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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191화 (191/306)

< 191화. 휴식과 준비. (2) >

4년 만에 4부리그 구단을 별들의 리그라는 챔피언스 리그로 보내버린 소하.

그는 귀국에 앞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평소 총명해 보이던 눈매는 어디로 간 건지, 잔뜩 독이 오른 독두꺼비처럼 눈을 게슴츠레 뜬 채 한숨을 내쉰다.

“후우. 이대로 귀국하면 평지풍파를 면치 못한다. 최소한 귀국 당일에는 쉬고 싶다.”

너무 과한 성적이 문제였다.

이미 그전부터 동아시아의 작고 강한 나라인 대한민국에서의 인기는 살아있는 신과 다름없었다.

여기에 챔피언스 리그 진출과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감독상까지 받았으니 더는 설명이 필요 없을 지경.

게다가 2년 만에 귀국하는지라 국내의 언론과 팬들이 단단히 독을 품고 있으리라는 점은 너무도 뻔했다.

“한국 땅을 밟자마자 개고생의 연속이 이어질 거야···. 좋지 않아.”

미래가 뻔히 보였다.

입국 게이트를 넘어서자마자 보이는 인산인해의 풍경!

굳이 뇌세포를 동원해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쉬이 그려지는 광경이었다.

“난 이번에 정말로 쉬어야 해. 적어도 최소한 입국 당일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암만 일등석에 타더라도 피곤한 건 매한가지야.”

소하는 진심으로 이번 휴가에는 무척 쉬고 싶었다.

감독이란 직업은 일 년 내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열악한 직업.

인간인 이상 어느 정도 재충전을 가져야 다음 단계로 달려나갈 힘을 얻지 않겠는가.

과거로 돌아왔다는 특이점을 제외한다면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소하는 휴식이 절절히 필요했다.

“하지만 비바람을 피하지는 못할 거야. 귀신같이 내 행적을 알아내니까.”

암만 조심스럽게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고 해도 어떻게든 알아냈기에 비밀리에 입국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군. 우산이 필요하다···!”

비바람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한다면 우산을 드는 방법이 제일 간편하다.

그리고 때마침 소하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우산을 알고 있었다.

“지상최강의 우산이랄까···? 후후.”

비열한 미소를 내뿜는 소하.

하기야, 행동거지가 가볍고 악동 같지만 소하는 ‘세계적인 명사’다.

요컨대, 셀럽이란 이야기.

훗날 세계를 강타하는 방탄헬멧단보다도 훨씬 더 명성을 날리는 사람이란 말이다.

그리고 매우 자연스럽게도 이런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곤란함을 대신 막아줄 ‘우산’ 한두 개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법.

소하 정도면 초법적인 수단도 마련할 능력이 충분했다.

“시간이 없다. 빨리 움직이자.”

소하는 서둘러 ‘우산’을 세우기 위해 발걸음을 놀렸다.

***

“너라는 인간과 알고 지낸 지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지금 같은 헛소리를 할 줄은 몰랐다.”

마찬가지로 휴가 준비에 여념이던 김용한, 체력코치 겸 영양 총괄.

난데없이 찾아온 소하의 제안에 어이가 없다는 듯 거대한 대흉근이 움찔거렸다.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네 앞에 서서 사람들의 바다에 길을 뚫어라? 마치 아두를 구하기 위해 조조 군의 군세를 가르던 상산 조자룡처럼?”

“응! 정확해!”

“···하아.”

김용한은 관자놀이를 짚으며 한숨과 동시에 대퇴사두근을 움찔거렸다.

십 년. 소하와 알고 지낸 세월이 장장 십 년이다. 강산이 바뀔만한 긴 시간 동안 지낸 덕분에 절친한 친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거늘. 오판이었다.

이 망할 친구 놈은 까면 깔수록 새로운 면이 나오는 이상한 놈이었다.

‘제정신인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소하를 바라보며 김용한은 절로 현기증이 몰려왔다.

이런 김용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하는 병아리처럼 입술을 재잘거린다.

“봐봐. 딱 맞는다고. 너의 거대한 역삼각형 등 뒤로 내가 귀신같이 스며드는 거지. 아마 날 보지도 못할걸.”

“···.”

“혹시라도 날 발견한다고 해도 괜찮아. 감히 네가 걸음을 옮기는데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

“전혀 없지. 감히 근육 괴물의 앞길을? 뒤지고 싶지 않은 이상 말이야. 아무리 봐도 완벽한 계획이야. 난 천재일지도?”

소하는 자신의 머리통만 한 김용한의 알통을 만지작거리며 자신했다.

그렇다.

소하가 마련한 우산이란 말 그대로의 의미에 가장 가까운 ‘인간 방패’였다.

같은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럽고 저열한 방법이었지만 말이다.

신묘한 계략이 아닌 물리의 힘을 사용하는 단순무식한 길이었다.

“농담이라고 믿겠다.”

김용한은 애써 소하의 제안을 농담으로 치부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저 녀석과 친구라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워질 테니까.

하지만, 불행하게도 소하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부정한다.

“진심인데.”

