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188화 (188/306)

< 188화. 4위 싸움. (9) >

-삑!

드디어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프래튼 파크에 울려 퍼졌다.

선공은 아스널.

승리가 필요한 경기인 만큼 아스널도 포츠머스의 마음가짐과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강하게 공격을 시작한다.

공격의 선봉장은 월드 클래스 포워드인 알렉시스 산체스.

훗날 ‘7억좌’로 불리는 그였지만 16-17시즌까지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던 선수.

거침없이 포츠머스의 수비진영을 붕괴하며 연이어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툭.

데클렌 라이스를 앞에 두고 가벼운 발놀림에 이어서 이어진 감아차기 슛!

“···!”

페트르 체흐는 손을 번쩍 뻗으며 손끝으로 아슬아슬하게 쳐낸다.

“오오오오오!”

“체흐! 체흐! 체흐!”

엄청난 슈퍼 세이브에 프래튼 파크를 찾은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은 안도와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제길.”

거칠게 잔디밭을 후려치며 매우 아쉬워하는 알렉시스 산체스! 3mm만 더 감겼어도 완벽한 골이었거늘. 너무나도 아쉽다.

“우리도 질 수 없지.”

이어진 포츠머스의 공격.

전반 10분 동안 호되게 얻어맞은 포츠머스 선수들의 안광이 심상치 않다.

체흐가 바로 앞의 케빈 도슨에게 연결,

케빈 도슨은 깔끔한 왼발 패스로 앤디 로버트슨에게 공을 건넨다.

-휙휙.

공을 받기 전, 찰나의 시간에 빠르게 고개를 흔들어 경기장의 움직임을 단숨에 파악한 앤디 로버트슨.

일단 각이 좋지 않아 전진 드리블을 시도한다.

이에 메수트 외질이 달라붙어 보지만 그는 수비가 젬병인 선수. 앤디 로버트슨은 다리를 더욱 빨리 놀리며 쉽게 외질을 벗겨낸다.

“헤이!”

전방에서 손을 번쩍 치켜드는 조쉬 킹으로 이어지는 패스길이 열렸다. 과감한 전진 드리블이 만들어낸 공격 루트!

-촤악.

앤디 로버트슨은 장기인 날카로운 왼발 킥으로 조쉬 킹의 앞을 향해 긴 패스를 찔러줬다.

“내 공이다!”

“킹, 어림도 없는 소리 마라!”

포츠머스의 조쉬 킹.

아스널의 엑토르 베예린.

2년 전, 3부리그에서 한솥밥을 먹던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스피드 스타들이 시원한 주력 경쟁을 펼치기 시작했다.

-성큼. 성큼. 성큼.

-파파파파팟.

뛰는 느낌은 전혀 달랐지만, 속도는 그야말로 호각지세, 난형난제, 용호상박!

경기장에는 순간, 흑색 섬광과 백색 섬광이 뒤엉키며 현란한 불꽃을 일으켰다.

“이익!”

“으아!”

공이 지척까지 왔음에도 누구 하나 앞서지 못하는 상황. 그때, 조쉬 킹은 상당히 영리하게 어깨를 먼저 밀어 넣었다.

그야말로 머리가 아닌 몸이 시킨 유려한 기술! 그리고 이는 사나이라면 절로 뜨거워질 달리기 승부의 결과를 결정했다.

-쿠당탕.

훨씬 힘이 좋고 신장도 큰 조쉬 킹이 어깨를 밀어 넣자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져 버리는 엑토르 베예린.

정당한 어깨싸움이었기에 반칙은 아니었고 플레이는 계속되었다.

즉, 포츠머스에게 상당히 좋은 기회가 왔다는 뜻!

[정말 대단한 속도 싸움의 승자는 조쉬 킹이었습니다. 과연 그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아! 보면서 십 년은 젊어진 듯한 멋진 승부였어요. 이제 마무리 지어야죠!]

조쉬 킹의 위치는 코너 플래그 근처.

고로, 그가 선택할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바로, 크로스.

