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4위 싸움. (6) >
잉글랜드 남부의 해안 도시, 포츠머스에는 불꽃 같은 환호성이 화산 폭발처럼 울려 퍼졌다.
“포츠머스! 포츠머스!”
“꽃미남! 꽃미남! 꽃미남!”
“노르웨이 디카프리오!”
에링 홀란드를 찬양하는 목소리는 하늘을 찔렀으며,
“조쉬 킹! 조쉬 킹!”
“미스터 포츠머스! 미스터 포츠머스!”
“드리블의 신! 드리블의 신!”
“세계 최고의 기교파!”
조쉬 킹을 숭배하는 목소리는 땅을 뚫고 지진을 만들어냈고,
“축구의 신! 성소하!”
“세인트 소하! 세인트 소하!”
“이 땅에 강림한 신의 사자!”
“성소하.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꽂. 나의 죄, 나의 영혼.”
“성소하, 나의 빛. 성소하, 나의 삶. 성소하, 나의 기쁨. 성소하, 나의 안식”
소하를 이 땅에 내려와 기적을 행사하는 신이라며 경외하는 목소리는 천계의 신이 질투할 만큼 지속됐다.
최종 점수는 5-0.
에링 홀란드의 해트트릭과 조쉬 킹의 추가 골, 모하메드 살라의 마무리 골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결과.
경기가 끝난 지 어언 한 시간 가까이 됐음에도 기쁨을 누리는 서포터들의 모습이 충분히 이해가 갈만했다.
그 어떤 누구도 포츠머스가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만들어진 맨체스터 시티를 이렇게 박살을 낼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기쁨은 더욱 컸다.
하지만 모두가 즐거워하지는 않았다.
오늘 대패를 당한 맨체스터 시티의 서포터들은 얼굴에 짙은 먹구름이 끼었다.
“망했다.”
“진짜 백번 양보해서 질 수도 있지만, 선수단이 박살이 났어.”
“가뜩이나 부상선수가 많은데 두 명이 추가로 시즌아웃이라니.”
포츠머스 같은 약소 팀에게 지는 건 백번 양보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축구공은 둥글었고, 포츠머스는 그냥저냥 한 승격한 팀이 아니었으니까.
다만 부상은 예외였다.
이번 참사의 원인도 주선 선수들의 부상에 있지 않았던가. 추가로 주전 선수 하나와 유용한 멀티 플레이어를 같이 잃어버리자 실성하기 직전에 처한 맨체스터 시티의 서포터들이었다.
[맨체스터 시티에 엄청난 위험이 찾아왔다. 우승 경쟁은 굉장히 힘들어졌고 자칫하다가는 챔피언스 리그도 날아갈지도 모른다.]
[리버풀마저 승리를 거두며 승점 3점 차이까지 따라왔다. 그리고 포츠머스와는 겨우 5점 차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부었음에도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한다면 펩 감독의 자리는 위태로울 것.]
[오른쪽 풀백의 대체자가 없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
소하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자리마저 위협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아니,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소하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었다.
이미 2년 전에 말이다.
“으음. 바카리 사냐를 잔류시켰던 후폭풍이 이렇게 다가오나. 나비효과란 말이지.”
심술궂은 미소를 짓는 소하.
당시에 헥토르 베예린을 임대 영입했고 그 결과로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려던 바카리 사냐가 아스널에 잔류했었다.
덕분에 맨체스터 시티는 2년간 여러 오른쪽 풀백을 영입했고 모조리 실패한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쳤던 일이 이렇게 돌아오다니. 역시 하늘은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는 건가.”
2년 전의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 지금까지 이어져 4위 경쟁에 청신호를 띄우다니.
세상 참 모를 일이었다.
하여튼, 이로써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차지하기 위한 프리미어 리그 상위권 팀들의 경쟁은 더욱 불이 붙었다.
[1위. 첼시. 23승 2무. 3패 71점.
2위. 토트넘. 21승 5무. 2패. 68점.
3위. 맨시티. 18승 5무. 5패 59점.
4위. 리버풀. 16승 8무 4패 56점.
5위. 포츠머스. 15승 9무 4패. 54점.
6위. 아스널. 15승 7무 6패. 52점.
7위. 맨유. 12승 12무 4패. 48점.]
28라운드가 모두 끝나고 완성된 상위 7개 팀의 순위표.
위치는 바뀌지 않았지만, 점수는 상당히 많이 변했다.
1위인 첼시와 2위인 토트넘은 승리해서 3점을 추가했으며,
4위, 리버풀.
5위, 포츠머스.
6위, 아스널까지 승리하며 3점을 추가해 무승부를 거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
포츠머스에게 대패를 당한 3위, 맨체스터 시티는 6위, 아스널에 7점 차까지 따라 잡힌 상황이다.
그리고 남은 리그 경기는 10경기.
