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화. 우리의 목표는 생존입니다. (7) >
소하마저 예측하지 못했던 포츠머스의 안필드 원정 선제골! 이는 ‘전술적 숙련도’ 차이에서 오는 틈이었다.
포츠머스와 리버풀 모두 전방 압박을 토대로 볼의 점유보다는 앞으로 빠르게 보내는 걸 우선시하는 팀.
조금 다르기는 했지만 결국 큰 갈래는 똑같았다. 이런 똑같은 전술끼리의 팀이 맞붙었을 땐, 누가 더 전술을 잘 알고 있냐가 승패를 갈랐다.
물론, 게겐 프레싱의 권위자인 클롭 감독이 소하보다 전술에 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수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이미 4년 차에 접어든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이제 1년도 되지 않은 리버풀의 선수단보다 ‘훨씬’ 더 전술적인 이해도가 높았다.
즉, 상대가 무엇을 할지 자기 자신만큼 잘 아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엠레 잔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부처님 손바닥 속 손행자인 격.
“뭐, 너무 뻔하고~”
천재적인 센스의 델리 알리가 틈을 놓칠 리가 없었다.
게다가, 마리오 발로텔리의 ‘분노’도 이변을 만들어낸 한 가지 요인이었다.
“···날 버린 리버풀을 부순다···. 오직 이 생각뿐이었다.”
지난 시즌, 포츠머스로 임대 와서 상당한 성장과 심적 변화를 겪은 마리오 발로텔리.
속으로는 내심,
‘리버풀이 날 붙잡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도 명문인데···.’
이런 뇌내망상에 빠져있었다.
포츠머스와 같은 꿈을 꾸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선수로서 다시 주목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포츠머스보다는 ‘명문’인 리버풀에서의 활약이 더욱 효과가 좋고 빠른 법이었다.
하지만 이런 속마음은 말 그대로 ‘행복 회로’였다. 새로이 리버풀의 보스가 된 위르겐 클롭 감독은 발로텔리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지.’
물론, 익히 마리오 발로텔리가 개심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허나, 위르겐 클롭 감독은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감독이다.
‘내 감독 인생을 통틀어 악동이 훌륭한 선수로 변한 적은 없었다.’
위르겐 감독은 굉장히 참을성이 좋고 덕이 많은 감독이다.
선수가 아무리 못해도 몇 년씩은 쉽게 기다려주는 대표적인 감독이기도 하다.
그런 그조차도 마리오 발로텔리에게는 약간의 가능성도 없다고 여겼기에, 쉽게 포츠머스로 놓아준 것이었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리오 발로텔리가 누구던가!
‘안토니오 카사노’ 이후로 최악의 악동으로 명성이 자자한 선수 아니던가.
새로운 팀을 만들어야 하는 그로서는 도박 수를 던질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마리오 발로텔리는 정말로 변했고, 복수심조차 축구 실력으로 승화시키는 선수가 돼버렸다.
“흥! 후회하라고!”
선제골을 집어넣고 마리오 발로텔리가 달려간 곳은 리버풀의 서포터즈 응원석.
[아! 마리오 발로텔리가 포츠머스 서포터가 아닌, 리버풀의 서포터 응원석으로 달려가 포효합니다!]
[이, 이건 도발입니다. 이건 명백한 도발이에요!]
장내 아나운서와 해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리버풀 서포터들에게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야이! 개새끼야아아!”
“놔! 놔! 저 새끼 후려버릴 거야.”
“오늘 뒤져보자. 깜둥이 새끼야!”
손에 쥔 모든 것을 집어 던지며 발작, 아니. 발광하는 리버풀의 서포터들.
안전요원이 막지 않았다면 대참사가 났을 거다.
“···.”
“···.”
당연하게도 이를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바라보던 소하를 비롯한 포츠머스의 인물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나마 빨리 정신을 차린 소하가 눈을 부릅뜨며 거칠게 소리친다.
“야! 야! 저 새끼 저거, 빨리 끌어내! 저, 저, 저 미친놈!”
크게 화를 내는 소하!
선제골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아데바요르’의 ‘역주행’을 자기 팀 선수가 할 줄 정말 몰랐다.
“제가 제대로 본 게 맞습니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끔뻑이는 밀러가 넋이 나간 소리로 물었다.
불행하게도 매우 현실이었다.
“네.”
“허허, 참. 이걸 이렇게 라이브로 보게 된다니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소하와 밀러. 역사에 길이 남을 사고 또다시 쳐버린 마리오 발로텔리는 정말 못 말리는 종자였다.
“그런데요···.”
“네?”
슬쩍 주위를 살피는 소하. 카메라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자 작게 밀러의 귀에 속삭인다.
“재밌긴 하네요. 크크. 지금 저 웃음 나오는 거 간신히 참고 있어요.”
“···.”
