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우리의 목표는 생존입니다. (2) >
사우스햄튼 FC.
리그 최고 순위는 83-84시즌의 1부리그 준우승이었지만 잉글랜드 남부지방의 최고 명문이다.
특히나, 사우스햄튼의 유소년 시스템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유소년 시스템과 더불어 최고 수준.
배출해낸 선수들의 이름만 해도 대단한데,
가레스 베일.
시오 월콧.
루크 쇼.
등등 혜성 같은 선수들을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처럼 뽑아낸 구단이다.
심지어 잉글랜드 국적으로서 최고의 공격수인 앨런 시어러도 사우스햄튼 유소년 출신!
이렇듯 1885년부터 시작된 역사와 함께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중위권에 안착한 실력은 서포터들의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했다.
하지만 이러한 편안함도 지난 시즌까지의 일이었을 뿐. 현 시즌, 16-17시즌에는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아···. 큰일 보고 뒤 닦는 걸 잊은 기분이야. 불편하고 찜찜해.”
“야밤에 바퀴벌레가 가구 틈으로 침투하는 걸 목격한 기분이랄까?”
“피자 위에 올려진 파인애플을 보는 기분이야.”
상당히 불편해하는 사우스햄튼의 서포터들! 이들의 불편함의 근원은 당연하게도 이웃사촌이자 철천지원수인 포츠머스였다.
포츠머스.
검은 머리의 혼혈감독이 집권하면서 눈이 부신 성장을 이룬, 요즘 가장 뜨거운 축구 클럽.
이들의 비상이야말로 사우스햄튼으로선 가시방석에 앉은 격이었다.
“망해버려서 다신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눈 깜빡한 사이에 덩치가 제법 커졌네?”
“비실이가 갑자기 근육질로 변했어.”
이뿐만이었다면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을 거다. 아직은 상대가 아닐 거란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남부지역 최고의 클럽은 포츠머스.
-사우스햄튼은 이제 포츠머스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
-사우스 코스트 더비의 승리자는 당연히 포츠머스가 될 것.
-현재는 몰라도 근미래에 사우스햄튼은 포츠머스의 경쟁자라 부르기도 힘들 것.
것. 것. 것. 이런, 망할!
자칭 전문가들이라 칭하는 작자들은 사우스햄튼 서포터들의 심기를 매우 어지럽혔다.
여기에 씹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원수인 이웃사촌, 포츠머스의 서포터들도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었다.
“너넨 이제 안 돼.”
“개막전 때 박살을 내줄게.”
“셀링 구단은 우리의 상대가 아니지.”
“들어와, 들어와!”
“너희 에이스 사디오 마네도 팔았다며? 너무 쉬울 거 같은데.”
“네, 다음 리버풀 위성구단.”
그냥 울화통이 터져버렸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잖은가. 쫄딱 망해버려서 이제 갓 프리미어에 올라온 애송이가 주제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후우···. 진짜 너넨 뒤졌다.”
“격의 차이를 보여주마.”
“딱 대라.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애송이의 콧대를 부러뜨려줄 테니.”
단단히 작심하는 사우스햄튼의 서포터들. 이를 부득부득 갈며 하루라도 빨리 개막전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 그들이었다.
***
“해서, 우리는 이겨야 한다!”
경기 전 마지막 팀 훈련에 앞서 소하는 열정적으로 외쳤다. 얼마나 열정적이었던지 먼 옛날 유럽의 악당, 나치당의 수장을 보는 것만 같은 연설이다.
이에, 선수들은 대번에 고개를 끄덕인다. 저 엄청난 승부욕은 절로 전염이 되었으니까.
“역시 감독님이시군요. 프리미어 리그에서의 첫 승리는 앞으로의···.”
“아니.”
냉정하게 말을 자른 소하는 표독한 눈빛으로 사실을 밝힌다.
“찢어 죽일 사우스햄튼 종자를 박멸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이 세계에서 숨을 쉬는 이유다.”
“···.”
역시나. 쉬이 예상되는 결과였다.
소하가 누구던가? 세계에서, 지구에서 가장 열정적인 포츠머스의 서포터 아니던가.
얼마나 팬심이 가득했으면 직접 감독까지 할 생각을 했겠냐는 거다.
심지어 소하는 포츠머스의 감독이 아니면 감독직을 할 마음도 없는 인간이다.
그런 그에게 철천지원수 사우스햄튼에게 져버리는 건 용납이 어려웠다.
비기는 것도 사절이다.
“너희들은 오늘부터 전사다. 선수가 아니라 전사란 말이다. 그것도 광전사! 이기지 말고 죽여라!”
“···.”
목에 핏대를 세우며 광포하게 외치는 소하! 먼 옛날 잉글랜드 대륙을 초토화하던 바이킹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포츠머스의 선수단에도 몇몇 정상하고는 거리가 먼 선수들이 존재했다.
