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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173화 (173/306)

< 173화. 우리의 목표는 생존입니다. (4) >

다음 날 언론은 대대적으로 포츠머스의 승리를 머리기사로 내걸었다.

[포츠머스의 위대한 복귀, 사우스 코스트 더비에서 3-0 대승을 거두다.]

[승격팀의 돌풍은 이제 시작된다!]

[갓 승격한 팀에게 엄청난 체급을 목격했다.]

[첫 번째 제물 사우스햄튼. 이번 시즌의 전망에 짙은 먹구름이 꼈다.]

[성소하 감독의 프리미어 리그 첫 승! 최고의 숙적을 상대로 멋진 승리를 쟁취했다.]

[프리미어 리그 승률 100%, 성소하 감독. 그는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가?]

완전히 난리가 났다.

사우스햄튼이라면 프리미어 리그는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팀 아니던가.

그런 팀을 승격하자마자 박살을 내버리는 모습은 사람들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큼큼. 좀 부끄러운걸. 게다가 프리미어 리그 승률 100%는 좀 너무하네. 이제 한 경기 했잖아···.”

헛기침을 연신 내뱉으며 조금 부끄러워하는 소하. 암만 뻔뻔한 그라도 이 정도로 낯뜨거운 기사를 버틸 항마력은 없었다.

그리고 이렇듯 언론의 엄청난 흥분은 포츠머스 선수들에게는 자신감으로 돌아왔다.

자신감.

조금 과하면 자만으로 난리가 났지만, 선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는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무기!

‘우리는···. 통한다.’

‘그간의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었어.’

‘지옥 훈련은 이날을 위해서였지.’

가슴 벅찬 자신감을 듬뿍 얻은 포츠머스의 선수들. 그들은 동시에 같은 마음을 품었다.

“우린 할 수 있다.”

프리미어 리그에서의 생존은 물론이고 그 이상을 내달릴 무한한 자신감은 그대로 다음 경기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프리미어 리그 2라운드.

번리FC와의 원정경기.

2년 전, 친선경기에서 아쉽게도 패배했던 그 팀이 상대였고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삑! 삑! 삑!

[포츠머스가 번리 FC를 3-1로 제압하며 쾌속의 2연승을 달성합니다!]

[원정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찍어누른 경기였어요!]

프리미어 리그의 첫 원정경기였음에도 포츠머스는 그저 승리했다.

속수무책으로 패배를 당한 번리의 션 다이치 감독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아니, 2년 전에 그 팀이 맞는 건가? 이건···. 차원이 달라졌는데?’

2년 전에는 제법 상대할만한 팀이었거늘. 이 팀은 갓 승격한 팀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한 상태이지 않은가.

그의 번리도 프리미어 리그에서 제법 강해졌다고 자부했지만, 포츠머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후···. 폭풍이 일어나겠군. 이번 시즌의 생존은 우리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놀라움과 함께 걱정이 물밀 듯이 몰려오는 션 다이치 감독. 승격팀이 이렇게 잘한다면 강등권 경쟁이 번리에게 다가올 거란 사실은 너무나 뻔했다.

그들의 팀은 강등권은 아니더라도 하위권임은 분명했으니까.

‘어려운 시즌이겠어.’

션 다이치 감독의 한숨은 깊어만 갔다.

***

쾌속의 2연승.

이를 달성한 포츠머스 FC는 상대가 누구라도 붙어볼 만한 패기가 넘실거렸다.

그와 대비해 썩 안색이 좋지 않은 선수 한 명이 소하의 감독 사무실 앞에 섰다.

이번에도 조쉬 킹일까?

혹은 아직 멘탈이 덜 여문 어린 유망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 며칠간 수심이 잔뜩 어린 안색을 유지 중인 선수는 다름 아닌, 팀의 주장 케빈 도슨이었다.

케빈 도슨.

팀의 믿음직한 주장이자 포츠머스 수비의 핵심 선수!

그런 그가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상당히 큰일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똑똑.

케빈 도슨은 잠시 문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힘없이 문을 두들겼다.

그러자 곧바로 소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들어오세요.”

잘나가는 팀의 성적 덕분에 무척이나 밝은 목소리다.

-덜컥.

소하의 밝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잔뜩 움츠린 채 모습을 드러내는 케빈 도슨. 소하가 보아도 영 상태가 좋지 않은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에게 다가간다.

“야, 왜 그래? 나탈리한테 바가지라도 긁혔어? 밤일이 마음에 안 든 데?”

“···그, 그런 게 아닙니다.”

얼굴을 잔뜩 붉히는 케빈 도슨. 순간 괜히 찾아왔나 싶기도 했지만, 묵묵히 자리에 앉는다.

“···어, 그래 일단 앉아야지.”

사적으로도 굉장히 가까운 사이라 농담을 던져봤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자 살짝 당황하는 소하. 그답지 않게 목소리를 떨며 서둘러 차를 한잔 대접한다.

“자, 이거 마시고 기운부터 차리자.”

“아, 네. 감사합니다.”