4년 전, 자신을 영입하기 위해 ‘꿈’을 이야기할 때보다도 진심이 느껴진다.

이에, 김용한은 온몸의 근육을 딱딱히 굳히며 단호히 대답했다.

“싫다.”

찌직.

단호함이 절절히 느껴지는 포징!

어찌나 힘을 줬던지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티셔츠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어, 어째서···.”

친우의 강력한 거절에 충격을 받은 소하. 거절당할 줄 정말 몰랐기에 심적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습이다.

“그걸 몰라서 묻나? 그리고 애초에 난 사람들 앞에 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김용한은 날 때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질리도록 받아온 사람이다.

타고난 덩치 덕분에 어딜 가나 이목을 끌었고, 근육까지 불린 지금은 걸어 다니는 관람차였다.

물론, 성격이 외향적이었다면 관심을 즐겼겠지만, 김용한은 내향적인 성격에 더 가까운 인물.

아무리 몇 없는 친구의 부탁이라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이제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날 설득하려고 하겠지. 귀를 막고 하던 일이나 마저 하자.’

단단히 작심하는 김용한.

오랜 세월 알고 지냈기에 소하의 행동 패턴 정도는 얼추 파악이 끝났다.

하지만, 소하는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알았어···. 그럼 어쩔 수 없지···.”

비록 나라 잃은 애국열사의 참담한 목소리였지만 말이다.

“윽···.”

장마철, 비 맞으며 낑낑거리는 버려진 반려동물보다 처량한 소하의 표정에 가슴이 쿡 쓰라린 김용한.

그래도 쉽사리 넘어가지 않고 애써 소하를 무시하며 마저 짐을 싼다.

“그럼 난 가볼게···.”

“···빨리 가라.”

어깨를 축 늘어뜨린 소하의 모습에 두 번째 쓰라림이 찾아왔지만, 또다시 무시하는 데 성공.

이대로 오랜만에 소하를 꺾은 인물로 등록되기 일보 직전까지 왔다.

하지만 세계 유수의 감독도 하지 못했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귀까지 막았어야만 했다.

“아쉽네. 같이 가줬으면 이번에 클럽하우스 리모델링 사업에서 주방을 중요하게 다루려고 했는데.”

쫑긋.

소하의 넋두리에 김용한의 귀 근육이 꿈틀거렸다.

‘잠깐. 지금 뭐라고 했지?’

클럽하우스 리모델링이라니.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이야기다. 김용한은 자기도 모르게 소하의 넋두리에 영혼이 빨려 들어간다.

“유럽 최고의,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시티보다도 웅장한 주방을 만들어보려고 계획했는데 말이야···. 아쉽게 됐어. 그냥 다른 곳에 더 돈을 발라봐야지. 이참에 금으로 만든 내 흉상이나 전시할까?”

“···!”

“그래. 그게 좋겠어. 덤으로 감독 사무실 문손잡이도 금으로 바꾸자. 어차피 주방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예산은 남아돌 테니까.”

매우 쓸모있는 계획에서 아주 쓸모없는 계획으로 변모하자 김용한은 참지 못했다.

“잠깐.”

“왜? 나랑 말 섞기 싫은 거 아니었어?”

심술궂은 미소로 잔뜩 이죽거리는 소하였지만 김용한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진성 요리인인 그로서는 ‘주방 리모델링’이란 소하의 유혹을 버틸 수가 없었다.

“금으로 만든 흉상보다는 주방이 낫지 않겠나?”

“뭐? 지금 이 위대한 감독님의 동상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소리야?”

“그, 그게 아니다. 다, 당연히 중요한 일이지. 그래도 선수들을 위해 뛰어난 먹거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거다.”

순식간에 공수가 뒤바뀐 소하와 김용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승리가 고지였는데 어느새 무조건 항복을 외치는 상황에 부닥쳤다.

“그것도 그렇긴 한데···. 주방장이 워낙 의리가 없어서 말이지.”

여기서 주방장은 물론, 김용한이다.

“어차피 지금도 잘하는데 굳이 의리 없는 놈을 위해서 환경개선을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오해다.”

“응? 무슨 오해?”

천연덕스럽게 반문하는 소하에 맞서 김용한은 더욱 뻔뻔하게 나서기로 작심한다.

“네가 내 등 뒤에서 숨어서 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너는 개선장군이다. 그러니 내가 등에 업고 진군해야지 수지가 맞지 않겠냐는 말이다.”

“···!!”

눈을 휘둥그레 뜨는 소하. 김용한의 변명이 무척 마음에 들어버린 반응이다.

“걱정하지 마라. 널 업은 채로 백만 관중이라도 돌파해주마!”

“···의리는 죽지 않았구나! 계약은 성립이다!”

“군인은 전우를 버리지 않는다.”

꽈악.

두 손을 굳세게 마주 잡는 포츠머스의 두 거물.

며칠 뒤, 포츠머스 서포터들의 가슴을 들뜨게 할 클럽하우스 리모델링 계획 발표의 자초지종이었다.

***

소하의 귀국 파티원은 김용한이 전부가 아니었다.

