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169화 (169/306)

< 169화.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 (6) >

전반전 종료 후 중간 휴식 시간.

포츠머스의 라커룸은 지고 있는 팀답지 않게 꽤 괜찮은 분위기였다.

“아, 진짜 잘하더라. 이런 선수들은 처음 상대해봐.”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도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진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성장하면 더 해볼 만할 거 같은데.”

“45분 만에 정말 많은 걸 배웠어.”

“할만했어.”

왁자지껄 떠드는 선수들. 상당히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그만큼 얻어가는 것이 많아 마냥 행복하다.

그리고 이러한 선수들의 태도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복귀한 소하의 마음에 쏙 들었다.

“지고 있는 놈들치고는 표정이 밝군.”

“···.”

“하지만 이번에는 이 위대한 감독님도 너희들의 태도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좋은 마음가짐이야.”

시작을 슬쩍 꼬아서 공포감을 조성, 그 이후에 칭찬을 건네는 채찍과 당근 전법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소하. 이런 화법은 단순히 칭찬만 하는 것보다 효과가 훨씬 좋았다.

맨날 아이스크림만 먹는 것보다는 어떨 때 가끔 먹는 게 더욱 각별한 법이었으니까.

“헤헤. 그, 그렇죠?”

“역시 감독님은 감독님이라니까.”

“물론, 역전하겠다는 투지가 보이지 않는 건 조금 감점이다. 이 자식들아.”

“···.”

다시 한번 공포를 조성한 소하는 천천히 후반전의 전략을 설명한다.

“이래저래 과정이든 얻어가는 거든 다 필요 없고, 경기는 이겨야 한다. 약간의 실력 차이가 있지만,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어.”

“···약간이요?”

약간이라니. 이해가 가질 않는다. 큰 차이가 난다는 걸 선수들 본인이 잘 알았으니까. 하지만 소하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보다.

“그래 약간. 너희들은 본인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마.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은 대부분 전성기에 접어든 나이야. 그에 반해 너희들은 대부분이 머리통에 피도 마르지 않은 풋내기들이지.”

보통 축구선수의 전성기는 20대 중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신체 능력과 기술, 정신적인 능력과 경험까지 완숙에 다다른 나이 때다.

80%가 넘는 선수가 이 나이 때에 걸친 레알 마드리드였기에 챔피언스 리그 3연패라는 과업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포츠머스는 대부분이 20대 초반. 아직 신체 능력은 물론이고 경험, 기술, 정신적인 부분까지 완숙에 경지에 들지 못했다.

이러니 당연히 실력 차이가 날 수밖에.

“그렇지만 우리에겐 두 가지 앞서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큰 실력 차이를 ‘약간’으로 바꿔주는 마법이기도 하지.”

“뭔데요?”

“바로, 첫 번째는 체력이다. 두 번째는 주전과 별 차이 없는 후보진이고.”

자신감 있게 말을 마친 소하. 이어서 드디어 본격적인 전술 설명에 들어가자 선수들은 어느새 진지한 눈매로 소하의 입을 주시했다.

***

-삑!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조금 더 주전 선수들에게 전술을 익히게 하기 위해서인지 교체는 없다.

하지만 포츠머스는 레알 마드리드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변화가 없는 레알 마드리드와 비교해 포츠머스는 상당히 많은 선수를 교체합니다!]

[칼빈 필립스를 마이클 반즈로 바꿔줬어요. 데클란 라이스도 커너 러셀로 교체해주네요. 찰스 말로리와 아담 웹스터도 교체에요.]

[뿐만 아닙니다! 도봉산을 스티븐 데커와 바꿔주는군요?]

[이렇게 된다면··· 델리 알리의 자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스티븐 데커는 중앙에서만 뛸 수 있는 선수니까요.]

중원을 아예 다르게 바꿔버린 소하의 포츠머스. 겉모습은 친선경기인 만큼 여러 선수에게 기회를 줄려는 듯하다.

[친선경기를 친선경기답게 진행하려는 포츠머스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톰 힉스의 적절한 중계였지만 나단 필립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죄송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성소하 감독은 이기기 위해 교체를 한 거예요.]

