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164화 (164/306)

< 164화.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 (1) >

“감독님···. 저기···.”

슬슬 선수들의 복귀가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쯤. 모처럼 3일 정도 쉬고 돌아온 밀러가 진지한 표정으로 소하를 찾아왔다.

“왜요?”

농땡이를 피우다가 서둘러 일을 하는 것처럼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소하. 이 솜씨를 나탈리 도슨이 봤다면 곧장 손을 잡고 극단으로 끌고 갔을 거다.

최고의 연기 유망주를 발견했다면서 말이다.

하여튼 목소리에도 피곤함을 연기한 소하는 심상치 않은 밀러의 기색에 짐짓 놀라며 집중한다.

“큼큼. 그게 말입니다···. 혹시 선수단 정리에는 생각이 없으십니까?”

걱정이 한가득한 밀러의 목소리.

잔정이 많은 그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3년 동안 프리미어 리그를 향해 함께 힘쓴 친구들 아니던가. 실력을 떠나 이들 중 몇몇을 내친다면 밤잠을 설칠 것이 분명했다.

심지어 소하라면 대의를 위해 얼마든지 매정하게 행동할 게 뻔한 인물.

미리 의중을 파악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자신이든, 선수든.

하지만 소하는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태도로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다.

“네? 선수단 정리를 왜 해요.”

뭔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는 태도다.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어조가 부족했는지 말을 덧붙인다.

“이야. 밀러 아저씨, 누구 내치고 싶은 사람 있어요? 말해봐요. 심사숙고해볼 테니까요.”

“그, 그게 아니라···.”

“무서운 사람이었네요. 혹시 알리가 휴가 가기 전날에 아저씨보고 대머리 될 거라고 해서 그런 거예요? 어떻게 아셨지? 나한테만 말한 건데.”

“···그 자식이. 아, 아니지. 그런 게 아닙니다!”

휴가를 떠난 알리를 잠시 머릿속에서 잘근잘근 씹어준 밀러. 소하에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도록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간다.

“보통 승격하면 선수단 정리를 하지 않습니다. 프리미어 리그는 격이 다른 만큼 미달인 선수가···.”

“잠깐. 아저씨. 지금 제정신이에요? 지금 우리 팀 뎁스에서 줄이라고요?”

“주, 줄이자는 게 아니라···. 그저 의, 의중을 여쭤본 거죠.”

소하는 밀러가 한발 물러나자 나직한 한숨과 함께 역으로 질문을 내뱉었다.

“아저씨···. 3일 쉬고 오시더니 감을 잃으셨네요. 우리 팀 1군 선수단이 몇 명인지 까먹으셨죠?”

“저 그게···. 잠시만요.”

“뭘 잠시만이에요. 23명이에요.”

답답한 듯 가슴을 치며 후다닥 정답을 말해버리는 소하. 그의 말처럼 포츠머스의 선수단은 현재 23명이었다.

[GK- 아론 람스데일.

DF-앤디 로버트슨, 케빈 도슨, 찰스 말로리, 아담 웹스터, 매튜 다이스. 아다마 트라오레, 후벵 디아스. 방주호.

MF-잭 해리슨, 커너 러셀, 델리 알리, 마이클 반즈, 스티븐 데커, 칼빈 필립스, 프레디 스톤, 도봉산, 데클렌 라이스.

FW-조쉬 킹, 모하메드 살라, 존 말로리, 에링 홀란드, 마리오 발로텔리.]

여기에 한자리밖에 없는 골키퍼 자리에 새로 영입할 선수 한 명과 청소년팀에서 끌어쓸 세 번째 골키퍼를 합치면 25명이다.

“즉, 감축할 인원이 없다는 거죠. 다행스럽게도 나가고 싶어 하는 애들도 없고요.”

“아···! 이, 이런.”

자책을 금치 못하는 밀러. 그렇다. 25명이란 프로팀이라면 기본적으로 운영하는 선수단 숫자였기 때문이다.

조금 적을 때도, 많을 때도 있었지만 25명 수준은 꾸준히 유지해야만 했다.

