였기에 맨유, 리버풀, 첼시의 서포터들은 웃음꽃을 피웠다.
“A조는 역대급 꿀조다. 1위로 16강 진출 가자!”
“C조도 최소한 2위는 확보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1위 싸움이 될 거야.”
“1포트가 샤흐타르인 F조라니. 클롭 감독이 오고 나서 운도 따르네.”
본선 토너먼트 진출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고, 그리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축구공이 둥글다지만 명백히 강팀과 약팀으로 나뉘어 있었으니까.
이렇듯 화기애애한 3팀과는 다르게 토트넘과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은 단체로 우울증에 걸렸다.
“하. 레알? 도르트문트? 오랜만에 챔피언스 리그에 나갔더니 광탈하겠네.”
“댁들은 그래도 유로파 리그는 갈 수 있잖아. 우리는 4위 확정이야.
“···하긴···. 포츠머스 앞에서는 주름잡을 수 없지.”
“하···. 울고 싶다.”
“힘내···.”
“너네도···.”
동병상련의 아픔이랄까.
저번 시즌의 순식간에 분쇄된 임시동맹이 다시금 부활했다.
하여튼, 그나마 비슷한 수준의 도르트문트를 이긴다면 16강 진출 가능성이 존재하는 토트넘보다는 포츠머스가 최악이었다.
역사에 남을만한 지옥의 조.
이것은 당연하게도 축구계의 뜨거운 화두로 올라섰다.
[포츠머스의 16강 진출 가능성은 0%]
[대회 우승 0순위 후보, 바이에른 뮌헨과 차기 대권을 노리는 파리 생제르맹. 이 두 팀의 벽을 넘을 순 없다.]
[AS 로마도 명문 중에서 명문. 객관적으로 전력을 비교해 봤을 때, 포츠머스보다 근소 우위인 점은 명백하다.]
매우 객관적이면서도 비관적인 예측이 포츠머스를 향해 쏠렸다.
1년 전, ICC에서 AS 로마를 이겼던 경험을 가진 포츠머스였지만, 실전과 친선은 엄연히 다른 법.
1승이라도 거두면 유종의 미를 거뒀다고 해도 좋다고 하는 호사가들도 섣부른 평가마저 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포츠머스의 악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성소하 감독, 입원!]
[이유는 불명. 조심스러운 추측으로는 5년간의 과로가 원인으로 보인다.]
[건강에는 이상 없다. 하지만 한 달간의 입원이 필요하다는 소문이.]
[포츠머스는 당분간 ‘신’을 잃었다.]
[9월, 한 달은 잭 밀러 수석코치의 임시 대행 체제로 버틸 예정인 포츠머스.]
바로, 소하의 입원 소식이었다.
포츠머스 측에서는 자세한 병명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하기야, 지옥의 조에 당첨된 덕분에 화병으로 혈압이 터졌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5년간의 과로로 인한 컨디션 저하일 뿐입니다. 한 달쯤 쉬면 전과같이 펄펄한 성소하 감독으로 돌아올 겁니다.”
적당히 5년간의 과로로 인한 요양이라고 발표했을 뿐이었다.
어디까지나 소하와 포츠머스의 체면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발표한 것처럼 목숨이 위험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확실한 휴식은 필요했다.
고혈압 때문에 기절이라니.
의외로 심각한 문제로 발전할 수도 있는 증상이었다.
어디까지나 의사의 소견으로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하자면 말이다.
“괜찮다고! 나 퇴원할게요!”
당연히도 소하는 눈을 뜨자마자 병원밥 먹기 싫다고 온갖 떼를 썼다.
어찌나 입원하기 싫어했던지, 야밤에 몰래 도주했다가 ‘검거’되어서 병실에 갇히기까지 했다.
결국, 쉴 새 없는 탈옥 시도에 병실 문을 자물쇠로 잠그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취하기 이르렀고, 포츠머스의 고위 인사들은 특별한 조처를 내리기에 이른다.
“얌전히 한 달 처박혀 있거라. 의절 당하기 싫으면 말이지.”
바로, 소하의 어머니를 초청하는 강수를 뒀다.
암만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는 소하일지라도 부모님한테는 고양이 앞의 쥐새끼였을 뿐. 얌전히 한 달 동안 요양하기로 각서까지 쓰고서야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하긴, 그간 너무 달려왔다.
휴가 기간에도 제대로 쉰 적이 없던지라 휴식이 필요하던 때였다.
이래저래 본의 아니게 한 달간의 공백을 가지게 된 소하. 자연스럽게 서포터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격이었다.
-미친. 망했다.
-서, 성소하 감독님이 없다고?
-자, 잠깐. 9월에 경기가 몇 개 있더라? 리그 세 경기에···.
-챔스랑 리그컵까지 합쳐서 총 5경기.
-밀러 수석코치를 믿을 만할까?
제대로 비상등이 켜졌다.