[네? 이기기 위해서라면 후보 선수들을 대거 투입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일단 먼저 아셔야 하는 사실은, 포츠머스는 주전과 후보의 차이가 매우 적은 팀이라는 사실이에요. 그리고···. 제 예상이 맞는다면 두 명 더 교체할 거예요.]

[···.]

할 말을 잃은 톰 힉스. 이기기 위해 여기서 두 명을 더 교체한다니?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지만, 톰 힉스가 잠깐 말문이 굳어버린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정말로 두 명 더 교체합니다···! 앤디 로버트슨과 잭 해리슨을 바꿔주고 매튜 다이스 대신 아다마 트라오레가 등장합니다!]

[과연···! 과연 그렇군요!]

놀라서 멍청한 표정을 짓는 톰 힉스와 대번에 소하의 책략을 눈치채고서 연신 감탄하는 나단 필립스! 같은 상황을 목격한 둘의 모습이 참으로 상반된다.

[이건 도대체 무슨 의도입니까···?]

[톰 힉스 씨도 기억하실 거예요. 3부리그에서 종종 보여주었던 2-3-5 시스템입니다. 혹은, M-W 전술이라고 불러도 될 겁니다!]

[자, 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선수들의 포지션이···.]

[풀백들을 윙어로 생각하시면 한결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

드디어 깨달음을 얻은 톰 힉스.

즉 이번 변화로 포츠머스의 포메이션은,

[GK: 페트르 체흐.

CB: 케빈 도슨.

CB: 아담 웹스터.

DM: 커너 러셀.

LCM: 마이클 반즈.

RCM: 스티븐 데커.

AMC: 델리 알리.

LW: 잭 해리슨.

RW: 아다마 트라오레.

ST: 마리오 발로텔리.

ST: 모하메드 살라.]

이런 굉장히 변칙전인 모양으로 바뀌었다.

[그, 그럼 측면수비는 어떻게···.]

[좌우 중앙 미드필더들이 내려와 줄 거예요. 이는 지단 감독의 전술을 효과적으로 틀어막을 겁니다! 아니, 정확히는 지단 감독의 수비를 부술 전술인 거예요!]

지네딘 지단 감독의 4-1-2-1-2.

다이아몬드 4-4-2라고 불리는 이 전술은 수비 시 4-4-2 두 줄 수비로 단단한 수비벽을 만드는 전술이다.

그에 반해 소하가 꺼낸 변칙은 공격 시에 무려 8명을 투입하며 두 줄 수비와 수적 동수를 맞춘다.

게다가 4-4-2 두 줄 수비의 좁은 대형을 흔들기 위해 넓은 공격대형을 유지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수비는 개나 주고 어떻게든 골을 넣고 따라잡겠다는 이야기였다.

[이, 이기겠다는 성소하 감독의 집념이 여기까지 느껴집니다!]

[맞아요. 정말, 승부욕 하나만큼은 세계 최고인 감독이에요!]

혀들 내두르는 톰 힉스와 나단 필립스. 친선경기임에도 어떻게든 이기고 싶어 하는 소하의 집념이 자랑스럽기도 하며 무섭기도 한 그들이었다.

***

“하하. 소문은 절대 과장이 아니었군.”

위대한 감독, 지네딘 지단 감독은 모처럼 환하게 너털웃음을 흘렸다.

소문은 으레 왕왕 와전되기 마련이었거늘. 마주하면 할수록 소문이 과소평가 된 거라고 보일 정도였다.

“최고의 연습 상대로군. ICC 주최 측에 선물이라도 보내야겠어.”

진심을 담아 읊조리는 지네딘 지단 감독. 자기 자신만큼 준비해온 전술을 잘 파악한 감독과의 연습경기는 최고의 보약이었다.

분명, 이번 친선경기를 통해 전술의 부족한 부분을 상당 부분 향상할 수 있을 터. 이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그럼, 어디 한번 지켜봐 볼까?”

지네딘 지단 감독은 묵묵히 턱을 쓰다듬으며 현상 유지를 결정한다. 그 또한 자신의 선수들이 저 전술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지 무척 궁금했으니까.

