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186화 (186/306)

< 186화. 4위 싸움. (7) >

[1위. 첼시. 26승 3무. 3패 81점.

2위. 토트넘. 24승 6무. 2패. 78점.

3위. 리버풀. 19승 9무 4패 66점.

4위. 포츠머스. 18승 9무 5패. 63점.

5위. 맨시티. 18승 7무. 7패 61점.

6위. 아스널. 17승 9무 6패. 60점.

7위. 맨유. 13승 14무 5패. 53점.]

32라운드까지 끝난 프리미어 리그 상위권 팀의 순위표이다.

먼저, 첼시와 토트넘의 우승 경쟁은 아직도 끝을 쉬이 짐작하기 힘든 상태다.

양 팀 모두 리그에만 집중하는 상황이었고 남은 일정도 비슷했기에 최소 36라운드는 가봐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어찌 보면 굉장히 정적이면서도 차갑고 치열한, 냉전 같은 분위기.

그에 반해 3위부터 6위까지는 굉장히 역동적인, 롤러코스터 시즌을 보내는 중이다.

특히나 가장 눈에 띄는 건 맨체스터 시티의 대 폭락! 마치 1929년도의 대공황을 보는 것만 같은 지표다.

포츠머스와의 경기 이후 한 1승도 거두지 못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중인 맨체스터 시티였다.

“오른쪽 풀백의 부상이탈로 팀 자체가 무너졌다.”

“아궤로까지 잃어버리며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는 난국이다. 이대로라면 챔피언스 리그 진출은 실패할 것.”

“수천억을 쏟아붓고 4위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펩 과르디올라의 자리는 분명히 위태로울 거다.”

“첫 시즌, 펩 과르디올라. 프리미어 리그의 혹독함을 느꼈다.”

6경기밖에 남지 않자 전문가들은 맨체스터 시티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돈으로 우승을 사려는 방식을 썩 좋아하지 않는 잉글랜드 축구 언론들에는 절호의 기회였기에 먹잇감을 발견한 피라냐 떼로 변해버린 행태였다.

리버풀과 포츠머스에게 보이는 상당히 우호적인 태도에 비하자면 맨체스터 시티에게는 굉장히 섭섭한 일이다.

“리버풀과 포츠머스의 3연승. 돈이 아닌 실력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모습은 타 구단의 본보기다.”

“훌륭한 붉은 팀과 푸른 팀.”

“몰락한 명문 리버풀의 부활과 기적의 증인, 포츠머스는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모두의 관심이 쏠렸다.”

맨체스터 시티에 비하자면 얼음과 용광로 같은 온도 차이!

우승 경쟁보다 더욱 관심받는 그들이었기에 곧 다가올 33라운드의 경기는 잉글랜드를 넘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

현란한 선수단 운영으로 ‘승격팀’ 주제에 프리미어 리그의 터줏대감들을 모조리 잡아낸 소하.

놀라운 3연승으로 승점 2점 차, 4위에 안착한 그는 33라운드 준비에 여념이 없다.

“안토니오 콘테의 첼시. 상당히 어려운 상대다.”

33라운드 상대는 1위를 질주 중인 안토니오 콘테의 첼시 FC였다.

더군다나 뒤를 이어서는 아스널 FC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이 뒤따르는 난관에 부닥쳤다.

“감독님, 대국적으로 보자면 첼시전은 최대한 힘을 아끼고 아스널전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 맞습니다.”

그간의 격무로 인해 살이 상당히 빠진 밀러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소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찌 보면 그게 일반적이면서도 확률이 높은 방법이겠죠.”

“그렇습니다. 감독님. 맨체스터 시티는 이미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에 반해 아스널은 저희의 뒤를 맹렬히 쫓고 있죠. 승점 6점짜리 대결인 아스널전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4위를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포츠머스와 아스널의 승점 차이는 3점.

딱 한 경기 차이다.

만약, 34라운드에서 아스널을 잡는다면 승점 6점 차이까지 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4경기 남았는데 6점 차라.

포츠머스가 한두 번 실수해도 자력 진출이 가능한 승점이다.

하지만, 만약에 지기라도 한다면 승점은 동률. 골 득실이 앞선 포츠머스일지라도 굉장히 힘든 경기를 연이어 헤쳐나가야만 했다.

즉, 첼시와의 경기에서 힘을 아껴야 한다는 밀러의 주장은 상당히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반응이었다.

“상당히 그럴싸한 근거네요.”

“바로 그겁니다! 첼시와의 경기에서는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전원 수비를 하면서 무승부를 노리는 겁니다!”

