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165화 (165/306)

< 165화.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 (2) >

이번 시즌은 16-17시즌.

즉, 2016년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에 포츠머스가 합류했다는 소식은 조금 의외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프리시즌 친선 대회라고 해도 세계 곳곳에 중계가 되는 상당히 큰 무대였기 때문이다.

참가하는 팀만 해도 쟁쟁했는데,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CF.

FC 바이에른 뮌헨.

아스널 FC.

리버풀 FC.

첼시 FC.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AC 밀란.

파리 생제르맹 FC.

포츠머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엄청났다.

감히 포츠머스 ‘따위’가 쳐다보지도 못할 명문들의 향연!

사실, 원래의 2016년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에 참가한 팀의 명단과는 조금 다르다.

아스널 대신 레스터시티였고,

포츠머스 대신 셀틱 FC였으니까.

하지만 아스널이 15-16시즌을 우승하며 레스터 FC 대신 참가했고, 셀틱 대신 포츠머스가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이런 변화에 소하의 입김이 없었을 리가 있겠나. 포츠머스의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 참가의 흑막에는 자연스럽게도 소하가 있었다.

“구단주님. 기왕 돈도 빌려주셨는데, 힘도 빌려주시죠?”

한참 폭풍 같은 이적시장 소식을 뿌리고 있었을 때쯤. 소하는 다시 한번 리처드 맥닐을 찾아가서 부탁했다.

“힘이라. 돈은 곧 힘이네만?”

모처럼 소하가 먼저 찾아와서 들떴던 리처드 맥닐은 여지없이 요구사항이 있자 심통을 부렸다.

‘쯧. 역시나 원하는 게 있을 때만 찾아오는군. 섭섭하게 말이야.’

소하의 제안이 무언인지 알면서도 딴소리를 하는 리처드 맥닐. 하지만 소하는 만만찮은 인물이었다.

“에이. 돈은 힘의 한 종류일 뿐이죠. 전 구단주님의 영향력이란 힘을 쓰고 싶다는 이야기에요.”

뻔뻔하게 정론으로 맞서는 소하. 물론, 이는 리처드 맥닐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했을 뿐이었다.

“난 구단을 소유한 구단주일 뿐일세. 영향력을 뿌리라니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점점 딱딱히 굳는 리처드 맥닐의 표정.

이에 눈치 빠른 소하는 재빨리 비장의 한 수를 꺼내 든다.

“제가 이번에 새로운 차를 조합해 봤는데요···. 이게 말이죠. 제가 만든 차 중에서 역대급이라고 불러도 부끄럽지 않을 수준이란 말이죠···.”

간신배처럼 양손을 비비며 슬며시 운을 던지는 소하. 간악하기 짝이 없는 태도였지만 리처드 맥닐로서는 절대 피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이미 그는 소하의 차에 완전히 매료된 사람이었으니까.

“···그, 그래서?”

“혼자만 즐기기엔 너무나도 아쉬워서 구단주님에게 ‘처음’으로 대접하려고 했는데 말이죠. 아쉽게도 제가 눈앞에 보이는 게 불편하신가 보네요···.”

처음을 강조한 소하는 은근슬쩍 자리에서 엉덩이를 뗀다.

많이는 떼지 않았다.

정확히 3cm 정도!

갈 듯 말 듯 한 어정쩡한 높이는 리처드 맥닐을 더욱 다급하게 만들었고, 결국 백기를 꺼내 들게 했다.

“자, 잠깐만. 일단 자리에 앉게나.”

“네? 정말로요?”

눈을 끔뻑이며 자연스럽게 앉는 소하. 그 모습이 정말 가증스러웠지만 리처드 맥닐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을 뿐.

“후우···. 좋네. 좋아. 도대체 무슨 영향력을 원하는 건가?”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에 우리 팀을 넣어주세요.”

“···.”

할 말을 잃었다. 저런 요구를 저리도 뻔뻔하고 당당하게 요구하다니. 소하가 아니었다면 한 대 쥐어박았을 거다.

“자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건가?”

“당연하죠.”

“···내가 그런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이죠.”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하는 소하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리처드 맥닐의 마음은 봄눈 녹듯 사르르 녹았다.

요컨대, 자신의 능력을 믿는다는 이야기 아니던가. 마음에 드는 친구에게 능력을 인정받는 일만큼 충족감을 주는 일은 드문 법이었다.

이건 리처드 맥닐에게도 마찬가지.

내심 아들처럼 여기는 소하에게 인정받자 절로 미소가 지어져 애써 참는다.

“큼큼. 말은 잘하는군.”

“원래 감독이란 게 말재주가 반이거든요. 그리고 이건 굉장히 객관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건 그렇지. 나에겐 자네의 요구를 들어줄 능력이 충분하지.”

“충분 정도가 아니라 매우 쉬운 일이기도 하겠죠.”