리그 경기 3개와 챔피언스 리그 조별 1차전, 리그컵 32강까지 총 5개의 경기가 밀러 수석코치의 대행 체제로 치러야만 했다.
그야말로 절체절명, 진퇴양난, 사면초가, 존망지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소하의 부재는 서포터들의 얼굴에 그늘을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A매치 기간인지라 생각보다 경기 수가 적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포츠머스에 마냥 좋지 않은 소식만 들려온 것은 아니었다.
[포츠머스, 구단 역사상 최초로 잉글랜드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했다.]
소하의 아버지 이후로 오랜만에 포츠머스가 잉글랜드 국가대표를 배출했다는 소식이었다.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둘도 아니었고,
셋도 아닌,
무려 넷이나.
이것은 포츠머스가 영세구단에서 한 발짝 벗어났다는 증거였으며,
소하의 부재는 선수들이 메꿔줄 거란 희망의 신호탄이었다.
게다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 마리오 발로텔리가 다시 한번 소집되는 쾌거까지 이루었다.
덤으로 에링 홀란드의 노르웨이 대표팀 차출까지. 연이어 좋은 소식이 들렸다.
이로써 포츠머스에는,
대한민국-도봉산, 방주호.
스코틀랜드-앤디 로버트슨.
이탈리아-마리오 발로텔리.
노르웨이-엘링 홀란드.
이집트-모하메드 살라.
이 다섯 명에 더해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4명까지 합해 10명의 국가대표를 보유한 구단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5년 전만 해도 4부리그에 몸담았던 팀이라곤 믿기 힘든 엄청난 선수단!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이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젠장···. 부상만 당하지 마라···.”
오직 소하만이 다수의 국가대표 차출에 쓴웃음을 지었을 뿐이었다.
***
“하하하하핫! 어서 오라고! 국.가.대.표, 친구야.”
악연 아닌 악연이 있던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감독에게 선택받은 ‘조쉬 킹’이 우렁차게 자신의 친구를 반겼다.
이에, ‘델리 알리’가 오만한 웃음을 지으며 화답한다.
“어이쿠. 우리나라에서 가장 공 잘 차는 25명 중 하나인 내 친구, 조쉬잖아?”
“으헤헤, 너도 그 25중 하나잖아?”
“당연한 이야기랄까? 후후.”
누가 친구가 아니랄까 봐, 아주 죽이 잘 맞는다.
끼리끼리 논다는 옛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나 보다.
“···어휴. 지랄을 해라. 지랄을···.”
이를 지켜보던 또 다른 국가대표인 ‘칼빈 필립스’가 혀를 찼다.
솔직히 말해서 악동 3인방이라고 불리며 도매급으로 묶이는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어허. 왜 그러실까. 같은 국.가.대.표끼리 말이야.”
“부끄럽구나?”
“하긴, 칼빈이 보기보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녀석이니까.”
자기들 멋대로 자신의 심리상태를 단정을 짓는 둘의 모습에 칼빈 필립스의 한숨은 더욱 깊어졌다.
국가대표란 자리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거 아니냐는 걱정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은 이들은 통제할만한 동료가 곁을 지켜준다는 사실이었다.
“놀러 가는 자리가 아닙니다. 구단에서 뛸 때처럼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아, 알고 있다고요. 주장.”
“거, 걱정하지 말아요. 주장.”
바로, 포츠머스의 주장, 케빈 도슨도 국가대표에 합류했다.
케빈 도슨, 27세.
늦은 나이에 기어코 국가대표에 승선하며 ‘제2의 제이미 바디’라는 소리를 듣는 포츠머스의 자랑이었다.
4부리그에서 뛰며 아예 무명이던 그가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 단 4년 2개월.
세미프로, 6부리그까지 합친 잉글랜드 리그의 선수들의 숫자는 대략 1.5만 명.
이 중에서 국가대표 25명에 4부리그에서 뛰던 선수가 뽑히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 기적이라고까지 불렸다.
물론, 케빈 도슨의 승선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팀에 뽑힌 잉글랜드 국적의 수비수가 국가대표가 아니면 누가 국가대표에 들어가리.
매우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만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그의 인생은 크게 화제가 되었다.
“국가대표에도 뽑혔고, 감독님께서도 입원하신 지금이야말로 더욱 정진할 때입니다. 명심하도록 하세요.”
단호하게 어린 선수에게 훈계를 내리는 케빈 도슨. 괜히 소하가 사랑해 마지않는 선수가 아니었다.
그리고 지내 온 시간도 시간이고 악동 3인방도 상당히 존경하는 주장이었기에 고분고분 말을 잘 따른다.
“알겠어요. 주장!”
흡사, 큰형의 말을 따르는 어린 동생들 같다. 어찌 보면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노림수일지도 몰랐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이라 하면 이미 청소년 대표팀 시절에 악동 3인방을 통제하지 못했던 인물이지 않던가.
