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4위 싸움. (8) >
3일 만에 완전히 끝장난 포츠머스와 토트넘의 동맹. 가히 삼일천하라 불릴만한 이 의외의 동맹이 만들어낸 피해자는 당연히 포츠머스 측이었다.
-너희들 뭐하냐?
-뭐? 서로 이겨주면서 같이 웃자고?
-지랄한다. 그냥 개 발리고 우리한테 똥물을 끼얹었네.
-우린 첼시랑 비겨줬다고. 먼저 협박하던 놈들이 그냥 터지는 경우는 뭐냐?
-하여튼 무관 본능이란.
얕은 동맹의 후일담은 처참했다. 포츠머스 서포터들은 토트넘의 서포터를 볼 때마다 ‘팩트’로 마구 때려줬다.
토트넘 서포터들로서는 정말 죽을 맛이 아닐 수가 없었다.
-아니, 좀 봐주라. 우리 우승 날아갔어.
-가장 열받는 건 우리라고.
-솔직히 너희도 못 이겼잖아.
-윗말은 내가 대신 사과한다. 그냥 우리가 잘못했어.
-그냥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거듭되는 공격에 역으로 성을 내는 토트넘 서포터도 보였지만 대부분은 고개를 조아렸다.
이래저래 자기네들이 이겼으면 포츠머스의 무승부 덕분에 첼시와 승점 2점 차이까지 좁힐 수 있었으니까.
그냥 변명의 여지가 한 푼도 없이 져버린 토트넘의 잘못이었다. 목구멍까지 숟가락을 집어넣어 줬는데 뱉어버린 격이랄까.
[1위. 첼시. 26승 4무. 3패 82점.
2위. 토트넘. 24승 6무. 3패. 78점.
3위. 리버풀. 20승 9무 4패 69점.
4위. 포츠머스. 18승 10무 4패. 64점.
5위. 아스널. 18승 9무 6패. 63점.
6위. 맨시티. 18승 8무. 7패 62점.
7위. 맨유. 14승 14무 5패. 56점.]
결국 첼시는 5경기를 남겨두고 승점 4점 차이로 앞서 나가기 시작.
남은 상대가 전부 강등권도 아니고 대륙대회 경쟁팀도 아닌 동기부여가 떨어지는 팀이라 우승컵을 반쯤 손아귀에 넣었다.
그에 반해 토트넘의 패배로 포츠머스의 4위 경쟁은 더욱 어려워졌다.
5위로 올라선 아스널은 63점으로 1점 차이까지 따라왔고 맨체스터 시티는 비기긴 했으나 경기력이 올라온 모습을 보여줘 남은 희망의 불씨를 불태웠다.
포츠머스로서는 그야말로 절체절명!
남은 5경기를 모조리 이겨야 안심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그리고 곧 다가올 경기는 프리미어 리그 34라운드, 아스널과의 단두대 매치. 여기서 승리하는 팀만 자력으로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할 수 있었다.
***
“우리에겐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소하는 경기를 앞둔 하루 전, 선수들을 모두 불러 모아 일장 연설을 펼치고 나서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이번 침대 화의 목적은 당연하게도 가장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사기를 북돋우기 위함. 꼭 필요한 일이다.
“두 가지요?”
“그래 두 가지. 맞추는 녀석에게는 내일 경기 선발권을 주겠다.”
“···!!”
눈을 부릅뜨는 선수들. 소하의 미끼가 제대로 맛있어 보이나 보다.
조금 독특한 소하만의 팀 대화 방식이었지만 그간 계속 이어져 왔던 전통인지라 ‘선발 출장권’에만 관심이 쏠렸다.
그리고 가장 먼저 나선 선수는, 나오지 않으면 섭섭한 조쉬 킹.
번개 같은 속도로 손을 번쩍 치켜든다. 단순한 육체적 능력만은 팀 내에서 최고다운 뛰어난 반사 속도!
“저요, 저!”
“그래, 킹아 한번 이빨 한번 털어봐라. 이 하늘 같은 스승님 무척 기대하고 있으니까.”
“히히. 당연히 정답일 거예요. 기대하시죠. 그건 말이죠···.”
회심의 미소를 짓는 조쉬 킹이었지만 소하는 물론, 나머지 선수들도 썩 기대는 하지 않는다.
‘보나 마나 개소리겠지.’
‘개소리 200%’
‘넌 선발은커녕 벤치도 못 앉을 거다. 지가 자기 무덤을 파네.’
‘가는 길 배웅은 하지 않겠다.’
‘원래 일찍 일어나는 벌레가 제일 먼저 새한테 잡아먹히는 거지.’
이런 동료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쉬 킹은 클럽하우스가 떠나갈 정도로 호쾌하게 외친다.
“이긴다, 존나 큰 점수 차이로 이긴다! 당연히 이거 두 개죠!”
쩌렁쩌렁!
돼지 멱따는 소리가 이보다는 크지 않을 거다. 물론, 장판파의 장비가 얼핏 보인 화통한 조쉬 킹의 태도와는 정반대로 분위기는 차갑게 내려앉았다.