일반적으로는 극한의 오른발잡이인 조쉬 킹이 왼쪽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리려면 한 번 접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오뚝이처럼 일어난 엑토르 베예린이 다시금 달라붙는 상황. 한번 접었다가는 엑토르 베예린의 방해 때문에 아예 기회가 날아간다.

멋진 모습을 보여줬지만 아쉬운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이 큰 지금.

조쉬 킹은 또다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팡!

오른발이 아닌 ‘왼발’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카로운 크로스!

당연하게도 이를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깜짝 놀라 자지러진다.

“미친. 조쉬 킹이 왼발을 썼어!”

“그것도 정말 자연스럽게!”

“도대체 어디까지 성장하는 거야?!”

오직 한 사람, 소하만 제외하고 말이다.

“1년간의 피눈물 나는 훈련이었다···. 킹아, 넌 할 수 있어. 노력은 배신하지 않거든.”

이 기적의 근원은 근성 넘치며 단순한 훈련으로부터 시작됐다.

소하가 조쉬 킹에게 시킨 훈련은,

‘왼발에만 축구화 신고 연습하기.’

자칫 부상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조쉬 킹의 강인한 육체는 이를 버티어냈고 왼발을 어느 정도 습득했던 것이었다.

비효율적이고 위험하지만 가장 효과가 좋은 훈련법! ICC 때부터 연습하던 왼발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쉬익.

처음 선보이는 왼발 크로스답지 않게 상당히 예리한 궤적을 그리는 조쉬 킹의 크로스.

장신, 메르테사커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며 에링 홀라드의 머리에 다다른다.

이대로 그대로 꽂아 넣어버리는 걸까.

하지만 에링 홀란드는 훨씬 영리한 선수였다.

‘수비 틈이라 균형을 잃었다. 게다가 골키퍼와는 정면. 그리고 난 날카롭게 방향을 바꿔 골대에 공을 집어넣을 헤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정말 기계 같은 자기 객관화였다.

찰나의 시간, 순식간에 프로그래밍을 완료한 에링 홀란드의 선택은 공을 ‘피하는’ 것.

“어?!”

“응?!”

당연히 머리에 맞출 줄 알았던 아스널의 수비진과 골키퍼는 순간 판단력을 잃었고 공은 그대로 흘러서 반대쪽 측면으로 향했다.

“···!”

공의 최종 종착지는 모하메드 살라의 가슴팍. 살라는 제법 강한 크로스를 가슴으로 완전히 정지시키는 멋진 트래핑 선보인다.

마치 가슴에 자석이 달라붙는 듯한 기묘하면서도 아름다운 기술!

-뻥.

모하메드 살라는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공을 그대로 다이렉트 슛으로 연결, 돈나룸마 골키퍼가 반응도 하지 못한 사이에 그대로 골망을 가른다.

-철썩.

시원하게 골망을 가르는 포츠머스의 선제골!

조쉬 킹- 에링 홀란드- 모하메드 살라로 이어지는 포츠머스의 삼각편대가 만들어낸 멋진 합작품이었다.

***

전반, 11분. 선제골을 달성한 포츠머스. 이대로 쉽게 승리하나 싶었지만, 아스널은 만만찮은 팀이었다.

“해보자 이거지?”

앤디 로버트슨의 전진 드리블을 막지 못해 선제실점에 빌미를 내준 메수트 외질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이는 마법을 부리기에 충분한 마력을 제공했다.

-촤아아악.

델리 알리와 칼빈 필립스의 사이.

데클렌 라이스와 후벵 디아스의 사이.

실보다도 가는 패스 길을 향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루패스를 통해서 공을 찔러주는 메수트 외질.

경기장을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다 해도 불가능할 엄청난 시야이자 기술이 폭발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의 끝에는 알렉시스 산체스가 온몸에서 승부욕을 불태우며 기다리고 있었다.

-툭.

깜짝 놀라 뛰쳐나오며 슬라이딩하는 페트르 체흐를 슬쩍 넘기는 멋진 칩샷이 작렬.

