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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181화 (181/306)

< 181화. 4위 싸움. (2) >

포츠머스의 클럽하우스에 묘한 기운이 서리지 가장 걱정하는 사람들은 역시나 서포터들이었다.

“성소하 감독은 후보 선수들은 생각보다 잘 보내주는 타입이지.”

“잭 해리슨은 부주장이지만 이제는 살라의 백업 정도라서 팔아버릴지도 몰라.”

“난 성소하의 지지자지만 잭 해리슨을 판매하는 건 절대 반대야.”

“당연한 일이지. 무조건 주전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후보도 아니야. 굳이 말하자면 준 주전이겠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거야. 결사반대한다.”

그동안의 업보가 터졌다.

사실, 서포터들의 걱정은 괜한 걱정이 아니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소하는 후보로 밀려난 선수는 가격만 마음에 든다면 쉬이 보내준 전적이 화려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는 소하로서는 제법 억울했다. 애초에 잭 해리슨은 이적시킬 생각이 개미 오줌만큼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뭔 일이여. 난 팔 생각이 없는데? 잭 해리슨은 앞으로 최소 5년은 내 밑에서 개처럼 뛰어줘야 한다고···.”

잭 해리슨. 나이 26세. 마이클 반즈와 더불어 매우 위협적인 왼발을 가진 선수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치고 달려서 크로스를 올리기만 하는 그저 그런 선수였지만, 현재는 전혀 다른 선수로 진화했다.

사이드 돌파는 물론이고 중앙으로 공을 몰고 들어오는 플레이는 기본이다.

여기에 적절하게 선택지를 배합해서 상대 선수의 행동을 제안하는 움직임은 그의 장기이자 특기였다.

“이뿐만 아니야. 녀석은 풀백도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라고.”

좌우 윙포워드, 윙, 풀백까지 가능한, 그야말로 측면의 지배자였다.

그냥, 벤치에 앉혀두기만 해도 혼자서 어떠한 상황에도 대처가 가능한 선수란 이야기였다.

다른 선수가 다치면 그대로 바꿔주면 되고, 전술적 변화가 필요해도 무지성으로 뽑아 넣으면 됐다. 워낙에 가진 장점이 특출난 선수였으니까.

“이런 선수를 판다? 구하기도 힘든 선수를? 미치지 않고서야.”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물론, 소하의 포츠머스가 흔하디흔한 영세구단이라면 가격만 맞는다면 이적의 길은 언제나 열려있긴 하다.

하지만 포츠머스는 보다 높은 곳을 원하는 팀. 쉽사리 구할 수 없는 선수를 쉽게 보내줄 만한 구단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선수의 영입 및 방출은 전적으로 소하가 꽉 쥐고 있었기에 일어나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어디까지나, 선수가 남고자 한다면 말이지. 떠난다고 난리를 치면 꽤 귀찮아진다.”

부주장이 다른 팀으로 가고 싶다고 난리를 치면 썩 재미있는 상황은 아니다.

잔류를 선언한 다른 선수들이 금세 마음을 바꾸지는 않겠지만 좋던 라커룸 분위기는 그대로 요단강으로 건너갈 터.

이래저래 잭 해리슨과 정면으로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

[포츠머스에 정식으로 잭 해리슨의 이적료를 문의한 토트넘. 추정 금액은 1,500만 파운드.]

[챔피언스리그 진출 성시 500만 파운드의 보너스 옵션까지 넣었다.]

현 토트넘의 순위는 확고부동한 2위. 1위인 첼시와 우승을 두고 다투며 최고의 시즌을 보내는 중이다.

게다가 토트넘은 짠돌이로 소문난 구단. 겨울 이적시장에 2,000만 파운드나 사용한다는 뜻은 잭 해리슨을 정말 중요한 선수로 판단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역시 포체티노 감독. 제법이야. 우승에 필요한 선수를 정확히 알아봤어. 웬일이지?”

사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선수 보는 안목이 떨어진다는 평이 많았다. 유일하게 대박에 성공한 영입선수는 이정재 선수였을 뿐. 훗날 파리 생제르맹에서도 영입은 항상 망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법 날카로웠다.

소하가 알던, 축구팬이 알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답지 않게 말이다.

“좌 정재, 우 해리슨. 여기에 전방에 해리 케인과 중앙에 크리스티안 에릭센을 기용해 강력한 4중주를 만들려는 속셈이지.”

제법 재미있는 구성이다.

이정재와 잭 해리슨을 전방으로 투입, 그 밑에 공격수를 뛰어넘는 패스 능력을 갖춘 해리 케인을 둔다.

