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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172화 (172/306)

< 172화. 우리의 목표는 생존입니다. (3) >

사우스 코스트 더비는 양 팀의 전술 색깔과 똑같은 흐름으로 흘러갔다.

공격적인 전술과 홈 경기라는 이점을 살려 맹렬히 공격하는 포츠머스.

수비적인 전술과 원정 경기라는 불리함을 인지하고 역습을 노리는 사우스햄튼.

이런 경기 양상에서 당연히 신이 난 건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이었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더 밀어붙여! 부숴버려!”

“가즈아아아!”

포츠머스가 공을 잡을 때마다 더욱 커지는 전투적인 함성! 목소리 크기로 사우스햄튼의 선수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면 골백번은 더 제압했을 거다.

“우리도 질 수 없다. 소수정예가 무엇인지 멍청한 포츠머스 녀석들에게 제대로 보여주자!”

“힘내라! 힘내라!”

“너흰 할 수 있다!”

포츠머스 서포터들의 엄청난 함성에도 사우스햄튼의 서포터들은 지지 않았다.

압도적인 숫자 차이임에도 이따금 그들의 외침이 들릴 정도!

하지만 목소리가 가장 큰 건 이들이 아니었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목청의 주인공은 바로, 소하.

눈에 핏발을 세우며 미친 듯이 발광한다.

“야이, 자식들아! 빨리 골 안 넣고 뭐 하는 거야! 저 봐, 저 봐! 저기에 쫙 찔러줬으면 오픈 찬스였잖아! 어휴! 눈 감고 축구하냐?!”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보통 소하는 평상시에 모습과는 다르게 경기장에서 상당히 진중한 편이었으니까.

웃음기 싹 빼고 냉철하게 흐름을 파악하며 필요할 때만 혈압을 올리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그가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길길이 날뛰는 건 참으로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지, 진정하세요. 감독님.”

“이 손 놓지 못해요?!”

밀러가 다급히 말려보지만 한 톨도 소용이 없다. 강렬한 살기를 흩뿌리는지라 절로 한걸음 뒤로 물러서 버렸다.

그래도 이런 소하의 투지가 선수들에게 전달되었는지 때마침 좋은 공격 전개가 시작된다.

“야. 간다!”

데클란 라이스와 함께 훌륭한 압박 수비로 사우스햄튼의 역습을 막아낸 칼빈 필립스.

상당히 높은 위치에서 공을 재탈취한 덕분에 상대가 진형을 재정비하기 전에 골을 노려볼 기회였다.

-툭.

칼빈 필립스는 쇄도 중인 팀의 10번, 델리 알리를 향해 중거리 패스를 찔러 넣어줬다.

상당히 예리한 패스다.

이미 패스에 관해서는 상당한 경지에 올라, ‘정보’까지 담겨있다.

패스의 방향은 델리 알리의 3m 앞.

구질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부드럽게 휘는 킥이다.

즉 이 패스에 담긴 정보는 3m 앞까지 전진하라는 명령과 함께 네 오른쪽에는 상대 수비가 쇄도 중이니 조심하는 경고였다.

패스의 달인들만 가능한 놀라운 패스를 선보인 칼빈 필립스!

그리고 이를 받는 델리 알리 또한 별반 다를 게 없는 실력이기에 대번에 정보를 알아차렸다.

“나이스 패스. 정보 고맙! 제법 쓸만한데? 친구야.”

씨익. 웃으며 절친한 친구를 칭찬하는 델리 알리.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서는 정보의 해석과 그를 기반으로 한 다음 행동을 계산한다.

‘3m 앞까지 더 전진하라는 건 상대가 전보다 뒤로 물러나 있으며 그 지역에서 더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찰나의 시간에 순식간에 해석에 성공한 델리 알리. 그도 시야가 넓은 편이었지만 더 뒤에 있는 칼빈 필립스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것은 선수 개인의 능력이 아닌 위치의 차이다.

당연한 원리다. 같은 지점을 바라본다면 더 뒤에서 보는 사람의 시야가 상대적으로 넓을 테니까.

‘좋아. 무슨 그림인지 보이네.’

해석에 성공한 델리 알리는 곧바로 행동으로 옮긴다.

먼저 오른쪽에서 다가오는 수비수를 떨쳐내기 위해 공을 왼쪽으로 트래핑한다.

덕분에 뒤에서 맹렬하게 달려오던 호이비에르는 알리의 왼편으로 이동하기 위해 몇 걸음 더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몇 걸음. 즉 1초 남짓한 시간.

프로의 세계에서 1초란 억겁의 시간이었다. 특히나 더더욱 압박이 강한 현대 축구에서는 말이다.

‘역시 보이네.’

찰나의 시간을 간단한 트래핑으로 손쉽게 얻은 델리 알리의 눈에 좋은 위치로 달려가는 선수가 보인다.

“살라.”

모하메드 살라!

세리에 A의 특급이자 이집트의 파라오라는 별명이 붙은 그가 상당히 좋은 자리로 달리는 중이다.