밀러는 속으로, 소하나 발로텔리나 그놈이 그놈이라는 생각을 억제할 수 없었다.
***
안필드는 후끈 달아올랐다.
어처구니없이 헌납한 실점.
마리오 발로텔리의 도발.
이 두 가지가 합쳐지자 그야말로 용광로가 따로 없다.
후끈후끈.
경기장 위로 뜨거운 열기가 쫙 내리 퍼지자 경기는 한층 뜨거워졌다.
역전 골이 필요한 리버풀에게는 딱 좋은 환경이다.
[빠른 실점을 허용한 리버풀이 총공격에 나섭니다!]
[화가 단단히 났어요. 거칠게 포츠머스를 몰아붙이네요.]
한 대 얻어맞은 리버풀의 분노는 무서웠다. 마른 들판에 불이 붙으면 이런 모습일까. 자칫 하다가는 포츠머스가 거대한 화염에 삼켜질지도 모를 만큼 리버풀의 공세는 대단했다.
하지만, 포츠머스는 쉽사리 화염 속에 집어 삼켜지지 않았다. 늘 어느 때나 포츠머스의 앞바다 같은 남자가 든든히 자리를 지켜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사나이의 이름은 마이클 반즈.
포츠머스의 낚시왕이었다.
“자자. 천천히 가자고. 천천히. 물고기는 성질 급한 사람한테 잡혀주지 않는 법이라고.”
느긋하게 팔을 들어 올리며 경기의 속도를 확 죽여버리는 마이클 반즈.
자기도 모르게 리버풀의 화염에 휩싸인 포츠머스의 선수들에게 시원한 바닷물을 끼얹었다.
“아···. 저, 정신 차리자.”
“이런. 나도 모르게 급해졌어.”
“반즈의 말처럼 천천히 가자. 앞서고 있는 쪽은 우리야.”
그야말로, 리버풀로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리버풀이야말로 뜨거운 화염 속에서 가장 강한 팀 아니던가.
이를 방해하는 마이클 반즈의 존재는 정말 까다로웠다.
“허헛. 감독님의 용병술이 빛을 발하네요. 사실 저는 반즈의 선발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후후. 이게 감독 아니겠어요?”
밀러가 감탄하자 소하는 의기양양하게 미소를 지었다.
계획대로였다. 전술적인 이해도가 높더라도 결국 선수의 ‘수준’은 리버풀이 앞선다.
‘즉, 맞불을 놓으면 우리가 패배할 확률이 높다는 거지.’
뛰어난 팀은 분위기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꿔 큰 이득은 얻는다.
그렇기에 분위기를 넘겨주지 않기 위한 마이클 반즈의 선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덕분에 포츠머스는 전반전을 무사히 무실점으로 마감. 한 골 앞선 상태로 후반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
후반전 또한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화가 잔뜩 나서 주먹을 마구 휘두르는 리버풀과 맞받아 주는 척하면서 뒷공간을 노리는 포츠머스.
흡사, 톰과 제리 같은 모양이다.
먼저 놀리고 튀는 제리같은 포츠머스.
제대로 갚아주기 위해서 길길이 날뛰는 톰 같은 리버풀.
쫓고 쫓기는 대추격전에 시간은 하염없이 잘만 흘러가 어느덧 후반 75분까지 도달했다.
“···.”
고오오오.
안필드가 맞나 싶을 정도로 경기장은 조용해졌다.
리버풀마저 포츠머스의 제물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안필드를 급습했다.
가뜩이나 잘 풀리지 않는 와중에 홈 서포터들마저 조용해지자 리버풀 선수들의 힘이 빠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절차다.
어떻게든 뚫어내도, 결국 케빈 도슨이란 포츠머스의 전설적인 수비수가 막아냈고, 그 끝에는 ‘전설’ 페트르 체흐가 골문을 사수했으니까.
이렇게 포츠머스의 역사적인 승리가 또 하나 탄생하는 것인가? 모두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고개를 쳐들었을 때.
자신을 ‘노말 원’이라고 칭한 특별한 감독은 마법을 부렸다.
아예 꺼져버린 홈 팬들의 불씨를, 감독 혼자만의 힘으로 부활시켰다.
“목소리를 내십시오! 힘을 선수들에게 줘야 할 때입니다!”
팔을 치켜올리며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는 위르겐 클롭 감독. 독일의 거인이 거침없이 몸을 놀리자 효과는 대단했다.
꺼져버린 불꽃이 새로운 생명을 얻고 더욱 찬란하게 불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너흰 할 수 있다!”
“가자! 노래를 부르자!”
“When you walk, through a storm”
“Hold your head up high~”
전설적인 응원가, ‘You'll Never Walk Alone’의 노랫소리가 다시금 안필드를 가득 메웠다.
[폭풍 속을 홀로 걸을 때는,
고개를 높이 들어요.