거침없이 리처드 맥닐에 대한 고평가를 멈추지 않는 소하.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로 비행기를 태워주는 의미가 아니다.

담백하게, 사실만 말했을 뿐.

그만큼 리처드 맥닐이 가진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게다가 포츠머스 FC의 명성도 날로 치솟는 상태다. 오히려 흥행을 원하는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과 상당히 어울리는 팀이었다.

리처드 맥닐의 영향력.

포츠머스의 인기.

이 둘이 합쳐진다면 보기보다 훨씬 쉬운 일이 될 거다. 다만 감독인 소하로서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말이다.

“허헛. 자네가 날 이렇게 좋게 평가할 줄 몰랐군. 좋네. 비싼 차를 대접받았다고 생각하겠네.”

“헤헤. 무한 리필도 가능합니다.”

샤샥. 또다시 파리처럼 손을 비벼는 소하. 고대의 환관으로 태어났다면 나라를 말아먹을 위인이 분명했다.

***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 줄여서 ICC(International Champions Cup)의 주최 측은 리처드 맥닐의 요구에 상당히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이건 좋은 기회입니다. 셀틱 대신 포츠머스를 넣으면 훨씬 더 흥행에 성공할 겁니다.”

“하기야. 지금의 포츠머스는 셀틱보다 명성이 높은 상황이니까요.”

“미처 생각하지 못한 팀이었는데, 먼저 접근해주다니. 운이 좋군요.”

참가하는 팀이야 팀의 경기력을 위해서 참가했지만 주최 측은 이야기가 다르다.

이들이 사람이 좋아서 진행하는 대회가 아니지 않던가. 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고 흥행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참 상한가를 치는 포츠머스의 합류 의사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다.

하지만 주최 측 마음대로 이를 결정할 수는 없는 법. 이미 참가에 동의한 다른 팀들의 의견도 중요했다.

그들도 수입 일부를 얻어가긴 했지만, 참가의 가장 큰 목적은 말 그대로 전력 강화였으니까.

너무 약한 상대라면 전력 강화 및 분석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거다.

그리고 포츠머스에는 다행스럽게도 참가팀들 또한 매우 긍정적이었다.

“포츠머스? 요즘 재미있는 축구를 한다고 하던데 나쁘지 않겠죠.”

“웰컴투 프리미어 리그를 해줘야겠군요. 얼마나 어려운 도전을 하는지 느끼게 해줘야겠습니다.”

“찬성입니다. 성 감독과는 빨리 붙어보고 싶었는데, 잘됐습니다.”

“눈여겨보는 선수들을 직접 상대할 좋은 기회이군요.”

단 한팀도 빼놓지 않고 동의를 했다.

서로 각자 다른 이유였지만 그만큼 포츠머스의 위상이 올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렇게 포츠머스의 합류가 결정된 ICC.

매우 당연하게도 팬들에게 대단한 관심을 끌게 되었다.

-와. 포츠머스의 합류? 과연 진짜 강팀들을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현실의 벽을 느껴버릴지도.

-이변을 연출하지 않을까?

-미쳤다. 리그가 휴식기라 심심했는데 꿀잼이겠는걸.

-맛있다. 맛있어!

-전패만 하지 말아라.

명문 팀들의 팬들은 신흥강호라는 포츠머스의 실력이 궁금했고,

포츠머스의 팬들은 과연 자신들이 진짜 강팀들과 붙었을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아! 빨리 시작해라!”

어느 축구팬의 기대감 섞인 한탄!

이는 ICC를 기다리는 모든 팬의 속마음을 대변한 말임은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

전지 훈련지인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도착한 포츠머스의 스태프진과 선수들. 지중해성 기후의 따스함과 건조함이 그들을 반기자 탄성을 내지른다.

“미국이다!”

“팍스 아메리카나!”

“공기가 달라. 칙칙한 잉글랜드와는 비교가 안 돼!”

“이게 전지훈련이지. 암 그렇고말고.”

“제가 LA에 있을 때 말이죠···.”

이거 완전 시골에서 처음 상경한 촌뜨기가 따로 없다. 하기야, 하부리그에서만 뛰던 선수들이 언제 미국까지 전지훈련을 와봤겠는가.

‘쪽팔리지만 좀 참아야겠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는 소하. 그래도 요즘 축구선수들답지 않게 순박한 제자들의 모습이 상당히 마음에 드는 눈치다.

“자, 그럼 먼저 예정된 일정은···.”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인도하는 교사가 된 기분을 만끽하는 소하는 차마 말을 마치지 못했다.

때마침 포츠머스를 마중하러 나온 팬들의 환호성이 터졌기 때문이다.

“와! 포츠머스가 도착했어!”

“성소하! 성소하! 성소하!”

“도봉산 선수랑 유해진 단장도 있어. 저기 이번에 합류한 방주호 선수도 보인다!”

