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화. 4위 싸움. (1) >
소하의 충격적인 발언은 순식간에 영연방을 넘어 유럽, 전 세계까지 순식간에 퍼졌다.
“왓 더 헬?”
“제정신인가?”
“흠···. 성소하의 목표라면 또 모르지.”
“성소하라고 해도 어렵지.”
“난 모르겠다.”
모처럼 사람들은 소하에 대한 찬양 일색에서 의견이 갈렸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승격팀이 감히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논하다니. 아무리 성적이 좋은 지금이라도 오만한 목표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소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최선의 목표였다.
“더는 선수를 지키기 어렵다.”
굉장히 보기 힘든 쓴웃음을 짓는 소하.
그의 말처럼 선수를 팀에 붙잡아 두고 있을 시간이 점점 사라졌다.
[레알 마드리드, 모드리치의 대체자로 델리 알리를 낙점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제 무리뉴 감독, “난 조쉬 킹에게 매우 큰 관심이 있다. 마커스 래시포드와 함께 맨유의 미래가 될 선수다.”]
[맨체스터 시티, 케빈 도슨을 뱅상 콩파니의 후계자로 지목했다. 부족한 홈 그로운마저 충족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
[도봉산, 독일의 도르트문트가 매우 큰 관심을 보이는 중.]
[잭 해리슨, 토트넘 홋스퍼의 최우선 목표가 되다.]
[마이클 반즈, AC밀란에서 접촉을 시도했다는 소문이.]
[리버풀, 칼빈 필립스와 앤디 로버트슨에 눈독을 들이다. 곧 움직일 것.]
2017년, 1월. 겨울 이적시장이 열리자마자 쏟아져 나온 포츠머스의 선수 관련 이적 기사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
어마어마한 관심이다.
주전은 물론, 후보 선수들에게까지 ‘관심’이 뜬 상태. 이 관심대로 선수를 넘겨버린다면 포츠머스에는 남아있는 선수가 없을 정도였다.
“내 예상조차 뛰어넘은 엄청난 성적은 결국 사달을 만들어냈다.”
사실 이번 시즌 소하의 목표는 6~7위였다.
즉, 적당히 유로파 리그 정도만 진출한다면 200% 성공한 시즌이었다는 이야기.
이 정도면 적당히 선수들의 사기도 올렸으며 팀의 명성도 적당히 오르는지라 제법 괜찮았다.
하지만 전반기 리그 3위라는, 4위와는 6점이나 차이가 나는 호성적은 너무 과했다.
이미 선수들은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챔피언스리그를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으며, 놀라운 활약 덕분에 다른 구단의 관심을 모조리 끌어버렸다.
“당연한 일이지. 딱 봐도 재능 넘치고 어린 애들이 가장 저렴한 시기이니까.”
현재 포츠머스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선수는 조쉬 킹과 델리 알리였다.
조쉬 킹, 21세, 몸값 3,500만 파운드.
델리 알리, 20세, 몸값 3,000만 파운드.
잉글랜드 국적 프리미엄 때문에 갓 승격한 팀의 선수들치고는 상당히 비싸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21세, 20세 선수들은 비록 하부리그지만 프로리그를 벌써 100경기나 달성한 베테랑이다.
거기다가 프리미어 리그에 올라오자마자 그간의 활약과 별반 다르지 않은 활약을 연이어가는 슈퍼 신인들이었다.
즉, 이대로 1~2년만 지나면 3,000만 파운드는 매우 저렴하다고 보일 정도로 가격이 껑충 뛰어오르리란 미래는 불 보듯 뻔했다.
일단 잉글랜드 국적의 선수이니 최소 5~6,000만 파운드부터 협상이 시작할 터.
만일 조쉬 킹이 그 사이에 득점왕이라도 한다면 1억 파운드를 부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요컨대, 지금이 가장 싼, 거의 떨이 판매행사와 다를 바 없는 가격이었다.
“게다가 우리 애들이 제법 충성심이 높다지만 에이전트 새끼들이 자꾸 바람을 넣으면 또 달라질지도 모르지.”
에이전트, 소하도 고용했긴 했지만, 감독으로서는 매우 눈엣가시인 존재였다.
어떻게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대 구단과 접촉을 마다하지 않는 족속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수들에게 마냥 나쁜 것만도 아니야. 축구선수의 삶은 짧고 인생은 길다.”
감독과는 다르게 선수들의 선수 생활은 짧다. 그동안 평생 쓸 돈을 벌거나, 은퇴 후에도 걱정이 없는 미래를 위해 명성을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큰 구단으로 적을 옮기는 것이 최고이자 제일 나은 방법.