정확히는 버질 반 다이크와 라이언 버트란드의 사이 공간!

현대축구의 핵심인 하프 스페이스를 완전히 점유한 모하메드 살라였다.

“보여주라고!”

델리 알리는 모하메드 살라를 단단히 믿으며 아웃프런트 킥을 사용해 강한 회전을 먹인 패스를 건넸다.

혹자는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여기서 굳이 아웃프런트 패스를?

겉멋이 너무 들었는데?

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 거다.

하지만 겉멋이든 패스가 아니다. 모하메드 살라의 옆에서는 그 ‘버질 반 다이크’가 있었으니까.

사실, 전반 25분 동안 이어진 맹공에도 불구하고 포츠머스가 득점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저 무시무시한 수비수 때문이었다.

“괴물.”

“저런 선수가 왜 사우스햄튼에 있지?”

“주장하고 찰스 꼰대한테는 미안하지만 내가 본 최고의 수비수야.”

“아마도···. 사우스햄튼 선수만 아니었다면 감독님이 데려왔을 듯.”

“진짜 벽이다. 곧 대형 클럽 가서 월드 클래스 찍겠는데?”

상대편인 포츠머스 선수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압도적인 육체 능력.

193cm의 장신이면서도 조쉬 킹과의 주력 대결에서 밀리지 않는 속도.

거구임에도 대단한 민첩성.

수비 흐름을 정확히 읽는 눈.

완벽에 가까운 수비기술.

여기에 어지간한 패서들의 뺨을 후리는 패스까지.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는 선수였다.

그야말로 무결점 수비수!

오죽했으면 자신감의 화신인 조쉬 킹마저도 두손 두발을 다 들었다.

“젠장. 아직은 못 이기겠다. 그래도 이 녀석을 뛰어넘는다면 내가 최고의 공격수에 가까워졌다는 이야기겠지.”

인정하면서도 승부욕을 활활 태우는 조쉬 킹이었다.

하여튼, 이미 정상급 레벨인 이 미친 선수는 너무나도 위협적이었다.

그래서 델리 알리는 반 다이크에게서 최대한 골을 멀리 떨어뜨리기 위해 역회전을 잔뜩 먹인 패스를 보낸 것이었다.

“알겠다.”

살라 또한 한 클래스 하는 선수.

대번에 델리 알리의 의도를 파악했다. 그리고 이어진 모하메드 살라의 다음 행동은 완벽하게 델리 알리의 기대에 부응했다.

-툭.

리버풀에서 프리미어 리그의 역사를 새로 썼던 그답게 슛이었을까?

아쉽게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어떠한 슛보다 멋진 플레이였다.

[살라가 공을 잡지 않고 오른발 뒤꿈치로 곧바로 리턴패스를 건넵니다!]

[‘힐 찹’ 개인기를 패스로 응용한 멋진 플레이입니다!]

힐 찹.

혹은 백숏이라고도 불린다.

생소한 용어라면 ‘호날두 찹’이라고 하면 금방 연상될 거다.

젊었을 적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자주 사용하는 방향 전환 드리블이었으니까.

이 기술을 드리블 용도가 아닌 리턴패스를 주는 용도로 사용하다니. 절로 감탄이 나올만한 멋진 플레이였다.

“캬. 이적료가 한 푼도 아깝지 않은 멋진 플레이다. 살라야, 평생 가자.”

이 멋진 플레이에 소하의 입꼬리가 승천했음은 당연지사. 4,000만 파운드? 나중에는 1억 파운드를 주고도 사지 못할 선수였다.

하여튼, 이미 승천을 완료한 소하의 입꼬리처럼 포츠머스의 멋진 플레이도 끝에 가까워졌다.

“와. 감독님이 괜히 영입한 게 아니었는데? 10번으로서 넌 내 동료가 될 자격이 있다.”

델리 알리는 그답게 오만한 발언을 내뱉으며 살라의 멋진 패스를 완전히 자기 소유로 만들었다.

즉, 완전한 기회를 잡았다.

이미 ‘벽’ 버질 반 다이크는 살라에게 달라붙은 상황. 최대의 난관을 옆으로 치워버린 순간이었다.

“이대로 내가 프리미어 리그 첫 골을 신고하고 싶지만···. 그래도 첫 골은 네가 해줘야겠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나와도 될 만큼 멋진 변화다. 그리고 이어진 델리 알리의 패스는 요시다 마야를 아예 무너뜨린 조쉬 킹의 발밑에 안착했다.

“넌 내 형제야.”

씨익. 호쾌하게 웃는 조쉬 킹!

일본 국가대표 요시다 마야에게는 아쉽게도 조쉬 킹과는 상성이 좋지 않았다.

요시다 마야는 제법 괜찮은 수비수였지만 아시아인이란 한계 때문에 힘이 아쉬운 선수.

그런 그에게 가진 게 힘밖에 없는 조쉬 킹은 극상성이었다.

‘미친···. 무슨 힘이···.’