과연, 누가 16-17시즌의 우승컵을 들어 올릴지, 어느 팀이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할 것인지 점점 흥미로워지는 프리미어 리그였다.
***
포츠머스의 다음 상대는 우승을 노리는 토트넘이었다. 전반기에 프래튼 파크에서 1승을 거두었기에 제법 할만하다고 보이는 상대.
하지만, 토트넘 홋스퍼의 우승을 향한 욕망은 승격팀에 불과한 포츠머스가 감내하기엔 조금 버거웠다.
더군다나 장소마저 토트넘 홋스퍼의 홈구장, 화이트 하트 레인. 소하마저도 굉장히 어려운 경기가 될 거라 예상했고 이번에도 정확히 들어맞았다.
-삑! 삑! 삑!
[경기가 종료됩니다! 토트넘의 2-1 승리입니다! 정말 손에서 진땀이 나는 멋진 승부였습니다!]
[해리 케인의 선제골로 앞서간 토트넘을 도봉산의 멋진 동점 골로 따라잡은 포츠머스였지만, 이정재 선수가 마무리 짓는군요.]
“이런. 이런. 괜히 전반기에 응원을 해줬나? 너무 잘하잖아.”
소하는 오늘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MOM을 차지한 이정재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정재.
훗날 프리미어 리그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득점왕에 오르는 월드 클래스 공격수.
지난 시즌에 프리미어 리그에 입성했고 최악의 시간을 보내며 방출설까지 터졌던 그였지만 이번 시즌에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해리 케인과 함께 토트넘의 주축 중 하나로 성장했다. 미래보다 1~2년 빠른데. 의외의 복병이 될지도 모르겠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쟁상대들의 힘을 약화해야 했거늘. 조금 실수가 아닌가 싶었지만 소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뭐, 이정재 선수가 잘되기를 원하니까. 난, 내가 원하는 걸 모두 이룰 거다.”
조금 힘들어질지 몰라도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겠다는 소하의 욕심!
욕심은 종교에서 죄악이라고 분류됐지만 욕심이 있었기에 인간은 발전했고 이는 소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마냥 개인적인 만족으로만 끝나지도 않았다. MOM에 선정된 이정재는 인터뷰에서 소하를 언급하며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했다.
“먼저, 저를 지도해주신 포체티노 감독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제가 포기하려 했을 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많은 부분을 지도해주셨기에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외람될지도 모르지만, 포츠머스의 성소하 감독님에게도 감사를 표합니다.”
“어째서인가요?”
기자의 질문에 이정재는 싱긋 웃으며 거침없이 답변한다.
“성소하 감독님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일을 가능케 하는 감독님입니다. 그리고 같은 한국인이기에 큰 존경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 분께서 저를 직접 찾아와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라고 격려를 해주셨고, 덕분에 저는 자신감을 되찾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이정재 선수.
작은 말 한마디가 이렇게 고마워할 일이라는 것이 조금 의아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은 격려의 말 하나가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건 그리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축구선수는 ‘자신감’이 실력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치는 직업. 충분히 고마워할 만한 일이었다.
심지어 다른 누구도 아닌 소하의 격려가 아니던가. 한국인에게는 이미 전설적인 감독으로 불리는 소하가 건넨 격려였기에 효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음. 역시 크게 대성할 선수가 맞아. 은혜를 아는 사람은 성공하지.”
졌음에도 이정재 선수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는 소하. 물론, 단순히 감사 인사를 받았다고 웃는 것이 아니었다.
[맨체스터 시티, 2연패를 당합니다!]
[리버풀, 아쉽게 무승부를 거둡니다!]
[아스널, 간신히 무승부를 이뤘습니다!]
연이어 들리는 다른 경기장의 소식들은 패배했음에도 소하가 웃을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이로써 순위표는,
[1위. 첼시. 24승 2무. 3패 74점.
2위. 토트넘. 22승 5무. 2패. 71점.
3위. 맨시티. 18승 5무. 6패 59점.
4위. 리버풀. 16승 9무 4패 57점.
5위. 포츠머스. 15승 9무 4패. 54점.
6위. 아스널. 15승 8무 6패. 53점.
7위. 맨유. 12승 12무 5패. 48점.]
아스널의 추격이 맹렬했지만, 그보다는 나락으로 향하는 맨체스터 시티의 행보가 눈에 띈다.
벌써 2경기째 승점 제자리걸음.
심지어 팀의 상황은 좋아지기는커녕 더욱 엉망이 되고 있었다.
[아···. 세르히오 아궤로까지 부상으로 잃어버린 맨체스터 시티입니다.]
펩 감독 체제에서 제법 어려운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금 탑 클래스의 면모를 보여주는 맨체스터 시티의 전설, 세르히오 아궤로까지 잃어버렸다.
