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167화 (167/306)

< 167화.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 (4) >

포츠머스의 ICC 첫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였다.

레알 마드리드 CF.

명실상부한 축구계 최고의 구단이다.

리그 우승 30회 이상.

UEFA 챔피언스 리그 최다 우승팀.

이것만으로도 이름값이 너무나도 무겁다. 괜히 절대다수의 선수들이 레알 마드리드를 꿈의 클럽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명성에 걸맞게 전력이 매우 강한 팀이기도 했는데, 현시점이 바로 ‘지네딘 지단’ 감독이 재임 기간이다.

그렇다. 챔피언스 리그 3연패를 달성하는 그 황금기다.

이미 15-16시즌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한 상태. 포츠머스로서는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할 엄청난 상대였다.

전형적인 최약팀과 최강팀의 대결.

재미있게도 감독도 얼추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비선출의 무명이었던 소하.

선출, 그것도 축구 역사에 영원히 길이 기억될 전설적인 선수였던 지단.

같은 감독이라도 불가촉천민과 황제 정도의 신분 차이가 존재했다.

덕분에 친선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서포터들은 매우 비관적이었다.

-음. 괜히 개박살나서 사기가 와르르 무너지는 거 아니야?

-너무 강해. 이건 이기기 불가능하다고.

-그래도 우리 팀이 레알이랑 언제 붙어보겠어. 좋은 경험으로 삼자.

부정적이었지만 사실을 명확히 직시한 평가다.

감히, 어디서 감히.

이제 갓 프리미어 리그에 올라온 신출내기가 ‘유럽의 왕’에게 역심을 품을 수 있겠는가.

당연하게도 전문가들의 평가도 서포터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ICC에 참가한 포츠머스의 선택이 역효과를 불러올지도 모른다.

-신출내기 팀이 잔류하려면 ‘자신감’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한계를 느껴 자신감이 깨질 거다.

-성소하 감독과 리처드 맥닐의 생각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등등. 조금 더 이번 대회가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내다보는 전문가들이었다.

그리고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신감이란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전력으로 싸울 수 있는 용기와도 같은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물론, 소하는 이런 평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흥. 프랑스 혁명이 뭔지 보여주마.”

무조건 질 거라는 분위기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친선경기든 뭐든 무조건 이겨야 성질에 맞는 소하였으니까.

“근데···. 확실히 선수단 명단만 봐도 숨이 턱 막히는구만···.”

이길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한 소하도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단을 검토해보자 절로 오금이 저렸다.

대표적인 선수만 뽑아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림 벤제마.

가레스 베일.

루카 모드리치.

토니 크로스.

하메스 로드리게스.

이스코.

카세미루.

세르히오 라모스.

케일러 나바스.

대충 몇몇만 꼽으려고 했지만 쉬지 않고 줄줄이 계속 나온다. 심지어 이런 사기와 다를 바 없는 선수진의 사령탑이 지네딘 지단 감독이다.

지네딘 지단.

부임 첫 시즌 만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한,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천재이자 엘리트!

슬쩍 상상만 해봐도 넘을 수 없는 가시 돋친 벽이 온몸을 거칠고 날카롭게 압박하는듯한 착각이 든다.

“미쳤지. 미쳤어. 선수, 코치, 감독으로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해본 유일한 감독에게 미친 선수단이 손아귀에 있으니까.”

혀를 내두르는 소하. 하지만 눈빛만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활활 투지가 불타오른다.

“부럽고 존경스러운 감독이지만···. 그만큼 이겼을 때 더욱 기분 좋겠지.”

단순한 프리시즌 친선경기에 몸을 불사르는 이유가 조금 이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암만 친선경기일지라도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자신감’을 얻기에는 최고의 무대 아니던가.

그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분투를 하거나 승리한다면. 시즌을 앞둔 선수들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심어줄 거다.

그리고 얻은 자신감은 프리미어 리그의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 분명했다.

***

친선 경기 당일.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의 리바이스 스타디움은 모처럼 축구로 후끈 달아올랐다.

미국이라 하면 축구는 비인기 스포츠.

유럽인들에게는 어처구니없지만, 여자들이나 하는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한 편이었다.

어찌 보면 이럴 만도 하다. 그들에게는 ‘축구’라고 한다면 ‘미식축구’가 있지 않던가.

육체적으로 정점에 오른 괴수들이 총집합한 화끈한 스포츠를 보다 보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만은 예외였다.

세계 최고의 팀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명성이 커진 포츠머스의 맞대결이 코앞에 다가왔으니까.

더군다나 캘리포니아주는 대한민국 재미교포의 성지.