100여 년 전, 오스트리아 국립 미술 아카데미를 들어가지 못하고 흑화한 유럽의 악당 같은 열정적인 웅변!

그 평범한 중년이었던 밀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웅장하다.

오랜만에 소하가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자 회춘한 듯한 모습이었지만 얼마 가지 못한다.

“어차피 장소는 저희의 홈구장 프래튼 파크! 수비에 집중한다면 무승부도 그리 어렵지···.”

“잠깐.”

밀러의 말을 단호하게 끊은 소하는 태연하게 질문 세례를 퍼붓기 시작한다.

“우리가 전원 수비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어···. 그건···.”

“우리 애들이 2줄 수비로 리그 1위 첼시에게 무승부를 거둘 수비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음···. 그건···.”

우물쭈물하는 밀러.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포츠머스가 단단한 수비로 승리를 거두는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을 줄 안다고 하지 않던가. 4년에 가까운 시간, 공격만 해왔던 포츠머스가 전원 수비를 완벽히 해내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 그래도 감독님의 신비로운 지략이라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요?”

“전 게임의 치트가 아니라고요.”

“···아니었습니까?”

“···아니에요.”

소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에게는 많은 능력이 있었지만 단시간 내에 전혀 다른 전술을 선수들에게 주입하는 능력은 없었다.

“물론, 어느 정도 수비적인 전술을 도입할 순 있겠죠. 우리 애들은 기본적으로 활동량이 뛰어나니까요.”

“오! 그럼···.”

“하지만 원래 실력의 반도 미치지 못하겠죠. 마치, 행정병을 박격포병으로 보직 변경시키는 꼴이랄까.”

“···.”

“100%로 상대해도 어려운 상대에게 자체적으로 페널티를 떠안고 시작한다? 어림도 없죠.”

고만고만한 상대라면 어떻게든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그 1위를 달리는 첼시를 상대로는 역효과만 날 터.

자멸의 지름길이었다.

“게다가 아스널과의 경기는 중요하기에 더욱더 첼시전에서 승리를 거둬야죠.”

“무슨···?”

“말 그대로예요. 아스널전은 중요한 만큼 승부를 장담하기 어렵죠. 객관적인 전력도 우리보다 뛰어나고요.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대 때문에 가까운 경기를 포기할 순 없어요.”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대보단 바로 코앞의 상대에게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소하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아스널도 힘을 비축할 여력이 없어요. 우리가 당장 첼시와 경기를 해야 한다면 그쪽은 ‘북런던 더비’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아스널의 33라운드 상대는 토트넘.

즉, 잉글랜드 최고의 더비 경기라는 북런던 더비였다.

첼시를 만난 포츠머스보다 훨씬 어려운 경기를 기다리는 아스널이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저희가 힘을 아껴두면 북런던 더비에서 힘을 뺀 아스널을 상대로 승리할 가능성이 크겠죠.”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저씨는 맨체스터 시티를 너무 우습게 보고 있어요.”

아스널이 승점 3점 차라면 맨체스터 시티는 승점 2점 차다. 요즘 최악의 상황에 부닥쳤다고는 하지만 더욱 가까운 경쟁자는 맨체스터 시티라는 이야기.

“문어···가 아니라,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다시 승리해나갈 거예요. 그는 그럴만한 능력을 갖춘 감독이잖아요.”

“···그렇죠.”

“결국 우리는 모든 경기에서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해요. 이미 3위까지는 결정된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첼시, 토트넘은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 확정적이다. 3위인 리버풀도 5위와 5점 차나 나기 때문에 진출이 확정적.

그렇다면 남은 한자리인 4위를 두고 포츠머스, 맨체스터 시티, 아스널이 피를 튀기는 싸움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 치열한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남은 6경기에서 최대한 이겨놔야 하는 포츠머스였다.

“게다가···. 이거 보세요.”

소하는 슬쩍 스마트폰을 꺼내 포츠머스의 SNS를 밀러에게 보여준다.

-포츠머스야 믿는다. 첼시 이겨줘.

-우리는 동맹이잖아? 해주라.

-지기만 해봐라. 영원히 네놈들을 저주해주마.

-우리도 이겨줄게. 너희도 이겨줘. 서로 이기고 행복해지자고.

-포츠머스와 토트넘의 동맹 결성!

-양팀응원자들은 모두 서로의 승리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는 놈들은 배신자다. 숙청이야!

이를 본 밀러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포츠머스와 토트넘이 동맹을 결성하다니.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어때요?”

소하는 씨익 웃으며 당황한 밀러의 의중을 물었다.