‘자살 방법도 여러 가지네.’
‘새끼, 부상인가?’
‘감독님 눈빛 봐봐. 하나 남은 부식을 코앞에서 가져간 직원을 바라보는 눈빛이야.’
‘하, 이 새끼는 언제 사람이 될까.’
‘다음 시즌까지는 못 보겠군.’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를 바라보는 눈이 이럴까. 한심함과 함께 동정심이 섞인 눈빛을 무수히 받는 조쉬 킹.
그렇지만 그는 언제나 그렇듯 칭찬해 달라는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소하를 바라본다.
겉으로만 보자면 머리라도 쓰다듬어 달라고 주장하는 모습에 결국 소하의 입술이 움직였다.
“킹아···. 정답이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스산한 소하의 목소리.
당사자가 아닌 선수들마저 닭살이 돋을 만큼 무서운 어조였다.
“꿀꺽.”
절로 마른침이 넘어가는 상황!
하지만,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취향이다! 넌 선발 낙점!”
“···.”
“···.”
“···.”
“···.”
대단히 즐거워하며 명랑하게 외치는 소하의 모습에 선수들은 어느새 식은땀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단, 한 선수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역시! 그렇죠! 저야말로 감독님의 오른팔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솔직히 정답보다 훨씬 정답다운 명답안이었다. 혹시 옥스퍼드생이니?”
“하핫. 제가 마음만 먹으면 옥스퍼드 정도야 쉽게 들어가죠!”
“과연 내 제자다!”
“훌륭한 스승 덕분이죠!”
아주 지랄이 났다. 지랄이.
모처럼 화기애애한 환상의 조합을 보여주는 소하와 조쉬 킹. 그렇게 한참을 서로의 얼굴에 금칠해주다가 어색하게 현실로 돌아온다.
“흠흠. 자 봤냐? 조쉬 킹을 본받으란 말이야. 이 얼마나 모범생이니?”
“···.”
“하여튼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정답 이상의 정답이 나왔으니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
“이기거나, 비기거나. 이거 둘 중에 우리는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쉬운 이야기였다.
어차피 승점은 포츠머스가 근소하지만 앞선 상태.
굳이 무리하지 않더라도 자력 진출의 가능성을 가진 쪽은 포츠머스였다.
만약 이번 경기에서 승부를 가르지 못한다면, 아스널은 포츠머스의 경기 결과에 따라 희비가 갈린다.
이는 굉장히 어려운 리그 진행이 기다리고 있을 터. 언제나 앞서가는 쪽보다는 쫓아가는 쪽이 힘든 법이었다.
“하지만 조쉬 킹의 위대한 혜안으로 난 눈을 떴다. 그래, 우리에게 목표는 두 가지야. 이기거나 존나 크게 이기거나! 알겠냐?! 우리는 이긴다!”
피를 토하는 목소리로 외치는 소하!
그의 목소리에는 광기와 열정이 뒤섞여 절로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괴이한 힘이 솟구쳤다.
“그래요! 이겨버리죠!”
“맞는 말입니다! 비기기 전략이라뇨. 겁쟁이들이나 하는 겁니다!”
“사나이라면 당연히 승리를 쟁취해야죠! 가죠!”
“아스널을 짓밟자!”
“우린 할 수 있다!”
“죽인다! 죽이자!”
언제 당황했냐는 듯 소하에 동조해 광신적으로 울부짖는 포츠머스의 선수들!
사이비 종교의 연회라도 이것보다는 얌전할 거다.
과연, 그 스승에 그 제자들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풍경!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말이다.
***
단단히 작심한 소하와 포츠머스 선수들. 프래튼 파크를 찾은 아스널의 선수들을 만나자마자 매섭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에, 나름대로 투지를 불태우던 아스널 선수들은 조금 당황한다.
‘뭐, 뭐지. 이 새끼들.’
‘아니, 전투를 앞선 해병대의 눈빛인데?’
‘눈빛이 맛이 갔어. 이 새끼들은 축구를 하러 온 게 아니야···.’
‘난 순간 스토크 시티인 줄 알았어.’
‘괜히 주눅이 드는데?’
포츠머스 선수들의 살기 어린 눈빛과 경기 시작 전부터 미친 듯이 울리는 포츠머스 서포터들의 함성!
이 때문에 아스널 선수들은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었다.
아스널의 약점이라 하면 ‘파트리크 비에라’ 이후로 강단 있는 선수가 없다는 점이지 않던가.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그들은 본 실력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후후. 좋아. 좋아. 그거다 얘들아. 벌써 반쯤 이겼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소하가 마음속으로 크게 칭찬했음은 당연지사. 승리를 위한 최고의 분위기 만들어졌기에 마냥 기뻤다.
“성소하 감독님. 아쉽지만 오늘은 제가 승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르센 벵거 감독이 먼저 선뜻 소하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 그거 제가 먼저 하려고 한 말인데. 제법이시군요?”
