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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161화 (161/306)

< 161화. 돈을 쓰는 남자. (2) >

포츠머스에서 가장 한가한 부서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백이면 백 한 곳을 지칭했다.

그곳은 바로 스카우트팀.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긴 했지만, 성과가 없는 부서로 유명세를 떨쳤다.

“하. 억울하다. 솔직히 우리가 노는 건 아니라고. 진짜 전 세계를 누비면서 개처럼 일하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단지···. 성소하 감독님이 워낙 귀신같은 분일 뿐이지.”

“꿀 매물 선수를 암만 찾아도 성소하 감독님은 훨씬 좋은 선수를 헐값에 사 오니까···.”

“만화 용 구슬에서 나오는 스카우터라도 가지고 계시는가? 어떻게 이름도 모르는 선수를 영입하는데 다 대박이 나고 있어. 잠재성이 눈에 보이시나?”

억울했다. 매우 억울했다.

암만 좋은 선수를 보고서에 올려둬봤자 소하는 훨씬 좋은 선수를 데리고 왔으니까.

그의 안목은 마치 신의 눈이 달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 덕분에 스카우트 팀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상대 팀 전력분석 정도였을 뿐.

하지만 이번 시즌의 여름 이적시장은 이야기가 달았다.

“이번에는 다르지.”

“맞아···. 가성비 따위는 고려하지 않아도 돼. 최고의 선수로 가자.”

“돈이 많다!”

아직도 7,000만 파운드나 남은 리처드 맥닐의 전폭적인 지원금.

재계약에 1,000만 파운드 정도 사용되더라도 6,000만 파운드라는 거금이 남아있다.

한화로 근 1,000억에 가까운 거금!

이 정도면 A급 선수를 둘 정도 사드려도 충분했다.

때마침 소하의 지시도 안성맞춤이었다.

“b급 선수 여럿보단 A급 선수 하나가 좋습니다. 좋은 선수를 스카우트해 주시길 바랍니다.”

자고로 잡어 여러 마리보다는 대어 한 마리가 평생 기억에 남지 않던가.

애매한 선수 여럿보다는 확실한 선수 하나가 훨씬 좋다는 사실은 축구의 역사가 증명했다.

“이번에야말로 감독님께서 우리가 스카우트한 선수를 영입할 절호의 기회다.”

“주급 도둑이라는 오명을 이번 기회에 완전히 씻고 만다.”

“밥값 하러 가자!”

투지를 불태우는 포츠머스의 스카우트팀. 이번 여름 시장에서 그들의 염원이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

“흐음. 역시 그 포지션의 보강이 가장 절실하겠죠?”

소하는 턱을 쓰다듬으며 옆자리의 밀러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밀러고 소하를 따라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선수단의 최고 권력인 감독과 수석코치의 밀담. 프리미어로 복귀한 포츠머스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였지만 둘의 상태는 영 좋지 않다.

평소 미청년이라 불려도 될만한 소하는 서울역 노숙자와 별로 다를 게 없었고,

후덕한 인상 덕분에 푸근함을 주던 밀러는 사업에 실패해 술통에 빠진 방구석 폐인과 다름없다.

심지어, 밀담을 진행 중인 소하의 감독 사무실은 돼지우리가 따로 없다.

온갖 인스턴트 식품의 포장지가 여기저기 널브러진, 가히 세계 3차대전 직후의 모습이다.

“후후···. 오랜만에 새하얗게 불태웠군요. 며칠을 안 잤죠?”

“허헛···. 3일째입니다.”

거뭇거뭇해진 눈가를 비비며 대답하는 밀러. 한창때 노느라 밤을 새운 적은 있어도 일하면서 이러긴 처음이라 새로운 경험이었다.

“고생하셨어요. 이걸로 우리 팀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살아남을 거예요.”

“이놈의 직업은 시간이 촉박한 게 흠입니다.”

이들이 3일이나 밤을 지새운 이유는 별거 없었다. 그저 이적시장 계획을 세우기 위함이었을 뿐.

하지만, 단순한 목표에 비해서 상당한 난관임은 부정할 수 없다.

여름 시장에서의 성과는 그대로 프리미어 리그에서의 생존과도 직결될 테니까.

“제 억지에 이렇게 따라와 주시다니. 감사하면서도 죄송하네요.”

모처럼 진심을 담아 입을 연 소하. 이에 밀러는 다급하게 손사래를 친다.

“아닙니다! 감독님. 프리시즌을 시작하자마자 선수를 데려오고 싶은 생각은 저 또한 동의하지 않았습니까.”

밀러의 말처럼, 소하의 고집 또한 이번 사태의 원흉이었다.