대한민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는 포츠머스와 그냥 태생부터 인기가 많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였기에 대단히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친선경기임에도 수용인원 68,400석 중 6만 석에 가깝게 좌석을 가득 채우는 데 성공.

이 정도면 ICC 주최 측이 원했던 흥행은 확실하게 달성했다.

[자 선수들이 들어옵니다! 푸른색 유니폼은 포츠머스, 하얀색 유니폼은 레알 마드리드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이제 막 시작하려고 해요.]

오랜만에 등장한, 톰 힉스와 나단 필립스. 이들이 포츠머스의 중계를 맡게 된 이유는 ICC의 두 번째 흥행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톰 힉스와 나단 필립스.

축구 너튜버 채널에서 가장 인지도가 많은 너튜버 아니던가. 이들의 인기는 미국에서도 난리여서 상당히 예리한 선택이었다.

물론, 전문성에 대해서 의문을 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문성이라 하면 나단 필립스를 따라올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와! 문어, 나단 필립스야!”

“축구 점쟁이!”

“어지간한 전문가의 뺨싸다귀를 후리는 신이 내린 안목을 가진 사람이잖아?”

“일단 무슨 소리를 하든 믿으면 돼. 세계 최고의 축잘알 중에서 하나이니까.”

그야말로 폭풍 같은 환영!

역시, 괜히 곧 천만 구독자를 눈앞에 둔 초대기업이 아니었다.

[필립스 씨, 오늘 친선경기에서 눈여겨봐야 할 포인트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큰 자리임에도 능숙하게 진행하는 톰 힉스. 평소와는 다르게 웃음기를 쫙 빼고 전문가 냄새를 풀풀 풍긴다.

광대 옷을 입고 슬랩스틱을 하던 그 양반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

그에 반해 나단 필립스는 방송에서나 지금이나 똑같다.

[일단, 친선경기이니 제대로 된 경기력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대신, 시즌을 앞두고 어떤 전술을 연구하는지는 알아볼 좋은 기회에요.]

[호오. 과연 그렇군요. 그렇다면 각 팀이 어떤 전술을 노리고 있겠습니까?]

상당히 어려운 문제를 툭 던지는 톰 힉스였지만 나단 필립스는 쉽게 받아친다.

[먼저, 레알 마드리드의 지네딘 지단 감독은 전술적 유연성이 매우 뛰어난 감독입니다. 변칙적인 전술로 챔피언스 리그에서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죠.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꾸준히 밀고 나갈 전술이 없다는 약점이 있어요. 이번 친선대회에는 아마 이것을 실험할 거예요.]

[호오, 그러니까 조금 빈약한 플랜A를 관철할 거란 말씀이군요?]

[정확해요.]

톰 힉스의 놀라운 능력이 빛을 내뿜었다. 조금 어려워 보이는 나단 필립스의 해설을 알기 쉽고 간결하게 재조립해주는 그만의 능력!

이것이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그럼 포츠머스는 어떤 전술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음···. 사실 이건 좀 어렵습니다. 일단 제가 알고, 여러분들이 아는 성소하 감독은 강력한 전방 압박을 통한 공격 전술을 사용하죠. 하지만, 이제는 만만치 않아요. 프리미어 리그는 그리 호락호락한 리그가 아니니까요.]

[그렇죠. 그래도 수비적인 포츠머스라···. 이건 또 전혀 상상되지 않지 않습니까?]

[맞아요. 그래서 전 포츠머스는. 성소하 감독은 그대로 그들만의 색으로 시즌을 준비할 거라고 생각해요.]

조심스럽게 포츠머스의 미래를 내다보는 나단 필립스. 그리고 그의 예측은 이번에도 맞아떨어졌다.

[선발진이 조금 늦었지만 공개되었습니다!]

[양 팀 다 굉장히 흥미로운 라인업이에요.]

포츠머스의 선발진은,

[GK: 페트르 체흐.

LB: 앤디 로버트슨.

CB: 케빈 도슨.

CB: 찰스 말로리.

RB: 매튜 다이스.

DM: 데클란 라이스.

LCM: 칼빈 필립스.

RCM: 델리 알리.

LW: 도봉산.

RW: 모하메드 살라.

ST: 마리오 발로텔리.

SUB: 나머지 모든 1군 선수.]

최전방과 최후방에 큰 변화가 있었다.

[페트르 체흐의 선발은 조금 이른 게 아닐까 싶습니다. 프리시즌 도중에 뒤늦게 합류한 선수지 않습니까?]

[팀에 합류한 지 10일도 지나지 않았지만 페트르 체흐라는 전설에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닐 거예요. 오히려 발로텔리의 선발과 살라의 출전이 흥미롭네요.]

