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163화 (163/306)

< 163화. 돈을 쓰는 남자. (4) >

이집트의 파라오, 모하메드 살라!

지금으로부터 1년 후인 17-18시즌에 ‘월드 클래스’, ‘인간계 최강’, ‘EPL의 왕’, ‘리버풀의 파라오’로 각성하는 초슈퍼퀄리티 선수였다.

12-13시즌.

스위스 슈퍼리그의 절대강자 FC바젤에 입단했고 그해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에서 첼시를 상대로 ‘무쌍’을 찍었다.

그때 붙은 별명은 이집트 메시.

이 선수에게 잔뜩 혼이 나고 흠뻑 반해버린 첼시는 1년 뒤, 2014년 1월에 바로 1,100만 파운드란 거금을 들여 영입했다.

얼마나 첼시가 그에게 반했는지 알 수 있는 행보였다.

하지만 모하메드 살라의 첼시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다. 아니, 그의 프로축구선수 생활 중에 최악의 암흑기였다.

통산 19경기 2골.

처참한 성적과 더불어 자신감 하락으로 인해 빛이 나던 유망주는 흔하디흔한 썩은 유망주로 변했다.

벼랑 끝에 몰린 그가 선택한 길은 이탈리아 1부리그 세리에A, ACF 피오렌티나로의 임대. 흔히 ‘보라돌이’, ‘피렌체’라고 불리는 이탈리아의 명문 중의 중문 구단이다.

그리고 이 구단으로의 임대 이적은 신의 한 수였다. 화려하게 부활하며 1,500만 유로로 세리에A의 또 다른 명문인 AS 로마로 이적하게 된다.

15-16시즌, 살라는 세리에의 특급이자 ‘살라는 알라’라는 별명마저 붙었고 첼시 시절의 멍에를 완벽하게 지웠다.

42경기 15골 7도움.

한 시즌 만에 20개가 넘는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탑 클래스의 반열에 오른 모하메드 살라.

그런 그가 현시점인 16-17시즌에 포츠머스에 합류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 그리고 성소하 감독의 밑에서 꼭 뛰어보고 싶었다.”

첼시 시절의 불명예를 회복하고 싶었고 가장 큰 요인은 소하의 존재였다.

세계 최고의 감독 재능.

3년 연속 승격을 달성한 포츠머스의 전설적인 감독.

신의 경지에 오른 선수 육성 능력.

등등. 소하에게 붙은 수식어는 셀 수도 없이 많다.

자고로 뛰어난 감독 밑에서 뛰고 싶은 마음은 선수라면 누구나 품는 법.

“포츠머스가 이제 갓 승격한 팀이란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곧 강해질 팀이고 전 그 과정의 일부가 될 겁니다.”

일부 전문가들이 포츠머스로의 이적은 삼보 후퇴라는 비판을 했지만 모하메드 살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소하가 있으니까.

포츠머스는 어차피 강해질 테니까.

오히려 야망이 넘치는 선수에게는 최고의 구단일지도 몰랐다.

‘3년 계획···. 이걸 성소하 감독과 함께 이룬다면 나는 전설이 될 거다.’

갓 승격한 구단이 트레블이라니. 이걸 달성한다면 후보 선수라도 영원히 이름이 남을 거다.

만약 주전 선수라면?

말할 필요도 없다. 바로 축구선수의 꿈인 ‘발롱도르’의 후보로 올라설 테고 축구의 신이 될 거다.

게다가 AS 로마 측에서도 포츠머스의 제안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이적료는 정확히 3,800만 파운드, 리그 잔류 성공 시 옵션은 400만 파운드다.

포츠머스의 잔류 가능성은 한없이 100%에 수렴하는바. 그렇다면 이적료는 총합 4,200만 파운드라는 거금이다.

심지어 유로도 아닌 파운드다!

한화로 650억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

매년 FFP를 지키기 위해 주력 선수들을 팔아왔던, 팔아치우는 미래가 기다리는 AS 로마로서는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1,500만 ‘유로’ 선수가 1년 만에 4,200만 ‘파운드’ 선수가 되었다. 3배가 넘는 이익을 거둔 완벽한 거래.”

10년대 들어서 최고의 거래였다고 자화자찬할 정도의 수준!

포츠머스는 최고의 재능과 미래를 가진 선수를 영입해서 좋았고,

AS 로마는 최고의 이익을 거둔 훌륭한 거래여서 좋았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완벽한 이적 사가였다.

***

“후후후···. 완성이다.”

축구계를 떠들썩거리게 만든 이적 사가의 주인공 소하. 그는 선수단 목록을 바라보며 늘 그랬듯 음흉한 미소를 흘렸다.

7,000만 파운드에서 남은 잔액은 겨우 300만 파운드였지만 마냥 웃음만 나왔다.

