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198화 (198/306)

< 198화. 험로. (1) >

이제 곧 천만 구독자를 향해 달려가는 축구 너튜버, 뚱보와 삐적이의 프리미어 프리뷰가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톰 힉스입니다.”

“반가워요. 나단 필립스에요.”

4년 전과는 다르게 엄청난 부를 소유한 그들이었지만, 여전히 뚱뚱하고 삐쩍 마른 그들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편안함과 유쾌함을 느꼈다.

“빠르게 시작하도록 하죠. 오늘은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프리미어 리그의 프리뷰는 물론, 챔피언스 리그까지 다룰 예정이에요.”

전에는 자세하지만 짧고 간략하게 짚고 넘어갔던 챔피언스 리그이었거늘. 포츠머스가 참가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먼저, 17-18시즌에 참가하는 프리미어 리그 팀들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겠습니다.”

힉스가 빠르고 유연하게 진행하자 곧이어 영상 속에 참가팀의 목록이 나타났다.

[1.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2. 레스터 시티 FC

3. 리버풀 FC

4. 맨체스터 시티 FC

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6. 번리 FC

7. AFC 본머스

8. 브라이턴 앤 호프 알비온 FC

9. 사우스햄튼 FC

10. 스완지 시티 AFC

11. 스토크 시티 FC

12. 아스날 FC

13. 에버튼 FC

14. 왓포드 FC

15.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16.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17. 첼시 FC

18. 토트넘 홋스퍼 FC

19. 크리스털 팰리스 FC

20. 포츠머스 FC]

총 20개의 쟁쟁한 팀.

20위를 해도 2,000억 원을 벌어가는 리그답게 하나같이 이름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구단들이다.

“정말 찬란한 회원들입니다. 과연 어느 팀이 우승하고 어느 팀이 강등당할지 쉽사리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톰 힉스가 과장해서 포장하자 여지없이 나단 필립스의 태클이 들어온다.

“사실, 우승 후보와 강등 후보를 나눌 수는 있긴 하죠.”

“···거, 좀 호응해 주시면 안 됩니까?”

“저는 팩트에 집중할 뿐이에요.”

“아, 팩트는 당신이 코인에 물려서 재산을 날려 먹은 거고.”

힉스의 맹렬한 반격이었다.

팩트, 그러니까 사실이었다. 그것도 아주아주 가슴 시린 명백한 사실!

당연하게도, 전 재산의 70% 이상을 까먹은 나단 필립스는 노발대발했다.

“아니, 이걸 방송에서 말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 상도덕 없는 뚱뚱보 자식아!”

“우리 옆집 초등학생 마이클도 아는 이야긴데요 뭘.”

“···그, 그러는 당신은! 돈도 많으면서 맨날 무한 리필 식당만 찾아다녀서 블렉리스트에 올랐다고 기사까지 났잖아!”

“아니, 그런 쪽팔린 이야기를 하는 건 반칙 아닙니까!”

옥신각신. 티격태격.

잠시 방송임을 잊고 마구 싸우던 그들은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 뒤에 사그라들었다.

“큼큼. 죄송합니다. 그럼 다시 축구 이야기로 돌아가죠.”

“···큼큼. 조금 전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 아님을 다시 한번 밝힙니다.”

수습하기엔 너무 멀리 왔지만, 일단은 시도해보는 둘. 이윽고 본격적인 예측에 들어간다.

“사실 우승 후보를 뽑는 건 꽤 쉽습니다. 지난 시즌 5위를 찍으며 굴욕을 당했던 맨체스터 시티 아니겠습니까?”

“정확합니다. 한 번 더 펩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신뢰를 보내준 맨체스터 시티는 엄청난 이적료를 쏟아부었습니다.”

이번 시즌 맨체스터 시티는 2억 파운드에 달하는 엄청난 지출을 감행했다.

한화로 3,100억에 가까운 천문학적인 금액!

제법 돈을 썼다고 자부하던 포츠머스가 8,000만 파운드였으니, 얼마나 큰 규모인지 쉽게 와닿는다.

“베르나르두 실바, 에데르송 모라에스, 카일 워커, 도글라스 루이스, 다닐루, 뱅자맹 멘디. 이렇게 6명의 뛰어난 선수를 영입했습니다.”

“그리고 감독이 펩 과르디올라 아니겠습니까? 1년 차에는 조금 흔들렸지만 2년 차는 다를 거예요.”

새로운 감독이 부임해서 자신의 색을 온전히 입히는 것에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2년 차의 펩 과르디올라는 주의할 인물이었다.

“물론, 2년 차라고 하면 떠오르는 감독이 있습니다.”

“네. 바로 주제 무리뉴 감독이죠. 지난 시즌, 부임 1년 차만의 유로파 리그에서 우승을 달성하며 모처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우승컵을 선물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기대되는 감독이에요.”

주제 무리뉴 감독의 2년 차!

전 세계 축구팬들이라면 모두가 아는 신화였다.

