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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162화 (162/306)

< 162화. 돈을 쓰는 남자. (3) >

계획을 세운 소하는 거침없었다.

제일 먼저 접근한 방주호.

을의 처지에서 사는 놈답지 않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매우 호쾌하게 오퍼를 넣었다.

“그 선수 팔아줘요.”

“···.”

어찌 저리도 당당한지.

팔고 싶다는 마음이 싹 사라질 정도의 패기가 넘치는 태도였지만 도르트문트는 그저 고마웠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100만 ‘유로’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진행하겠습니다.”

100만 유로.

한화로 13억쯤 하는 금액이다.

매우 부유한 포츠머스로서는 사는데 어떠한 지장도 없는 금액!

하지만 소하는 그리 만만찮은 사람이었다. 애초에 영세구단 감독의 마음이 뿌리 깊게 박힌지라 가격을 깎지 않으면 병에 걸리는 체질이었다.

“에이 전력 외 선수한테 100만 유로나 받다니요. 상도덕 어디? 양심 어디? 80만 유로로 가죠.”

“···좋습니다.”

날름 20만 유로를 절약했다.

80만 유로의 이적료라면 방주호 선수 상업적 가치로 봤을 땐 한 시즌 만에 원금 회수가 가능한 금액.

전력 강화도 하고 돈도 벌고.

일거양득이었다.

“어차피 우리 팀이 아니라면 한국에서 80만 유로도 뽑아먹지 못해.”

포츠머스 프리미엄이었다.

대한민국 국적이 항상 큰 상업적 이익을 선물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직 포츠머스만이 대한민국 국적의 선수를 영입했을 때 쏠쏠한 재미를 봤고 도르트문트 측도 이를 알았기에 수락했다.

순식간에 진행된 구단 간의 협상. 이는 선수 본인도, 에이전트도 모를 만큼 신속한 협상이었다.

***

방주호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을 해볼 출전 시간에 대한 걱정이다.

‘···이 구단에서 끝났군.’

오랫동안 유럽 무대에서 뛰었던 방주호는 작금의 처지를 너무나도 잘 알았다.

어지간해서는 재기하기 불가능하다는 사실조차 말이다.

‘후우. 어쩌지.’

세간에서는 국내 복귀를 하라는 잔소리가 범람했다. 하지만 방주호는 아직 국내 복귀는 하고 싶지 않았다.

부인도 유럽인이었고 어린 딸까지 부양해야 하는 가장으로서 유럽 생활을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난 아직 도전하고 싶다.’

가장 중요한 이유다.

아직 방주호 자신이 유럽 무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좋아지지 않았다.

도르트문트에서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의 주전 왼쪽 풀백인 ‘라파엘 게헤이루’의 영입이 초근접 했기 때문이다.

리그1 로리앙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친 수준급 왼쪽 풀백의 영입은 방주호에게 도르트문트의 생활이 끝났다는 선고였다.

‘하아. 관심 가져주는 다른 팀은 없나?’

에이전트를 통해 소식을 알아보며 전전긍긍하던 방주호. 휴가 기간에도 잠 못 드는 밤을 보내며 마음고생을 할 때 눈을 의심케 하는 뉴스를 접했다.

[방주호 선수의 포츠머스 이적 임박. 엄청난 속도로 구단 간의 합의가 완료되었다.]

[남은 건 선수와의 개인 협상뿐.]

[방주호 선수의 선택은?]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게 대체 뭔 날벼락이란 말인가!

아직 꿈을 꾸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옆에서는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딸아이의 온기가 생생히 느껴졌다.

그렇다면 이것은 현실이었다.

“엘리엇?!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서둘러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날린 방주호. 도대체 에이전트란 작자가 뭐 하는 거냐는 질책이 담겨있었다.

보통은, 기사가 나기 전에 에이전트를 통해서 선수가 제안을 파악했으니까.

“···그, 그게 나, 나도 지금 알았다고. 막 전화하려던 참이었어.”

“···.”

매우 당황하는 에이전트의 목소리에 방주호는 빠르게 사태를 파악했다.

‘에이전트나 나에게 연락을 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진행된 이적이구나···.’

축구판에서는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선수에게 알리지 못할 만큼 빠르게 진행되는 구단 간의 협상은 그리 드문 것도 아니었다.

“···방? 그래서 어쩔 거야?”

방주호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느라 침묵하자 에이전트가 넌지시 의중을 물었다.

물론, 대답은 듣지 않아도 뻔했지만 말이다.

“어쩔 거냐니. 무조건 가야지.”

일말의 고민 따윈 없었다.

포츠머스라니. 포츠머스라니!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선수라면 백이면 백, 모두가 입단하고 싶어 하는 최고의 구단 아니던가.