“즉, 챔피언스리그 진출 말고는 답이 없는 상황이야. 너무 잘나가서 독으로 돌아온 아이러니한 상황이지.”
일단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다면 두 가지의 큰 이득이 있었다.
첫째는 막대한 중계료. 이 돈으로 이번 시즌에 재계약을 하지 못한 선수들을 처리한다면 팀이 와해할 가능성이 적어진다.
둘째는, 진출 그 자체. 사실 첫 번째 이득이 없어도 진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선수들의 이탈을 잡아둘 수 있다.
그만큼 챔피언스리그라는 존재는 선수들이 가장 염원하는 리그였으니까.
“후우. 하여튼 잘해도 못해도 어렵다니까. 이 썩을 놈의 구단은.”
깊은 한숨을 내쉬는 소하. 영세구단은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남들보다 훨씬 더 빨리 움직여야만 하는 현실이 아쉽기만 했다.
***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선수들은 소하의 과한 목표에 사기가 꺾이기는커녕 전의에 불타올랐다는 점이다.
“오오. 역시 이래서 내가 감독님을 존경하는 거라고요! 사나이면 당연히 챔피언스리그를 노려야죠.”
“가즈아···!”
“아주 훌륭합니다. 별들의 리그를 승격하자마자 노리시다니. 역시, 제가 인정한 휴먼이십니다.”
“우리는 뭐든 해볼 수 있습니다.”
대단한 열기다.
그래서일까. 20라운드, 사우스햄튼과의 두 번째 사우스 코스트 더비에서 역사에 남을 대승을 거둔다.
-삑! 삑! 삑!
[포츠머스의 역사적인 승리입니다! 5-0, 사우스햄튼의 홈구장, 세인트 메리즈 스타디움에서 대참사가 일어납니다.]
[아아. 이건 비극이에요. 이건 정말 비극입니다···!]
홈에서 5-0 참패.
이는 사우스햄튼 서포터들에게는 지나칠 정도의 악몽이었다.
그것도 홈에서 당한 큰 패배라 눈물을 터뜨리는 서포터들마저 속출했다.
“흐···. 흑흑.”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지난 시즌까지 작은 돌멩이 취급도 하지 않았던 팀에게 이렇게 지는 게 말이 되냐고···!”
“못 참겠다, 클로드 퓌엘 아웃!”
사우스햄튼의 서포터들은 슬픔을 넘어 매우 분노하며 길길이 날뛰었다.
거리에서는 감독인 클로드 퓌엘의 사진을 불태우는 퍼포먼스까지 일으킬 정도!
“···음. 아름다워.”
이를 보는 소하는 그저 물개박수를 치며 행복해했음은 물론이었다.
솔직히 쉬이 예상되는 결과였다.
“지난번 대결에서는 버질 반 다이크의 존재가 우리의 걸림돌이었지. 하지만, 그는 시즌아웃을 당했어. 그럼 당연히 우리가 박살을 내지.”
버질 반 다이크의 시즌아웃!
팀에서 대체할 수 없는 핵심 중의 핵심이, 그것도 수비 쪽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는데 포츠머스의 공세를 버틸 리가 없었다.
버질 반 다이크의 부재.
포츠머스의 강렬한 의지.
이 둘이 만나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만들어낸 ‘남부 해안의 비극’이었다.
그리고 결국 사우스햄튼의 프런트는 칼을 빼 들 수밖에 없었다.
[사우스햄튼, 클로트 퓌엘 감독을 전격적으로 경질!]
[당분간은 수석코치가 임시감독의 자리에서 지휘봉을 잡을 예정.]
클로드 퓌엘 감독의 모가지가 날아갔다.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팀의 성적과 경기력이었는데, ‘남부 해안의 비극’까지 벌어지자 인내심이 끝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으흠. 다음 생에는 사우스햄튼의 감독만은 하지 마시길. 그럼 일단 1킬이군. 후후후후.”
감독 킬 카운트를 시작한 소하. 프리미어 리그의 퍼스트 블러드는 클로드 퓌엘, 사우스햄튼 ‘전’ 감독이었다.
그리고 호쾌한 후반기의 시작을 알린 포츠머스에는 겹경사가 펼쳐졌다.
이는 바로, 선수들이 먼저 나서 거침없이 솟아오르던 이적설에 대한 종지부를 찍어버리는 매우 훈훈한 일이었다.
