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189화 (189/306)

< 189화. 4위 싸움. (10) >

하루 전.

델리 알리는 모처럼 소하의 부름에 감독 사무실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밝게 인사하는 델리 알리. 요즘 정말 성실한 나날들을 보냈기에 두려움 한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프리미어 리그에서의 활약도 대단하지 않던가. 20세의 나이에 9골-11어시스트라는 대단한 성적을 기록 중이었기에 개선장군이 따로 없다.

“왔구나. 이리 앉으렴.”

이 덕분인지 몰라도 소하 또한 매우 인자한 웃음을 짓는다.

실제 역사보다 2년 늦게 프리미어 리그 데뷔를 했지만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는지라 이쁘기 그지없다는 눈빛이다.

‘비록 과거의 16-17시즌의 엄청난 퍼포먼스보다는 부족할지 모른다.’

바뀌기 전 세계에서의 델리 알리는 16-17시즌, 프리미어 리그에서만 18골 9도움을 했고, 총합 22골 13도움을 기록하는 미친 모습을 보여줬다.

괜히 잉글랜드에서 차기 프랭크 램파드, 혹은 스티븐 제라드라고 불렀던 것이 아닌 대단한 성적!

하지만, 이게 끝이었다.

21세에 전성기를 찍고 22세부터는 쭉 내리막길이었다.

오죽했으면 토트넘 시절 말기에는 ‘압둘 알리’라고 불렸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녀석은 이제 막 오르기 시작했을 뿐.’

부족한 기본기는 이미 없는 사실이다.

리그 최고의 기본기를 갖췄다는 평가까지 받는 대단한 신예!

‘더군다나 공격 포인트도 비슷한데 위치는 더욱 낮은 자리에서 달성했다. 이미 과거를 뛰어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야.’

과거의 델리 알리는 세컨드 스트라이커 역할로 18골 9도움을 달성.

현재의 델리 알리는 중앙 미드필더, 메짤라 역할로 9골 11도움 달성.

위치가 1선 정도 낮다. 그런데도 별 차이가 나지 않는 공격 포인트 생산량은 그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무시무시해졌다는 증거였다.

이래저래 포츠머스의 ‘10번’ 다운 진짜배기 에이스였다.

“정말 맛이 나는 차네요. 그래서, 절 어쩐 일로 부르신 거죠?”

델리 알리는 소하가 내려준 차를 부드럽게 음미하고선 물었다.

이에, 소하는 히죽 웃으면서 사악하게 대꾸한다.

“너에게 특명을 하사하기 위해서다.”

“특···명?!”

눈을 부릅뜨는 델리 알리.

굉장히 구미가 당긴 듯한 반응이다.

하기야,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뛰는 선수일지라도 이제 겨우 21세.

특수 임무에 열광할 동심이 아직 남아 있는 나이 아니던가.

‘특명이라 하면···. 내가 돋보이는···!’

더군다나 슈퍼스타라면 모두가 가진 관심종자의 기질도 호기심을 더욱 부추겼다.

“그래. 너밖에 할 수 없는 특수한 임무지. 다른 놈들은 안 돼.”

“경청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제대로 완수해보도록 하죠.”

바른 자세로 고쳐 앉으며 단단한 의지를 표명하는 델리 알리. 마치 낙동강 방어 전선을 사수하던 국군의 모습이 얼핏 보인다.

“녀석. 좋은 자세다. 가네가 잡혔어.”

“가네요? 그게 뭐예요?”

“···큼큼. 그런 게 있어. 직각이라는 뜻인데···. 하여튼 네가 할 일은 간단하다. 한 놈을 경기장에서 치워라.”

“···네?”

소하가 사용한 단어는 Cleanup.

청소하라는 뜻이라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델리 알리는 쉽사리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철저히 마크해서 경기장에서 아예 안 보이게 하라는 뜻인가요? 그거야 자신 있죠!”

“좋은 투지다. 하지만 아니야.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경기장에서 내쫓아버려라.”

“···감독님, 설마 악의적인 태클로 다치게 하라는 뜻인가요···?”

델리 알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굉장히 거북해했다.

솔직히 지금 소하가 제정신인지도 의심스러울 정도다.

‘아니···. 감독님이 항상 말씀하시던 게 페어플레이 정신과 동업자 정신이었는데···. 이건··· 좀.’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는 남녀노소 인종 구분 없이 거북함을 느끼기 마련.

델리 알리의 마음속에서 소하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려는 찰나, 소하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야. 아니야. 이 자식아, 평소에 넌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거냐?”

“다, 당연히 위대하고 존경스러운 분이라고 생각하죠. 오, 오해였어요.”

“흐음. 그럼 다행이고. 그런 우아하지 못한 방식은 내 취향이 아니야.”

“호오. 그렇다면 우아한 계획이란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소하는 델리 알리의 영특한 대답에 품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자 봐라.”

능숙하게 스마트폰을 조작해 델리 알리에게 건네는 소하. 화면에는 아스널의 한 선수를 집중적으로 담은 한 영상이 재생된다.

“음···. 내일 상대할 그라니트 자카 군요. 이번 시즌 영상인가요?”

