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화. 험로. (2) >
먼저, 1포트의 8팀들은 상당히 강팀들이었다.
-1포트-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 유벤투스, 벤피카, 첼시, 샤흐타르, 모나코,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전 세계에서 내놓으라 하는 명문구단들이 줄줄이 굴비처럼 엮여 있었다.
그래도.
강팀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팀은 언제나 존재하는 법.
소하와 포츠머스가 바라는 1포트에 속한 팀은 명확했다.
“포트1에서 만날만한 팀은 뻔하죠. 벤피카, 샤흐타르, 모스크바 정도?”
“조금 더 양보하자면 모나코까지가 상한선이겠죠.”
8개 팀 중에서 4개의 팀까지는 포츠머스가 감당할만한 구단이었다.
벤피카, 샤흐타르, 모스크바, 모나코를 얕보는 것은 아니다.
그저,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 유벤투스, 첼시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게다가 첼시는 같은 리그여서 만날 일이 없다.
덕분에 스페인과 독일, 이탈리아의 챔피언과 같은 조의 속하는 일만은 피해야 16강의 길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덧 끝난 1포트 추첨. 1포트 추첨은 겨우 시작에 불과한지라 포츠머스 일동들은 여유 만만한 표정이다.
A조: 벤피카.
B조: 바이에른 뮌헨.
C조: 첼시.
D조: 유벤투스.
E조: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F조: 샤흐타르.
G조: 모나코.
H조: 레알 마드리드.
B, D, H조만 일단 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생기는 1포트 추첨이었다.
“하지만 또 모르는 법이죠. B, D, H조에 약한 팀들이 대거 몰려서 1포트 구단이 1강이 되면 오히려 좋을지도 몰라요.”
소하는 다양한 상황을 머릿속에서 계산하며 역발상을 내놓았다.
1포트의 팀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면 조별 2위를 두고 해볼 만한 나머지 팀이 경쟁하는 그림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2포트 팀들도 만만치 않은지라 그럴 확률은 낮습니다. 감독님.”
“그러게요. 제기랄.”
밀러의 부정에 2포트 팀들의 면면을 살펴본 소하가 혀를 찼다.
1포트보다 오히려 더욱 강해 보이는 2포트의 위용은 절로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2포트-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파리 생제르맹, 도르트문트, 세비야, 리버풀, 포르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오히려 1포트보다 4대 리그의 강팀들이 더욱 많이 포진한 2포트였다.
포르투와 파리를 제외하고선 모두 잉글랜드, 스페인, 독일의 강호들.
심지어 포르투는 챔피언스 리그의 단골손님이었고 파리 생제르맹은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구단이었다.
심지어 파리 생제르맹에는 킬리앙 음바페와 네이마르를 보유한 팀.
즉,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선수 중 둘을 보유한 팀이었다.
여기에 마르코 베라티, 앙헬 디마리아 같은 월드클래스에 근접한 선수들까지. 고개가 절로 내저어진다.
“이거 실환가? 어떻게 2포트가 훨씬 쌔네. 이중에서는 그나마 세비야, 포르투가 할만한데···.”
“그것도 상대적으로 상대할만하다는 거지, 전력은 저희보다 강할 겁니다···.”
휘황찬란한 2포트의 위엄에 밀러는 제대로 기가 죽었다.
이렇게 된다면 결국 처음의 판단처럼 1포트의 강팀을 피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그리고 곧이어 시작된 2포트 추첨. 1포트 때와는 다르게 조금 긴장한 포츠머스의 일동들은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A조: 벤피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B조: 바이에른 뮌헨. 파리 생제르맹.
C조: 첼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D조: 유벤투스. 바르셀로나.
E조: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세비야.
F조: 샤흐타르. 리버풀.
G조: 모나코. 포르투.
H조: 레알 마드리드. 도르트문트.
벌써 절반이나 완성된 챔피언스 조별 리그. 딱 봐도 무조건 피해야 할 팀이 눈에 띈다.
“B, D, H조. 여기 가면 그냥 광탈이에요. 내 능력으로도 안 돼.”
소하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포기선언을 했다.
아무리 미래를 안다고 해도,
아무리 선수들을 믿는다고 해도,
저 3개의 조에서 경쟁을 펼쳐 16강에 진출하기엔 인간의 힘을 벗어난 일이었다.
차라리 4부리그 팀을 한 번 더 맡아서 승격시키는 일이 더 쉬워 보였다.
“퍼거슨 경이 돌아오셔도 불가능하죠···. 암요. 그렇고 말고요.”
“와. 저긴 좀 아니죠.”
“선 넘네···.”
“저기 걸리면 그냥 모처럼 유명선수들에게 사인이나 받는 시간이겠는데요?”