-철썩.

단 두 번의 터치로 순식간에 동점 골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와. 미쳤다. 저게 외질인가.”

“산체스의 마무리도 화보 같네요.”

소하와 밀러마저도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의 엄청난 골!

이로써 1분 만에 동점 골을 헌납한 포츠머스였다. 당연하게도, 포츠머스의 선수들도 눈빛을 활활 태운다.

“그래 어디 끝까지 가보자.”

“마지막에 서 있는 게 더 센 놈이야.”

“한번 보여주자!”

제대로 불타올랐다.

재개된 경기. 거침없이 몰아붙이는 포츠머스. 경기가 원점으로 돌아온 지 십분 뒤, 전반 22분.

델리 알리가 그 화염의 종지부를 찍었다.

-틱.

공을 받는 척하면서 뒤꿈치로 뒤로 공을 넘겨주는 센스있는 에링 홀란드의 플레이.

이를 델리 알리는 그라니트 자카의 압박을 압도적인 민첩성을 활용해 쉽사리 이겨낸다. 이윽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는 멋진 감아차기 슛.

-휘리리릭. 텅, 철썩.

공이 오른쪽 사이드 포스트바의 안쪽을 시원하게 때리며 그대로 골망을 가른다.

다시금 앞서나가는 델리 알리의 멋진 중거리 추가 골!

22분만에 양 팀이 합쳐 3골이 나온 굉장히 빠른 경기였다.

“후우. 후우.”

물론,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아스널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성난 황소처럼 콧김을 내뿜는 그라니트 자카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전반 30분.

델리 알리의 선제골이 들어간 지 8분이 지난 시점 기회가 찾아왔다.

“합!”

짧은 기합성과 함께 왼쪽 측면에서 그다지 좋지 않은 크로스를 날린 알렉스 이워비.

운이 좋게도 아다마 트라오레의 정강이에 맞고 굴절되며 묘한 궤적으로 페널티 에어리어 중앙으로 떨어져 내려간다.

엎치락뒤치락.

박스 안에서 굉장히 치열한 자리 선점 싸움이 이어지는 상황.

포츠머스의 빙벽, 케빈 도슨이 놀라운 집중력으로 머리를 이용해 걷어낸다.

하지만, 걷어낸 방향이 좋지 않았다.

세컨드 볼의 주인은 델리 알리에게 농락당한 그라니트 자카.

조금 전 옐로카드 한 장을 받은 그는 화가 잔뜩 나 있는 얼굴이다.

그 분노의 힘을 기반으로 튕겨 나오는 공을 잡지도 않고 그대로 있는 힘껏 다이렉트 중거리 슛으로 연결한다.

-콰앙!

그라니트 자카의 왼발에서부터 폭음이 울려 퍼졌다. 28m밖에서 폭발한 그라니트 자카의 빨랫줄 중거리 슛!

-철썩!

전설적인 골키퍼 체흐가 반응도 하지 못할 속도로 왼쪽 상단에 제대로 꼽혔다.

1년에 한 번 나온다는 그라니트 자카의 슈퍼 중거리 골이었다.

[정말 대단한 슛이었습니다!]

[공간을 압축하는듯한 환시가 보였을 정도의 엄청난 중거리 슛이었어요.]

올해의 골을 예약한 엄청난 골로 다시금 동점이 돼버렸다.

“와. 저거 진짜 1년에 한 번 나오는 건데 이번 경기에 나와버리네.”

“운이 없었네요.”

어처구니가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소하와 밀러. 쉽게 떨쳐냈다 싶으면 어느새 지독하게 따라오는 아스널의 집념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포츠머스의 독기도 절대 꿀리지 않았다.

자카의 원더골이 터진 지 5분 뒤, 전반 35분. 코너킥 기회를 만들어낸 포츠머스의 키커는 칼빈 필립스였다.

“믿어요. 멍청이가 아니라고 말이죠.”

자신감 있는 도움닫기와 함께 파 포스트를 향해 코너킥을 내지르는 칼빈 필립스!