2년 차마다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미친 지도력은 어째서 주제 무리뉴가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군림했는지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렇다면 나단 필립스 씨는 맨체스터 형제가 우승 후보라는 말씀이시군요?”

“맞아요. 조금 정정하자면, 형제가 아니라 원수겠지만요.”

맨체스터시의 두 거대 구단을 우승 후보로 꼽은 나단 필립스. 이에 힉스는 나머지 팀을 언급한다.

“지난 시즌 우승팀 첼시는 고려하시지 않았는데요, 어째서입니까?”

“이적시장에서의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 겉으로 보기엔 바카요코, 알바로 모라타, 안토니오 뤼디거 등등. 괜찮은 영입 했지만 모두 뒷순위 목표였을 뿐이었거든요. 단언컨대, 알바로 모라타는 디에코 코스타의 빈자리를 메워 줄 수 없는 선수예요.”

나단 필립스답게 신랄한 비판이었다.

첼시의 서포터들에게는 빈축을 사겠지만 축구계의 ‘인간 문어’인 그였기에 많은 호응을 얻었고 결과는 1년 뒤에 밝혀질 거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포츠머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프리미어 리그 2년 차에 접어들었고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한 시즌인데요.”

드디어 나온 포츠머스의 이야기.

나단 필립스는 톰 힉스의 질문에 상당히 긴 심사숙고 끝에 어렵사리 입술을 뗀다.

“먼저, 전 성소하 감독의 신봉자임을 밝힙니다.”

“···이 말은 즉,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겠다는 선언이군요.”

“정확해요. 냉정하게 말하자면 기적적인 챔피언스 리그 진출은 오히려 독으로 돌아올 거예요. 그래서 아주 힘든 시즌을 보낼 거라고 봐요. 중하위권으로 떨어질지도 몰라요.”

나단 필립스의 폭탄선언!

심지어 나단 필립스는 머리가 깨져도 포츠머스를 응원하는 진성 서포터였기에 파장은 더욱 컸다.

“···정말 이분 이거···. 큰일 낼 사람입니다···.”

항상 유들유들하며 혓바닥에 기름을 둘렀던 톰 힉스마저도 말을 더듬을 정도로 신랄한 비판이었다.

“그나저나 어째서입니까?”

“아직 포츠머스는 프리미어 리그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팀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가시밭길인 챔피언스 리그까지 병행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너질 거예요.”

“하긴···. 리듬이 다르지 않습니까.”

“정확해요. 포츠머스는 장거리 원정에 익숙한 팀이 아니에요. 훈련과 휴식 시간은 더욱 적어지고 지루한 이동시간이 길어지며 리듬을 잃겠죠.”

즉,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였다.

아직 프리미어 리그에서의 리듬도 몸에 완전히 익히지 못한 상황이지 않은가.

이럴 때에 대륙 간 대회라는 새로운 리듬까지 추가된다면 본연의 모습을 잃을 확률이 높았다.

축구는 컴퓨터가 아니라 사람이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다만···.”

줄줄이 포츠머스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쏟아내던 나단 필립스. 그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여지를 남겨둔다.

“성소하 감독이라면 이 못난 사람의 예측을 부숴버릴지도 모릅니다.”

소하라는 변수. 이것은 예언가라는 평가를 받는 나단 필립스에게도 계산할 수 없는 요소였다.

소하라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의 빛줄기를 만들어 내줄 거란 믿음이 엿보였다.

“흠흠. 역시 믿을 건 성소하 감독밖에 없군요. 포츠머스의 선전을 기원하겠습니다. 그럼, 이어서 챔피언스 리그에 대해서···.”

이어서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톰 힉스.

그도 소하에게 기적을 바라는 마음은 나단 필립스에 못지않을 만큼 간절했다.

***

나단 필립스의 예측이 모처럼 어긋나려는 것일까.

포츠머스의 17-18시즌 초반은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맹렬한 기세를 이어나갔다.

개막전, 뉴캐슬 유나이티드 원정경기에서의 3-1 승리.

2라운드, 첼시 홈경기에서의 무승부.

3라운드, 웨스트 브로미치 원정경기에서의 2-0 승리.

8월의 리그 경기를 2승 1무라는 호성적으로 마친 그들에게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8월 27일.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추첨.]

바로 그날이 찾아온 것이다.

늘 그렇듯, 이제는 포츠머스가 가진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다 같이 클럽하우스에 모여 관람’이 펼쳐졌다.

“음. 유해진 단장이 요즘 피부관리를 받더니 화면발을 잘 받네요.”

우물우물.

먼저, 소하가 감자칩을 우적거리며 화면 속에서  추첨식에 참가해 얼굴을 내비친 유해진을 반겼다.

“역시 외모는 돈이죠.”

밀러는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소하에 말에 대충 대꾸했다.

솔직히 말해, 밀러의 현 감정은 언제 눈물을 펑펑 흘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크흡···. 우리 팀의 관계자가 저 자리에 참석하다니. 정말···. 믿기지 않아.’