이 때문에 포츠머스와 레알 마드리드의 후반전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흘러갔다.

전반전엔 굉장히 격렬하고 빠른 중원 싸움이 주제였다면,

후반전에는 밀어붙이는 포츠머스와 이를 막아내며 호시탐탐 뒷공간을 노리는 레알 마드리드로 말이다.

상당히 어색하고 재미있는 상황이다.

절대적 약자인 포츠머스가 공격하고, 세계최강인 레알 마드리드가 수비하는 혼돈에 빠진 경기!

전혀 달라진, 재밌고도 어지러운 경기에서 포츠머스의 후보 선수들이 빛을 발한다.

“···.”

“히익. 어, 언제 뒤에 온 거야?!”

이스코를 혼자서 틀어막아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커너 러셀.

그가 가진 특유의 ‘존재감이 희미한’ 기질이 이스코를 깜짝 놀라게 했다.

워낙에 말수도 워낙 적고 인기척이 없는지라 이스코는 그가 근처 있는지 없는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

“이봐, 뭐라고 말 좀 해봐!”

“···.”

“제기랄. 유령인가?”

진절머리를 내는 이스코. 어찌 된 게 둘을 상대할 때보다 지금이 훨씬 힘들었다.

‘농담이 아니야. 이 녀석···. 겉보기엔 평범한 선수인 거 같은데 대인방어는 엄청나···. 체력도 장난 아니고.’

물론, 전체적인 능력치의 총합은 포지션 경쟁자인 데클란 라이스가 높다.

라이스는 육각형 그래프로 볼 때 6가지 부분이 모두 고른 큰 육각형일 거다.

그에 반해 커너 러셀은 상대적으로 작은 육각형이겠지만, 수비 쪽이 툭 튀어나온 못생긴 육각형일 터.

즉, 비슷해 보이면서도 용도가 전혀 다른 선수였다. 오히려 앞으로 강팀을 자주 만나게 될 포츠머스에 더욱 쓸 만한 선수일지도 몰랐다.

이는, 칼빈 필립스와 마이클 반즈의 관계와도 비슷했다.

“룰루~ 경기 끝나면 유니폼 교환 하죠오? 해주실 거죠오?”

“···.”

루카 모드리치는 어처구니없었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이 한량 같은 녀석은 경기에 아무 관심이 없어 보였으니까. 그러든 말든 마이클 반즈의 나긋한 목소리는 그칠 줄 모른다.

“생각해보면··· 이건 루카에게도 좋은 기회일 거예요. 다음번 낚시대회 때 당신 유니폼을 입을 테니까요. 낚시왕이 입은 유니폼의 주인이 될 기회란 말이죠.”

“···미치겠다. 정말.”

언제 봤다고 친한 척 이름을 부르는 건지. 아니, 애초에 경기중에 웬 낚시 이야기란 말인가? 10년이 넘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이런 타입은 또 처음이었다.

‘···웃긴 건 이 머저리 같은 녀석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거야.’

분명 전반적인 실력은 전반전에 붙었던 칼빈 필립스가 확실히 우위였다.

하지만 더욱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선수는 바로 눈앞의 이 이상한 녀석이었다.

‘수비 기술도, 신체적 능력도 뒤떨어지지만, 패스와 기술은 정말 대단하다···!’

요컨대, 마이클 반즈는 스페셜리스트였다. 자신만의 강점이 극대화된, 사용하기 어려운 양날의 검.

루카 모드리치급 선수에게는 두루두루 ‘훌륭한’ 칼빈 필립스보다 한 분야에서 ‘매우 독보적인’ 선수가 더욱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잠시만 방심하면 매우 독보적인 특기를 상용해 팀을 위험에 빠뜨릴 테니까.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만드는 선수란 이야기였다.

“어? 방금 딴생각하셨죠?”

“···앗···!”

귀신같이 루카 모드리치의 허점을 파고든 마이클 반즈. 찰나의 순간 그의 장기인 날카로운 왼발 킬러 패스가 전방으로 뿌려진다.

