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182화 (182/306)

< 182화. 4위 싸움. (3) >

스카이 스포츠.

한국에서는 ‘하늘 운동’이라는 별명으로 꽤 유명한 잉글랜드의 스포츠 방송 채널이다.

훗날에는 ‘더 선’급의 공신력으로서 단독보도가 아니면 선전지 수준 취급을 받았지만, 현재는 BBC와 동급의 공신력을 자랑하는 방송이기도 하다.

하여튼, 스카이 스포츠에서는 ‘3월’, 봄을 맞이해 프리미어 리그 중간결산을 시작했다.

패널로서는 리버풀의 전설적 인물 제이미 캐러거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 인물 게리 네빌이 얼굴을 내비쳤다.

“안녕하세요. 제이미 캐러거입니다.”

“방금 제이미가 인사를 했음을 통역해 드리며, 전 게리 네빌입니다.”

게리 네빌은 제이미 캐러거의 지독한 머지사이드 사투리(스카우스)를 놀리며 자신을 반갑게 인사를 마쳤다.

물론, 캐러거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시큰둥하게 게리 네빌의 약점을 물어뜯기 시작한다.

“이렇게 통역을 잘했으면 발렌시아를 그렇게 엉망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죠. 사실, 그 정도로 엉망이 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의 문제가 매우 컸을 테니까요.”

캐러거는 게리 네빌의 흑역사인 발렌시아 감독 시절을 제대로 비꼬았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발렌시아 CF.

‘박쥐 군단’이란 별명을 가진 스페인의 명문구단이다.

게리 네빌은 이 명문구단에 단순히 구단주의 친분만으로 ‘누누 산투’의 뒤를 이어 지휘봉을 잡았고 당연하게 팀을 멸망으로 몰아넣었다.

당연하게도 반년 만에 빠른 경질을 당한 게리 네빌. 앞으로 다시는 감독직을 하지 못할 만큼 엉망이었기에 최악의 악몽이었다.

게리 네빌이나 발렌시아 서포터 양쪽 모두에게 말이다.

그런 흑역사를 꺼내 제대로 응수하는 캐러거의 대응은 정말 무자비하고 잔인했다.

“아니, 지금 리버풀 상대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수비수가 뭐가 잘났다고!”

리버풀의 원클럽맨 캐러거의 자책골은 7골. 이를 비꼰 게리 네빌이었다.

“네, 다음 명감독.”

당연히, 발렌시아 시절을 배배 꼰 캐러거의 역습이었다.

“네, 다음 리그 우승 없는 전설.”

게리 네빌의 결정타가 나왔다. 리버풀은 20년 넘게 리그 우승이 없던 팀. 17년 동안 리버풀에서만 헌신한 캐러거 또한 리그 우승만 들지 못했고 이는 역린이었다.

“아니 이 사람이?”

“뭐, 뭐!”

난장판이 된 방송의 도입부. 이게 축구 방송인지 콩트 방송인지 구분이 어려웠지만 이 맛에 사람들이 좋아했기에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사실 현역 시절에는 지독한 경쟁자였지만, 은퇴 후에는 누구보다 절친한 그들이었기에 할 수 있는 농담들이었다.

“큼큼. 나중에 두고 봅시다. 일단 프리미어 리그 이야기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좋습니다. 그럼 먼저, 프리미어 리그 순위표를 보도록 하죠.”

적당히 분위기를 파악해 농담을 끊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둘의 호흡은 절정의 경기에 올랐다.

[1위. 첼시. 22승 2무. 3패 68점.

2위. 토트넘. 20승 5무. 2패. 65점.

3위. 맨시티. 18승 5무. 4패 59점.

4위. 리버풀. 15승 8무 4패 53점.

5위. 포츠머스. 14승 9무 4패. 51점.

6위. 아스널. 14승 7무 6패. 49점.

7위. 맨유. 12승 11무 4패. 47점.

8위. 에버튼. 11승 10무 6패. 43점.

9위. 본머스. 9승 8무 10패. 35점.]

먼저, 상위권의 순위표가 나왔다.

시즌 초반과는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느낌이다.

“첼시와 토트넘의 우승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안토니오 콘테 감독의 첼시는 정말 강력한 모습으로 선두를 질주 중입니다.”

“정말 강합니다. 13연승을 달리면서 토트넘의 추격을 맹렬히 뿌리치고 있어요.”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정말 뛰어난 감독이었다. 위기에 강한 남자랄까. 시즌 초반 갑자기 주춤거렸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며 13연승을 달려나가며 1위를 굳건히 지켰다.

쫓아가는 토트넘으로는 정말 죽을 맛이 따로 없을 만큼 맹렬한 기세!

어찌 보면 조금 우습기도 하다.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훗날 토트넘을 이끌며 3년 만에 챔피언스 리그 진출, 이정재 선수의 득점왕까지 도와주는 쾌거를 거두기 때문이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속이 타들어 갈 겁니다.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승점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요.”

