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화. 우리의 목표는 생존입니다. (5) >
소하와의 면담 이후, 케빈 도슨은 정상 컨디션을 찾았다. 아니, 정상 그 이상의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프리미어 리그 3라운드, 레스터 시티와의 홈경기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치며 자신의 이름을 강렬하게 남기게 됐다.
먼저, 16-17시즌의 레스터 시티는 상당히 강한 팀이었다. 지난 시즌 아쉽게 2위를 달성한 돌풍과 동화의 주인공은 어디로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GK: 캐스퍼 슈마이켈.
LB: 크리스티안 푹스.
CB: 로베르트 후트.
CB: 웨스 모건.
RB: 대니 심슨.
LM: 마크 올브라이턴.
CM: 대니 드링크워터.
CM: 윌프레드 은디디.
RM: 리야드 마레즈.
ST: 제이미 바디.
ST: 오카자키 신지.]
4-4-2 기반으로 강력한 수비력과 ‘N년좌’ 제이미 바디와 리그 최상급 드리블러 리야드 마레즈를 중심으로 날카로운 역습 능력을 갖춘 팀이다.
물론, 지난 시즌에 비해서는 상당히 약체화된 상태이긴 하다.
핵심이자 월드 클래스인 ‘은골로 캉테’를 첼시로 보내줬기 때문.
은골로 캉테.
수비 능력만으로는 역대급 반열에 들었고 키가 10㎝만 컸다면 프랑스의 역대 최고도 노려봄직 하다고 평가를 받은 선수.
특유의 귀여운 외모와는 정반대로 경기장을 휩쓸어 버리는 그의 존재는 레스터 시티에게는 정말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 특별한 선수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던 레스터의 약체화는 불 보듯 뻔한 일.
그래도 상당한 금액을 이적시장에 쏟아부었고 그의 빈자리를 어느 정도 채우는 것에 성공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런 레스터 시티를 맞이하는 포츠머스. 매서운 역습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공격 전술을 채택했고 자연스럽게 여러 번의 위기를 맞이했다.
[레스터 시티의 역습은 아직도 날카로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이미 바디의 움직임은 정말 뛰어납니다. 이거, 이거. 포츠머스가 시즌 첫 패배를 당할 확률이 높아 보이는데요?]
수없이 포츠머스의 골문을 위협하는 레스터 시티의 날카로운 역습!
하지만 포츠머스는 무너지지 않았다.
케빈 도슨이란 북해의 빙벽이 든든하게 후방을 사수했기 때문이다.
“저를 넘기 전까지는 골을 만들어 낼 수 없을 겁니다.”
원래도 진중한 편이었지만 지금은 무언가를 뛰어넘은 분위기다.
결연한 의지가 넘실거리는 그는 기어코 제이미 바디라는 리그 최고의 공격수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었다.
[대단합니다! 케빈 도슨! 원래도 잘하는 선수였지만 오늘은 특별하네요.]
[저 정도 선수였나요? 위치선정이 예술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소하의 질문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찾아낸 케빈 도슨이었다.
결국, 어지간해서는 수비수는 공격수보다 느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위치선정’을 잘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리고 위치선정이란 동료들과 상대의 위치를 넓게 보는 시야와 예측력 같은 축구 지능이 가장 요구되는 능력!
즉, 축구 지능이 남달리 우월한 케빈 도슨에게는 끝없이 발전시킬 무기였다.
결국 엄청난 질식 수비로 레스터 시티의 날카로운 창끝을 번번이 구부러뜨린 케빈 도슨의 활약에 1-0 신승을 거두게 된 포츠머스였다.
당연하게도 MOM은 케빈 도슨이었다.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실력의 급상승은 어떤 이유인가요?”
MOM에 주어지는 인터뷰 시간. 기자의 질문에 케빈 도슨은 주저함 없이 바로 소하의 이름을 꺼냈다.
“모두 성소하 감독님 덕분입니다. 제가 프리미어 리그에서 MOM 인터뷰에 응할 수 있던 원동력은 오롯이 감독님께 존재합니다.”
“···대단한 존경심이군요. 그래도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지 않았을까요? 4부리그에 머물던 선수가 1부리그에서 MOM을 받는 건 그리 흔한 일이 아니거든요.”
기자의 반문에도 불구하고 케빈 도슨은 조금도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아니요. 무작정 노력만 해서는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저 시간을 버리고 몸을 학대하는 일에 불과합니다. 끊임없는 훌륭한 지도와 편달. 이것이 전부입니다. 노력이란, 프로로서는 숨을 쉬듯 당연한 일이라 특별한 부분이 아닙니다.”
“···아, 멋진 말이군요.”