소하도 씨익 웃으며 노신사의 손을 마주 잡았다. 둘의 관계는 잉글랜드 축구계에서도 돈독하기로 소문난 사이.
상당히 보기 훈훈한 장면이었지만 속마음은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선수들이 주눅이 들었군요. 이럴 땐 제가 먼저 나서서 분위기를 풀어줘야죠.’
‘자기 선수들이 쫀 걸 눈치채시고는 성격답지 않게 먼저 치고 들어오셨어. 역시, 명감독 중에서도 명감독이야.’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선수들의 정신 무장을 끝낸 걸까요. 동기부여 면에서는 이미 월드 클래스군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대에요. 힘든 경기가 되겠군요.’
‘제기랄. 반쯤 이긴 것과 다름없는 분위기가 조금 중화됐다. 힘든 경기가 될 거 같다.’
두 명장의 치열한 승부는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가 울리기 전부터 시작된 모습이었다.
이렇듯 경기 시작부터 명승부를 펼치는 양 팀의 선발진은 명성에 걸맞은 만큼 화려했다.
먼저, 아스널의 선발진은,
[GK: 잔루이지 돈나룸마.
LB: 알렉스 그리말도.
CB: 로랑 코시엘리.
CB: 퍼 메르테사커.
RB: 엑토르 베예린
DM: 그라니트 자카.
LCM: 산티 카솔라.
RCM: 아론 램지.
LW: 알렉스 이워비.
RW: 메수트 외질
ST: 알렉시스 산체스]
원래 세계의 16-17시즌 아스널보다 굉장히 강한 상태다.
지난 시즌 우승을 한 덕분에 잔루이지 돈나룸마라는 최고의 골키퍼 유망주를 영입했고, 부족한 왼쪽 풀백을 알렉스 그리말도라는 훌륭한 선수도 메꾼 상태다.
여기에 알렉시스 산체스의 합류는 공격진에 날개를 단 격이었다. 아니, 격이었으나 문제가 터져 디펜딩 챔피언이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다투는 중이었다.
그 문제란 바로, 한 명의 영입생과 한 명의 유망주였다.
“그라니트 자카. 알렉스 이워비. 시대가 변해도 벵거 감독님은 자카를 영입하시고 이워비를 중용하시는구나. 아아.”
그저 통탄이 나올 일이었다.
그라니트 자카는 훌륭한 패서라는 장점이 있었지만, 약점이 너무나도 많은 선수다.
공교롭게도 아스널의 암흑기는 그라니트 자카가 팀에 합류한 후부터 시작했으니 더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했다.
여기에, 루카스나 대니 웰벡 같은 좋은 선수를 내버려 두고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유망주인 알렉스 이워비를 미친 듯이 기용하는 중이라 성적이 썩 좋지 않았다.
“알렉스 이워비가 벵거 감독님의 약점을 잡은 게 분명해. 불륜 영상이라도 가지고 있나? 그럴 분이 절대 아니긴 하지만···.”
소하로서는 좀체 이해되지 않는 아르센 벵거 감독의 고집이었다.
“경험치를 먹이려는 뜻이신가? 소용없을 텐데.”
미래를 아는 소하로서는 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현 시즌인 16-17시즌에도 알렉스 이워비는 개같이 못했지만, 다음 시즌인 17-18시즌에는 아스널 최악의 선수로 진화했기에 더욱더!
“뭐, 나야 좋지만. 약점을 대놓고 노출한 대가를 톡톡히 느끼게 해드릴게요.”
프로의 세계는 냉정한 법!
아무리 돈독한 사이일지라도 경쟁자에게 조언해줄 의리도, 약점을 노리지 않는 신사다움도 필요 없었다.
승리를 향한 집념을 불태우는 소하의 포츠머스는 가장 자신 있는 패를 꺼냈었다.
[GK: 페트로 체흐.
LB: 앤디 로버트슨
CB: 케빈 도슨.
CB: 후벵 디아스.
RB: 아다마 트라오레.
DM: 데클렌 라이스.
LCM: 칼빈 필립스.
RCM: 델리 알리.
LW: 조쉬 킹.
RW: 모하메드 살라.
ST: 에링 홀란드.]
몇 가지 특이한 점이 보인다.
일단, 도봉산이 없다. 도봉산은 명실상부한 이번 시즌 주전이었지만, 엑토르 베예린 이라는 리그 최고급 풀백을 상대하기엔 조금 상성이 맞지 않은 선수.
이 때문에 속도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 조쉬 킹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매튜 다이스를 제외하고 아다마 트라오레를 또다시 선발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워비의 공격력은 아다마 트라오레의 낮은 수비 능력으로도 감당이 된다.”
소하가 내뱉었던 말처럼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카드였다.
약점을 비집고 들어가 아다마 트라오레라는 근육과 땀 냄새가 나는 도끼로 갈라버리겠다는 의지!
잔인하면서도 승부사다운 선택이었다.
이로써 갈고닦은 패는 모조리 공개된 상태. 이제 곧 16-17시즌, 양 팀에게 가장 중요한 경기가 시작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 187화. 4위 싸움. (8)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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