“완벽한 공격진용이야. 마리오 발로텔리, 조쉬 킹, 에링 홀란드, 모하메드 살라라니. 골라 쓰는 재미가 쏠쏠하겠는데?”

제2의 미스터 포츠머스, 조쉬 킹!

개심한 악마의 재능, 마리오 발로텔리!

축구 괴물, 에링 홀란드!

파라오, 모하메드 살라!

이름값만 보자면 역대급이다.

2~3년 후에는 이 네 명의 선수의 몸값만으로도 2억 파운드 이상의 가치를 가질 거다.

“모 매니저 게임에서 이 정도로 선수단을 맞춰둔다면 현자 타임이 와서 새로 시작하겠지.”

너무나 강해져 버려 재미가 없을 지경에 처한 수준이다.

하지만 게임은 게임일 뿐.

현실은 조금 달랐다.

아직 포츠머스는 먹이사슬의 최하층이었으니까.

“방심은 일러. 아직 마무리해야 할 계약도 남아있고. 그리고···. 이제 막 재밌어질 시간이지. 자이언트 킬링. 이게 스포츠의 참맛 아니겠어?”

자이언트 킬링.

약팀이 강팀을 잡는다는 축구계의 용어. 혹은 업셋(upset)이라고도 표현한다.

모름지기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승리하는 모습은 역사적으로도 가슴을 뜨겁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나저나 푸른 유니폼의 살라라니. 익숙하면서도 어색하구만.”

첼시 시절의 푸른색.

리버풀 시절의 붉은색.

당연하게도 미래의 사람들은 ‘붉은’ 살라가 훨씬 익숙했다. 그의 전성기가 시작된 곳이니까.

얼마나 뛰어났던지 영화, ‘예스터데이’에서는 주인공이 리버풀의 명물로 ‘모살라’를 꼽기도 할 정도였다.

“클롭 감독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부터 살고 봐야죠. 어차피 당신은 워낙 잘난 사람이라 잘할 거잖아?”

지난 시즌, 시즌 도중에 경질된 브렌던 로저스 감독을 대신해서 리버풀의 지휘봉을 잡은 위르겐 클롭 감독에게 소소한 사과를 건네는 소하.

물론, 말과 얼굴은 전혀 어울리지는 않았다. 전생에서야 롤모델로 삼았던 감독이지만 지금은 ‘경쟁자’였을 뿐.

결국 우승컵을 두고 싸워야 하는 상대였고 적이란 뜻이었다.

“현시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이번 이적은 몇 년 앞을 내다본 수라는 말이지.”

소하는 푹신한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작게 읊조렸다.

그렇다. 소하의 말처럼 겉으로 보기에도 대단한 이적 사가에는 미래를 알지 못하고선 알 수 없는 암수가 숨어있었다.

“맨체스터 시티와 리버풀. 이 두 팀은 너무 강해져. 아무리 미래를 안다고 해도 정면으로 우직하게 승부를 건다면 몇 년이 걸릴지 나도 모르지. 10년? 20년? 더 걸리지도.”

소하의 말처럼 201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 초중반은 이 두 팀의 시대였다. 종종 첼시가 뛰어난 모습을 보였지만 리그에서는 양 팀이 독주했다.

말 그대로 천하무쌍!

압도적인 돈과 실력으로 정상을 두고 용호상박을 하는 두 팀은 정공법으로 공략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미리 그들의 핵심을 우리 팀 선수로 만들어야지. 약체화랄까. 이렇게라도 해야지 그나마 가능성이 생긴다.”

맨체스터 시티의 후벵 디아스.

리버풀의 모하메드 살라.

훗날 각 팀의 수비와 공격을 맡는 핵심 선수들이다. 이들을 미리 선점한다는 이야긴, 적은 약해지고 나는 강해지는 치밀한 묘수라는 뜻!

절묘하면서도 치사한 소하다운 수작이었다.

“후후후···. 잘 쓰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소하. 꿈을 이루기 위해선 가진 미래를 사용해야만 했다. 비록 그것이 비겁하게 보일지라도.

***

승승장구하는 포츠머스.

엄청난 이적들로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듯했지만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아쉽지만···. 전 은퇴를 하겠습니다.”

단기 임대로 쏠쏠한 재미를 봤던 셰이 기븐의 선언. 소하는 이 39세의 노장을 완전히 영입해서 1년을 더 굴리려는 간악한 계획을 세웠지만, 물거품이 되었다.

그야말로 천벌!

천벌이 아닐 수가 없었다.

노인학대의 말로랄까.

“스토크 시티에서 코치 생활을 제안했습니다. 저도 동의했고요.”

심지어 1년 굴리고 다음엔 코치로도 굴리려던 잔인한 계획마저 물거품이 되었다.

“···.”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얼이 탄 소하. 이 말은 즉 골키퍼 자리에 비상이 걸렸다는 이야기였다.