주전 경쟁에서 밀려 국내 복귀 이야기를 지겹도록 듣는 방주호로서는 신의 은총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럼 내가 서둘러 포츠머스로 향해서 협상을···.”

“아니.”

방주호는 에이전트의 말을 다급하게 끊었다.

“나도 갈게. 아니, 이참에 가족들이랑 전부 다 포츠머스로 가서 집까지 구해야겠어.”

“···그, 그래 알겠어.”

휴가 중이면 어떠리. 당장 가서 계약을 마무리를 짓고 포츠머스에 눌러앉을 생각이 가득했다.

그렇게 결정된 방주호와 그의 가족의 포츠머스 여행. 아니, 포츠머스 이주.

재빨리 개인 협상 일정을 잡고 포츠머스의 클럽하우스로 향했다.

이에, 따로 국내 복귀나 해외여행을 하지 않은 도봉산과 유해진이 마중하러 나왔다.

“어? 형. 오셨어요?”

“왔구나? 안에서 감독님이 기다리고 있어.”

국가대표팀에서도 자주 만나 친분이 두터운지라 매우 환영하는 도봉산과 대선배인 유해진.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만연하다.

이래저래 같은 팀에 같은 국적의 선수가 합류한다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이렇게 마중하러 나오지 않아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고마워 봉산이도.”

방주호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적이 어려운 이유는 적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문화.

전혀 다른 동료들.

전혀 다른 감독과 스텝.

이들의 스타일에 맞춰야 하기에 해외리그로의 이적이란 그리 만만치 않을 일이었다.

하지만 포츠머스는 단장, 감독, 선수 모두 한국인이 포진한 특별한 구단이라 방주호는 절로 적응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나저나···. 성소하 감독님은 어떤 분이시죠?”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던지라 서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본격적으로 가장 궁금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방주호의 질문에 도봉산과 유해진은 웃음을 머금은 채로 굳어버렸다.

“···왜, 왜 그러세요?”

한 번도 보지 못한 둘의 표정에 불안감이 스며드는 방주호. 도봉산이야 그렇다 쳐도 대선배인 유해진이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항상 침착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던 멋진 선배였거늘.

도대체 성소하 감독이 어떤 인물이길래 이런 반응 보이는지 두려웠다.

“하. 하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주호 형. 감독님이야 뭐, 그냥 뛰어나시죠. 같이 있으면 즐겁고.”

“그, 그렇지. 어떤 면에서는 퍼거슨 감독님의 향기가 느껴지니까. 하여튼 최고의 감독이야. 배울 게 정말 많을걸? 봉산이 봐라. 요즘 화젯거리잖아.”

떨떠름하게 에둘러 말하는 도봉산과 유해진의 태도에 방주호의 걱정은 더욱 커졌다.

“에이. 곧 만날 텐데 뭘 그리 물어봐요. 이제 시간이 얼추 됐으니까 빨리 들어가 보세요.”

“맞아. 감독님은 시간약속 지키지 않는 걸 제일 싫어하시거든. 근데···. 맞나?”

“아마도요···. 워낙 싫어하시는 게 많은 분이라···.”

“큼큼. 조용. 조용.”

뒷말을 서로 속닥이느라 잘 듣지 못한 방주호. 더더욱 불안감은 커졌지만 어쩌겠는가. 맞부딪쳐봐야지.

“후우.”

그렇게 처음의 편안함은 송두리째 잃어버린 방주호는 깊은 호흡을 몇 차례 내쉬고 소하를 만나러 갔다.

‘특이하네. 보통 협상은 감독이 아니라 프런트에서 진행하지 않나?’

조금 이상했지만 그만큼 다방면으로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고 곧 소하의 사무실에서 대면하게 되었다.

“···.”

사무실에 들어가자 묵묵히 바라보는 소하의 시선이 쏟아졌다.

꿀꺽.

절로 긴장된다.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더더욱 긴장이 더해졌다.

‘그나저나···. 정말 잘생기긴 하시네. 심지어 나보다 훨씬 어려 보여.’

실제로는 3~4살 많은 소하였거늘. 겉보기에는 자신보다 4~5살 어려 보였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협상을···.”

이상한 침묵을 이기지 못한 방주호의 에이전트 엘리엇이 포문을 열었다.

덕분에 소하도 침묵을 깨고 반응을 보였다.

“잠깐.”

“···?”

“네?”

차디찬 북해의 바닷물 같은 냉엄한 목소리다. 무언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기세가 역력하다.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을까?

설마 가족들과 함께 이곳으로 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어, 어쩌지. 첫인상이 중요한데.’

더더욱 좌불안석이 된 방주호.

정말로 포츠머스에 입단하고 싶었기에 식은땀과 함께 목이 활활 탄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라은이 어디 있어! 포츠머스에 라은이 데리고 왔다며! 왜 여기에는 데리고 오지 않은 거야!”