“맞아요! 죽여버리죠!”
조쉬 킹이 한발 앞으로 나서며 소하의 의견에 열렬히 동조했다.
조쉬 킹.
소하와 함께 지옥 같은 프리시즌을 보낸 잉글랜드의 초신성.
그의 별명은 ‘제2의 미스터 포츠머스’지 않던가. 요컨대 대단한 포츠머스의 서포터란 이야기였다.
과거의 배신은 그저 너무나도 어지러운 팀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을 뿐.
달라진 미래의 지금은 소하만큼 열렬한 포츠머스의 추종자였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묵묵한 상남자 스타일의 아담 웹스터도 합세했고,
“무척 마음에 드는 소리군.”
포츠머스의 전설적인 수비수로 자리를 잡은 찰스 말로리도 매우 만족스러워했으며,
“역시 감독님이십니다. 사우스햄튼의 악도들은 모조리 박멸해야 합니다.”
“대 정화 전쟁을 펼칠 시간이 온 겁니다.”
주장, 케빈 도슨.
부주장, 잭 해리슨까지 살기를 풀풀 날리며 ‘타도 사우스햄튼’을 외쳤다.
이들의 공통점은 포츠머스의 상징이거나 유소년 출신이라는 점. 역시 축구에 미친 나라다웠다.
하기야, 과거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이 괜히 클럽 간의 경쟁심 때문에 삐거덕거리던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포츠머스와 사우스햄튼은 보통 경쟁자도 아니고 원수다. 원수.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혈투를 벌이던 최고의 원수! 이들에게만은 결코 패배할 수 없었다.
“오오! 역시 내 새끼들이야. 그래 그거다! 자, 가자! 십자군의 전사들아!”
동조하는 선수들이 상당히 많은 덕분에 무척 감격스러워하는 소하. 격해진 감정에 열정적으로 사우스햄튼 시를 향해 손가락을 뻗으며 십자군 전쟁을 선포했다.
‘어휴. 말을 말자.’
‘즐기시게 내버려 두자···.’
‘그래도···. 이기긴 해야 하니까.’
몇몇 선수들은 뜨거운 광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지만 말이다.
***
[자! 드디어 16-17시즌 프리미어 리그가 개막했습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프리미어 개막전이 시작되었다. 소하의 첫 프리미어 리그 경기이자, 첫 번째 사우스 코스트 더비는 포츠머스의 축구 성지 프래튼 파크에서 시작되었다.
[한참 증축 중인 프래튼 파크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35,000석까지 늘어난다면 어엿한 프리미어 리그 수준의 구장 크기를 가졌다고 할 수 있겠죠.]
한참 증축 중이라 매우 혼란스럽고 불편해 보이는 프래튼 파크. 북쪽 스탠드를 완전히 갈아엎는 중이라 평소보다 적은 15,000명이 입장했다.
물론, 이는 현재 가능한 모든 수용인원이 들어찬 만석이다.
[포츠머스 서포터들에게는 즐거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그렇죠. 새로이 개장될 북쪽 스탠드의 이름을 ‘성소하 스탠드’로 결정했다는 따끈따끈한 소식입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프래튼 파크에서 환호성이 폭발한다.
“성소하! 성소하!”
“포츠머스의 신! 포츠머스의 신!”
“종신! 종신! 종신!”
“절대 맹신해! 절대 맹신해!”
평소보다 적은 숫자의 홈 관중임에도 평상시보다 전혀 꿀리지 않는다.
이는 망해버린 구단을 프리미어 리그까지 이끈 소하에 대한 감사함과,
원정경기를 따라 나온 사우스햄튼 서포터들의 기를 죽이기 위함이었다.
[대단한 환성입니다! 개막전에 걸맞은 뜨거운 분위기입니다!]
[충분히 이럴만하죠! 성소하 감독은 단 4년 차 만에 포츠머스의 역대 최고의 감독이라고 불리고 있으니까요!]
성소하.
자주 부닥치는 주변인들에게는 그저 성질 더러운 괴짜였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아니었다.
특히, 포츠머스시에서는 신의 경지에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수로 소하에 대해서 좋지 않게 말하기라도 하면 다짜고짜 멱살을 잡힐 정도였으니까.
[이거. 이거. 모처럼 남부지역 최대의 더비 전을 앞둔 사우스햄튼으로서는 너무나도 힘들겠어요.]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팀의 상황도 썩 좋지는 않으니까요.]
16-17시즌의 사우스햄튼은 냉정하게 말해 썩 좋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좋은 감독이었던 ‘로널드 쿠만’ 감독이 에버튼 FC로 떠났고 팀의 절대적인 에이스, ‘사디오 마네’마저 리버풀로 이적해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중원의 살림꾼이던 ‘빅토르 완야마’까지 토트넘으로 이적했고 핵심 공격수인 ‘그라치아노 펠레’까지 중국으로 팔아버렸다.