“전 포츠머스에서 은퇴할 겁니다. 다시 4부리그에 처박히더라도 제가 선수로서 마지막 숨을 내쉬는 장소는 프래튼 파크일 겁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그것도 펩 과르디올라의 러브콜을 무참히 거절한 케빈 도슨. 어찌나 팀과 소하에 대한 사랑이 절절했던지 이어지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서포터들의 강한 흥분을 유발할 정도였다.
“대단한 충성심입니다. 그렇다 해도 펩 과르디올라 감독과 맨체스터 시티는 비교도 불가능할 명성과 부, 그리고 커리어를 선물해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전 기름 묻은 돈으로 쌓아 올린 팀보다는 서포터들의 눈물과 열정, 프런트들과 스태프들의 땀으로 쌓아 올린 포츠머스가 더욱 뛰어난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소하 감독님은 절대로 펩 과르디올라와 비교해 뒤떨어지지 않는 분이라고 굳건히 믿고 있습니다.”
이 어찌 피가 몰리지 않을 수 있으리.
팀에 대한, 감독에 대한, 서포터들에 대한 사랑이 절절히 묻어나와 서포터들은 들고 일어났다.
“동상. 동상 세워라.”
“브라이언, 그 대머리 새끼를 잘라버리고 남은 월급으로 동상을 세워야 한다.”
“이미 당신은 포츠머스의 전설입니다.”
이미 포츠머스의 명예에 전당에 자리를 예약한 케빈 도슨이었다.
그리고 케빈 도슨 만이 이적설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이 아니었다.
“음? 레알 마드리드요? 저 스페인어 못해요. 아직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기보다는 포츠머스에 남아 실력을 키우고 싶어요. 이적은 최고의 선수가 되고 나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최고의 선수가 되기에 포츠머스가 적합한 구단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레알 마드리드와 이적설이 솔솔 피워 나오던 델리 알리. 그는 기자의 반문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한다.
“당연한 거 아닌가요? MK돈스에서 절 낳았다면 지금까지 절 키워준 건 포츠머스와 성소하 감독님이죠. 여기만큼 최고의 선수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해줄 구단은 저에게 없어요.”
충성심과 야심 사이에 걸쳐진 델리 알리다운 답변! 그가 가진 특유의 건방진 인터뷰였지만 팬들의 마음을 축축하게 적시기에는 매우 충분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요? 주제 무리뉴 감독이요? 전 빨간 유니폼을 싫어하는데요. 그리고 주제 무리뉴 감독은 공격 전술에 재능이 없으신 분 아닌가요? 전 공격축구를 하고 싶어요.”
조쉬 킹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이적설을 전면으로 나서서 분쇄했으며,
“AC밀란이요? 거기 내륙이잖아요. 전 바다낚시가 좋답니다.”
마이클 반즈는 이적설에 대해서 빈 챔질만큼도 관심을 주지 않았고,
“리버풀이요? 지금 저희보다 순위가 낮지 않던가요?”
“그럴걸? 저흰 우리보다 약한 팀으로 갈 생각이 없는데요.”
칼빈 필립스와 앤디 로버트슨은 천진난만하게 리버풀 서포터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사실이었으니까.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으니까.
참고로 리버풀은 5위였고 포츠머스는 3위였다.
“역시 내 새끼들이야. 검은 머리 짐승은 믿으면 안 된다지만 얘네는 검은 머리가 아니거든. 외국인이니까!”
소하는 모처럼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적적히 느꼈다. 자식새끼 애지중지 키워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다지만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지 않은가.
아마도 소하가 조금 더 감수성이 넘치는 사람이었다면 찔끔 눈물을 흘리고도 남을 선수들의 태도였다.
하지만, 언제나 사건이라는 불유쾌한 손님은 잘되어가고 있다는 방심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법.
유일하게 이적설에 반박하지 않았던 그 선수가 기어코 일을 터뜨렸고, 정말 의외의 선수였다.
[잭 해리슨, 토트넘 홋스퍼로 가는 이적설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는다.]
[포체티노 감독, “잭 해리슨을 제2의 가레스 베일로 기용할 예정.”]
[토트넘, 지난 2년 동안 잭 해리슨을 자세히 관찰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잭 해리슨, 거듭되는 동료들의 잔류 선언에도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는 중.]
“···.”
팀의 부주장이자 소하의 포츠머스 1기 맴버였던 잭 해리슨이 그 주인공이었고 소하 또한 놀라 자지러질만한 이름이었다.
“아니···. 왜···?”
경기 수도 모하메드 살라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잘 조절해 주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그는 여름 이적시장에서 고민 없이 재계약을 맺어줬던 선수.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 180화. 4위 싸움.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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