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화.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 (3) >
소하가 룸메이트로 조쉬 킹을 선정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는 포츠머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이제 한 단계 스텝 업을 할 때가 왔다. 알을 깨야 할 시점이야.”
남들이 듣는다면 조금 의아한 말이다.
조쉬 킹이라고 한다면 이미 잉글랜드에서도 알아주는 유망주였으니까.
[차기 잉글랜드 대표팀의 최전방은 해리 케인과 함께 조쉬 킹이 이끌 거다.]
[대단한 공격수가 될 자질이 보인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은 투톱 전술을 익힐 필요가 있다.]
[2~3년 뒤에는 해리 케인과 조쉬 킹이라는 걸출한 조합이 완성될 것.]
전문가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쉬 킹에 대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4년 차에 들어선 지금은 이러한 평가가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3년 연속 득점왕 달성!
심지어 챔피언십 리그에서는 부상 때문에 3개월을 날려 먹고도 달성한 대기록이다.
암만 소하의 공격적인 전술, 뛰어난 동료들의 많은 지원과 하부리그에서 달성한 기록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
이제 막 겨우 21세에 불과했으니까.
오히려 착실하게 하부리그에서, 그것도 임대도 다니지 않고 한 팀에서만 성장했다는 점은 플러스 요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잉글랜드의 미래라는 평가를 받는 조쉬 킹일지라도 소하의 마음에는 완전히 들지 않았다.
“제법 과거의 잠재성을 뛰어넘는 성장을 이뤘지만, 녀석의 한계치는 나로서도 파악하지 못했어.”
한계의 짐작이 어려운 잠재성.
여기에 더해 꿈을 이루기 위한 필수조건 중 하나가 조쉬 킹의 새로운 각성을 원했다.
“조쉬 킹-에링 홀란드-모하메드 살라. 이 셋을 공존시킨다면 내가 꾸는 꿈은 개꿈이 아니라 이룰 수 있는 꿈이 된다.”
즉, 조쉬 킹을 왼쪽 윙포워드로 정착시키려는 첫 번째 걸음이었다.
굳이 ‘중앙’ 공격수로 잘하는 선수를 바꿀 필요가 있나 싶겠지만, 에링 홀란드라는 괴물의 존재가 문제였다.
“조쉬 킹도 조쉬 킹이지만, 이 괴물은 실제로 지도해보니 한계를 모르겠어. 모든 게 완벽하다.”
에링 홀란드.
자신을 노르웨이의 디카프리오로 여기는 16세, 괴짜 선수는 진짜 미친 재능의 총집합이었다.
그렇다고 둘을 함께 중앙에 포진하는 투톱 전술을 사용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이미 그들의 고점과 비슷한 위치인 모하메드 살라가 합류했으니까.
아니, 애초에 소하는 3년 전, 에링 홀란드와 접촉했을 때부터 이 계획을 얼추 세워두고 있었다.
조쉬 킹의 왼쪽 윙포워드 완전 정착!
이를 위해 현재의 에이스인 도봉산의 백업도 따로 구하지 않은 소하였다.
“하지만···. 이 돌대가리를 과연 내가 갱생시킬 수 있을까?”
자신감이 조금 흔들리는 소하. 그간 조쉬 킹과 지내왔던 3년간을 생각하면 절로 눈앞이 아찔하다.
그래도.
그럼에도 이를 해낸다면.
“트레블은 물론이고 전관 우승도 가능하겠지···.”
나직이 읊조리는 소하의 눈에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승부욕이 활활 타올랐다.
물론, 절규하는 조쉬 킹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무서운 눈빛이었겠지만 말이다.
***
포츠머스가 미국, 그것도 LA에서 전지 훈련을 시작한 이유는 별거 없었다.
ICC의 첫 번째 경기가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의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잡혔기 때문이다.
거리상으로는 샌프란시스코가 더욱 가까웠지만, 재미교포가 훨씬 많은 곳이라는 점이 가산점이었다.