후루룩. 케빈 도슨은 소하가 건넨 차를 거침없이 들이켰다. 그러자 뱃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진다.

“이, 이게 뭡니까?”

“특제 조리법이다. 기운이 나게 하는 데에는 최고지. 몸에 좋은 건 다 넣었으니까 효과가 좋을 거다.”

소하는 굳이 재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차의 재료는 삼지구엽초, 토사자, 황기, 오가피, 오미자 등등. 정력에 좋다는 약초들로 한가득했으니까.

“굉장히 뛰어난 조리법이겠군요. 몸에서 힘이 펄펄 나는 것만 같습니다.”

차 한잔에 상당히 기운을 차린 케빈 도슨. 진심을 담아 소하가 건넨 차를 칭찬했다.

“큼큼. 그야 당연하지. 남들은 사족을 써도 못 먹는 걸 모조리 섞었으···.”

“네?”

“아니야. 하여튼 이제 좀 대화를 나눌 상태가 됐구나? 그래, 말해 봐라. 이 감독님은 언제나 귀를 열고 있단다.”

조쉬 킹이 봤다면 눈물을 흩뿌렸을 만큼 다른 태도다.

킹이 사무실을 찾을 땐 그저 지옥의 법관 앞에서 선 격이었거늘.

이거 완전 천국에서 어느 파라다이스로 가고 싶냐고 묻는 천사가 따로 없다.

“이렇게나 신경 써 주시다니. 정말 말로 형용하지 못할 만큼 감사합니다.”

어찌나 다정다감하던지. 덩치 큰 케빈 도슨이 살짝 눈가에 습기까지 만들어낼 수준이다.

“녀석. 뭘 이런 거로 고마워해. 감독으로서, 스승으로서, 형으로서 당연한 일이지.”

소하 또한 진심을 담아 입을 놀렸다.

케빈 도슨은 소하에게 굉장히 특별한 선수였으니까.

지금이야 세간에서 알아주는 감독일지는 몰라도 처음에는 애송이 그 자체 아니었던가.

비선출의 풋내기 감독이었던 시절에도 케빈 도슨은 언제나 소하를 따랐던 충직한 선수였다.

심지어 회귀 전에도 말이다.

이런 케빈 도슨은 소하가 썩은 미소를 보여주지 않는 몇 없는 선수 중 하나였다.

“그럼 용기를 내어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전···. 벽을 느꼈습니다.”

“···응? 뭐라고?”

소하는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워 다시 한번 되물었다.

“벽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뭔 벽을 말하는 거야?”

“버질 반 다이크. 이 선수와 상대한 이후 깨달았습니다. 전 결코 그를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을요.”

“···.”

소하는 할 말을 잃었다.

그 프로의식 높고 승부욕이 강하던 케빈 도슨의 마음이 완전히 꺾여버리다니.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다.

‘이거 큰일인데.’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사건에 소하는 무척 곤혹스러워한다.

그리고 상당한 위기기도 했다.

주장인 케빈 도슨이 흔들린다면 팀의 심장이 망가지는 꼴과 진배없는 격.

요컨대 모처럼 좋은 출발을 시작했는데 갑작스러운 심정지 상태가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런 소하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케빈 도슨은 고개를 떨군 채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경기 이후 버질 반 다이크라는 선수가 뛰는 모든 경기를 분석했습니다.”

“···노력했구나.”

“정말 대단한 선수였습니다. 단점이 없는 완전무결한 수비수가 있다면 오로지 그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지.”

“그리고 또 한 가지를 눈치챘습니다. 바로, 감독님께서 절 그와 같은 수비수로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하셨단 사실을 말입니다. 제 생각이 틀렸습니까?”

“···.”

소하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일단 사실이긴 하다. 소하는 케빈 도슨을 왼발잡이 버질 반 다이크로 만들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으니까. 장장 4년에 걸쳐서 말이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한다면 케빈 도슨의 마음은 어떻게 되는 거란 말인가? 언제나 그랬듯 미래는 알아도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이 상황까지 온 이상 거짓보다는 진실이 유익하다는 사실은 소하는 4년간의 경험으로 깨달았다.

“맞다. 난 너를 그 선수 같은 선수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실패하셨군요.”

케빈 도슨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이건 절대 자신을 과소평가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빠른 다리’는 케빈 도슨이 절대 얻을 수 없었으니까.

결국 케빈 도슨은 버질 반 다이크의 하위 호환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뼈를 깎고, 피나는 노력을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언제나 든든하던 케빈 도슨의 마음을 부러뜨렸다.

‘존경하는 감독님의 기대를 영원히 달성하지 못할 무능력자.’

여기에 더해서 최고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부정적인 마음을 더더욱 증폭시켰다.

‘동료들은 최고가 될 재능을 가졌어. 그러니 난 동료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주장이다. 감독님도 언젠간 날 대신할 선수를 데려오겠지.’

최고의 팀이 목표인 포츠머스에는 최고의 선수가 필요하다. 이 말은 즉, 자신은 자격이 없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소하는 미간을 좁히며 그 어느 때보다 단호히 부정한다.