불의의 사고가 일어났을 때 대처하기 위한 최적의 방안이었으니까.

“오히려 그동안 선수단 숫자가 적은 편이었죠. 운이 좋아 부상이 적어서 티가 안 났을 뿐이지만요.”

소하는 운이라고 말했지만, 실상은 식단개선으로 인한 체질 개선 덕분이었다.

여기에 요가와 필라테스 같은 프로그램도 꾸준히 병행한 것도 한 몫 거들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즉, 전반적인 구단 체질 개선이 핵심인 선수단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였다.

“큼큼. 그, 그렇다면 다행이지요.”

“물론, 언젠간 떠나보낼 애들이 있긴 하겠죠. 하지만 이번 시즌은 아니에요.”

“···어째섭니까?”

밀러가 묻자 소하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찡끗 윙크를 날린다.

“돈이죠. 프리미어 리그를 뛰어본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의 몸값 차이는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많이 차이 나니까요.”

“···.”

“프로판에서 ‘이별’이란 늘 따라오는 법이에요. 그렇다면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죠.”

“하기야···. 게다가 지금 굳이 똘똘 뭉친 선수단의 사기를 떨어뜨릴 필요도 없겠군요.”

“그것도 한가지 이유로서는 충분하죠.”

소하를 밀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매우 긍정했다.

3년간 상당한 선수들이 포츠머스를 떠났지만, 지금은 다르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프리미어 리그에 입성한 시점 아니던가.

이를 위해서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하부리그에서 개같이 굴렀는데, 토사구팽해버린다?

선수들의 신뢰를 잃어버릴 거다. 다음엔 자신이 버려지지 않은 거라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선수는 사람이니까. 데이터가 아닌. 여기서 신뢰를 잃는다면 팀의 공중분해는 초읽기지.’

팀을 신뢰할 수 없다면 지금은 관심도 가지지 않는 타 팀의 이적 제의를 열렬히 환영할 터. 아직 영세구단인 포츠머스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길게 봐야 해. 길게.’

종신과도 다를 바 없는 길고 길 포츠머스의 감독직. 근시안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위업을 이룰 수 없을 거다.

“하여튼 이제 걱정은 집어치우시고 일이나 하죠.”

“아닙니다. 이제 본론입니다.”

“네?”

또다시 본론이라니. 심지어 전보다 훨씬 심각한 표정이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밀러가 이 정도로 딱딱한 표정을 보여주는 건 처음인지라 소하로서도 절로 긴장된다.

“정말로 알리 놈이 저보고 대머리라고 했습니까?”

“···.”

이거였나.

이거였다. 확실히, 그냥 스쳐 지나기에는 아쉬운 이야기이긴 하다. 아니,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알리 말고 다른 녀석들도 분명히 동조했을 텐데요.”

“···.”

“순순히 말씀해주십시오. 이놈들을 그냥···. 분명 필립스 놈도 한소리 했을 거 같은데요. 조쉬 킹은 말할 필요도 없죠. 먹은 밥이 아까울 정도로요.”

“···.”

바득바득 이를 가는 밀러. 앞머리가 점점 사라지는 그에게 있어서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일임은 확실했다.

“그···. 그게···.”

우물쭈물 멈칫하는 소하.

괜한 말실수 때문에 밀고자가 될 위기에 처한 그였다.

***

그날 이후 피를 토하는 3일 밤낮을 보낸 스카우트 팀. 전 세계의 골키퍼 데이터를 샅샅이 뒤져 드디어 만족스러운 3인방을 골라 소하에게 헌상했다.

“후후후···. 이것이야말로 저희의 피와 땀과 눈물입니다.”

“···고생하셨네요.”

썩은 동태눈깔을 한 스카우트팀의 안색을 바라보는 소하는 모처럼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그저 조금 장난 한번 쳐본 건데. 이 정도로 악에 받쳐 일을 할 줄 정말 몰랐다.

어차피 이들이 적절한 선수를 구하지 못해도 소하 자신이 나서면 되는 일이라 그리 중하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이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스카우트 팀은 위풍당당하게 첫 번째 선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선수는 정말 꿀물이 줄줄 흐르는 선수입니다.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브라질의 명문 팀, SC 인테르나시오나우의 선수입니다.”