“그래. 네가 보기엔 어떠냐?”

“뭐. 별거 아니네요.”

오만하게 외치는 델리 알리!

정말 별거 아닌 선수라는, 그래서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그거야 당연한 거고. 어떤 점이 볼만하고 어떤 점이 약점인지 말해봐라.”

“음. 간단하네요.”

이미 수십 번이나 따로 그라니트 자카에 관한 연구한 델리 알리였기에 쉽게 대답한다.

“일단 장점은 좋은 킥 능력과 플레이 메이킹 능력이네요. 제법이네요. 볼을 순환시켜주는 능력이.”

“그렇지. 이것이 놈의 밥벌이 수단이야.”

“하지만 약점이 너무 도드라져요. 굉장히 둔하고 느리네요. 수비적으로도 썩 좋지 않고요. 반즈 형보다 수비력이 구린데요?”

“그렇지. 반즈도 이 녀석과 비교하면 마켈렐레야. 하여튼 또 다른 건 없냐?”

“···음. 아!”

델리 알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영상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기어코 놓친 부분을 발견했다.

“성격이 문제네요.”

“어떤?”

“다혈질이에요. 혈기 왕성한 성격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때도 있지만, 수비진을 지켜줘야 할 선수에겐 독이죠.”

“바로 그거야!”

크게 기뻐하며 손뼉을 치는 소하.

조쉬 킹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말이 잘 통하는 녀석이라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자, 생각해보자. 수비 능력이 좋지 않은데 성격마저 다혈질이면 무슨 짓을 할까?”

“당연히 카드 수집이죠!”

“정답. 그럼 이제 네가 맡을 특명이 뭔지 알았겠지?”

“당연하죠. 감독님.”

델리 알리는 손쉽게 소하의 특명을 이해했다. 그렇다. 소하는 알리에게 그라니트 자카를 ‘퇴장’시키라고 주문한 것이다.

“잘할 수 있겠지? 우리 팀에서 이 임무를 맡아줄 녀석은 너뿐이야.”

특유의 자신감이 넘치다 과해 오만해 보이는 표정.

왠지 모르게 같은 말이라도 심기를 거슬리게 만드는 말투.

포츠머스에서 유일하게 이 임무를 수행할 자질을 갖춘 델리 알리였다.

그리고 델리 알리는 이런 소하의 믿음에 크게 기뻐한다.

“흐흐흐. 역시 감독님은 사람 보는 눈이 신의 경지에 오르셨네요.”

“후후. 녀석, 비행기 태워주는 솜씨는 이미 날 뛰어넘었구나?”

“헤헤헤.”

“후후후.”

서로 마주 보며 끈적거리는 사악한 웃음을 주고받는 소하와 델리 알리.

그놈이 그놈이었다.

***

-삑.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선수들이 하프타임에 소하에게 전달받은 명령은 단 한 가지.

‘지금과 같은 뜨거움을 유지하라.’

쉬운 지시 사항이었다. 이미 달아오를 만큼 달아올라 당장이라도 후반전에 임하고 싶어 했으니까.

덕분에 후반전 또한 전반전과 다를 바 없이 굉장히 뜨거운 경기가 펼쳐졌다.

[후반전에도 양 팀 모두 어떻게 공격할지만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정말 재미있는 경기네요. 이렇게 뜨거운 경기는 정말 오랜만이에요!]

모두가 만족해하는 용광로 같은 경기!

물론, 이는 소하가 치밀하게 짜둔 계획 일부였을 뿐이었다.

‘이미 반쯤 승리를 손에 넣었다. 그라니트 자카는 전반전에 옐로카드를 한 장 받은 상태. 이렇게 뜨거워진다면 한 장 더 나오겠지.’

아무리 침착한 선수도 이런 뜨거운 경기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카드를 수집하고는 한다.

게다가 평소에도 카드를 잔뜩 모으는 선수라면? 불 보듯 뻔한 결말이었다.

‘그렇다고 쉽게 교체해버리기도 어렵지. 이겨야만 하는 경기이니까.’

공의 순환은 공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공이 공격지역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공격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그래서 아스널의 맹공에는 그라니트 자카의 뛰어난 순환 능력에 크게 의지하고 있었다.

‘카솔라도 일가견이 있지만 그를 밑으로 내린다면 공격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게다가 폼이 좋잖아?’

수비적으로는 자주 실수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환상적인 골도 넣으며 공격적으로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중이다.

즉,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은 불안 요소에도 불구하고 그를 계속 기용할 거라는 예측이었다.

“후후후···.”

계획이 무난하게 흘러가자 스산한 웃음을 흘리는 소하. 이를 목격한 밀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몇 걸음 떨어졌지만 소하에게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

한편, 델리 알리는 소하의 명령을 120% 정도로 완벽하게 이행하고 있었다.

“와 수비를 이렇게 못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는 처음 봤어.”

“···.”

쉴 새 없이 조잘거리며 그라니트 자카를 도발하는 델리 알리!

거친 플레이는 하지 않아도 트래시 토크는 타고난 실력자였다.

“아이고야. 그 자리에 있으면 절 막을 수 없죠. 구멍이네, 구멍.”