여기서 해리 케인이 굉장히 재미있는 역할을 맡을 거다.

압박에 약한 에릭센을 특유의 뛰어난 활동량과 신체 능력으로 중앙까지 내려와 도와주는 역할까지 맡을 테니까.

“요컨대, 미래와는 다르게 델리 알리가 없어서 만들지 못할 DESK 라인 대신 새로운 방법을 물색한 거겠지.”

역시 뛰어난 감독이다. 당시에는 압박에 약한 에릭센을 측면으로 보내 능력을 극대화했다면, 이제는 해리 케인이라는 걸출한 공격수를 활용해 극복하려는 움직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왼발을 잘 쓰며, 결정력이 뛰어난 선수가 필수적이지. 에릭 라멜라가 있긴 하지만 그 선수는 너무 느리고 뛰어난 스코어러도 아니야.”

그래서 잭 해리슨을 강하게 원하는 포체티노 감독이었다.

가격도 저렴하며,

이미 프리미어 리그 검증도 끝났으며,

필요한 요건을 모두 충족한, 유사시에는 다른 포지션을 맡아도 1인분 이상을 해준 ‘꿀 매물’ 그 자체인 잭 해리슨이었다.

“이 어찌 탐이 나지 않겠어. 그러니 난 더욱더 보내줄 수 없다.”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토트넘도 엄연히 경쟁자다.

비록 짧은 황금기였지만 엄밀히 우승을 노리는 팀이기에 그들의 전력 강화는 절대 허락할 수 없는 소하였다.

적은 강해지고 우리는 약해지는 거래.

돈이 문제가 아닌 상황이었다.

“근데···. 왜 그 로봇 같은 놈은 아무런 말도 없는 걸까. 정말 떠나고 싶어 하는 건가?”

아무런 말도 없는 상황이라 소하는 잭 해리슨과의 개인 면담을 앞에 두고 모처럼 굉장히 초조했다.

‘정말 떠난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윽박질러 볼까? 아니면 감정에 호소? 아니면 그냥 철저히 무시?’

이미 여러 가지 계획을 치밀하게 짜둔 소하다. 최악의 상황에는,

‘2군에 처박아버릴 수밖에 없겠지. 본보기를 보여야 해. 이참에. 하긴 요즘 내가 너무 풀어주긴 했어. 다시 공포정치가 필요한 시점이야. 내, 포츠머스의 스탈린이 누구인지 보여주마.’

표독한 눈빛을 뿜어내는 소하. 오랜 세월 같이 동고동락한 선수였지만 필요하다면 숙청이 필요했다.

감독이란 그런 자리였다.

-똑똑.

소하가 이러저러한 고민을 거듭할 때쯤. 드디어 약속시간이 되었고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1분 1초도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정확한 시간에 도착한 모습을 보아하니, 무조건 잭 해리슨이다.

“들어와라.”

조금은, 아니, 상당히 차가운 소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윽고 잭 해리슨이 특유의 뻣뻣하고 딱딱한 얼굴을 들이민다.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오늘 기온은 영상 9도, 습도는 4%입니다. 화제를 조심하십시오. 굉장히 건조합니다.”

“···.”

평소의 잭 해리슨다운 기계적인 인사였지만 소하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

‘화제를 조심하라? 그러니까 불장난을 보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기어라? 지금 나랑 해보겠다는 거지?’

살기가 휘몰아치는 소하의 표독한 눈망울! 오늘 사건이 터져도 제대로 터지는 날임이 분명해 보인다.

“감독님 앉아도 되겠습니까?”

“···그러든지 말든지.”

자연스럽게 거칠어진 소하의 태도. 그런데도 잭 해리슨은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하게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댄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그의 행동은 소하의 눈에 불꽃을 튀기게 만들기에 매우 충분했다.

‘이 새끼가? 진짜 반역을 꿈꾸는 건가? 가만 보니까 이 새끼 이거, 반골의 상이야. 역모의 상이라고. 잉글랜드의 위연은 킹이 아니라 이 자식이었구나?’

이런 소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한 잭 해리슨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감독님, 손님이 찾아오면 차를 대접하는 것이 기본적인 예절입니다.”

“···.”

“감독으로서 품위를 지켜주셔야 그에 합당한 존경심이 따라오는 법입니다.”

“···.”

평상시였다면 충신의 충언으로 들렸었거늘. 지금은 반역도당의 비열한 기만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감히 날 가르치려고 해? 그게 반기를 든 이유였구만?’

단단히 뿔이 난 소하는 거침없이 냉장고를 열어 제로 콜라 한 캔을 던져주었다.

“이거나 마셔.”