두 번째 우산을 준비하러 찾아간 곳은 포츠머스 시내의 아담한 단독주택이다.

-띵동. 띵동.

소하가 인터폰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고 만국 공통의 초인종을 울리자, 고요한 단독주택에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와당탕. 쿵쾅.

집안이 뒤집히는 굉음이 한참을 울려 퍼졌다. 그렇게 한 20분쯤 지났을까. 현관문이 열리며 한 여성이 풀 메이크업을 완료한 채 얼굴을 내비쳤다.

“어, 어쩐 일이세요. 소하 감독님. 그리고···. 김용한 씨.”

에밀리아 존슨이었다.

소하의 뒤에 서 있는 김용한을 조금 못마땅한 눈빛으로 흘겨보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굉장히 반갑게 맞이해줬다.

“존슨 양. 이번 여름 휴가에 특별한 약속이 있나요?”

소하는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물론, 이미 대답은 알고 있었다.

미리 알아봤기 때문이다.

“아, 아니요. 왜요?”

“오. 잘됐네요. 그럼 저희랑 같이 한국으로 여행이나 가실래요?”

“···!!”

소하의 제안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떠는 에밀리아 존슨.

찰나의 시간 동안 머릿속에는 온갖 망상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도달한 결과는 매우 긍정적.

아니, 천하에 다시없을 절호의 기회였다.

‘성소하 감독님은 보통 어머님을 뵈러 한국에 가시지. 그렇다면 날 어머니께 소개해주기 위해?! 꺄앗!’

이 정도면 병이 아닐까 싶다.

소하가 그녀의 속마음을 알았다면 진지하게 정신과 의사를 소개해줬을지도 몰랐다.

‘후우. 후우. 침착해 에밀리아. 너무 앞서나갔어.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감독님의 어머님께 눈도장을 찍을 좋은 기회임은 변치 않아.’

금세 침착함을 되찾고 냉정하게 기회를 분석했다. 이래저래 소하는 어머니를 뵈러 한국에 가는 것.

이런 자리에 낀다면 어머니와 만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어머님께 좋은 인상을 심어준다면···?!’

호재 중에서도 호재였다.

소하의 나이는 이미 혼기를 꽉꽉 채운 상태. 분명 어머니에게 결혼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을 거다.

이런 상황에서 소하의 어머님께 좋은 인상을 심어준다면 ‘좋은 처자도 있던데···.’라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했다.

“좋아요! 무조건 갈게요!”

에밀리아 존슨은 두 주먹을 야무지게 움켜쥐며 외쳤다.

어차피 휴가 기간 내내 방구석에 틀어박혀 쉴 생각이었던지라 거리낄 건 없었다.

아니, 다른 휴가 계획이 있을지라도 결과는 똑같았으리라.

“이야. 호쾌해서 좋네요. 역시 마음에 든다니까.”

“마, 마음에 드신다고요? 헤헤.”

얼굴을 붉히는 에밀리아 존슨. 이미 머릿속에서는 손자의 이름까지 짓고 있다.

하지만, 소하는 에밀리아 존슨이 그러든지 말든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존슨 양, 포츠머스에 입사하기 전에 스포츠 에이전트 회사에서 일했었다고 했죠?”

“맞아요. 면허증을 따는 김에 생활비도 벌려고요. 보통 서류작업 보조 정도만 했어요.”

“그래도 잘 아시겠네요?”

“그···렇죠? 어느 정도는요.”

소하의 속셈은 까마득히 모른 채 순순히 다 털어놓는 에밀리아 존슨. 덕분에 소하는 점점 미소가 짙어졌다.

‘좋았어. 내 에이전트가 한국말을 하나도 할 줄 몰라서 고민이었는데, 잘됐군.’

흉악한 속셈이었다.

소하의 에이전트는 어디까지나 축구계 업무에만 계약을 맺은 관계.

추가로 한국 내에서의 활동도 포함하는 계약으로 변경했으면 됐지만, 언어의 장벽 때문에 문제가 되던 차였다.

‘후후. 구단 내부사정도 잘 알고 한국어도 능숙한 에이전트가 필요했는데···. 참으로 잘됐어.’

국내에서의 활동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계약 관련을 담당해줄 사람을 필수 불가결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포츠머스 FC의 내부사정도 꿰고 있고 한국말도 유창한 에밀리아 존슨은 좋은 노예가 될 자질이 충분했다.

“잘됐네요. 그럼 이참에 한 달 동안 우리 집에서 홈스테이나 하실래요? 어때요? 숙박비도 아끼고! 얼마나 좋아! 우리 엄마가 요리를 엄청나게 잘해요.”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러운 미소로 악마의 유혹을 제안하는 소하. 슬프게도 에밀리아 존슨의 대답은 옆집 유치원생도 예상이 가능할 만큼 뻔했다.

“당연히 좋죠! 꺄아앗!”

마냥 머릿속에 꽃밭이 한가득한 모습에 진실을 알고 있던 김용한만이 한숨을 내쉬었을 뿐이었다.

< 191화. 휴식과 준비.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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