“···.”

“당장 가서 데려와. 그러지 않으면 협상 따윈 없다.”

“···.”

아···!

방주호는 그제야 도봉산과 유해진의 표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했다.

이 사람은 그래, 조금 이상했다.

***

방주호의 영입은 순식간에 끝났다.

구단 간의 합의부터 선수의 개인 협상까지 걸린 시간은 단 2일.

더 정확히 말하자면 채 만1일이 겨우 지났을 뿐이었다.

이 영입에 대한민국 팬들은 당연히 쌍수를 들었다.

-좋은 영입이야.

-와. 방주호 선수가 그럼 14번째 한국인 프리미어 리그 선수네.

-도르트문트에서 완전히 밀린 선수였는데. 대박 터졌네.

-세계 최고의 감독 중 하나라는 성소하 감독에게 지도받는 한국인이 둘이나 된다니. 2018년 월드컵이 벌써 기대돼.

당연한 반응이었다.

한국인이라면 한국인이 프리미어 리그에 합류하길 누구보다 많이 바랐으니까.

그에 반해 포츠머스의 현지 팬들은 약간 의견이 갈렸다.

-방주호? 우리 팀에 합류할 실력인가?

-처음 들어보는 선수야. 그래도 성소하 감독을 믿어봐야지.

-같은 국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영입을 진행할 감독이 아니니까 믿어봐야지.

방주호를 믿진 않았다.

그저 소하를 믿었을 뿐.

소하가 선택한 선수라면 과거에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심지어 그 ‘악동’ 마리오 발로텔리도 갱생한 감독 아니던가. 걱정할 필요도 없었고 더 이야기할 여유도 없었다.

곧이어 줄줄이 이적설이 터졌기 때문이다.

[벤피카의 후벵 디아스 영입 근접.]

[이적료는 2,500만 유로로 예상.]

[후벵 디아스는 어떤 선수인가?]

[세계 최고의 수비수로 성장할 가능성을 지닌 최고의 즉시 전력감 유망주.]

곧이 후벵 디아스의 이적설이 터졌고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모 매니저 게임에서도 대단한 유망주로서 유명한 선수 아니던가. 굉장히 유명하며 유망한 선수였기에 서포터들은 절로 어깨춤이 추어졌다.

-미쳤다. 미쳤어. 찰스 말로리의 뒤를 이를 완벽한 선수야.

-와. 우리 팀이 2,500만 유로짜리 선수를 사게 되는구나. 3년 전에는 200만 유로도 없어서 구단이 사라질뻔했는데.

-너무 행복하다.

-난 서버렸어.

불끈불끈해진 포츠머스의 서포터들. 충분히 만족할만했지만 이제 겨우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포츠머스의 다음 표적은 이탈리아 세리에 A의 특급이란 소문이!]

[세리에 A의 특급선수는 아프리카에 속한 국적을 가진 선수라는 게 정설.]

[왼발잡이 윙어.]

후벵 디아스의 영입에 매우 가까워지자 다음번 이적설이 솔솔 퍼졌다.

물론, 서포터들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이적시장이 열리면 항상 헛소문이 퍼지기 마련이었으니까.

-에이. 우리가 무슨 특급선수를 사드려.

-이거 완전 개찌라시네. 너무 비현실적이야. 우린 이제 갓 승격한 팀이라고.

-기자들은 정신 좀 차려야 해. 뇌내망상을 기사로 내서 돈을 버는 게 정말 기자일까?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이적설이라 사실을 낸 기자들만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곧 실체가 밝혀졌고 기자들은 무죄로 판명됐다.

[포츠머스, 모하메드 살라의 영입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예상 이적료는 3,500~4,000만 파운드. 선수 본인도 프리미어 리그 복귀에 큰 관심을 가졌다.]

[구단 간의 합의 완료. 이제 남은 일은 선수와의 협상일 뿐.]

[포츠머스의 비전에 매료된 모하메드 살라. 이번 주 내로 이적 제안을 수락할 것.]

서포터들이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빠르게 진행된 모하메드 살라의 이적.

채 맨정신을 되찾기도 전에 이적은 완료되었고 공식발표가 났다.

[모하메드 살라, 포츠머스 이적 완료. 이적료는 3,900만 파운드. 옵션은 500만 파운드 정도로 추정.]

[팀 내 최고 연봉자 대우조항에 만족한 모하메드 살라. ‘포츠머스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싶다.’라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성소하 감독의 미친 영입력. 도대체 그의 3년 계획이 무엇이길래 ‘모 살라’마저 반했는가?]

곧이어 소하와 모하메드 살라가 포츠머스의 유니폼을 들고 찍은 사진이 공개됐고 서포터들은 모두 혼절해버렸다.

< 162화. 돈을 쓰는 남자. (3)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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