“토트넘 역사상 최초의 프리미어 리그 우승의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하긴, 리버풀도 아직 없는 우승컵인데 조금 이를지도 모르죠.”

“···칭찬입니까? 욕입니까?”

“칭찬으로 해석하시면 칭찬이고 욕으로 생각하시면 욕이겠죠.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죠.”

은근슬쩍 제이미 캐러거를 놀리고 부드럽게 다음 화제로 넘어가는 게리 네빌!

그가 가진 놀리는 솜씨의 절반만큼이라도 감독으로서 능력이 있었다면 역대급 감독이 됐을지도 몰랐다.

“···후우. 혈압이 살짝 오르는군요. 일단 참아보겠습니다. 우승 경쟁도 재미있지만, 챔피언스 리그 경쟁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뒷덜미를 주물럭거리며 우승 경쟁에서 챔피언스 리그 경쟁으로 화제를 넘겨받은 제이미 캐러거.

이제는 그의 시간이었다.

“먼저, 눈여겨봐야 할 팀은, 역시. 성소하 감독이 이끄는 포츠머스일 겁니다.”

“맞습니다. ‘남해안의 비극’을 연출해낸 직후 이어진 기자회견장에서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죠.”

두 달 전, 전 세계 축구계를 뒤흔들었던 역사적인 기자회견!

어찌나 대단한 여파를 몰고 왔던지, 너튜브에 올린 소하의 기자회견 영상은 천만 뷰가 넘은 한참이 지났다.

“솔직히 그날 전, 축구계에 사라져가던 ‘낭만’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저 같은 원클럽맨도 사라지듯, 축구계에서는 낭만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거든요.”

“이번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모처럼 처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을 때의 두근거림이 떠올랐어요.”

두 프리미어 리그의 전설들은 거침없이 칭찬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비판을 위한 예열이었을 뿐. 본격적으로 해부에 들어간다.

“하지만, 낭만과 현실의 벽은 꽤 두터운 편이죠. 2017년에 들어서 포츠머스의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아요.”

“남해안의 악몽 이후로 7경기, 2승 4무 1패입니다. 20경기, 12승 5무 3패를 했던 팀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저조한 성적이죠.”

승격팀이라면 대단히 뛰어난 성적이다.

7경기 중에 단 한 번밖에 패하지 않는다니. 그저 놀라울 뿐인 성적이다.

하지만, 챔피언스 리그를 노리는 팀으로서는 썩 좋지 않았다.

순위가 증명하듯 3위였던 포츠머스는 그대로 5위까지 내려 앉아버렸다.

“포츠머스의 부침에는 어떤 이유가 있다고 보십니까? 쉬운 상대로도 계속 승리를 놓치고 있습니다.”

“답은 하나죠. ‘웰컴 투 프리미어 리그.’ 이거 하나밖에 없어요.”

“역시. 부상선수도 거의 없는 포츠머스로서는 이것 말고는 이유를 찾기 힘들죠.”

웰컴 투 프리미어 리그.

쉽게 말해, 포츠머스는 드디어 프리미어 리그의 강함을 체감하는 중이었다.

“승격팀이라고 만만히 생각하던 다른 팀들이 포츠머스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라인을 내리고 역습을 노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상대적인 강팀들은 강팀을 상대한다는 태도로 바꾸었고요.”

제이미 캐러거와 게리 네빌의 평가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전반기만 해도 승격팀을 잡아먹어 승점을 벌려던 팀들은 라인을 올리고 공격적으로 임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패배의 원흉이었다.

“포츠머스는 공격이 아주 강한 팀입니다. 그런 팀을 상대로 라인을 올리면 그게 경기가 되겠습니까?”

“절대 아니죠.”

이렇게 두들겨 맞은 프리미어 리그 팀들은 상당히 기민하게 움직였고, 라인을 내려 ‘2줄 수비’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포츠머스의 공격력은 강합니다. 어디까지나 맞불을 놨을 때는요. 아직 상대가 마음먹고 내려앉았을 때 뚫어버리는 공격력까지는 갖추지 못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몇몇 이상한 팀들을 제외하고서는 말이죠.”

“···.”

기회를 살피던 제이미 캐러거가 훅 들어오자 게리 네빌은 말을 멈추었다.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는 모습이 역공을 도모하려는 듯하지만 소재가 없다.

“왜 그러세요? 맨유는 2줄 수비를 하다가 깨지지 않았습니까?”

“···포, 포츠머스의 홈이었기 때문입니다. 올드 트래포드로 오면 우리가 이겨요.”

“아하. 그러니까, 오티에서 승격팀을 상대로 수비축구를 하겠다?”

“그, 그건···.”

항상 공격만 하다가 두들겨 맞는 처지가 되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게리 네빌.

이를 놀리는 캐러거의 리버풀은 ‘공격 축구’로서 포츠머스에게 1승 1무를 거두었기에 약점이 없었다.

“네. 여기까지 6위를 굳건히 수성하는 맨유의 변론이었습니다. 다시 포츠머스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성소하 감독의 ‘예언’이 깨지기에는 적절한 시기 아닐까요?”

