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4위 싸움. (5) >
엄청난 골이었다.
그리고 굉장히 상징성이 넘치는 골이었기에 마틴 테일러와 앨런 스미스는 쉬지 않고 입을 놀렸다.
[이건 굉장한 골입니다. 둘이 합쳐서 이적료 0파운드인 선수들이 조 단위의 돈을 쏟아부은 맨체스터 시티에게 비수를 꽂았어요.]
[돈으로 점철된 프리미어 리그에 신선한 충격을 끼얹는 골이에요.]
수십 년의 축구계 생활을 한 덕분에 누구보다 변하고 있는 현실을 가장 느끼던 그들에게 이는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무명의 선수를 손수 키워 거대구단을 상대로 멋진 골을 넣다니!
이것이 바로 축구계의 몇 남지 않은 낭만 중 하나였다.
“야! 조쉬 킹! 너 갑자기 어디서 배운 드리블이야?!”
“너···. 조시 킹 맞냐? 살 빠진 발로텔리···. 혹은 피부를 태운 도봉산?”
“혹시 어디 아프냐?”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굉장히 무서운 얼굴로 포효하는 에링 홀란드를 안아준 뒤 조쉬 킹에게 몰려가 한마디씩 던졌다.
“···방금 인종 차별성 발언 아니었냐? 됐고, 원래 이 몸은 한계를 모르는 분이시다. 알겠냐? 범인들아? 다시 말해서 초 천재님이라고. 평범남들아!”
모처럼 칭찬해 줬건만. 조쉬 킹답게 사람 속을 긁자 좋은 말이 나올 수가 없다.
“···지랄한다.”
“···염병 떠네.”
“뽀록가지고 천재 이 지랄.”
“한번 더해보라고 하면 못할걸?”
“인정. 10만 파운드 건다.”
조쉬 킹을 향해 마구마구 독설을 날리는 동료들. 그래도 마음속은 아직도 킹의 놀라운 모습에 조금 들뜬 상태다.
“근데 진짜 장난치지 말라고 언제 그런 거 배웠냐?”
포츠머스에서 ‘에이스’임을 자처하는 델리 알리가 눈을 가늘게 뜨며 진지하게 물었다.
원래 가졌던 조쉬 킹의 실력에 기술까지 포함된다면 에이스의 자리가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자만감을 높은 향상심으로 바꾼 그였기에 동료의 새로운 모습은 엄청난 자극제가 되었다.
“흠흠. 세포 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축구 DNA랄까.”
“지랄 말고! 너 DNA가 뭔지도, 세포가 뭔지도 모르잖아.”
“···아, 알거든. 하여튼, 솔직히 말하자면 모르겠어. 그냥 갑자기 몸이 움직이더라고.”
진심이었다. 머리가 아닌 몸이 본능적으로 만들어낸 플레이였기에 조쉬 킹의 어휘력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델리 알리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변명이었지만 말이다.
“치사한 녀석.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말든가. 친구한테 비법 전해주는 게 그렇게 싫냐?”
얼굴을 찌푸리며 등을 돌리고 포츠머스의 진영으로 돌아가는 델리 알리.
아주 제대로 삐졌다.
“아니, 야. 지, 진짜 모른다니까!”
조쉬 킹은 그저 억울하고 또 억울했을 뿐이었다.
***
“감독님. 드디어 성공하셨군요.”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수석코치 잭 밀러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소하에게 말을 건넸다.
“한국 속담 중에는 이런 말이 있죠.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요. 녀석은 자기가 적어도 개만도 못한 인간이 아님을 증명했어요.”
“···욕입니까? 칭찬입니까?”
“극찬이죠.”
소하는 주저함이 없이 즉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의심도 없는 확고한 믿음이 보였다.
“녀석은 천재예요.”
“···네?”
밀러는 소하의 뚱딴지같은 평가에 의구심을 감추지 못했다. 조쉬 킹이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천재하고는 거리가 상당히 멀지 않던가.
항상 돌대가리라고 구박하던 소하가 조쉬 킹을 천재라고 평가하는 건 사뭇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저씨의 생각처럼 지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축구선수로서도 천재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물론, 전 굉장히 좋아하는 녀석이지만요.”
“그렇죠. 공에 대한 감각은 범재니까요. 그래도 축구선수로서의 육체적인 능력은 천재가 맞죠.”
“하기야···.”
밀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쉬 킹의 놀라운 육체적 능력은 천재라는 단어로밖에 설명이 어려웠다.
“하지만 제가 말한 천재란 육체적인 부분도 아니에요.”
“그럼 뭡니까?”
소하는 잠시 눈빛을 빛내며 조쉬 킹을 바라보다가 자신감 있게 답한다.
“‘노력의 천재’예요. 녀석은.”
“노력의 천재요? 아···. 역시 그렇군요.”
노력의 천재라는 소하의 주장에 밀러는 대번에 무슨 의미인지 알아봤다.
그리고 이것은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4년이에요. 4년. 그동안 녀석은 남들보다 1.5배는 연습을 더 했죠.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기초훈련을 말이에요. 거기다가 추가로 피지컬 훈련까지 자기 멋대로 진행했죠.”