“유니폼이나 교환해야죠···.”
같은 조에 속했다는 상상을 조금 했을 뿐인데도 식은땀이 절로 났다.
“이제 3포트 추첨이 중요해지겠네요.”
“3포트에도 복병이 몇 있죠.”
-3포트-
[바젤, 안데를레흐트, 로마, 올림피아코스, 라이프치히, 나폴리, 베식타스, 토트넘.]
3포트의 8개 팀이다.
여기서 복병은 당연하게도 이탈리아의 강팀들. AS 로마와 나폴리는 1포트나 2포트에 속해도 이상하지 않은 전력을 가진 팀이었다.
여기에 독일의 신흥강호, 라이프치히도 매우 매우 까다로운 상대!
토트넘도 까다롭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어차피 같은 리그라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토트넘에는 미안하지만, B, D, H조 중 하나를 막아주길 바랄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우리가 살려면 어쩔 수 없죠.”
“그렇죠.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
“제발···.”
포츠머스의 일동 모두가, 토트넘이 최악의 조에서 하나를 틀어막아 주길 바라는 3포트의 조 추첨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포츠머스의 마음이 하늘에 닿아 꿈이 이루어졌다.
A조: 벤피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젤
B조: 바이에른 뮌헨. 파리 생제르맹. 로마.
C조: 첼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안데를레흐트.
D조: 유벤투스. 바르셀로나. 올림피아 코스.
E조: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세비야. 라이프치히
F조: 샤흐타르. 리버풀. 나폴리.
G조: 모나코. 포르투. 베식타스.
H조: 레알 마드리드. 도르트문트. 토트넘.
바라고 바라던 토트넘의 지옥의 조 사수가 이루어졌다.
이로써 최악의 B, D, H조에서 H조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진 포츠머스.
신바람이 났다.
“바로 이거지! 이거야!”
“좋습니다. 좋아요!”
“이제, B조만 가지 않으면 어찌어찌해볼 만한 구성이에요!”
“이거, 이거, 리그에서 한번 져줘도 되겠는데요? 고맙고, 미안하다!”
“4포트여서 이미 망한 조별 추첨이었는데 이젠 해볼 만하겠어!”
포츠머스에는 상당히 좋은 3포트까지의 추첨이었기에 화면 앞에 모인 포츠머스의 일동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일단, 잉글랜드 구단이 속한, A, C, F, H조를 피한 것도 모자라, 최악 중 하나였던 D조도 올림피아코스 덕분에 해볼 만해졌다.
그야말로 하늘이 도왔다고 볼 수밖에 없는 최고의 시나리오!
“됐어요. 됐어! B조가 지랄 같긴 하지만, 어차피 25%의 확률에 불과해요.”
“개인적으로는 G조가 가장 좋아 보입니다. 모나코, 포르투, 베식타스는 해볼 만한 팀이죠!”
“개인적인 게 아니라 당연한 거예요! 하하하. 나에게도 드디어 운이 틔는군.”
최고의 조는 G조!
이 정도면 포츠머스의 전력으로 16강에 도전하기엔 매우 충분했다.
게다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세비야, 라이프치히가 속한 E조도 충분히 자웅을 겨뤄볼 만하다.
요약하자면,
최고-G조.
차선-E조.
난관-D조.
지옥-B조.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로파 우승 덕분에 잉글랜드 팀이 5팀이나 참가한 혜택을 톡톡히 보는 포츠머스였다.
4포트로 떨어진 팀이 이 정도로 희망차게 좋은 조에 속할 확률은 0에 수렴했거늘. 소하의 말처럼 정말 모처럼 운이 트였나 보다.
“자자, 들어가죠! 4포트 추첨! 가즈아!”
호쾌하게 외치는 소하!
마치, 해적왕이 되겠다며 배의 선수에 서서 팔을 뻗는 소년만화의 주인공 같다.
-4포트-
[셀틱, CSKA 모스크바, 스포르팅, 아포엘, 페예노르트, 마리보르, 카라바흐, 포츠머스]
4포트에서 가장 먼저 이름이 불린 팀은 CSKA 모스크바였다.
“A조가 완성되었군요. 벤피카, 맨유, 바젤, 모스크바라니. 맨유의 운이 대단한데요?”
“거의 거저 16강에 올라간 거죠. 부럽네요. 주제 무리뉴 감독.”
유난히 꿀이 줄줄 흐르는 A조의 위용에 소하는 주제 무리뉴 감독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만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신 포츠머스가 A조에 속했다면.
구단 역사상 최초의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 진출도 꿈이 아니었다.
“자, 이제 B조에 들어갈 팀을 추첨하는 시간이 왔네요.”