“음···. 뭐랄까. 이게 무슨 일이죠?”

“우리가 첼시를 잡아주면 우승 가능성이 커지고, 토트넘이 아스널을 이기면 우리의 챔피언스 리그 진출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적의 적은 친구라는 뜻이군요.”

“바로 그거에요.”

애당초 대한민국 축구팬들을 가장 많이 보유한 클럽이 포츠머스와 토트넘이다.

성소하, 도봉산, 유해진의 포츠머스.

이정재의 토트넘.

한국 내에서 해외 축구팬들의 가장 큰 집단끼리 서로 가까워진다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리그 상황이 상황인지라 현지 서포터들까지 합심한 상태. 첼시전을 적당히 하자고 한 밀러의 주장이 새어 나가면 정말 큰일이 터질 거다.

“생각해보세요. 만약 토트넘이 이기고 우리가 진다? 아마 저랑 아저씨는 평생 얻어먹을 욕을 한순간에 다 받아먹을걸요?”

“···.”

“뭐, 저는 욕먹는 게 익숙하긴 하지만 밀러 아저씨는 어떨까요. 후후.”

“···무조건 최선을 다해서 있는 힘껏 공격해야겠군요···.”

소하가 이죽거리자 나직이 읊조리는 밀러.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수비는 사라지고 전원 공격만이 남아있었다.

***

여러 상황이 맞물린 채로 시작된 포츠머스와 첼시의 프리미어 리그 33라운드.

패배만은 면해야 했기에 수비적으로 나올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굉장히 공격적으로 포츠머스.

이에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굉장히 보수적으로 접근했다.

“포츠머스의 기세는 매섭다. 그러니 우리는 수비에 중점을 두며 경기를 무승부로 이끈다.”

최근 5경기 4승 1패라는 포츠머스의 엄청난 기세는 안토니오 콘테 감독도 상당히 부담을 느꼈다.

더군다나 우승 경쟁자인 토트넘은 아스널이란 강적을 만난 상태.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시기적절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포츠머스와 토트넘에는 매우 아쉽게도 첼시의 수비를 뚫기가 굉장히 어려워졌다.

“흠. 저 정도 팀이 대놓고 2줄을 세우니까 정말 답이 없네요.”

“그러니까 말입니다. 빈틈이 없는데요.”

“그래도 다행인 점은 공격적으로 나온 덕분에 첼시가 아예 역습도 포기했다는 거죠. 이래저래 우린 승점을 따가겠네요.”

소하의 말처럼, 첼시는 포츠머스의 대단히 공격적인 모습에 아예 역습할 마음마저 접어버렸다.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원정팀의 지옥’이라 불리는 프래튼 파크에서 무승부를 거두겠다는 강한 일념!

그리고 포츠머스는 후반기에 들어서며 2줄 수비에 약점을 보였던 팀이었고 결과는 콘테 감독의 의도대로 나오고 말았다.

[0-0 무승부! 포츠머스가 맹공을 퍼부었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막아낸 첼시였습니다!]

[대단한 수비력입니다. 3백을 통해 포츠머스의 모든 공격을 꺾어버렸어요.]

어째서 수비가 강한 팀이 우승하는 것인지 제대로 보여준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었다.

“크, 큰일 났네요. 이러다가 토트넘이 이겨버리면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겁니다!”

다가올 거대한 쌍욕의 폭풍에 기겁하는 밀러. 하지만 소하는 밀러의 등을 토닥여주며 다시 한번 스마트폰을 보여준다.

[북런던 더비의 승자는 아스널!]

[토트넘, 결국 우승의 꿈은 멀어졌다.]

[지역 라이벌의 꿈을 부숴버린 아스널. 2-0승리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한발 다가갔다.]

동 시간대에 진행된 아스널과 토트넘의 북런던 더비. 승자는 아스날이었고 토트넘은 동맹은 물론, 우승까지 날려버렸다.

“···이 자식들이 자기들이 윽박질러놓고선 져버렸네요.”

“무관 DNA랄까요. 결국 그나마 할 일을 해준 건 우리였어요. 적어도 첼시의 승리를 막긴 했으니까요.”

“허허. 거, 참. 도움이 안 되는 동맹이었군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어휴. 믿은 우리가 등신이죠. 쯧쯧.”

“쯧쯧.”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혀를 차는 소하와 밀러. 이로써 아스널과의 승점 차이는 1점이었고, 다가올 34라운드는 시즌 최고의 분수령이 되어버렸다.

< 186화. 4위 싸움. (7)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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