하지만, 선수들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이유였다. 사실은 애초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해외에서 전지훈련을 한다는 사실을 즐겼을 뿐.
오직 한 사람만 제외하고선 말이다.
“살···려···줘···.”
2주간 소하와 합방을 진행 중인 조쉬 킹이 그 주인공이었다.
소하에게 어찌나 시달렸는지 해맑던 얼굴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죽은 눈을 가진 초췌한 청년으로 변해버렸다.
상당히 불쌍해 보이는 몰골.
하지만 의외로 동료들에게는 핀잔을 들었다.
“배부른 소리 하지 마. 하여튼 꿀 빨고 있는 주제에 불평은.”
칼핀 필립스는 조금 진심을 담아 쏘아붙였다. 사실 그도 처음에는 소하와의 합방이 무서웠다.
‘생각해보니까 이건 엄청난 기회였다고. 존경하는 감독님에게 24시간 밀착 교육을 받을 기회라니. 억만금을 줘도 얻지 못할 기회지.’
잠시 머리를 굴려보니 정말 좋은 기회였다. 소하가 누구던가. 선수 육성으로는 한 손으로 꼽히는 감독이다.
칼빈 필립스, 본인도 소하의 지도가 자신의 성장에 엄청난 도움이 됐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지라 조쉬 킹이 마냥 부러웠다.
그리고 이런 칼빈 필립스의 생각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최고의 기회를 얻고도 우는 소리라니. 실망이 큽니다. 조쉬 킹.”
모하메드 살라의 합류에 경쟁의식을 불태우는 잭 해리슨은 고리눈을 떴고,
“정말 부럽네요. 감독님과 합방이라니. 그러니 주장으로서 더 이상의 불만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소하바라기인 주장, 케빈 도슨마저도 엄중히 경고를 날릴 정도였다.
“···너무해···.”
순식간에 친구는 물론, 주장과 부주장에게 질책받은 조쉬 킹은 울상이 되었다.
솔직히 이들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긴 했다. 정규 훈련 시간이 끝나고도 추가로 직접 개인지도를 받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너무 힘들었다.
체력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했거늘. 그 자부심이 흔들릴 정도의 강행군이었다.
“진짜 억울해요.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간단한 드리블 훈련만 하루 천 번을 한다고요!”
왈칵! 입에서 눈물을 뽑아내는 조쉬 킹. 소하의 개인지도는 그만큼 쉬우면서도 어려웠다.
소하가 조쉬 킹을 지도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이었다.
말 그대로,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익히는 훈련이었으니까.
-넌 냉정하게 말하자면 머리가 안 좋아. 대신 몸과 본능은 매우 쓸만하지. 그러니까 생각하기 전에 몸이 반응할 때까지 익히면 네 것이 되는 거다.
간단한 드리블부터, 상당히 고난도인 개인 기술까지. 그냥 몸이 저절로 반응할 때까지 무한으로 반복시킨 소하였다.
게다가 이뿐만이 아니다. 솔직히 훈련 자체는 그렇다 치고 넘어가도 합방이 정말 힘들었다.
“그래요. 훈련은 그렇다 쳐요. 훈련이 끝나고 쉬고 오면 온갖 전술 교범을 들고 와서 쉬지도 않고 좔좔 주입하신다니까요?”
가르치고 이해시키진 않았다. 소하는 그런 방법이 조쉬 킹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단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이론도 그래. 평범하게 익히고 쓰는 건 너에게 불가능해. 솔직히 네가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야. 그러니까 어느 한순간, 갑자기 쓸만한 부분이 떠오르기만 하면 된다.
소하의 신랄할 정도의 팩트 폭격!
매우 신랄했지만 조쉬 킹 본인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덕분에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선 교육의 연속인지라 굉장히 고단했다.
물론, 동료들에게는 더욱더 호사를 누리는 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와. 따로 이론교육도 해주시는 거야?”
