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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179화 (179/306)

< 179화. 우리의 목표는 생존입니다. (10) >

“어?!”

“이게 무슨···?!”

“이런, 이런.”

포츠머스와 스토크 시티의 경기.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물론, 집에서 혹은 선술집에서 경기를 바라보던 축구팬들은 눈을 거칠게 비볐다.

“오늘 포츠머스 선수들이 이상한데?”

“밥을 며칠 굶었나?”

“힘이 없어 보여.”

“스토크가 너무 거친 거 아니야?”

“맞아. 그럴 확률이 높지.”

믿기지 않았다. 그간 봐왔던 포츠머스는 어린 팀임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고 강인한 팀이었거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삑!

9번째로 울리는 반칙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

스토크 시티의 선수들은 심판에게 달려가 항의해보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아! 또 반칙입니다. 스토크 시티! 너무 거친데요?]

[포츠머스 선수들이 이렇게 쓰러지는 모습은 처음입니다. 스토크 시티, 좀 더 자중해야 합니다!]

그렇다.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추풍낙엽처럼 마구 경기장 바닥으로 쓰러졌다.

스토크 시티의 선수들이 슬쩍, 살짝 몸을 가져다 대기만 해도 픽, 하고 꼬꾸라졌다.

“헤이! 헤이! 이번 건 반칙 아니라고! 그냥 가벼운 접촉이 있었을 뿐이야!”

“아니, 쟤네 다이버라니까! 우린 죄 없어!”

“똑바로 보라고 똑바로!”

스토크 시티의 선수들은 오만상을 찌푸린 채 거칠게 항의했다. 이건 아니었다. 솔직히 평상시에 비하면 훨씬 얌전하게 플레이하는 중이다.

그런데 반칙은 훨씬 많이 나온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음···. 너무 격한 항의군. 진정용 주사기가 필요하겠어.”

스토크 시티 선수들의 거친 항의에 마음이 상한 주심. 카드 주머니를 뒤적이며 햇살 같은 샛노란 카드를 위풍당당하게 꺼내 든다.

[옐로카드가 나왔습니다. 라이언 쇼크로스 선수, 거친 항의에 대한 대가를 받았군요.]

[주심의 마음이 상했어요. 선을 넘어버렸습니다!]

이것으로 전반 30분 만에 3장의 옐로카드를 받은 스토크 시티.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그 거칠다고 소문난 프리미어 리그의 심판이 맞나 의심스럽다.

어지간한 몸싸움은 호루라기는커녕 눈길도 주지 않던 게 이들 아니던가. 오늘은 다른 리그의 심판이 대신 보러온 것만 같다.

“쯧쯧. 그러니까 평소의 행실이 중요한 법이지. 양치기 소년도 모르나? 저 머릿속까지 근육으로 가득 차버린 게 눈에 보이는구먼.”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심판과 스토크 시티 선수들의 충돌을 바라보던 소하는 얼굴에 진득한 썩은 미소를 만들었다.

당연히 이번 상황은 그가 만든 것이었기에 더욱더 재밌어한다.

“거친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가장 거친 스토크 시티와 잉글랜드를 통틀어서 가장 ‘깔끔’하고 ‘신사’적인 팀의 대결이라고. 심판이 누구 편을 들겠어?”

쉬운 이야기다.

프리미어 리그보다 훨씬 거친 잉글랜드의 하부리그에서도 스포츠맨십 넘치던 포츠머스.

수많은 장기 부상자를 만들어내며 거친 플레이를 자랑으로 여기는 스토크 시티.

누가 선이고 악인지 명확하다.

그리고 암만 혼돈이 가득한 사바세계라도 정의의 편이 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이치.

게다가 포츠머스는 잘 넘어지지 않는 팀이었다. 태클을 받아 내는 과정 중 부상을 피하기 위해서만 넘어지는, 오뚝이 같은 모습을 수년간 보여줬다.

“난 다이버를 싫어한다. 그러니 너희들도 하지 말아라. 물론, 이득이 될 때가 있겠지. 하지만 그건 진정한 실력이 아니야.”

소하는 다이버를 편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잡 기술, 혹은 사문난적이라고까지 평가할 정도!

“실력도 없는 놈들이 잡 기술부터 배우면 이미 썩은 잎이다. 갱생할 수 없어.”

덕분에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태클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넘어질 때 빼고는 전혀 넘어지지 않았다.

특유의 승부욕까지 합쳐져 계속 앞으로 달리기만 했을 뿐.

이 때문에 현 사달이 나버렸다.

“넘어지지 않던 애들이 넘어지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보기보다 훨씬 강한 충격이었구나, 라고 생각하겠죠. 그럼 바로 호루라기를 입에 가져가는 거예요.”

“···잔인하시네요.”

밀러는 소하의 사악한 눈빛을 바라보며 그의 곁에서 한 발 떨어졌다.