이로써 주전 선수 중에 절반가량을 잃어버린 맨체스터 시티. 사기마저도 최악으로 떨어져 그들의 운명에 검은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기 시작했다.
***
이제 프리미어 리그의 잔여 경기는 9경기였다.
원래대로라면 토트넘전 이후로 에버튼전이었지만, 일정 변경으로 미리 치렀기에, 포츠머스의 다음 상대는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스완시 시티, 스토크 시티였다.
그리고 포츠머스에게는 썩 좋은 일정은 아니었다.
[리버풀, 맨시티, 토트넘], 3연전.
[웨스트햄, 스완시, 스토크], 3연전.
어려운 3연전과 쉬운 3연전이 붙어있었고 나머지 일정도 마찬가지였다.
[첼시, 맨유, 아스널], 3연전.
[왓포드, 선덜랜드, 크리스털 팰리스], 3연전.
어려운 3연전과 쉬운 3연전이 12경기를 걸쳐 이어지는 기묘한 일정이었다.
“강팀과 약팀을 섞어서 만나는 일정이 로테이션을 돌리기에 좋은데 말이야. 그래도 우리 팀은 할만하지.”
선수의 체력은 유한하기에 적절한 로테이션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그렇기에 연달아서 어려운 상대를 만나는 일정은 4위 싸움에 굉장한 악조건이었지만 소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우리는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가 가장 적은 팀이니까. 주전을 쉬게 해도 경기력 차이는 크지 않다.”
확고한 믿음을 가진 소하!
그리고 이 믿음은 곧바로 결과로 증명했다.
[포츠머스가 런던 스타디움에서 웨스트햄을 꺾습니다!]
[새로운 조합을 들고 온 포츠머스였지만 그 강함은 변하지 않는군요!]
웨스트햄전을 맞이해 새로운 조합을 꺼내든 포츠머스.
중원 조합을 색다르게 꾸렸다.
마이클 반즈, 커너 러셀, 데클란 라이스.
처음 선보이는 중원 조합이었지만 파괴력은 칼빈 필립스, 데클렌 라이스, 델리 알리 조합과 비교해서 전혀 꿀리지 않았다.
[마이클 반즈의 약한 수비력을 커너 러셀과 데클렌 라이스가 메꿔주며 공격력을 극대화했습니다.]
[저렇게 편하게 마이클 반즈를 놀게 내버려 두면 크게 혼난다는 교훈을 안겨주는 경기였습니다.]
마이클 반즈는 두 청소기의 도움 아래 매우 편하게 경기를 임했다. 발을 슬쩍 놀릴 때마다 무시무시한 위력의 패스를 뽑아내더니 결국 팀의 3-0 승리를 견인했다.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의 말처럼 압박을 주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똑똑히 보여 준 마이클 반즈였다.
그리고 이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이어진 31라운드 스완시 시티와의 경기에서도 소하는 새로운 조합을 꺼내 들었다.
잭 해리슨-에링 홀란드- 도봉산.
반대 발 윙어가 아닌 정발 윙어를 기용하며 적극적인 측면을 노리는 스리톱에 더불어,
칼빈 필립스- 델리 알리-스티븐 데커.
전진성 좋은 두 명의 미드필더와 수비력과 플레이메이킹을 모두 갖춘 수비형 미드필더를 이용해 중원의 적극적인 공격 가담을 시도했다.
즉, 1선이 스완시 시티 대형의 폭을 벌려주고 그 틈을 델리 알리와 스티븐 데커가 후벼파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이번 조합도 상대를 무차별하게 부숴버렸다.
[경기가 끝납니다! 스완시 시티, 단 한 개의 슛도 시도하지 못하며 처참하게 무너지네요.]
[점수는 2-0이지만 너무나도 일방적인 경기였어요. 아마, 에링 홀란드 선수가 헤더에 익숙했다면 참사가 일어났을 겁니다.]
스완시 시티에게 단 한 개의 슈팅도 허용하지 않으며 완벽한 승리를 거둔 포츠머스.
이어서 스토크 시티도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주전과 비주전의 신비로운 조합으로 3-1 승리를 거두기에 이른다.
“대단합니다. 성소하 감독. 가진 선수를 조합하는 솜씨가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어요!”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갓 승격한 팀이 프리미어 리그의 터줏대감들을 모조리 가지고 놀았어요!”
“선수단 운영의 신입니다. 아마도 성소하 감독은 선수들 본인보다도 그들을 잘 파악했을 겁니다.”
“우리는 정말로 역대 최고의 감독이 될 자질을 갖춘 30대 초반의 감독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떻게든 비판할 거리를 찾던 전문가들마저도 만장일치로 극찬을 아끼지 않는 절묘한 선수단 운영이었다.
“말했잖아? 우린 격차가 없다고.”
콧대를 하늘 높이 치켜세우는 소하.
매우 얄미운 모습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의 실력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 185화. 4위 싸움. (6)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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