“호오! 혹시?!”

팀의 이름을 듣자마자 어떤 선수인지 감을 잡은 소하. 제법이라는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바로! 알리송 베케르입니다!”

“와아! 100점 중에서 99점!”

알리송 베케르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소하는 절로 박수가 나왔다.

알리송 베케르라니!

AS로마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로마의 기적’을 쓰고 리버풀에서 월드클래스 골키퍼의 품격을 보여주는 최고의 골키퍼 아니던가.

현 16-17시즌에야말로 그가 가장 몸값이 저렴할 시기였다.

“굉장한 잠재성을 가진 선수이고 현 실력도 굉장합니다. 브라질의 레전드 골키퍼인 지다와 한솥밥을 먹으며 제대로 성장했죠.”

“훌륭해요.”

소하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직 세간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미래의 대형선수를 찾아내다니.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러 구단에서 접촉 중인 거로 보입니다.”

“AS로마인가요?”

“엇? 어떻게 아셨습니까?”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다. 모처럼 연달아 말실수해버린 소하. 이번에도 대충 얼버무리기 작전으로 간다.

“그, 그냥 그럴 거 같아서요.”

“네?”

“보고 끝났어요? 왜 쓸데없는 데 관심을 가지세요?!”

잘 먹히지 않자 되려 성질내기 작전으로 선회했고 효과는 만점이다.

“죄, 죄송합니다. 어···. 그리고 AS로마뿐이 아닙니다. 아스널에서도 관심이 있습니다.”

“네? 아스널에서요?”

깜짝 놀라 반문하는 소하. 그가 아는 미래에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승한 영향 때문인가?’

지난 시즌인 15-16시즌.

원래의 미래였다면 레스터의 동화 같은 우승이 벌어졌던 시즌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스널의 기적적인 재역전 우승!

승점 차이는 고작 1점이었다.

기어코 05-06시즌의 무패우승 이후로 우승을 달성한 아스널의 기세는 대단했다. 링크가 뜨는 선수마다 이름값이 장난이 없었으니까.

“확실한 정보입니다. 무려 1,000만 파운드를 제안했다고 하더군요.”

“천만 파운드 나요? 근데···. 아스널에는 이미 페트르 체흐가 있잖아요.”

“벵거 감독은 페트르 체흐를 한 시즌 만에 내릴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호오.”

달라진 미래.

달라진 팀들과 감독들의 움직임.

소하도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었지만 워낙에 신경을 쓸 팀들이 많은지라 놓쳐버린 근황이었다.

이런 놓친 부분들을 휘하 직원들이 발견해준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큰 도움이었다.

“그! 래! 서! 저희는 두 번째 선수이자 가장 추천하는 선수로서 페트르 체흐를 추천합니다.”

“···.”

이유는 딱히 묻지 않았다.

아스널에서 자리가 없어진 페트르 체흐라면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영입이 가능할 터. 실력이야 아무런 걱정이 없다.

전성기보다 신체적인 부분은 떨어졌겠지만 말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아니요. 세 번째 선수는 들을 필요가 없겠네요.”

“마, 마음에 들지 않으신···.”

“아니요. 지금 당장 아스널과 접촉을 시도해 볼게요. 우리의 영입 목표는 페트르 체흐예요.”

주저함 없이 선언하는 소하. 사실, 소하가 고려 중이었던 선수는 알리송 베케르, 에두아르 멘디, 에데르송 모라에스. 이 세 선수였다. 대안으로는 아약스의 안드레 오나나 정도?

하지만 페트르 체흐라는 이름에 홀딱 반해버렸다.

‘앞으로 쭉 키울 선수는 람스데일이니까. 경험 많은 전설적인 선수가 오히려 더욱 알맞다. 즉시 주전감으로도 최상급이고.’

여러모로 포츠머스에 정말로 어울리는 선수였다. 포츠머스 젊음은 경험 부족과도 같은 뜻이니까. 이런 베테랑 선수가 여러모로 필요한 시점이었다.