머리로는 몇 달 전에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성공한 것을 받아드렸다.

그러나 두 눈으로 조 추첨식에 참가한 모습을 목격하자 가슴이 떨림을 주체하지 못했다.

16년.

밀러로 말하자면 장장 16년을 포츠머스에 몸담으며 온갖 희로애락을 경험했던 인물이 아니던가.

20대 후반, 일개 보조 스텝부터 시작한 포츠머스와의 결혼생활이 드디어 빛을 본 것이었다.

흡사, 16년 차 불임부부가 기적적으로 아이를 가진 상황과 다를 바 없었다.

물론, 소하도 비슷한 감정이었다.

그래도 아직 눈물을 흘릴 시간은 아니었기에 애써 농담을 던진다.

“외모가 돈이라니요. 무슨 말씀을. 아저씨의 말을 아저씨의 얼굴이 부정하네요.”

“···네?”

“밀러 아저씨도 돈 많이 버는데 얼굴이 왜 그러냐는 뜻이에요.”

“···너, 너무 하십니다! 나름대로 관리 중이라고요!”

빼액! 소리를 지르는 잭 밀러. 나름대로 관리 중이었지만 원판이 원판인지라 티가 너무나도 나지 않았다.

밑이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할 수 있겠다.

“호호. 맞아요. 밀러 수석코치께서는 돈을 더 쓰셔야 할 거 같아요.”

“뭐야? 수석코치님이 관리를 받는 거였어?”

“와···. 이게 그 뭐냐···. 창조경제?”

“창조경제는 무슨. 블랙홀 경제겠지.”

“그냥 기부나 하시죠.”

주변 사람들마저도 한 마디씩 농담을 던지며 밀러를 놀렸고 분위기는 금세 밝아졌다.

다만, 밀러만 죽상으로 변했을 뿐.

“두, 두고 보십쇼. 1년 뒤에는 영화배우 급으로 변할 테니까···. 제가 이래 봬도 어렸을 적엔 포츠머스의 ‘콜린 퍼스’로 불린 몸입니다.”

“···.”

“···.”

포기하지 않는 밀러의 뒤틀린 근성에 다시 한번 웃음꽃이 피었고 본격적으로 조 추첨에 집중하기 딱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다.

하지만 소하가 시큰둥하게 던지는 한마디에 다시 한번 침울해진다.

“흐음. 그래도 너무 긴장하면서 볼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우린 망했으니까.”

“···.”

포츠머스의 불문율을 제대로 어긴 소하였다. 추첨식에서는 부정적인 말을 꺼내지 않는다는 불문율!

팀 내 규칙을 중요시하는 소하답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의외로 주변 사람들도 화를 내기는커녕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우리는 ‘4포트’니까요.”

“맞아. 이미 망한 추첨이라고 볼 수 있죠. 우리보다 강한 팀만 만나야 하니까요.”

“전 이미 마음을 놨어요.”

이미 초탈한 포츠머스의 일동들.

하긴, 포츠머스는 이래저래 최악의 조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챔피언스 리그의 조 추첨은 4개의 포트에서 한 팀씩 뽑아서 조별 리그를 구성하기 때문이었다.

1포트, 2포트, 3포트, 4포트.

총 4개의 그룹.

이것은 UEFA에서 매기는 점수별로 묶인 그룹이다.

당연하게도 1포트는 대부분이 각 소속 리그의 챔피언이었고, 2포트와 3포트도 각 리그의 알아주는 강팀이거나 4대 리그 외의 리그에서 우승한 팀들이다.

그리고 포츠머스는 유럽대항전이 처음인 처녀 구단.

UEFA 점수가 매우 낮다 못해 없는 수준이었기에, 프리미어 리그에서 4위를 했지만, 최약체들이 모이는 4포트에 배정된 것이었다.

이 말은 즉, 상대적으로 강하다고 평가받는 1포트, 2포트, 3포트에 속한 팀들과 경기를 해야 한다는 뜻.

이래저래 추첨 전부터 이미 망해버린 포츠머스였다.

“그래도 조심하긴 해야죠. 정말 최악의 조에 걸릴지도 모르니까요.”

그래도 그냥 넘길 수는 없는 법.

소하바라기인 에밀리아 존슨이 조금 주의를 시키었고 소하도 흔쾌히 수긍한다.

“맞아요. 조심해야죠. 우리는···.”

뒷말을 줄이는 소하.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고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뽑기 운이 더럽게 좋지 않은 팀이니까.’

뽑기 운은 최악이라고 자부하는 그들이었다.

게다가 이미 망한 조 추첨이지만, 바닥의 바닥은 언제나 존재하는 법이지 않던가.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심연을 마주보기 싫다면 말이다.

-자 그럼 이제 1포트부터 추첨을 진행하기로 하겠습니다. 첫 번째 팀은···. 벤피카!

본격적으로 시작된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추첨. 포츠머스의 일동들은 숨을 멈춘 채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 198화. 험로.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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