“···진짜 더 불만을 내뱉지 마십시오.”
“감독님이 너보다 주급 쎈 거는 아냐? 평생 감사해라.”
“부러운 새끼···.”
“대신 감독님이 네 뒷수발을 다 들어 준다며. 음식도 직접 가져다주시고. 하여튼 있는 놈이 더해. 얄미운 놈.”
오히려 더욱더 구박을 받게 된 조쉬 킹. 소하에게 찍혀 단단히 고생길이 열린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
ICC가 열리기 3일 전.
주최 측은 특별히 각 팀의 수뇌와 감독들이 만나는 자리를 주선했다.
서로의 이름은 알아도 말 몇 번 섞어보지 못하는 동종업계 종사자들을 위한 작은 연회라 불러도 무방한 자리.
당연히 소하도 참석했다. 모처럼 빼입은 정장이 불편한지 연신 몸을 들썩이는 소하. 자연스럽게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제기랄. 역시, 난 츄리닝이 최고야.’
투덜투덜. 쉬지 않고 정장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소하였지만 우습게도 무척 잘 어울린다.
어울리는 겉모습과는 달리, 마음 같아서는 이런 자리는 사절하고 싶었지만 동료 선배들에 대한 예의는 차려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리그에서 붙게 될 팀들의 감독들과는 개인적으로도 한번 만나고 싶었다.
“왔다. 성소하 감독이야.”
소하가 등장하자 하하 호호 웃던 회장에는 일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딱딱히 굳은 표정에 몇몇 사람들은 위압감을 느끼기도 한다.
‘호오. 듣던 성격과는 다르게 상당히 진중한 얼굴인걸?’
‘소문은 맞는 게 없군. 겉은 불이고 속은 얼음인 남자라고? 그냥 냉동인간인데. 슈퍼 솔져라도 믿겠어.’
‘저 사람이 바로 성소하 감독이군. 나이에 비해 상당한 관록이 보이는 얼굴이야.’
오해 아닌 오해를 해버리는 참석자들.
특히나 먼저 도착한 다른 팀의 감독들은 눈에 이채를 띄면서 소하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흐음. 저게 유럽을 뒤흔드는 젊은 천재 감독인가? 감독보다는 패션쇼에 어울리는 모습인데. 역시,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되는군. 발로텔리마저 개심시킨 감독이니까.’
인테르의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의 소하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애증의 옛 제자였던 발로텔리를 갱생시켰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던지라 상당히 관심이 많아 보인다.
‘마음 같아선 말을 걸고 싶지만 표정이 썩 좋지 않아 보이는 모습이 걸리는군.’
당장이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건만. 소하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필시 중요한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덕장으로 소문이 자자한 만치니 감독은 이럴 때 괜히 귀찮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잘 아는 신사였기에 꾹 참는다.
‘흐음. 몰락한 구단을 부활시킨 장본인이 바로 저 친구군. 확실히. 이런 자리에서도 여유를 놓지 않는 모습은 나이답지 않은 기개가 보여. 슬쩍 비결을 물어보고 싶은데.’
16-17시즌, 몰락한 명가인 AC 밀란의 부활이란 특명을 받은 ‘빈첸조 몬텔라’ 감독 또한 관심이 폭발한다.
로베르도 만치니 감독과 마찬가지로 쉽사리 접근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비선출 출신의 천재라. 나와는 정반대의 길을 건 감독이란 말이지. 어떤 인물인지 궁금했는데, 지금은 날이 아닌 것으로 보여.’
‘이런 자리에서까지 표정을 풀지 않은 걸 보아하니 상당히 심각한 문제와 투쟁을 하는 중이겠군. 아쉬워.’
레알 마드리드의 ‘지네딘 지단’ 감독과 바르셀로나의 ‘루이스 엔리케’ 감독 또한 상당한 관심을 가졌지만 머뭇거리기는 매한가지였다.