“도슨아. 개소리 그만해라. 아가리에 본드 처바르기 전에.”

“···!!”

눈을 부릅뜨며 깜짝 놀라는 케빈 도슨.

소하의 부정도 예상치 못했지만, 소하에게 처음으로 거친 말을 들은지라 적잖이 당황했다.

“선수의 실패는 네가 아닌 내가 정하는 거다. 감독이 정하는 거란 말이야. 알아들었냐? 케빈 도슨?”

“하, 하지만···.”

“하지만 같은 소리 집어치워!”

크게 분노하며 거칠게 소리치는 소하. 정녕 조금 전의 천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이글이글 타오른다.

“그래, 네 생각대로 넌 그 미친 수비수가 될 수 없을 거야. 그런 선수가 되기 위해선 신이 내린 불합리한 재능이 필요한 법이니까.”

무슨 일이든 다 비슷하겠지만 예체능이야말로 재능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

“그 덩치로 엄청난 속도를 가진 재능. 이건 절대로 노력으로 따라잡지 못해. 타고난 축복을 어떻게 하겠냐?”

“···맞습니다. 그래서···.”

“그래서가 아니지. 그런데도 난 너를 저런 선수로 키우려고 했다. 넌 그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겠지만.”

“···!!”

소하의 목소리에 케빈 도슨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냉정히 말해, 케빈 도슨은 빠르지 않은 선수다. 더는 빨라질 수도 없는 선수였고.

그렇다고 느린 선수는 절대 아니었다.

전직 미드필더 출신답게 속도가 약점이 아니다.

이 점은 현대축구의 수비수에게 굉장히 좋은 조건이었고 소하가 그를 주전 수비수로 낙인을 찍은 이유였다.

그리고 소하의 눈에는 케빈 도슨에게 버질 반 다이크가 가지지 못한 재능이 보였다.

“네 속도는 녀석과 비교해 달리는 건 맞다. 그렇다고 해도 약점은 아니지. 거북이는 아니잖아?”

“···.”

“또한 왼발잡이란 재능은 버질 반 다이크가 가지지 못한 훌륭한 재능이야. 더군다나 넌 그보다 볼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다.”

과거였다면 어림도 없지만, 4년 차에 접어든 소하의 조련 아래 케빈 도슨은 대단한 성장을 이뤘다.

이미 수비수 레벨을 아득히 초월한 패스 기술은 소하의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은 지 오래다.

이런 엄청난 성장은 처음에는 소하도 의외였지만 곧 이해했다.

‘나 또한 성장했으니까.’

선수들이 4년 차에 접어들었다면 소하 또한 마찬가지였다.

회귀 전에도 밑천 없이 포츠머스를 챔피언십 리그까지 올렸던 대단한 재능을 가졌던 소하다.

그런 그가 새로운 인생을 얻었는데, 제자리에 가만히 머무를 리가 없지 않은가?

더욱 성장한 소하와 그를 존경하며 최고의 노력을 지속한 케빈 도슨은 상상한 것 이상을 누릴 자격이 갖춰진 사람들이었다.

“물론, 아직은 조금 밀릴지도 모른다. 네 생각처럼 영원히 앞설 수 없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내가 본 케빈 도슨이란 선수는 그와 동등한 수준까지 올라가 줄 선수라고 굳게 믿었다.”

“···.”

“그런데, 그런 믿음을 보내준 선수가 이리도 나약한 소리를 지껄이다니. 솔직히 난 이게 꿈이길 바래. 그것도 지독한 악몽으로 말이야.”

“···크읍.”

소하가 무척 실망했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자 케빈 도슨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찌나 세게 깨물었던지 입술이 찢어져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케빈 도슨은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소하의 일침에 너무나도 나약했던 자신에게 후회와 분노가 치밀어올랐기 때문이다.

“후우.”

그런 케빈 도슨을 묵묵히 바라보던 소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그만의 방식으로 다독여준다.

“아직 잘 모르겠다면 한 가지 방법을 줄게. 네가 정말 느리다고 생각한다면 달리지 않으면 될 뿐이다.”

“···그렇군요.”

소하의 말을 대번에 알아들은 케빈 도슨. 이에, 소하는 속으로 환하게 웃는다.

‘그래. 그거야. 이 자식아. 넌 누구보다 영리한 남자라는 사실을 너만 모르고 있어.’

소하가 던져주는 문제들은 너무나도 쉽게 파악하는 저 축구 지능!

저것이야말로 케빈 도슨의 진짜 재능이었고 소하가 무조건 그를 믿는 이유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감독님.”

번뜩이는 눈빛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케빈 도슨. 매우 정중하게 소하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넨 뒤 천천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역시. 내 말이 맞는다니까? 감독은 유치원 교사로 전직해도 곧 잘할 거야.”

툴툴거리며 잠시 중단했던 업무를 재게 하는 소하. 역시 감독이란 만만치 않은 직업임을 또 한 번 절절히 느낀 그였다.

< 173화. 우리의 목표는 생존입니다. (4)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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