“정말 수고했어요. 스카우트팀은 우리 팀의 훌륭한 일원이에요.”

“크··· 크흡···.”

소하의 진심 어린 감사에 몸을 부들부들 떠는 스카우트팀. 그간의 노력이 보상받았다는 감격이 물밀듯이 덮쳐왔다.

***

“모두 잘 쉬다 왔냐? 얼굴을 보아하니 방탕하게 놀다 온 녀석은 없어 보이네. 아주 많이 잘했어. 아니지. 당연한 거지. 우리는 프리미어 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니까.”

선수들이 휴가에서 복귀한 날.

소하는 늘 그랬듯 선수들을 한데 모아 점호를 시행했다.

당연하게도 휴가에 복귀하지 않은 선수는 전무. 오히려 숫자가 늘었다.

이들은 물론, 이번에 새로 영입한 삼인방이다.

후벵 디아스.

방주호.

모하메드 살라.

엄밀히 따지자면 마리오 발로텔리도 신입생이었지만, 질리도록 익숙해진지라 신입이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였다.

하여튼 새로운 3인방은 아직은 기존의 선수들과는 붕 뜬 모양이다.

특히나 유일한 포르투갈 국적의 선수인 후벵 디아스는 상당한 긴장한 상태.

그에 반해 방주호와 모하메드 살라는 어색하지만 편해 보인다.

방주호야 팀 내에 한국인이 많기도 해서 이해가 갔지만 살라는 조금 의외 일.

하지만 의외로 모하메드 살라는 방주호와 인연이 있었다.

수년 전, FC 바젤에서 한솥밥을 먹다 못해 룸메이트였기 때문이다.

“오, 방!”

“오, 살라!”

4년 만에 재회한 묘한 인연.

이는 소하가 의도한 바가 크다.

‘다른 선수는 몰라도 모하메드 살라만큼은 아예 문화권이 다른 선수니까.’

적응의 문제다. 프리미어 리그를 경험했다고 해도 팀 내의 분위기는 천차만별.

심지어 포츠머스는 소하의 집착에 가까운 홈그로운 위주 정책 덕분에 순혈주의 팀이 아니던가.

영연방선수로 빼곡해서 ‘이슬람교’를 믿는 ‘아프리카’ 출신 선수에게는 무인도와 다를 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예전 룸메이트를 만난다면 어떨까. 절로 긴장이 풀어질 거다.

“환영회는 잠시 뒤에 하기로 하고, 프리시즌에 앞서 이번 시즌 전지훈련 장소를 발표하겠다.”

기대했던 대로 모하메드 살라의 표정이 밝아 보이자 내심 쾌재를 부르던 소하. 리그를 앞두고 정말 중요한 프리시즌의 일정을 발표하기로 작정했다.

“기뻐해라! 이번 시즌 전지훈련은 미국이다!”

소하가 호령하자 선수들은 활짝 웃으며 반긴다.

“오! 드디어 전지훈련지다운 장소가 나왔다!”

“난 또 트릭쇼를 하시는 줄 알았는데!”

“예쓰! 미국이다!”

매우 반기는 선수들. 그간 전지훈련을 생각하면 썩 좋은 추억은 없었기에 마냥 행복하다.

하지만 소하는 선수들에게 천사이자 악마 그 자체. 이렇게 좋아할 일을 소하가 그냥 할 리는 없었다.

“덤으로···. 인터내셔널 챔피언스컵에 참가하기로 했다. 모두 뭐 빠지게 열심히 임하도록!”

“···.”

“···.”

할 말을 잃은 선수들.

순식간에 소하의 뜻을 파악해버렸다.

그간 같이 보낸 세월이 세월이었으니까.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

프리시즌에 열리는 유럽 각지의 초명문, 초강팀들이 대거 참가해 자웅을 겨뤄보는 대회다.

그리고 소하는 어떤 팀이 상대라도 무조건 승리하길 바라는 감독.

요컨대, 고생길이 활짝 열렸다는 이야기였다.

< 164화.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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