소하의 충신다운 멋진 인터뷰였다.
주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 그런 의미에서 케빈 도슨의 인터뷰는 줬던 소하에게 최고의 리턴이었다.
***
포츠머스의 개막 3연승!
제법 해볼 만한 상대들이었기에 이룬 결과였지만 기록에는 영원히 남았다.
[승격팀 최초의 개막 3연승.]
갓 승격한 팀이 프리미어 리그에서 3연승을 거두는 일을 종종 벌어진다.
하지만 개막전을 포함한 3연승은 포츠머스가 최초였다.
별거 아닌 기록 같지만 결국 남는 건 기록이지 않던가. 어떤 기록이든 포츠머스의 이름을 남긴다면 그것이 역사였다.
“게다가, 그리 의미 없는 기록도 아니죠. 승격팀이지만 승격팀의 수준을 넘어섰다는 증거니까요.”
“···참 잘도 가져다 붙이십니다.”
“그게 사실이니까요. 흥.”
밀러의 딴지를 가볍게 콧바람으로 넘겨버리는 소하. 매우 즐거워 보인다.
그나저나 대체 무엇을 하고있는 걸까.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콧바람을 흥얼거리며 사무실 책상에 광을 내고 있다.
샥샥샥.
어찌나 정성스럽게 닦는지. 흡사, 골룸이 절대 반지를 되찾은 듯한 모습이다.
“···.”
이를 어처구니없이 지켜보던 밀러는 넌지시 의도를 묻는다.
“···큼큼. 그나저나 선수들이 잘해주고 성적이 좋다 보니 감독님께서도 신이 나시는 모양이군요?”
물론, 이 질문을 던지는 밀러는 이미 어깨춤을 추는 중이다. 어찌나 신이 나던지. 평소에는 복도를 걷다 보면 절로 문워크가 나올 지경까지 왔다.
“아니요. 그것 때문이 아닌데요. 당연한 일이죠. 뭘 그 정도로.”
“네? 그럼···. 왜?”
“···.”
밀러가 어벙하게 되묻자 행복하던 소하의 눈빛이 순식간에 스산한 한기를 내뿜는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거예요?”
“···.”
“하, 정말 실망스럽네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밀러 아저씨가 모르고 계신다니. 안 되겠어. 구인 광고 내야지. 새로운 수석코치가 필요한 시점이긴 했어.”
“···그, 그러지 마십시오! 죄송합니다!”
“좀 잘생긴 사람이면 좋겠어. 구단 내의 수질을 높이는 효과까지 가져올 테니까. 배 나온 중년 아저씨는 절대 사절이야.”
“···. 크, 크흠. 봐주십시오.”
밀러는 그만, 소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석고대죄하고 말았다.
“흥.”
보통 이쯤 리액션을 보여주면 풀리던 소하다. 하지만 여전히 기분이 매우 좋지 않다.
“정말 실망이에요. 어떻게 제가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감독상’을 수상하게 됐다는 걸 모를 수 있죠?”
“···!!”
밀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쩐지 아침부터 클럽하우스가 요란하긴 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프런트 직원에게 물어보려곤 했지만, 하필, 장 트러블이 급습했다.
모처럼 쾌변한지라 오늘은 재수가 좋다고 생각했거늘. 역으로 최고로 재수 없는 날이 될 줄 정말 몰랐다.
“그거 아시나요? 21세기에 들어와 포츠머스 감독으로서 제가 처음으로 ‘이달의 감독상’을 받는다는 사실을요?”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승격팀 감독으로서는 8월에 수여하는 ‘이달의 감독상’을 제가 21세기에 최초로 받는 사실을요?”
“···용서해주십시오!”
“그거 아시나요? ‘이달의 감독상’을 받는 사상 최초의 아시아인이란 사실을요?”
“···.”
밀러는 그만 정신을 놓고 혼절하고만 싶었다. 하지만 쾌변 덕분인지 엄청난 언어폭력에도 불구하고 정신은 더욱 또렷해져만 간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그러니, 그러니 제발 그 정도만 하십시오. 감독니임.”
거의 울기 직전까지 몰린 밀러. 그제야 소하는 표정을 푼다.
“흥. 아직 ‘그거 아시나요?’ 시리즈가 제법 남았지만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죠.”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어요.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이달의 감독상이라니! 포츠머스의 자랑이에요!”
“···뭐, 조금 늦었지만, 그 찬사 달게 받아 갈게요. 고마워요. 밀러 아저씨.”
입에 발린 소리였다면 소하는 대번에 알아채고 더욱 삐졌을 거다.
즉, 밀러는 진심이었다는 이야기다.
밀러는 진심으로 소하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언어폭력을 두들겨 맞으면서도 말이다.