상당히 무례한 태도였지만 의외로 잭 해리슨은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오. 몇 달 전에 새로 출시한 과당이 없는 콜라로군요. 훌륭한 선택이십니다. 사실 저도 콜라를 굉장히 좋아하지만, 몸을 위해서 끊어 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이런 저를 위해 제로 콜라를 준비해 두시다니. 역시, 훌륭한 감독이십니다.”

“···그, 그러냐.”

당황하는 소하. 이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돼버렸다.

“솔직히 조금이나마 안구에 습기가 차는 느낌까지 납니다. 굉장히 바쁜 업무 속에서도 저의 개인적인 취향을 조사하시고 저를 위한 방안까지 준비해 두시다니. 만인의 본보기가 따로 없습니다.”

“···.”

어어? 뭔가 조금 이상하다.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던 소하는 점점 색안경이 옅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니···. 그랬구나. 난··· 그냥. 아니.”

잭 해리슨의 몸에서 화사하고 따스한 빛이 뿜어지는 듯한 착각에 소하는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저런 녀석에게 흑심을 품다니.

난, 정말 쓰레기일까? 라는 자기반성의 시간마저 찾아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소하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정신을 차려. 저 자식은 토트넘으로 떠나기 위해 비열한 수작을 부리는 거다. 날 구워삶아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거겠지.’

애써 독하게 마음을 먹는 소하. 훌륭한 연기력을 토대로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거칠게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러는 놈이 토트넘으로 떠나려고 단단히 작심을 한 거냐?”

이에, 잭 해리슨의 반응은 상상을 초월하는 무언가였다.

“···네?”

-툭, 덩그렁.

마시던 콜라 캔마저 손에서 떨어뜨리며 그대로 굳어버린 잭 해리슨.

마치, 블루스크린이 떠버린 컴퓨터다.

“뭐, 뭐야. 그 표정은 뭔데?”

“···.”

소하가 정확한 답변을 요구했지만, 잭 해리슨은 움직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작동 정지’상태.

이럴 땐 수리를 해줘야만 했다.

그리고 소하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수많은 사람이 즐겨 사용하는 기계 수리법의 대가였다.

-퍽!

잭 해리슨의 뒤통수에 작렬하는 매서운 손바닥 타격!

중국의 권법인 팔괘장 혹은 벽괘장이 떠오를 만큼 호쾌한 타격이었고 효과는 확실했다.

“어···. 어?!”

드디어 정신을 차린 잭 해리슨. 하지만 고장이 확실히 고쳐지지는 않았나 보다. 항상 침착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매우 당혹스러워하며 슬퍼한다.

“저, 저를 포츠머스에서 버릴 생각이셨습니까? 정녕 토트넘으로 팔아버릴 생각이셨습니까?!”

“응?”

“이, 이럴 순 없습니다. 저, 저는 아직 포츠머스에서 이루고 싶은 게 많습니다. 그래서 재계약에 서명한 것입니다. 이건 명백한 폭거입니다! 감독님!”

4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던 잭 해리슨의 격정!

덕분에 소하는 두 손을 허공에 마구 휘두르며 당황한다.

“아, 아니. 네가 가고 싶은 거 아니었어? 부, 분명 그럴 거라고···.”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어째서 토트넘으로 갑니까!”

“너, 그 뭐냐, 다른 애들처럼 남겠다는 인터뷰도 하지 않았고···.”

“그야 당연한 일입니다. 어차피 떠날 마음도 없는데 굳이 입을 여는 건 매우 합리적이지 못 한 일입니다!”

“···.”

“팀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하려는 인터뷰는 그저 에너지 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랬다. 그랬던 것이었다.

잭 해리슨에게는 당연한 행동이었을 뿐이었다. 그저, 평범하고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던 그였기에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것이었다.

“미, 미안하다. 난, 가고 싶어서 말없이 항의하는 줄···.”

“이건 저에 대한 모욕입니다. 감독님. 저를 얼마나 가벼운 남자로 보셨기에 그리 속단하신 건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미, 미안해.”

“아니요. 이참에 저에 대해서 감독님께 제대로 알려드려야 할 강한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리 앉으셔서 저의 일대기를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부들부들 떠는 소하를 앞에 두고 자신의 인생사를 태아였을 적부터 줄줄이 늘어놓는 잭 해리슨.

괜한 오해로 앙심을 품은 소하에게 내려진 천벌, 그 자체였다.

하여튼, 이래저래 이적 사가는 모조리 백지화시킨 포츠머스. 본격적인 4위 경쟁을 하기에는 최고의 분위기였다.

< 181화. 4위 싸움.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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