그리고 어둠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그 폭풍의 끝에는,
황금빛 하늘과 종달새의 달콤한 은빛 노래가 있을 거예요.
바람을 헤치고 걸어요.
빗속을 헤치고 걸어요.
비록 당신의 꿈이 상처받고 흔들릴지라도.
걷고, 또 걸어요.
당신의 마음속 희망과 함께.
그대는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
걷고, 또 걸어요.
당신의 마음속 희망과 함께.
그대는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
안필드를 가득 메운 5만여 명이 한 가지를 바라며 부르는 응원가. 이것은 꺼져가던 리버풀 선수들의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 줬다.
아니, 이런 응원가를 한 몸에 받고 어찌 힘을 내지 않을 수가 있으리. 리버풀 선수라면, 축구 선수라면. 없던 힘도 절로 날 터.
꺼져가던 리버풀 선수들의 눈빛에 활력이 돈다. 그리고 위르겐 클롭 감독은 부활한 분위기에 맞춰 선수교체까지 감행한다.
[다시 뜨거워진 안필드입니다! 이에 맞춰 호베르트 피르미누와 대니얼 스터리지를 바꿔주는 위르겐 클롭 감독!]
[엠레 잔이 빠지고 바이날둠이 들어옵니다.]
‘한방’을 가진 대니얼 스터리지와 엠레 잔보다 ‘전진성’이 뛰어난 바이날둠을 투입한 위르겐 클롭 감독!
이에 소하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위기감을 느낀다.
“역시. 미친 감독이야. 감독 혼자만의 힘으로 경기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었어. 우리가 다잡은 경기였는데!”
정말 대단한 감독이었다. 위르겐 클롭이란 감독은. 따라잡았다 싶었지만,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한 소하는 재빨리 교체를 지시했다.
“도봉산과 칼빈 필립스, 잭 해리슨을 준비시켜 주세요.”
“넷. 알겠습니다. 감독님.”
소하의 명령에 재빨리 몸을 놀리는 밀러 수석코치. 소하의 의도는 확실했다.
도봉산으로 전방에 압박을 주어 상대의 공격을 일차적으로 막고,
윙백도 곧잘 보는 잭 해리슨의 수비력을 측면에 녹여내며,
중원에 칼빈 필립스의 수비력을 더하려는 방책이었다.
“잘했다. 얘들아.”
교체되어 벤치로 돌아오는 마리오 발로텔리, 델리 알리, 모하메드 살라를 차례대로 안아준 소하.
이제 남은 시간은 10분. 선수들이 짧지만 긴, 이 시간을 잘 버텨내 주길 바라는 그였다.
***
-삑! 삑! 삑!
안필드에 경기 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문난 잔칫상에 먹거리 없다지만, 이번 경기는 옛 성인들의 말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점수는 1-1.
하지만 6라운드 최고의 경기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양 팀 다 공격적으로 임하는지라 엄청난 속도의 경기는 중립 팬들에게는 최고의 경기를 선물했다.
물론, 포츠머스와 리버풀의 서포터들에게는 서로 아쉬운 경기였다.
“망할. 쿠티뉴의 환상적인 골만 없었어도 우리가 이긴 건데!”
“다 잡은 경기를 놓쳐버렸어. 아쉽다.”
“손에 반쯤 들어왔다가 나갔어.”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은 무척 아쉬워했다. 필리페 쿠티뉴가 ‘쿠티뉴 존’에서 시도한 환상적인 중거리 감아차기가 골로 연결되지 않았다면.
추가시간에 조쉬 킹 답지 않은 현란한 돌파 후 이어진 슛이 골대를 맞지 않았다면.
승리는 포츠머스의 것이었을 테니까.
물론, 아쉬운 마음은 리버풀 서포터들도 한가득했다.
“시간이 5분만 더 있었다면.”
“마지막 공격 기회에 심판이 경기 종료를 선언하지 않았다면, 또 몰랐다.”
“행운의 골만 먹히지 않았다면 경기의 내용은 완전히 달랐을 텐데.”
아쉽게 무승부를 거둔 리버풀 서포터들도 할 말이 아주 많았다.
하지만 중립 팬들이나 전문가들의 견해에서는 1-1 무승부란 양 팀에게 상당히 합리적인 스코어였다.
서로 멋진 경기를 펼친 그들에게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모습은 오히려 불합리해 보일 뿐이었다.
다만 이로써 확실해진 한 가지는 있었다. 너무나도 분명히 말이다.
“포츠머스는 강하다.”
포츠머스는 강했다.
이것만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리퍼풀의 서포터들조차 말이다.
기어코 ‘원정팀의 무덤’ 안필드에서도 무승부를 거두며 자신들의 힘을 입증한 포츠머스.
지옥의 3연전의 시작을 좋게 끊은 그들이었다.
< 176화. 우리의 목표는 생존입니다. (7) > 끝
ⓒ 블라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