“맞습니다.”
“비록 제가 닦달해서 한 거긴 하지만 녀석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맨날 우는소리를 해도 계속 저의 훈련을 따라왔죠. 이건 천재가 아니고선 절대 하지 못할 일이에요. 아무리 멍청이라도 힘들면 포기하기 마련이니까요.”
천재적인 육체 능력!
천재적인 근성과 노력!
이것이 융합하며 만들어낸 축구선수가 바로, 조쉬 킹이었다.
“녀석은 크게 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감독님.”
확고한 믿음을 내비치는 밀러의 질문에 소하 또한 묵묵히, 그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예언한다.
“네. 이제부터 세계의 축구계는 다른 누구도 아닌 조쉬 킹이 주도할 거예요.”
해가 동쪽에서 뜰 거라는 일기예보였다.
***
조쉬 킹의 멋진 플레이와 에링 홀란드의 예리한 바늘 같은 결정력으로 한 골 앞서기 시작한 포츠머스.
강자,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선제골을 달성했음에도 절대 만족하지 않았다.
[포츠머스가 더욱더 밀어붙입니다! 조쉬 킹의 슈퍼 플레이에 자극을 제대로 받은 듯한 모습이에요!]
[불이 붙었어요. 불이 붙었단 말이에요! 평범한 승격팀이었다면 조금 침착하게 점수를 지키려고 했지만, 포츠머스는 평범과 거리가 가장 먼 클럽입니다!]
그야말로 파상공세!
동점 상황보다 훨씬 더 날뛰는 포츠머스 선수들 덕분에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점점 무너져갔다.
특히나 조쉬 킹을 맞상대하는 파블로 사발레타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미치겠네.’
현재는 에이지 커브 때문에 기량이 하락했지만, 한때나마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풀백이었던 파블로 사발레타.
이런 그에게 있어서도 조쉬 킹이란 선수는 너무나도 무지막지했다.
‘도봉산도 훌륭한 선수였다. 아시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였지. 하지만 막을 순 있었다.’
민첩하긴 하지만 기술과 비교해 신체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도봉산은 사발레타의 경험으로 감당이 되는 선수였다.
하지만, 조쉬 킹은 전혀 아니었다.
‘초심자 수준의 기술···. 그렇기에 더욱 막기 힘들다.’
압도적인 힘!
단순한 강함!
조쉬 킹이 무슨 플레이를 할지는 손에 불 보듯 뻔히 보였지만 막을 수가 없었다.
머리는 따라가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이다. 온갖 방법을 모조리 동원했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유니폼을 잡아당기든,
먼저 자리를 선점하든,
한발 앞서 달려보든,
단순한 강함 앞에서는 달리는 기차를 막아서는 개구리 꼴이었다.
‘빠르고 강하며 민첩하다. 여기에 약간의 기술이 더해져 멈출 수 없는 존재로 변했다.’
입술을 질끈 깨물며 조쉬 킹의 등 뒤를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따라붙는 파블로 사발레타. 하지만 거리는 점점 벌어졌고 그 때문에 한계를 더욱 쥐어 짜내다가 결국 사달이 난다.
“으억.”
미친 듯이 조쉬 킹을 따라가던 사발레타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다리를 부여잡고 그대로 넘어졌다.
달리는 와중에 혼자서 넘어진 터라 경기는 잠깐 계속 진행되었지만 이윽고 호루라기 소리가 울린다.
“멈춰! 멈춰! 의료진을 불러! 의료진!”
사발레타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한눈에 알아본 심판의 빠른 결단이었다.
[아! 파블로 사발레타가 조쉬 킹을 쫓다 그대로 꼬꾸라졌습니다!]
[허벅지를 부여잡고 있는데요, 무리한 전력 질주 때문에 햄스트링에 문제가 생긴 듯싶어요.]
크게 고통스러워하는 사발레타를 걱정하는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혼자서 당하는 부상은 정도가 심했기에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결국, 파블로 사발레타는 들것에 실려 경기장에서 모습을 감춘다. 끝까지 매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가벼운 부상이 아님은 쉬이 짐작할 수가 있었다.
[큰 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에서 사발레타를 대신해 페이비언 델프를 투입하는군요.]
[이번 시즌 왼쪽 풀백으로는 제법 나왔지만, 오른쪽은 어떨지는 미지수입니다.]
유리몸이자 썩 좋은 선수가 아닌 페이비언 델프까지 모습을 드러내었다.
상당히 좋은 기회가 상대 선수의 부상으로 날아갔지만, 이것은 오히려 더욱 큰 기회일지도 모르는 상황.
“어수선한 상황이다. 지금 마무리를 지어라! 이 녀석들아!”
경기가 포츠머스의 소유권으로 다시 개시되자 소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소하의 주문을 가장 먼저 이해한 선수는 델리 알리였다.
‘밉살맞은 녀석이지만 지금은 조쉬 킹이 핵심이다.’