“글쎄요. 4위 싸움을 하는 리버풀의 팬으로서는 예언이 깨지길 바라지만 전 긍정적으로 봅니다.”

소하의 목표는 어느새 예언이라는 별명까지 붙어버렸다.

하기야, 목표를 입에서 내뱉으면 항상 실현돼왔기에 자연스럽게 붙을 수밖에 없는 별명이다.

“6위 출신의 말이 썩 와닿지는 않지만, 이유나 한번 들어봅시다.”

“쉬운 이야기입니다. 물론, 리그 우승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르지만요.”

“···.”

제대로 한 대 얻어맞고 얼굴을 구긴 제이미 캐러거를 뒤로한 게리 네빌은 거침없이 혓바닥을 놀린다.

“비록 기세는 한풀 꺾였지만 리버풀을 제외하고선 계속 승점을 가져간다는 사실이 그 증거입니다. 지는 것보다는 비기는 게 나으니까요.”

“···.”

“게다가 앞으로 포츠머스는 강팀들과의 경기가 상당히 많이 남았습니다. 이들은 필연적으로 승점을 원하기에 공격적으로 나올 터. 포츠머스의 공격력이 통할 여지가 있다는 이야기죠. 첼시, 아스널, 맨시티, 토트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 다섯 개 팀과의 결전에서 3승만 거둔다면 충분히 해볼 만합니다.”

게리 네빌이 말한 5개의 팀은 모두 챔피언스 리그를 원하는 강팀들.

즉, 승점 6점짜리 경기에서 3번을 이긴다면 충분히 도전할만하다는 분석이었다.

“···승격팀이 그 거대괴수들을 상대로 3승이나 해야 한다고요?”

“네.”

“그게 해볼 만합니까?”

“···그건···. 뭐, 그래도 리버풀이 리그 우승을 하는 것보다는 쉬울 겁니다.”

“아니 이 사람이, 그거 알아? 당신네 무리뉴 감독의 축구는 요즘 수면장애 치료제라고 유명해.”

“나, 난 재밌어”

“방금 목소리 떨었네. 솔직히 너도 재미없잖아!”

다시금 티격태격 싸우는 프리미어 리그의 두 전설. 이렇게 시청자들의 웃음을 적당히 챙겨준 그들은 곧이어 강등권 이야기로 넘어갔다.

***

“흐음. 제법 괜찮은 안목을 가진 사람이야. 비록 감독으로서는 최악의 감독이지만.”

소하는 스카이 스포츠의 방송을 재미있게 바라보며 읊조렸다.

이에, 옆에서 감자튀김을 우적우적 씹던 밀러가 콜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불평을 토한다.

“말은 참 쉽게 하네요. 남은 11경기 중에서 5경기가 강팀인데, 거기서 3경기를 ‘승리’해야 한다니. 자기가 감독이면 하지도 못할걸요.”

“오, 그건 인정.”

소하는 밀러의 감자튀김을 뺏어 먹으며 열렬히 고개를 끄떡였다.

“하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에요. 아직 완성이 덜 된 우리 팀으로서는 2줄 수비를 뚫어내기가 버겁거든요. 즉, 강팀을 잡긴 해야죠.”

“그게 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감독님. 강팀은 괜히 강팀이 아니라고요.”

“맞아요. 그래도 우린 해야 하죠.”

눈빛을 활활 불태우며 의지를 단단히 다지는 소하. 다만, 게걸스럽게 감자튀김을 씹는지라 멋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고로 우리는 맨체스터 시티를 잡아야 하죠.”

“그래서 우리가 밤새도록 감독님 사무실에 처박힌 거 아닙니까?”

밀러는 남은 콜라를 마저 목구멍에 들이부으며 새로운 햄버거 봉지를 까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들은 이미 이틀 밤낮을 지내며 준비해 대 맨체스터 시티 전을 준비를 끝낸 직후였다.

“···또 먹어요? 그러다가 성인병으로 환갑 전에 골로 가십니다. 그러니까 반만 나눠주세요.”

“···그러니까 하나 더 주문하자고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원래 뺏어 먹는 게 더 맛있는 법이에요. 어차피 내 돈으로 산 거잖아요!”

“엄밀히 말해서는 법인카드로 긁은 거 아닙니까. 어휴. 자 드세요. 드세요.”

진절머리를 내며 햄버거를 뚝 떼주는 밀러. 그리고 이를 매우 좋아하며 받아먹는 소하.

세계 축구계를 뒤흔드는 감독과 수석코치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품위가 없었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확고한 믿음이 보인다.

“에링 홀란드. 녀석은 슬슬 이름을 알릴 때가 됐어요.”

“맞습니다. 감독님. 에링은 포츠머스의, 아니. 축구계의 전설이 될 거예요.”

기어코 아끼고 아끼던 보물단지를 열어버릴 작정을 한 소하였다.

< 182화. 4위 싸움. (3)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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