8월 말까지 진행되는 이적시장에서 소하는 선수들이 휴가에 복귀하자마자 새로운 영입생들과 프리시즌을 함께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한 달 반에서 두 달.

이 정도 시간을 일찍 합류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전혀 아니다.

“이야. 점점 축잘알로 변하고 계시네요. 프리시즌을 함께 한다는 건 적응기가 필요 없다는 뜻이니까요. 바로 즉시 전력으로 사용할 절호의 기회에요.”

“백번 옳은 말씀입니다!”

“역시 제 마음을 알아주는 건 밀러 아저씨밖에 없어요.”

“허허허헛. 천재 감독에게 이런 칭찬을 받다니. 가문의 영광입니다!”

서로의 얼굴에 금칠해주면서 잘들 논다. 누가 봤다면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을 거다.

하여튼 이들의 노력은 허사가 아니었던지라 누가 봐도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

“중앙 수비수와 왼발 윙어. 그리고 왼쪽 풀백. 이 세 자리만 채운다면 할 만해지죠.”

“맞습니다. 그렇고 말고요.”

이들이 뽑은 세 가지 포지션.

심사숙고 끝에 결정한 터라 흠잡을 곳이 없다.

이미 공격진은 조쉬 킹, 에링 홀란드, 존 말로리, 세 명에다가 마리오 발로텔리의 영입도 기정 확실시됐으니까 제외다.

중앙 미드필더진도 마찬가지.

델리 알리, 스티븐 데커, 마이클 반즈, 칼빈 필립스, 커너 러셀, 그리고 이젠 미드필더로 분류되는 데클란 라이스까지.

흠잡을 곳 없이 빵빵하다. 확실한 주전과 후보가 없을 만큼 누가 선발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포츠머스의 든든한 허리였다.

문제가 되는 건 중앙 수비수 자리였다.

케빈 도슨.

찰스 말로리.

아담 웹스터.

이 세 명만으로는 전 시즌을 치르기 애매하다. 데클란 라이스가 뎁스에 도움을 주더라도 말이다.

“찰스 말로리의 에이징 커브가 시작될 시간이죠.”

“후우. 아쉬운 일입니다. 이제 30대 중반이니까요.”

말콤 우드가 은퇴하며 선수단 내 최연장자가 된 찰스 말로리를 생각하며 소하와 밀러는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에는 사이가 좋진 않았지만 개심해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던 선수였거늘. 세월은 어찌 이리도 무상한지 모를 일이었다.

“두 달 뒤면 34세죠. 암만 몸 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피할 수 없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녀석은 이미 한계에요. 그 놀라울 정도의 투쟁심과 집념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죠.”

암만 스포츠 과학이 발달해서 선수의 생명이 늘었다 해도 30대 중반은 노장이었다.

겉으로는 아직 절정의 폼을 보여주는 찰스 말로리라도 한계에 다다랐음이 분명했다.

“결국 찰스 말로리의 빈자리까지 생각해서 영입을 해야 한다는 거죠.”

“끝이 멀지 않았으니까요···.”

근시안적인 계획으로는 절대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들이 선택한 선수는 미래에 굉장히 유망하며 현재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선수였다.

“‘후벵 디아스.’ 이 선수라면 향후 10년 이상 포츠머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거예요.”

“정말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선수더군요. 괜히 프로 데뷔도 하지 못한 애송이의 이름이 알려진 게 아니었어요.”

소하와 밀러가 뽑은 첫 번째 이적 대상은 ‘후벵 디아스’ 였다.

훗날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해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치는 선수.

플레이 스타일은 그저 완벽하다.

뛰어난 신체 능력과 축구 지능.

최상급 수비 기술과 왼발 오른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양발잡이다.

심지어 볼 플레잉 디펜더로서의 능력도 출중해 패스 능력도 뛰어나다.

“그야말로 완벽한 유망주이죠. 이미 그 실력은 프리미어 리그 하위권의 준 주전을 차지할 정도예요.”

“수비 조율이 조금 부족하지만, 케빈 도슨과 함께라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죠. 오히려 같이 뛰며 단점을 지울 겁니다.”

영입이란 단지 그 선수의 실력만을 보고 진행하지 않는다.

기존의 선수들과 얼마나 어울릴지도 자세히 판단해야만 했다.

만약 이미 파이터형 수비수가 팀의 핵심인데 또 파이터형 수비수를 주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영입했다고 치자.

이렇게 경기에 나선다면 서로 앞으로 튀어 나가 공을 끊으려다가 수비라인이 완전히 어그러질 거다.

그런 의미에서 발이 조금 느리지만 수비 조율이 좋은 케빈 도슨과 발이 빠르지만, 경험이 부족한 후벵 디아스는 완벽한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컸다.