“제기랄! 너 말 걸지 마!”

“후후. 마음을 비우세요. 월척을 낚고 싶다면요.”

“···.”

물론, 루카 모드리치에게 마이클 반즈의 존재 자체가 상성이라는 점도 고려는 해야 했지만 말이다.

[쭉쭉 뻗어나가는 마이클 반즈의 예리한 중거리 패스입니다!]

[정말 뛰어난 패서예요. 20년만 늦게 태어났다면 전혀 다른 위상을 가진 선수였을 거예요!]

맹수의 손톱 같은 날카로운 킬러 패스!

이 손톱의 종착지는 모하메드 살라였다.

중앙과 왼쪽 측면 사이의 공간.

즉, 하프 스페이스 부근에서 멋들어진 패스를 받아낸 모하메드 살라는 꺼릴 길게 없었다.

슬쩍.

골대를 한번 확인 모하메드 살라!

그대로 왼발로 파 포스트 구석을 향해 감아 차기 슛을 시도한다.

-쉬릭.

매끄러운 곡선을 그리는 모하메드 살라의 깔끔한 슛. 그대로 케일러 나바스의 손끝을 스쳐 지나가며 골망을 가른다.

[골입니다! 골! 기어코 동점 골을 만들어냅니다! 후반 70분! 포츠머스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습니다!]

[좌우를 벌리고 그 틈에 벼락같은 패스가 집어넣는 멋진 팀플레이에요. 포츠머스의 모든 선수가 함께 만든 골입니다!]

드디어 들어간 포츠머스의 동점 골!

남은 시간은 20분. 친선경기치고 상당히 전술적 수준이 높은 이번 경기의 결말은 오리무중에 빠졌다.

***

-삑! 삑! 삑!

경기 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경기 결과는 레알 마드리드의 2-1 승리.

포츠머스에는 상당히 아쉬운 결과였다. 경기 종료 직전, 페트르 체흐와 수비진의 의사소통이 엇갈리며 어처구니없게 골을 헌납했으니까.

“흠. 잘했다. 이번 패배는 내 잘못이야. 너희들은 아무 잘못 없다.”

아쉬워하는 선수들에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돌리는 소하. 보기 드문, 생소한 모습 덕분에 패배에 시무룩해진 선수들의 사기는 치솟아 올랐다.

“역시 그렇죠? 우린 잘했다고요!”

“아! 감독님이 문제였구나. 기운이 나는걸요. 다음번에는 이길 수 있을 거예요. 감독님이 잘하신다면요.”

“좋은 자세입니다.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는 점. 역시 존경받아 마땅하신 분입니다.”

좋다고 마구 떠드는 포츠머스의 선수들. 마음 같아서는 마구 쥐어박고 싶었지만, 꾹 참는 소하였다.

‘제기랄. 내가 이래서 인정하기 싫었는데···. 그래도 사실이니깐.’

사실이었다. 몇 번 훈련도 같이하지 않은 체흐를 선발로 내보낸 건 소하 본인의 선택이지 않은가. 이번 경기의 패배는 이 선택 때문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여튼 이 기세로 남은 두 경기도 잘 치러주길 바란다. 그럼 이만.”

간결하게 경기 종료 후 라커룸 대화를 마치는 소하. 오늘 경기로 얻은 것이 정말로 많았기에, 졌지만 표정은 매우 밝고 가볍다.

오늘 경기로 포츠머스가 얻은 것은 정말 많다.

세계최강과 호각을 겨뤘다는 자신감.

후보 선수들의 실력 확인.

신입생들의 융화.

얻을만한 건 모조리 챙겼다.

그렇다고 포츠머스만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었다.

레알 마드리드도 지네딘 지단 감독의 의도처럼 새로운 전술을 더욱 가다듬을 좋은 시간이었다.

게다가, 실전과 다를 바 없는 높은 경기 수준은 경기력 준비에도 상당한 도움을 줬다.

이래저래 ‘친선경기’라는 본디 목적을 200% 달성한 양 팀. 누가 봐도 이번 시즌의 전망이 상당히 밝았다.

< 169화.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 (6)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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