“여기에 딱 올려둘 거예요. 어때요? 어울릴 거 같지 않나요?”
소하는 싱글벙글 웃으며 번쩍번쩍 빛이 나는 책상을 가리켰다.
“그동안 좀 허전했는데, 딱 맞습니다. 그나저나···. 문제가 있는데 말이죠.”
“네? 무슨 문제요?”
문제가 있다는 말에 슬쩍 인상을 찌푸리는 소하. 며칠 전에도 케빈 도슨의 멘탈 붕괴라는 이변을 맞이했기에 그리 달가운 소식이 아니다.
“큰 문제입니다. 정말로요. 책상이 너무 좁지 않습니까? 이럴 순 없는 법입니다.”
“네?”
“앞으로도 밥 먹듯이 받을 상이지 않습니까! 금방 자리가 부족해질 겁니다. 이참에 구단 공금으로 번듯한 진열대를 하나 구매해야 합니다!”
“아아! 내가 미처 공명의 환생을 알아보지 못했구나!”
개탄을 금치 못하는 소하와 손바닥을 싹싹 비비는 밀러. 이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암군과 간신, 그 자체였다.
***
이달의 감독상을 받은 소하!
그들의 놀라운 기세는 A매치 휴식기 후, 9월에도 이어졌다.
프리미어 리그 4라운드.
같은 승격팀인 울버햄프턴을 상대로 3-2 펠레 스코어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어진 리그컵마저도 승리로 장식해버렸다.
“음. 이게 아닌데.”
리그컵은 깔끔하게 버리려고 했거늘. 모처럼 밀러를 감독으로 내세웠건만 그냥 박살을 내버렸다.
이 결과는 싫기도 하며 좋기도 했다.
후보진과 선발진의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는 증거지 않은가. 이는 앞으로의 여정에 확실한 보험이 될 거다.
이래저래 프리미어 리그 승격 이후 모든 경기에서 이겨버린 소하와 포츠머스 FC.
역사적인 5연승을 눈앞에 두고 프리미어 리그 5라운드 상대로 본머스를 만나게 되었다.
“음. 약팀이군.”
그저 어처구니없는 소하의 감상이다.
게다가 곰곰이 따져보면 포츠머스의 일정은 승격팀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일정이다.
사우스햄튼, 번리, 레스터 시티, 울버햄프턴, 본머스.
모두 중하위권 팀들이다. 레스터 시티와 사우스햄튼을 제외한다면 모두 6점짜리 경기가 연달아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승격팀이 생존 싸움을 한다면 시즌 시작하자마자 목숨을 걸고 싸우는 꼴이었다.
어차피 윗동네 팀은 무승부만 거두어도 승리였으니까.
하지만 포츠머스가, 소하가 바라보는 관점은 완전히 강팀이지 않은가.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미친놈 취급했을 거다.
이제 기어 올라온 녀석들이 주제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태도였지만 세간의 인식 또한 소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럴만한 자격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증명한 포츠머스에게 돌을 던질 사람은 없었다.
“그럼 5연승을 향해 가볼까.”
에디 하우 감독을 향해 두려움 없이 도전장을 던진 소하! 눈망울에는 숫자 5를 띄우며 필사의 일전을 펼쳤다.
-삑! 삑! 삑!
[경기 종료! 본머스가 홈에서 1-0 승리를 달성합니다!]
[후반전 추가시간에 터진 ‘칼럼 윌슨’의 마수걸이 골에 포츠머스의 기세가 꺾입니다.]
칼럼 윌슨.
모 축구 매니저 게임 시리즈의 악당이자, 실제로도 상당히 훌륭한 선수였다.
특기는 라인 브레이킹과 빠른 속도, 그리고 결정력.
전형적인 골잡이 스타일의 선수에게 포츠머스는 된통 당해버렸다.
“···씹럼 씹슨. 이 개자식이 나의 꿈을···!”
소하는 몸을 부르르 떨며 치를 떨었다.
솔직히 억울했다. 경기내용은 완전히 포츠머스의 승리였기 때문이다.
[슈팅 수 23:2]
[점유율 72:28]
이 간단한 수치만 봐도 포츠머스가 얼마나 밀어붙였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경기가 끝나기 10초 전에 골을 헌납하고 얻은 패배.
치를 떨 수밖에 없는 경기내용이었다.
“이건···. 이건···. 으아아아아!”
발작이 도진 소하와 이를 서둘러 말리는 밀러와 코치진.
프리미어 리그 초반부의 순위표를 난장판으로 만든 팀임을 증명하려고 작심한 듯 정말 난장판이었다.
< 174화. 우리의 목표는 생존입니다. (5)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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