“벤피카도 2,000~3,000만 ‘유로’선에서 제안을 받아들일 거예요. 저희로서는 거저죠.”

“허헛. 저희는 돈이 많으니까요. 선수도 거절하진 않을 겁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팀이니까요. 우리 팀은요.”

SL 벤피카는 유럽 축구계에서 알아주는 ‘거상’이다

11-12시즌부터 21-22시즌까지.

10년 동안 선수 판매로 1조 4,300억을 벌어들인 구단이니까.

이 말은 즉, 가격만 맞는다면 선수를 쉽게 보내준다는 뜻이기도 했다.

“경쟁자만 없다면 이미 이 선수는 우리 팀의 선수예요.”

확신하는 소하. 사실, 말과는 다르게 경쟁자는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미래를 아는 소하는 그를 아직 영입하려는 팀이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리고 왼쪽 풀백도 꽤 어려웠죠.”

“맞습니다. 앤디 로버트슨의 백업을 구하는 일이니까요.”

백업이란 너무 뛰어나지도 너무 달리지도 않아야 한다.

괜히 너무 뛰어난 선수를 영입한다면 출전 시간 때문에 갈등이 생길지도 몰랐으니까.

그렇다고 너무 못하는 선수라면 만일의 사태에 팀이 와르르 무너질지도 몰랐다.

현대 축구는 하나의 구멍이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수준까지 치밀하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누가 더 실수하지 않는가.’가 중요한 시대에 수비라인에 구멍이 있다면 결과는 보지 않아도 안다.

“그런 의미에서 방주호 선수는 제법 괜찮죠. 축구 지능이 뛰어난 선수라 훌륭한 벤치 자원이 되어줄 거예요.”

“여차하면 중앙에도 서줄 수 있는 소중한 멀티 플레이어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대한민국 선수라 상업적 수입도 제법 괜찮을 겁니다.”

다음 대상은 독일 분데스리가의 강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뛰는 대한민국 국적의 방주호 선수였다.

이미 반쯤 전력 외 선수로 전락한지라 구단 간의 협상은 일도 아니었다.

아마 구매 의사를 밝힌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거다.

“뭐, 개인 협상 또한 일도 아니죠.”

자신만만하게 호언장담하는 소하. 딱히 반박할 여지는 없었다.

대한민국의 국민 구단이라 불리는 포츠머스 아니던가.

심지어 선수단 내에는 도봉산과 단장으로는 ‘전설’ 유해진이 떡하니 자리 잡았다.

오지 않고서는 배기질 못할 거다.

“아주 좋아요. 아주 좋아. 귀한 왼발잡이 멀티 플레이어를 헐값에 영입할 수 있다니. 꿈만 같네요.”

“허허. 수준급의 왼발 선수는 언제나 소중한 법이지요.”

또다시 얼굴을 마주 보며 웃음을 짓는 소하와 밀러. 3일간의 피를 토하는 노력의 보람이 물씬 차올라 웃음을 멈추기 힘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진짜죠.”

“왼발 오른쪽 윙어. 이 선수는 핵심이기 때문에 정말 고생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잭 해리슨도 뛰어나지만 우린 좀 더 뛰어난 선수가 필요했으니까요.”

잭 해리슨. 이미 프리미어 리그 중하위권 주전급 실력으로 올라선 지 오래인 선수다.

하지만 이미 잠재력을 모두 채운 상태. 더 이상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단순히 생존만을 위한다면 별다른 대안없이 백업선수를 데려오면 충분하다.

그렇지만 포츠머스는 단순히 생존만을 노리는 팀이 아니지 않던가. 위대한 업적을 위해선 확실히 뛰어난 선수가 필요했다.

“전 말이죠···. 감독님의 입에서 이 선수의 이름이 나왔을 때 벼락을 맞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깜짝 놀랐죠?”

“당연한 거 아닙니까. 영입 가능성이 충분하며 확실한 실력을 갖춘 왼발 선수가 어디 흔합니까?”

밀러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하가 언급한 선수는 극한의 피로도 순간 사라질 만큼 대단했으니까.

“‘모하메드 살라.’ 이 선수야말로 대업의 주축이 될 거예요.”

현재 이탈리아의 1부리그, 세리에 A에 속한 AS로마의 핵심이었다.

1년 뒤 리버풀로 이적해 프리미어의 역사를 뒤바꾸는, ‘레코드 브레이커’로 진화하는 ‘월드 클래스’ 선수.

이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역대급 선수야말로 소하의 마지막 퍼즐이었다.

< 161화. 돈을 쓰는 남자.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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