나단 필립스는 최후방보다는 최전방에 무게감을 두었다. 조쉬 킹이 빠지다니. 축구 예언가라는 그로서도 소하의 의도가 무엇인지 심히 짐작하기 어렵다.

이어서 이에 맞서는 레알 마드리드의 선발진 또한 독특하다.

[GK: 케일러 나바스.

LB: 마르셀루.

CB: 라파엘 바란.

CB: 세르히오 라모스.

RB: 다니엘 카르바할.

DM: 카세미루.

LCM: 토니 크로스.

RCM: 루카 모드리치.

AM: 이스코.

ST: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ST: 카림 벤제마.

SUB: 나머지 모든 1군 선수.]

4-3-1-2 혹은 4-1-2-1-2 포메이션을 들고나왔다.

지난 시즌에는 보여주지 않았단 독특한 전술이었기에 전문가들과 팬들의 궁금증이 증폭된다.

게다가 부상에서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친선경기 첫경기에 선발로 나왔다는 것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상당히 독특한 포메이션을 들고 왔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네딘 지단 감독이 다이아몬드형 4-4-2를 사용하는 모습은 처음이네요. 구체적인 전술까지는 선발만 보고서는 모르겠어요.]

모처럼 난색을 보이는 나단 필립스. 레알 마드리드의, 지네딘 지단 감독의 다이아몬드 4-4-2라니.

지단 본인이 아니고서야 처음 선보이는 전술에 대해 좔좔 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 그럼 곧 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 모두 경기장에 눈을 떼지 말아주십시오!]

[정말 흥미진진한 경기가 될 거 같습니다. 두 감독의 전술과 선수들이 드디어 맞붙게 됐어요!]

점점 다가오는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 그와 비례해 경기장의 환호성은 점점 뜨겁고, 커져만 갔다.

***

“잘 부탁드려요. 지단 감독님.”

경기 시작 전, 소하는 싱긋 웃으며 지단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에, 지단 감독도 미소를 지으며 소하가 내민 손을 맞잡는다.

“나도 잘 부탁합니다. 그나저나 상당히 재능 넘치는 선수들을 많이 모아 뒀군요?”

눈빛을 빛내는 지네딘 지단 감독.

수십만 축구선수의 정점에 올라섰던 선수 출신이라 그런지 안목이 면도날처럼 날카롭다.

“큼큼. 타, 탐내지 마세요.”

빠르게 NFS를 때리는 소하. 아주 질겁을 한다. 암만 포츠머스의 선수들이 충성심이 강한 편이라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유혹을 거절하기엔 너무나도 힘든 법이었으니까.

나름대로 선수들을 믿는 소하마저도 장담을 하지 못했다.

“글쎄요···. 몇몇은 포츠머스라는 작은 그릇에 담는다면 흘러내릴 것 같기도 합니다만···.”

지네딘 지단 감독은 선수들을 훑어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특히나 에링 홀란드, 델리 알리, 데클란 라이스, 모하메드 살라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그릇이야 두들겨서 키우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나저나···. 가장 보고 싶었던 조쉬 킹은 선발로 나오지 않는군요? 듣기로는 특훈 중이라고 하던데요.”

“···정보력이 참 좋으시네요. 아마, 오늘은 나오지 않을 겁니다.”

소하는 눈을 샐쭉하게 뜨며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어떻게 알짜배기 선수들만 저렇게 잘 찾는 건지. 귀신같은 안목이었다.

“제가 알기로는 조쉬 킹은 포츠머스의 핵심이라고 들었습니다. 설마 친선경기라고 설렁설렁할 생각은 아니시겠죠?”

“···설마요.”

과연,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이라 그런지 승부욕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떤 경기에서든 이기고 싶다는 강한 집념. 이것이야말로 ‘명장’의 조건이었다.

“그러길 바랍니다. 우리 팀을 위해서요. 새 시즌을 위한 전술적 완성을 기해야 할 시점이니까요.”

“하하.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200% 만족시켜 드릴 테니까요. 나름대로 준비하신 전술이 쉽게 막혀도 실망하지 마시고요. 후후.”

“하하. 그럴 일이 생기길 바랍니다.”

소하의 도발을 시원한 웃음으로 넘기며 등을 돌리는 지네딘 지단 감독.

모처럼 준비한 전술을 소하가 벌써 알아봤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듯한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하지만.

‘흐흐. 지단 선배님···. 아쉽지만 16-17시즌에 사용할 [이스코 시프트]를 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답니다.’

소하는 그의 전술을 알고 있었고, 비릿한 미소는 사상 최고치로 짙어졌다.

< 167화.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 (4)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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