어찌 이리도 야비한지. 같은 편이지만 정말 두려운 인간이었다.

“그나저나, 애들도 연기···를 잘해줘서 다행입니다. 감독님.”

“제법 소질이 있네요.”

소하는 음흉하게 웃었다.

그냥 넘어지기만 해서는 효과가 반감된다. 기왕 침대 축구를 시작했으니 확실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마침, 좋은 본보기가 경기장 위에서 펼쳐졌다.

“으아아아!”

우렁찬 비명.

마치, 다섯 쌍둥이를 자연분만하는 산모의 비명이 이럴까 싶다.

“의료진! 의료진!”

“젠장! 비명이 장난 아닌데?”

“다리가 부러진 건가?!”

아니다. 다리가 부러지기는커녕 가벼운 타박상도 없었다.

그냥 싱그러운 잔디 위를 한껏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아주 훌륭한 연기야.”

“오스카 상급이네요.”

소하와 밀러가 연기력에 감탄해서 박수를 보낸 훌륭한 연기자는 놀랍게도 ‘조쉬 킹.’

돌고래보다 낮은 지능일 거라는 평가를 받는 그가 이런 훌륭한 연기력을 펼치다니. 굉장히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단순무식, 과격한 그였기에 이런 쪽에서는 제대로 통했다.

[그 넘어지지 않던 조쉬 킹이 넘어져서 고통스러워하네요! 스토크 시티! 너무 거칠었습니다!]

[이건 옐로카드에요. 저 조쉬 킹이 비명을 지르고 있어요!]

넘어지는 것을 수치로 여기던 야만 전사 같은 그였기에 훌륭한 연기가 완성되었다.

여기에 더해서 수많은 조연까지 열연을 펼친다.

“으윽. 다, 다리가···.”

어깨끼리 슬쩍 부딪쳤을 뿐인데 다리를 부여잡고 공중에서 2회전을 하는 델리 알리. 대단한 스턴트맨의 자질이 보인다.

“어억. 나 넘어져 버릴 거 같아···!”

국어책을 읽는 발연기 그 자체지만 아픈 척하는 표정 연기로 좌중을 압도하는 칼빈 필립스. 종이에 손을 베여도 저런 표정은 나오지 않을 거다.

“크읍···.”

조쉬 킹과는 다르게 절제된, 내면 연기로 모두의 심금을 울리는 케빈 도슨.

과연, 명배우 나탈리 도슨의 남편다운 훌륭한 연기력이었다.

“···애들이 즐기네요. 감독님.”

“Bet365 스타디움의 잔디 맛을 제대로 느끼는 모습이 자랑스럽네요.”

“정말 지독한 축구입니다···. 제가 본 최고의 ‘침대 축구’에요···.”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요.”

소하는 밀러의 칭찬 아닌 칭찬을 감사히 받으며 한 손 거든다.

“이봐요! 심판님! 우리 애들 죽겠어요! 더, 더 자제 좀 시켜달라고! 이게 축구야, 격투기야?!”

버럭!

정말로 화가 난듯한 엄청난 분노 연기가 작렬했다.

그랬다. 포츠머스의 연기 일인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소하였다.

[성소하 감독이 불같이 화를 냅니다. 당연히 저럴 만하죠. 이러다가 잘나가던 포츠머스에 먹구름이 낄지도 몰라요!]

[스토크 시티, 동업자 정신을 떠올려야 합니다. 이건, 축구의 명예에 먹칠하는 격입니다!]

껌뻑 속아버린 장내 해설과 중계가 스토크 시티의 홈구장임을 망각하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었지만 의외로 홈 팬들에게까지 통했다.

“솔직히 이건 좀 아니지···.”

“물론 난 스토크 시티가 제일 좋지만, 포츠머스도 좋아한다고···. 이렇게 부숴버리는 건 좀.”

“이건 ‘남자의 팀’이 아니야. 그냥 단순히 폭력에 미친 팀이라고. 사이코패스보고 남자라고 하진 않잖아?”

스토크 시티의 서포터들마저도 포츠머스의 훌륭한 연기에 껌뻑 속아버린 사태였다.

물론, 스토크 시티의 선수들로서는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아니···. 나 오늘 진짜 별로 심하게 하지 않고 있는데···.”

“밀려고 마음먹은 순간 이미 넘어져 있다고. 그것도 존나 아픈 표정을 지으면서.”

“역겨운 침대 축구라고. 근데, 아무도 몰라! 씨발!”

“엿 같아서 진짜 거칠게 하고 싶어도 벌써 비명을 지르고 있어.”

“개자식들···.”

더군다나 경기 스코어는 1-0이다. 초반 행운의 프리킥골을 득점한 포츠머스였기에 스토크 시티로서는 더욱 애가 탔다.

점점 흘러가는 시간.

계속 쌓여가는 노란색 카드.

끊이지 않는 포츠머스의 비명.