완전히 균형을 잃은 요시다 마야는 조쉬 킹의 등을 바라보며 신음성을 내 삼켰다.

조쉬 킹의 힘은 이미 그가 가진 수비 스킬로 제어할 수준을 한참 넘어섰으니까. 그동안 내내 그를 완전히 막아낸 버질 반 다이크가 평균치를 아득히 넘어선 괴물이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기적에 가까운 투혼으로 균형을 되찾고 조쉬 킹을 막아보려는 요시다 마야. 하지만 한발 늦었다. 유니폼이라도 잡아 당겨보려는 순간.

그의 달팽이관을 두들기는 폭발음이 들렸다.

-쾅!

드디어 프리미어 리그에 신고식을 시작하는 조쉬 킹의 대포알 강슛!

늘 그랬듯 공은 잠깐 차원을 가르며 시야에서 사라졌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땐 이미 골네트를 거칠게 괴롭히고 있었다.

-촤르르르르륵!

[골입니다! 골! 포츠머스의 선제골이자 조쉬킹의 프리미어 데뷔골이 드디어 터져 나왔습니다!]

[몇 번을 봐도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한 슈팅이에요!]

침을 튀기는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

동시에 조쉬 킹은 우렁찬 포효와 함께 욕심을 버리고 완벽한 기회를 만들어준 델리 알리를 향해 달려갔다.

“으아아아아! 델리! 넌 진짜 최고의 친구야! 이리 와!”

“흥. 이 천재님은 그저 완벽함을 추구했을 뿐!”

와락. 서로 껴안으며 기쁨을 만끽하는 조쉬 킹과 델리 알리. 그들의 모습은 이내 함께 환호하기 위해 달려든 동료들에게 파묻혀 사라졌다.

***

전반 26분. 멋진 팀플레이로 선제골을 만들어낸 포츠머스. 수비적인 팀을 상대로 얻어낸 선제골은 의미가 남달랐다.

이제는 골을 넣지 않는다면 무승부도 불가능했고 그대로 패배라는 이야기였으므로.

하지만 사우스햄튼은 처음 가져온 전술을 바꾸지 않았다. 이미 포츠머스의 기세는 우주까지 치솟은 상태.

이 상황에서 라인을 올린다면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일단 전반전은 이대로 끝낸다···!’

클로드 퓌엘 감독의 결연한 의지.

믿을만한 구석은 있었다.

환상적인 플레이에 농간은 당했지만 든든한 보루, 버질 반 다이크가 건재하지 않던가.

‘그의 능력이라면 이 위기를 버텨내 줄 수 있을···.’

굳건한 믿음을 보내려던 클로드 퓌엘 감독. 아쉽게도 그의 간절함은 전해지지 않았다.

[도봉산! 도봉산이 홀로 세드릭과 요시다 마야를 무너뜨리며 단독 골을 만들어냅니다!]

[와···. 정말 감탄이 나오는 엄청난 기술이에요. 아니, 원래 드리블이 뛰어나다고 인정받긴 했지만 골 결정력까지 장착했습니다!]

선제골을 허용하고 아직 어수선한 사우스햄튼의 틈을 도봉산은 놓치지 않았다.

사적으로는 별로 친하지 않지만, 공적으로는 최고의 합을 보여주는 앤디 로버트슨과 멋진 연계 플레이를 보여준 도봉산.

단둘이서 왼쪽 측면을 완전히 허문 것도 모자라 혼자서 요시다 마야까지 찢어버렸다.

모처럼 주전 기회를 잡은 요시다 마야에게는 억울한 일이겠지만 상대가 너무 좋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그래도 전 당신보다 훨씬 더 간절합니다.’

주전 자리 따위보다 더욱 원대한 목표를 이뤄야 하는 도봉산에게 마음가짐마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요시다 마야까지 넘겨버린 도봉산 앞에는 프레이져 포스터 골키퍼뿐.

쇄도하는 그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고 감각적인 칩샷을 시도, 그대로 추가 골을 달성했다.

선제골을 득점한 지 48초 만에 추가 골을 넣어버린 도봉산이었다.

“와. 봉산, 미쳤어?”

“음. 그래도···. 에이스는 10번인 저예요?!”

“나이스 드리블! 나이스 슛!”

우르르. 엄청난 개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도봉산에게 동료들이 쇄도했다.

“다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하하.”

그다운 겸손함이 엿보이는 반응이었다.

하여튼, 순식간에 2:0으로 앞서버린 포츠머스. 이로써 경기 결과는 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후우. 좋았어. 최악의 개막전을 최고의 결과로 마무리 짓겠군.”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소하.

소하가 더비 경기를 꺼렸던 건 하이리스크하이리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이리턴을 쉽게 가져가 버리면 이야기는 달라지는 법.

‘조금 목표를 상향 조정해도 되겠어.’

최악의 경기에서 최고의 결과를 끌어내는 선수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소하는 목표를 조금 높게 잡을 마음을 먹었다.

< 172화. 우리의 목표는 생존입니다. (3)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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