그야말로 팀이 공중분해 됐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너덜너덜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대단한 이적시장을 보내고 ICC에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인 포츠머스를 개막전부터 만나다니. 최악의 상황이었다.
‘제기랄. 별로 좋지 않은 상대야.’
사우스햄튼의 감독, 클로드 퓌엘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도 더비경기에서 무조건 이기길 바라는 서포터들의 마음은 잘 알았다.
하지만 포츠머스는 이기고 싶다고 이길 수 있을 만큼 만만한 팀이 아니다. 갓 승격한 팀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한 팀이었다.
‘도대체··· 성소하 감독은 어떤 작자인 거야? 4부에 처박힌 팀을 이렇게 강하게 만들어버리다니.’
클로드 퓌엘 감독은 소하가 내민 손을 떨떠름하게 마주 잡으며 혀를 내둘렀다.
“잘 부탁해요.”
“···좋은 경기이길 바랍니다.”
자신만만한 소하와 잔뜩 긴장한 클로드 퓌엘 감독의 모습이 참으로 상반된다.
하여튼, 기어코 시작된 개막전이자 수년 만에 재개된 사우스 코스트 더비.
원정팀 사우스 햄튼의 선발진은,
[GK: 프레이져 포스터.
LB: 라이언 버트란드.
CB: 버질 반 다이크.
CB: 요시다 마야.
RB: 세드릭.
DM: 올리오 로메우.
LMC: 제임스 워드프라우즈.
RMC: 호이비에르.
LW: 소피앙 부팔.
RW: 네이선 레드먼드.
ST: 셰인 롱.]
절대 만만치 않았다.
프레이져 포스터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경험이 아주 많은 좋은 골키퍼였고 라이언 버트란드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경력이 있는 선수다.
여기에 버질 반 다이크라는 괴물 수비수와 요시다 마야라는 일본 국가대표까지.
단단한 수비진을 가졌다.
중원도 제법이었는데, 올리오 로메우는 바르셀로나 유소년 출신이었고 제임스 워드프라우즈와 호이비에르는 미래에도 상당한 명성을 날리는 훌륭한 선수들이다.
다만, 조금 아쉬운 부분은 공격진.
클럽 레코드로 데려온 소피앙 부팔은 아직 프리미어 리그에 통할지 미지수다.
여기에 네이선 레드먼드는 꽤 좋은 윙어였지만 전임자인 ‘사디오 마네’에 비하자면 매우 아쉽다.
사디오 마네라면 훗날 아프리카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라고 꼽히는 선수였으니까.
더군다나 공격진은 굉장히 떨어진다.
찰리 오스틴과 셰인 롱.
무명의 돌풍을 일으켰던 찰리 오스틴은 부상이 너무나도 많다.
운동량 하나만큼은 프리미어 리그 최고인 셰인 롱은 골을 넣지 못하는 공격수다.
이 때문에 포츠머스의 선발진에는 숨이 턱 막힐 수밖에 없었다.
[GK: 페트르 체흐.
LB: 앤디 로버트슨.
CB: 케빈 도슨.
CB: 찰스 말로리.
RB: 매튜 다이스.
DM: 데클란 라이스.
LCM: 칼빈 필립스.
RCM: 델리 알리.
LW: 도봉산.
RW: 모하메드 살라.
ST 조쉬 킹.]
장난이 없다. 하나같이 잉글랜드의 미래거나 이미 다른 나라의 국가대표팀인 선수들이다.
심지어 프리시즌에는 왼쪽 윙어로 나오던 조쉬 킹이 공격수로 재출전했다.
미래 따위는 접어두고 이번 경기에는 어떻게든 이기고 말겠다는 의지!
‘하. 미치겠네. 이게 이번 시즌에 승격한 팀이라고?’
리그앙에서 돌풍을 일으킨 니스의 클로드 퓌엘 감독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보통 승격한 팀이라면 국가대표는커녕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선수들이 즐비해야 했거늘. 이건 뭐, 자신도 옛 저녁에 모조리 꿰고 있는 이름들이다.
‘후우. 그래도 수비적으로···. 천천히 뒷공간을 노리면 승리할 수 있다.’
뛰어난 수비진의 힘을 믿어보고 역습 전술을 준비한 클로드 퓌엘 감독.
이에 반해, 소하는 항상 그랬듯 매우 공격적인 전술을 준비했다.
-삑!
기어코 울리는 개막전과 사우스 코스트 더비의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
동시에 해설들이 침을 튀긴다.
[자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개막전이자 남부 최고의 더비경기!]
[과연 마지막에 웃을 팀은 어디일까요!]
포츠머스의 기적적인 프리미어 리그 복귀임과 동시에 프리미어 리그에서 전설을 써 내릴 첫 번째 경기가, 막을 올렸다.
< 171화. 우리의 목표는 생존입니다.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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