“어···?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아론 람스데일은 훌륭한 재능이지만 아직 너무 어리다. 게다가 세컨드 골키퍼마저 없는 상황. 영입이 필요해졌다.

하지만 남은 잔액은 300만 파운드뿐. 이건 심히 좋지 않다.

“감독님! 이럴 때를 대비해서 저희가 골키퍼를 물색해두었습니다!”

마침,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왔다.

놀랍게도, 이번 시즌에야말로 밥벌레라고 완전히 낙인찍힐 뻔한 스카우트 팀이 그 동아줄이었다.

“오오. 당신들도 일을 하고 있었군요? 장합니다.”

“···.”

소하의 열렬한 환영 아닌 환영에 잠시 말문이 닫힌 스카우트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다.

“저희가 이럴 때를 대비해서 임대 영입부터 최대 500만 파운드의 몸값을 지닌 골키퍼를 자세히 스카우트했습니다. 즉, 현재 남은 이적 자금 300만 파운드로 제법 괜찮은 선수를 영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모처럼 일을 했다는 기쁨에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다. 물론 소하도 맞장구를 쳐주며 침을 튀긴다.

“아주 훌륭해요! 아주 훌륭해!”

“그리고 3일 밤낮으로 검토한 결과 300만 파운드면 굉장히 훌륭하고 유망한 선수를 영입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좋아요! 아주 좋아! 그래서 그 선수가 누군데요!”

“그 선수는 바로 독일 국적을 가진 선수입니다!”

스카우트팀의 보고를 들은 소하는 무릎을 ‘탁’ 치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오오! 역시 골키퍼 하면 독일산이 최고죠. 자동차, 사진용 렌즈, 생활용품. 그리고 골키퍼는 독일에서 사라고 했으니까요.”

“백번 지당한 말씀입니다!”

서로 죽이 아주 잘 맞는다.

급한 상황에서 해답을 가져온 사람이 이뻐죽겠다는 소하와,

오랜만에 밥값 했다는 기쁨이 넘친 스카우트팀.

이 어찌 죽이 잘 맞지 않을 수가 있으리.

“그래서, 그래서 빨리. 누군데요.”

“그건 말이죠···.”

꿀꺽. 마른침을 내 삼키는 소하. 존재감 없던 스카우트팀이 이 정도로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다니. 절로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바로, ‘로리스 카리우스’ 입니다!”

자신감 있게 외친 스카우트팀.

하지만 소하는 표정이 싹 굳어버린다.

“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로리스 카리우스 말입니다! FSV 마인츠 05에서 뛰는 훌륭한 선수죠.”

“···.”

“심지어 얼굴도 엄청나게 잘생겼습니다. 분명 상업적으로도 대박을 터트릴···.”

“조용.”

소하는 흥분해서 마구 떠드는 스카우트팀의 입을 봉인했다. 물론, 스카우트팀이 추천한 로리스 카리우스의 평가는 대체로 옳았다.

뛰어나 보이는 잠재성.

마누엘 노이어의 뒤를 이어 분데스리가 키커지 팬 투표 골키퍼 부분의 2위를 달성한 훌륭한 실력.

매우 잘생긴 외모.

외모도 상당히 축구판에 중요하다.

슬픈 이야기지만 잘생긴 선수의 유니폼 판매량은 숫자가 증명해줬으니까.

하지만 미래를 아는 소하로서는 로리스 카리우스만은 절대 용납하지 못했다.

그는 바로,

‘혼자 힘으로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팀을 지게 했으니까.’

꿈의 무대인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오롯이 혼자 두 번의 실수로 팀을 지게 만든 원흉이었다.

미래의 일이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절대 영입해서는 안 될 선수였다.

“···쯧.”

혀를 차는 소하. 이에 잔뜩 신이 났던 스카우트 팀은 금세 쭈그러들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모처럼 밥값 하나 싶었더니만···. 에잉. 무상급식을 아직도 더 먹어야 하나···?”

“···.”

“이제는 귀까지 먹었나? 눈도 안 좋고 귀도 안 좋으면 차라리 요양원으로 보내는 게···.”

소하가 무서운 표정으로 말을 조용히 읊조리자 그제야 정신을 번쩍 차리는 스카우트 팀. 후다닥 자리를 뜬다.

“아, 알겠습니다. 더, 더 좋은 선수를 물색해보겠습니다!”

다급하게 비명을 지르며 내달리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하는 작게 미소를 짓는다.

“흐음. 이번 골키퍼 부분은 스카우트팀에게 맡겨볼까. 미안하기도 하고···. 솔직히 너무 절박해 보여.”

모처럼 연민이란 감정을 느껴버린 소하. 갑작스럽게 찾아온 위기를 이번에는 타인에게 맡겨보기로 했다.

< 163화. 돈을 쓰는 남자. (4)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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