시원한 곡선의 끝에는 이번 시즌의 신입생, 후벵 디아스의 단단한 머리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투확!

헤더로 만들어낸 소리가 맞나 싶은 타격음과 함께 그대로 골망을 갈라버렸다.

머리인지 발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의 힘이 넘치는 헤더 골!

후벵 디아스의 프리미어 리그와 포츠머스에서의 첫 번째 골이자 다시금 앞서나가는 추가 골이었다.

[저, 정말 대단한 경기입니다. 버, 벌써 35분이 흘렀어요!]

[이번 시즌 최고의 경기예요. 전반전에만 5골이 나온 미친 경기입니다!]

감탄을 금치 못하는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였지만, 아직 전반전은 끝나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지옥의 악귀처럼 끈질기기 짝이 없는 아스널이 여기서 주저앉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남은 10분여간 악귀나찰 같은 기세를 풍기며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붓는다.

그리고 정규 시간이 끝나고 추가시간에 들어선 순간. 기어코 사고를 내고 만다.

-삑!

칼빈 필립스의 다소 무리한 수비가 위험지역에서 프리킥을 내주었다.

굉장히 좋지 않은 반칙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유니폼을 잡아당기지 않았다면 엘렉시스 산체스를 막을 수 없었을 테니까.

[아스널, 전반전 마지막 공격 기회입니다. 과연 누가 최후의 기회를 살릴까요?]

[역시 산티 카솔라겠지요. 양발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강력한 키커입니다.]

산티 카솔라.

불운한 부상으로 전성기를 날려버린 뛰어난 미드필더였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다치지 않았다.

즉, 리그 최상위 미드필더의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는 뜻.

이 선수의 장점은 엄청난 탈압박 능력과 경기 조율에 있었지만 세트피스 키커로도 대단히 유명한 선수였다.

보통 아무리 양발잡이라도 세트피스는 주발로 사용하기 마련. 하지만 이 선수는 왼발로도 차고 오른발로도 차는 진짜배기 양발잡이였다.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까다롭기 그지없는 최악의 키커!

[아, 포츠머스의 수비벽과 체흐 골키퍼가 굉장히 갈팡질팡하는군요.]

[하필이면 중앙 쪽이라 왼발로 차든 오른발로 차든 상관없어요. 아마 오른쪽으로 벽을 옮기면 왼발로 찰 겁니다.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고요.]

프리킥 기회에서 수비벽은 정말 중요하다. 괜히 허구한 날 프리키커들이 벽을 향해 난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산티 카솔라는 프리킥을 수비하는 처지에서는 정말 까다로운 상대.

그리고 이 까다로움은 단순히 기분이 아닌 현실로 증명하기까지에 이른다.

-휘릭.

포츠머스가 오른쪽으로 수비벽을 세우자 왼쪽으로 킥을 내갈긴 산티 카솔라.

수비벽이 없는 쪽을 낮고 빠르게 휘어져 들어가며 뚝 떨어지는 고난도의 프리킥을 구사했다.

-철썩.

너무나도 낮은 궤적 때문에 펄쩍 뻗은 체흐의 팔뚝 아래로 스쳐 지나갔고 그대로 골망을 갈랐다.

[골입니다! 골! 아스널이 기어코 또 따라잡습니다!]

[역대급 경기예요. 역대급 경기란 말입니다! 우리가 봤던 전반전은 축구의 신이 내린 은총입니다!]

전반 45분.

점수는 3:3.

대략 8분에 한 골씩 들어간 굉장히 재미있고 뜨거운 경기에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은 물론, 원정 나온 아스널 서포터들마저 열광한다.

누가 승리를 거둘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채 그저 즐길 뿐인 이 상황에서 오직 소하만이 승리를 확신할 뿐이었다.

“하하. 굉장히 재미있는 경기네. 그래도 승기는 우리가 잡았다.”

폭발하는 함성에 순식간에 지워져 버린 소하의 읊조림. 그의 눈빛은 이미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다.

< 188화. 4위 싸움. (9)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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