그렇다고 실력으로 보자면 뽑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이런 때에 고삐 역할을 해줄 케빈 도슨의 비상은 큰 선물이었다.
“그럼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고 국가대표팀에 합류하도록 하죠.”
셋을 이끌고 잠시 이별을 맞이하는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케빈 도슨. 마침, 그의 눈동자에 한 중년 남자가 맺혔다.
안색이 시퍼렇게 죽어, 썩은 토마토 같은 꼴을 한 중년 남자의 이름은 잭 밀러였다.
졸지에 소하 대신 팀을 이끄는 위치에 오른지라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습이다.
몇 년 전에는 그토록 바라던 감독 자리였거늘. 막상 앉고 보니 정말 지옥 같은 무게의 책임감이 엄습한지라 살이 쪽쪽 빠지는 중이었다.
“···잭 밀러 수석코치님···.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잘 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저희도 도와드리겠습니다.”
“···큼큼. 고, 고마워. 힘낼게.”
애써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잭 밀러 수석코치. 힘낸다는 말과는 다르게 안색은 여전히 좋지 않다.
이 때문에 한참을 케빈 도슨과 악동 3인방이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은 실패. 찝찝한 마음을 남겨둔 채 클럽하우스를 떠나고 만다.
‘후우. 잘 해내시겠지.’
모처럼, 든든한 주장 케빈 도슨의 입에서 한숨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
밀러 감독대행의 첫 번째 임무는 선수단 등록이었다.
일단, 포츠머스의 이번 시즌 선수단 규모는 상당히 큰 편이다.
[GK- 페트르 체흐, 아론 람스데일.
LB-앤디 로버트슨. 방주호. 로빈 고젠스.
RB-매튜 다이스. 아슈라프 하키미. 아다마 트라오레.
CB-케빈 도슨. 찰스 말로리. 아담 웹스터. 후벵 디아스.
MF-커너 러셀, 델리 알리, 마이클 반즈, 스티븐 데커, 칼빈 필립스, 데클렌 라이스, 니콜로 바렐라, 유리 틸레만스.
LW-알랑 생막시맹, 도봉산
RW-모하메드 살라, 잭 해리슨, 프레디 스톤.
ST-조쉬 킹, 에링 홀란드, 마리오 발로텔리, 존 말로리.]
총 29명.
상당히 많은 숫자다.
그래도 일단은 프리미어 리그 선수단 등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최대 25명을 등록할 수 있었지만 21세 미만은 등록하지 않아도 경기에 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포츠머스에는 21세 미만인 선수들이 제법 많았는데,
[후벵 디아스, 데클렌 라이스, 엘링 홀란드, 알랭 생막시맹, 니콜로 바렐라, 유리틸레만스, 아슈라프 하키미, 아론 람스데일.]
총 8명이나 21세 미만이었다.
즉, 21+8명으로 등록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챔피언스 리그 선수단 등록인데···.”
깊은 한숨을 내쉬는 밀러.
챔피언스 리그에 등록할 수 있는 선수는 빼도 박도 못하게 25명이라 4명을 쳐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은 다른 구단이 고민하는 홈 그로운에 대해서는 아무런 걱정이 없다는 점이었다.
먼저, 홈 그로운.
그러니까, 같은 국가에서 3년 동안 훈련받은 15세에서 21세 선수 8명.
이것은 대부분 팀이 꽤 여유 있게 지키는 규정이었다.
하지만 ‘팀 그로운’은 이야기가 달랐다.
팀에서 3년 동안 훈련받은 15세에서 21세 사이의 선수.
상당히 어려운 조건이다.
하지만, 포츠머스는 이미 수년 전부터 소하가 제대로 키워온 팀.
팀 주축의 대부분이 팀 그로운을 충족하는 미친 팀이었다.
심지어 후보 선수들까지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유망주를 열심히 긁어모은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여튼, 당면한 문제는 25인을 맞추기 위해서 4명을 명단 제외해야 한다는 거다.
“4명···. 4명을 어떻게 골라야 하지?”
보기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실력이 떨어지는 몇몇 선수들을 빼면 되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간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한 녀석들인데···. 어떻게···.”
실력이 상대적으로 달리는 선수들은 대부분이 하부리그 시절부터 팀에 헌신한 선수들이지 않던가.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아닌 이상에야 ‘너 실력 떨어지니까 챔피언스 리그는 안 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새로 영입한 선수들을 빼는 것도 문제였다.
그들은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할 수 있다는 유혹에 이 팀에 온 것이었으니까.
이래저래 참으로 난감한 문제였다.
“이건···. 내가 처리할 문제가 아니야. 감독님이 정할 문제지. 이미 정해두셨을 테고.”
딱딱하게 얼굴을 굳힌 채 걸음을 옮기는 밀러. 물론, 그가 향하는 곳은 당연하게도 소하가 입원한 병원이었다.
< 200화. 험로. (3)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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