“···.”

“차라리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로 바꿔보죠. 아, 그러기엔 압박에 엄청나게 약하지? 죄송하네요. 너무 고평가했네요.”

“···.”

눈썹을 꿈틀거리며 꾹 참아보는 그라니트 자카. 아르센 벵거 감독에게 옐로카드를 받았으니 조심하라고 단단히 주의받았기에 극한의 인내심을 동원한다.

하지만 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는 없는 법. 심지어 전기톱으로 긁는 수준이라 한계에 다다랐다.

“이렇게 떨쳐내기 쉬운 선수는 4부리그 시절 이후로 처음인걸?”

“···개자식이···!”

그라니트 자카는 드디어 폭발했다.

다른 건 몰라도 4부리그 선수와의 비교는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델리 알리는 진짜로 4부리그에서 뛰어본 선수 아니던가. 4부리그를 경험해 보지 않은 선수였으면 몰라도 해본 선수의 발언은 무게감이 달랐다.

‘기회다···!’

그리고.

델리 알리는 콧김을 내뿜는 그라니트 자카의 안색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일은 간단하다.

계속 후벼 파는 것!

“진짠데. 솔직히 댁은 엄청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으면 4~5부에서 썩고 있었을 듯.”

“이···. 이···!!”

“솔직히 얼굴빨 아닌가. 이렇게 느려 터진 선수가 어떻게 프리미어 리그에서 뛸까. 불가사의야. 불가사의. 제가 4부리그 팀 잘 아는데, 한군데 소개해줄까요?”

“이 새끼가아!”

버럭!

그라니트 자카는 노호성을 내질렀다.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한데, ‘얼굴 빨’이라는 역린까지 건드리자 눈알이 완전히 뒤집혔다.

‘지금이다!’

델리 알리는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고, 때마침 살라가 괜찮은 횡패스를 보내줬다.

-탁.

가볍게 공을 잡는 델리 알리!

그라니트 자카를 뒤에 달고선 거침없이 패널티 에어리어 안까지 들어간다.

[델리 알리가 페널티 박스까지 진출했습니다! 과연 어떤 마무리를 보여줄까요!]

[패스냐 슛이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슛을 할 수도 있었고 좋은 자리를 잡은 동료들에게 패스를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델리 알리는 그간 보여줬던 간결한 연계플레이 대신 탐욕을 부리기 시작했다.

[어?! 델리 알리가 현란한 발놀림으로 슈팅각을 찾는군요.]

[평소와는 다른, 좋지 않은 플레이에요. 성소하 감독이 화를 내겠는데요?]

우려 섞인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의 외침! 그러나 델리 알리는 전혀 개의치 않고 거침없이 발을 놀린다.

마치, 자신의 마크맨인 그라니트 자카가 없다는 듯이.

명백한 도발이었다.

“씨···!”

결국 참지 못한 그라니트 자카는 델리 알리의 발을 향해 로우킥을 내질렀다.

-퍽!

경쾌한 타격음과 이를 곧바로 따라잡는 또 한 가지 소리가 있었으니.

-삑!

주심의 반칙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였다. 굉장히 노골적인 반칙이었기에 너무나도 당연한 호루라기 소리였다.

[이게 뭔가요! 페널티 킥입니다!]

[아스널 선수들이 주심에게 달려들어 거칠게 항의하네요. 이미 그라니트 자카 선수는 옐로카드 한 장이 있었죠.]

[멍청한 수비였습니다. 페널티 킥을 헌납한 것도 모자라 경고 누적으로 퇴장까지 당하다니요.]

[끝이에요. 끝!]

장내 아나운서와 해설의 말처럼 정말 끝이었다.

페널티 킥 키커로 나선 건 페널티 킥을 얻은 델리 알리.

“내가 얻은 거니까.”

자기가 얻었으니 자기가 차겠다는 그를 막을 포츠머스의 선수는 없었다.

-툭.

자신감 있는 도움닫기 끝에 시도한 것은 ‘파넨카.’

여담으로 파넨카는 칩샷 형태의 페널티 킥이란 뜻이라 킥을 붙이면 ‘역전 앞’ 같은 느낌이라 모 해설위원은 킥을 붙이지 않았다.

-철썩.

과감한 델리 알리의 파넨카는 그대로 골대 중앙을 향해 힘없이 빨려 들어갔고 포츠머스는 앞서가기 시작했다.

[대단한 강심장입니다! 3:3 동점에서, 그것도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 걸린 페널티 킥에서 파넨카를 시도해서 성공하다니요.]

[하하. 정말 잉글랜드의 보물이 될 선수가 분명합니다!]

오만한 표정으로 관중들을 향해 양팔을 뻗는 델리 알리!

결국, 소하의 임무를 완벽을 넘어 환상적으로 완수했다.

그리고 남은 경기 시간은 30여 분.

수적 열세에 빠진 아스널은 전반전에 넣었던 3골 중에서 단 한 골도 후반전에 넣지 못하며 패배의 쓴잔을 마셨고, 포츠머스는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되었다.

< 189화. 4위 싸움. (10)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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