이에 괜한 오해를 불러 영문을 모르는 소하마저도 붕 떠버렸다.
‘뭐야. 씨발. 왜 갑자기 이야기를 멈추고 노려보기만 하지? 뭐, 대가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풋내기가 늦게 도착했다고 꼽주는 건가? 이런 개꼰대 문화가 유럽에도 존재한다니. 개탄스럽구나.’
헛소리를 마음속으로 지껄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쯤. 이 오해와 오해가 겹쳐진 침묵을 한 노신사가 나서서 순식간에 부숴버린다.
“오! 언제 왔어요? 참 얼굴 한번 보기 힘든 감독님이라니까요.”
소하를 매우 반기며 다가오는 장신의 노신사. 그렇다. 지난 시즌 10년 만의 우승을 달성한 아스널 FC의 감독, 아르센 벵거 감독이었다.
“어? 계셨네요. 아이고야 캘리포니아가 서쪽 끝에 있어서 뉴욕까지 좀 시간이 걸렸네요. 조금 늦어서 죄송해요.”
구원의 동아줄을 발견한 소하가 가만히 있을 리가 있겠나. 사석에서는 한 번밖에 만나보지 않은 사이였지만 매우 살갑게 군다.
물론, 효과는 매우 좋았다.
소하야말로 나이가 지긋한 능력자들에게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남자 아니던가.
그런 그가 살갑게 굴자 절로 주름이 파이며 웃음꽃이 핀다.
“우린 이스트 러더퍼드라서 그리 멀지 않았거든요. 그동안 잘 지냈나요?”
“그야 당연하죠. 감독님께서는요?”
“후후. 당연히 매우 잘 지냈죠.”
“아! 맞다. 우승하셨지. 조금 늦었지만 축하드려요.”
“천재 감독이 건넨 축하 인사는 무척이나 마음을 들뜨게 하는군요. 저도 축하드려요. 프리미어 리그 입성을 환영합니다.”
“축하하시다니요. 걱정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핫.”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금세 하하 호호 이야기꽃을 피우는 프리미어 리그의 위대한 감독과 이를 따라잡을 젊은 감독.
덕분에 눈치를 살피던 다른 감독들까지 슬금슬금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한다.
“자네가 성소하인가? 반갑네. 나는···.”
“재건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따가 따로 이야기를 나눠줄 수 있나? 내 부탁하지.”
처음과는 180도 변해버린 소하의 모습에 인기가 폭발했다.
애당초 관심만은 충분했으니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차기 최고의 감독을 꼽는다면 백중 99는 소하를 뽑은 축구계에서 그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후후. 그럼, 베예린의 성장을 도와준 보답은 이걸로 하겠습니다.’
슬쩍 뒤로 빠지며 미소 짓는 아르센 벵거 감독. 리그 최고의 오른쪽 풀백으로 성장한 엑토르 베예린은 소하의 지분이 매우 컸고 이를 갚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벵거 감독이었다.
이렇게 본래 취지에 맞게 감독들끼리 ‘친목’ 다지게 된 회장. 그리고 드디어 아직 도착하지 못했던 감독이 도착했다.
193cm, 83kg 거구.
덥수룩한 수염.
게르만 민족 특유의 거대한 근골.
독일의 FSV 마인츠 05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전설이자 훗날 리버풀의 전설까지 차지하는 ‘위르겐 클롭’ 감독의 등장이었다.
그는 회장에 도착하자마자 여러 감독에게 가볍게 인사한 뒤 곧장 소하에게 다가와 손을 내민다.
“반갑습니다. 리버풀의 감독인 위르겐 클롭입니다.”
“···포츠머스의 감독, 성소하입니다.”
내민 손을 굳게 맞잡는 소하. 눈앞의 이 거인이야말로, 소하의 롤모델이자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으며, 이제는 꿈을 이루기 위해 쓰러뜨려야 할 가장 강력한 적이었다.
< 166화.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 (3)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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