“조쉬 킹이야! TV에서 볼 때보다 훨씬 단단한 느낌인데?”

“오오. 금발 축구 미남, 에링 홀란드다. 진짜 얼굴에 축구력 쌓인 거 봐봐.”

로스앤젤레스, LA.

이 도시야말로 재미교포의 성지 아니던가. 한국인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은 포츠머스를 보기 위해 구름같이 팬들이 모여들었다.

“예아! 여러분들 사랑해요!”

“차례차례 오세요. 전부 사인해 드릴 테니까요.”

“스마트폰 이리 줘 봐요. 사진 찍어드릴게요.”

상상 이상의 인파에도 불구하고 포츠머스 선수들은 친절하게 팬들을 맞이한다.

훗날 같은 ICC 대회에서 한국 팬들에게 물을 먹였던 어떤 전설적인 선수와 비교하자면 진짜 프로가 따로 없다.

물론, 포츠머스 선수들의 팬 서비스는 소하가 3년간 세뇌와 다를 바 없는 교육을 한 덕분이었다.

어찌나 마르고 닳도록 주입했는지, 잉글랜드 내에서도 팬서비스가 최고라고 소문이 자자한 팀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팀이 포츠머스였다.

‘진짜 팀에서 방출될 테니까.’

농담이 아니었다. 소하가 농담을 자주 하긴 하지만 팬 서비스에 대해서는 굉장히 엄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주입돼서 습관화된 팬서비스야말로 포츠머스가 단시일 내에 대단한 인기를 얻게 된 원동력이었다.

단순히 대한민국 시장을 공략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게 일정에 맞춰 팬들과 소통을 나눈 포츠머스 FC. 전지 훈련장과 가까운 호텔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모두 긴 비행시간에도 불구하고 잘해줘서 고맙다. 역시 내 새끼들이야.”

출발에 앞서 선수들에게 감사를 표한 소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방 배정이 조금 바뀌었다.”

소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선수들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포츠머스의 방 배정은 보통 2인 1조.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유대감 향상을 통한 팀의 결속력을 올리려는 방안이다.

그런데 여기서 방 배정을 바꾼다는 이야기는 무슨 꿍꿍이가 담겨있다는 뜻이 분명했다.

“···진짜요?”

“아니, 그냥 가죠···.”

“왜 이러세요···. 감독님.”

부들부들 몸을 떠는 선수들. 하지만 소하는 눈길 하나 주지 않고 거침없이 말을 이어간다.

“쫄기는. 걱정하지 마라. 한 명만 바꿀 거니까. 다 바꾸기에는 너무 혼란스럽잖냐.”

평온한 어조의 목소리였지만 선수들은 더욱 불안에 휩싸였다. 이 말은 즉, 적어도 한 명은 상상 이상의 지옥을 맛본다는 뜻이었으니까.

안정권이라고 확신할 선수가 없었기에 긴장감은 더더욱 고조된다.

“후후. 기뻐해라. 그 한 명은 매우 운이 좋게도 나와 한방을 쓴다. 그것도 전지훈련 내내 말이지.”

기어코 터져버린 소하의 폭탄선언!

이거야말로 진짜 지옥이었다.

분노의 화신이라고까지 평가는 무시무시한 감독님과 한 달여를 같은 방을 써야 한다니.

4년 차에 접어든 소하의 포츠머스 역사 속에서도 최고, 최악의 형벌이었다.

전설로 회자하는 오버헤드킥 훈련 1만 번도 이것과 비교하자면 해볼 만한 수준이지 않을까?

“···미친.”

“오. 맙소사.”

“제발 나는 아니길. 제발 나는 아니길. 제발 나는 아니길.”

“저였으면 좋겠군요.”

“주장, 아쉽지만 저 선물은 저의 것입니다. 양보하십시오.”

조금 이상한 선수들은 선물로 여겼지만, 대부분은 공포에 영혼이 잡아먹혀 덜덜 떤다.

특히나, 악동 3인방으로 유명한 조쉬 킹, 델리 알리, 칼빈 필립스는 눈을 꼭 감은 채 평소 하지도 않던 기도까지 한다.

“제발. 저 말고 알리를···.”

“제발. 저 말고 킹을···.”

“제발. 저 말고 다른 둘을···.”

하지만 신은 필요할 때만 찾는 이들에게는 따끔한 훈육을 내리기도 하는 존재.

오랜만에 찾은 어린양들이 괘씸했는지 이들 중 한 명이 지옥의 형벌에 당첨돼버린다.

“조쉬 킹. 축하한다. 네가 이번 대박 복권의 당첨자다.”

해맑게 외치는 소하의 발언에 조쉬 킹은 그저, 무릎을 꿇은 채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안 돼에에에에에에에!”

조쉬 킹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신의 훈육이었다.

< 165화.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 (2) > 끝

ⓒ 블라님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