경기를 계속해나갈 마음마저 꺾여버린다. 아니, 그동안 거칠었던 플레이에 대한 자기반성까지 나올 정도다.

“···그동안의 업보를 받는 건가···?!”

“억울해서 못 살겠다. 그동안 우리에게 당했던 팀들도 같은 마음이려나.”

“살살해야겠어. 다음부터는···.”

결국 경기의 승패보다는 지난날의 잘못에 대한 참회를 우선시하게 된 스토크 시티.

경기는 후반 막바지에 포츠머스가 PK를 얻어냈고, 케빈 도슨이 침착하게 마무리 지으며 경기를 2-0으로 끝냈다.

그야말로 프리미어 리그에 전설적으로 남을 개판 오 분 전의 경기였다.

***

비열한 승리를 거둔 소하와 포츠머스.

13라운드까지 3위로 독주하며 파란을 만들어내고 있을 때쯤, 또다시 강팀들과의 연전에 부닥쳤다.

1위, 콩테의 첼시.

6위, 무리뉴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5위, 벵거의 아스널.

감독이면 감독, 팀의 명성이면 명성.

도저히 포츠머스와는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적이다.

3연패만 당하지 않으면 선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상대들.

하지만 포츠머스는 여기서 또다시 기적을 써 내렸다.

[포츠머스, 첼시의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다.]

친정팀을 만난 페트르 체흐의 각성과 리그 최상급 수비수라고 평가받기 시작한 케빈 도슨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포츠머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안방으로 불러들여 박살을 내다.]

[성소하 감독, 2년 전 웸블리에서의 복수를 완성!]

주제 무리뉴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2-1로 잡아낸 쾌거까지 이루어낸다.

2년 전, 리그컵 결승전에서의 복수를 아주 제대로 달성한 포츠머스는 그렇게 자신감 있게 아스널의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아르센 벵거와 성소하 감독의 맞대결. 아쉽게도 승부를 가르지 못하다.]

[정신없는 공방전 끝에 3-3 무승부를 거둔 양 팀. 재미있는 경기였다.]

한 번의 무승부만 거두어도 좋았거늘.

3연전을 1승 2무로 마무리하며 2위까지 껑충 뛰어올랐다.

이제 전반기의 남은 경기는 17라운드, 왓퍼드, 홈경기와 18라운드 선덜랜드 원정 경기. 19라운드 크리스털 팰리스 원정 경기.

강등권 경쟁을 하는 약팀만 남은 상황이었다. 즉, 쉽사리 3승을 챙겨갈지도 모르는 현 실태였다.

심지어 버리기로 작심한 리그컵은 선수들의 분투로 준결승전까지 진출한 상태.

전반기 내내 맨체스터 시티, 본머스에게 패배했을 뿐. 엄청난 기세였다.

이제 막 승격한 팀이 고작 2패라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성적이었고 보고도 믿기지 않을 엄청난 퍼포먼스였다.

그리고. 기어코 왓포드와 선덜랜드의 경기에서도 1승 1무를 달성하며 전반기 2패라는 위업에 한 발짝 다가간 포츠머스.

18경기 11승 5무 2패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전반기 마지막 상대인 크리스털 팰리스와의 접전에 들어갔다.

-삑! 삑! 삑!

[경기가 종료됩니다. 포츠머스가 아쉽게도 크리스털 팰리스에게 1-2 패배를 당했습니다.]

[자하 선수를 도저히 억제하지 못했습니다. 매튜 다이스, 모처럼 엄청난 시험을 당했습니다.]

프리미어 리그 윙어의 관문, ‘첫판왕’으로 불리는 윌프리드 자하의 폭발적인 드리블을 막지 못하고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하지만 그런데도 포츠머스의 전반기 성적은 19경기 11승 5무 3패.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성적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감독님. 이제는 말씀해주셔야 할 때입니다. 이미 강등권에서 벗어나기 위한 평균 승점을 뛰어넘으셨습니다!”

전반기에만 승점 38점. 아무리 낮게 잡아도 이미 강등권하고는 연이 없는 승점이었다.

지금부터 남은 후반기를 전패해도 강등은 당하지 않는 성적이었으니까.

“음···. 그러네요.”

소하마저도 이제는 잡아떼지 못했다.

이미 38점을 달성한 상태다. 여기서 생존 싸움을 하겠다? 이것은 그저 기만에 불과했다.

“좋습니다. 이제 순순히 말하도록 하죠.”

꿀꺽.

드디어 밝혀지는 소하의 진짜 목표!

이에 기자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잔뜩 기대했고 소하는 그들의 기대를 완벽히 이루어준다.

“우리는 다음 시즌에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할 겁니다.”

승격팀의 첫 시즌 챔피언스 리그 진출 선언! 역사를 뒤져봐도 전무후무한 일이었기에 유럽, 아니, 세계의 축구계는 발칵 뒤집혔다.

< 179화. 우리의 목표는 생존입니다. (10)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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