천재적인 축구 센스가 빛을 발한 빠르고 정확한 판단이었다.
-뻥.
중앙선까지 내려와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을 끌어들이고 조쉬 킹을 향해 긴 패스를 날리는 델리 알리!
이제 막 경기장에 들어온 페이비언 델프와 속도 경합을 하라는 명령이었다.
“좋아. 달린다!”
호기롭게 외치며 순식간에 최대속도에 돌입하는 조쉬 킹!
몇 미터 앞에서 달리던 페이비언 델프를 눈 깜짝할 사이에 따라잡는다.
“미친···!”
당황하는 페이비언 델프. 뒤에 있던 선수의 등이 보이자 온몸의 힘을 쥐어짜 다리를 움직인다.
그리고 이것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어억.”
비명을 내지르며 파블로 사발레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꼬꾸라지는 페이비언 델프. 허벅지를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워한다.
-삑!
또다시 울린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
그렇다. 페이비언 델프도 햄스트링에 문제가 생겼다.
원래도 유리몸이었고 몸도 덜 풀린 상태에서 급격한 투입이 부른 최악의 하모니였다.
[이런! 페이비언 델프도 다쳤습니다! 사발레타 선수와 같은 부상으로 보이는데요.]
[아···. 맨체스터 시티로서는 정말 최악의 상황입니다.]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마저도 개탄을 금치 못하는 참변!
하지만 신체적 접촉 없이 두 명의 선수를 병원으로 보낸 조쉬 킹은 심드렁히 반응했을 뿐이었다.
“뭐야? 왜 이렇게 약해?”
어찌 보면 정말 잔인한 말이었다.
***
전반전의 주인공이 조쉬 킹이었다면 후반전의 주인공은 에링 홀란드였다.
전반전 중반 만에 두 명이 사라진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무차별적인 폭격 쇼를 펼치기 시작했다.
[모하메드 살라의 슛을 선방하는 클라우디오 브라보! 세컨드 볼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아니 저 선수가 언제 저기 있었죠?! 에링 홀란드가 세컨드 볼을 그대로 슈팅으로 연결합니다!]
-철썩!
깔끔하게 세컨드 볼을 왼발로 밀어 넣는 에링 홀란드! 17세가 맞나 싶을 정도로 완벽한 위치 선정이었으며 그보다 뛰어난 결정력이었다.
[골입니다! 골! 처음 보는 선수인데 골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네요.]
[한 십 년은 축구계에서 구르고 구른 노장 같은 솜씨에요. 성소하 감독의 발언이 농담이 아니었나 보네요.]
에링 홀란드의 엄청난 골잡이 본능에 프래튼 파크는 물론, 경기를 시청하는 수십만의 축구팬들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이거 물건이다.’
사람에게 ‘이거’라는 표현은 조금 도가 지나칠지도 몰랐지만 정말 완벽한 함축적인 표현이었다.
“우오오오오오!”
동료들과 함께 포효하는 저 17세의 청소년을 보라. 사람보다는 미래에서 날아온 축구 기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도 매우 험악하고 무서운 외형을 가진 기계 로봇 말이다.
17세의 선수가 그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멀티 골을 달성하다니.
향후 몇 주간은 그의 이야기로 축구계가 들썩일 거다.
그러나, 에링 홀란드는 아직 배가 고팠다. 자신감이 골수까지 치민 에링 홀란드는 그가 가진 재능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세계에 보여주기로 작심했다.
“죽인다···!”
눈에 형형한 안광을 뿜어내며 공을 잡고 전력 질주를 시작하는 에링 홀란드.
190cm에 가까운 큰 신장과 옆에서 따라붙는 야야 투레와 비슷한 덩치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속도를 보여준다.
[이, 이게 뭔가요. 저 덩치로 저렇게 빨리 달리다니요!]
최고속력 36km/h에 달하는 포츠머스 내에서 가장 빠른 발을 가진 선수였다.
여기에,
[야, 야야 투레와의 경합을 이겨냅니다! 제가 지금 현실을 보고 있는 겁니까?!]
늙었다고 해고 야야 투레는 야야 투레였다. 엄청난 기술과 엄청난 힘으로 상대를 찍어 눌러버리던 게 야야 투레라는 월드 클래스 미드필더였다.
그런 그를 힘으로까지 제압하는 에링 홀란드의 모습에 프래튼 파크는 미친 듯이 열광했다.
“미쳤다!”
“괴, 괴물이야!”
“성소하 감독은 도대체 어디서 저런 선수를···. 아니, 기계를 주어온 거야?!”
서포터들의 경악!
이에 보답하려는 듯 에링 홀란드는 멋진 마무리까지 보여준다.
-쾅!
골대에서 18M, 즉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뿜어진 강력한 왼발 슛!
“···.”
브라보 골키퍼가 반응도 하지 못할 번개 같은 슛이었으며, 에링 홀란드의 프리미어 리그 첫 번째 해트트릭이자 프로 통산 첫 번째 해트트릭을 만드는 슛이었다.
< 184화. 4위 싸움. (5)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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