“우리 팀의 이름만 나오지 않으면 조 추첨은 대성공입니다!”
“제발···. 제발···.”
“착하게 살게요. 소원 한 번만···.”
“후우···. 긴장된다.”
언제 축제 분위기였다는 듯 순식간에 진득한 긴장감이 일동들을 휘감는다.
B조만 피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아치울 수 있을 텐데.
모두가 간절히 한 가지를 바라며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을 때.
드디어 4포트의 두 번째 추첨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추첨은···. 나왔습니다. 화제의 팀이죠! 전 세계가 주목하는 팀, 잉글랜드의 신흥강호, 포츠머스!
-포츠머스가 B조에 속하며 챔피언스 리그의 역사에 남을만한 지옥의 조를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부서졌다.
토트넘에게 나쁜 마음을 먹은 천벌일까? 그렇다고 해도 너무나도 가혹한 처사였다.
“···.”
“···.”
“···.”
할 말을 잃은 포츠머스의 일동들.
숨조차 쉬지 않으며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기만 한다.
마침, 화면 속에는 조 추첨식에 참가한 포츠머스의 유해진 단장과 알버트 위버, 기술 이사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아, 유해진 단장과 알버트 위버, 기술 이사가 나라를 잃은 표정을 짓는군요.
-이런, 결국 유해진 단장이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는군요! 하긴 본인이 생각해봐도 이건 너무하거든요!
고개를 가로저으며 허탈한 미소를 내뿜는 유해진 단장.
그대로 석화 마법에 걸린 듯한 알버트 위버, 기술 이사.
도무지 믿기지 않은 일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수십, 수백 가지의 경우의 수에서!
어떻게 이런 조에 속할 수 있단 말인가!
현실이라면 너무나도 차가웠고,
꿈이라면 너무나도 지독한 악몽이었다.
“자, 자···. 모, 모두 정신을 차리세요. 해, 해볼 만할 거예요···.”
애써 정신을 차린 에밀리아 존슨이 희망적이 말을 내뱉었다.
비록 자신감은 개미 다리 한쪽만큼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덕분에 일동들은 간신히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어···. 이, 이럴 수도 있죠.”
“해, 해보죠. 우, 우리는 기적을 이루는 포츠머스이니까요.”
“하, 하하. 경기 끝나고 네이마르가 유니폼 교환해줄까요?”
“난 음바페랑 교환할래.”
“겨, 경험을 쌓는다는 느낌으로···.”
모두가 애써 최대한 긍정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묘하게 소하가 조용하다.
아직도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침착함을 유지하는 중이다.
‘울고불고 떼를 쓰지 않으시네?’
‘이미 받아들이신 건가? 대단해.’
‘예측범위였나보다. 역시 우리 팀이 믿을 건 감독님밖에 없어.’
‘역시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야.’
‘기적의 성소하. 마법사 성소하. 믿고 봐야겠지. 우린 할 수 있다.’
평소 같았으면 배를 뒤집어 까고 지랄 발광을 했을 소하가 아니던가.
그런 그가 이렇게 침착한 모습을 보이니 절로 힘이 났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오해였을 뿐.
오히려 더욱 심각한 상황이었다.
“저, 감독님?”
소하 덕분에 기운을 차린 에밀리아 존슨이 부드럽게 소하의 어깨를 매만지며 건드렸고,
-털썩.
소하는 그대로 썩은 나무토막처럼 옆으로 쓰러졌다.
그렇다. 그랬다.
그는 너무나도 큰 충격에,
너무나도 큰 울화가 치밀어 순간 혈압이 터져 기절했던 것이었다.
“가, 감독님! 저, 정신 차리세요!”
“야! 야! 999에 빨리 전화해!”
“시, 심장박동이 줄어들고 있어! 제기랄! 어떻게 좀 해봐!”
“CPR 할 테니까 비켜봐!”
“꺄아악! 돌아가시면 안 돼요오오오!”
난리가 난 포츠머스의 클럽하우스.
이윽고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고, 포츠머스가 맞이한 최악의 챔피언스 리그 조 추첨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이로써 포츠머스가 속한 조는 B조.
FC 바이에른 뮌헨.
파리 생제르맹 FC.
AS 로마.
포츠머스 FC.
세계 최강이라 자타공인하는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
압도적인 돈으로 유럽의 챔피언을 꿈꾸는 파리 생제르맹.
과거 이탈리아 세리에A, 7공주 시절의 주축인 명문 중의 명문, AS 로마.
4부리그에서 다섯 시즌 만에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하게 된 기적의 팀, 포츠머스.
챔피언스 리그의 길고 긴 역사를 뒤져봐도 찾아보기 힘든 최고, 최악의 조가 탄생했다.
< 199화. 험로.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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