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플레이오프. (6) >
전반전 이른 선제골을 달성한 포츠머스! 상당히 어려운 경기로 예상되었던지라 더욱 믿기지 않은 격변이었다.
“와아아! 가자아아!”
“보인다···! 보여!”
“포츠머스! 포츠머스!”
경기장을 찾은 서포터들은 이미 이성은 잃었으며 경기장을 찾지 못한 사람들도 눈알이 뒤집혔다.
-미쳤어. 미쳤다고!
-완벽한 카운터펀치였어.
-성소하 감독이 휴튼 감독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 앉아있었어.
-가즈아아! 프리미어 리그!
난리가 났다. 전반전 3분 만에 터진 이른 골!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축구를 조금만 안다면 쉽사리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가뜩이나 선제골을 넣은 팀이 승리 확률이 매우 높은 스포츠가 축구다.
여기에 중요한 경기일수록 선제골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는 것쯤은 어린아이도 아는 법.
포츠머스가 반쯤 승리를 거두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단적인 예로, 18-19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있다.
토트넘의 선수였던 무사 시소코의 전반전 이른 핸드볼로 인한 PK.
이로 인해 경기의 양상은 완전히 엉망이 되었고 그대로 패배하며 리버풀이 ‘빅이어’를 들었다.
초일류 팀들도 이런데 2부리그의 팀이라면 어떻겠는가.
보지 않아도 뻔했다.
게다가 전문가들의 눈에도 포츠머스의 압승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이른 선제골 때문이 아니다.
골을 넣는 과정에서 감독의 역량 차이를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성소하 감독의 압승입니다. 압승! 달라진 브라이턴의 선발진을 보고 순식간에 약점을 파악했어요.]
[선발은 1시간 전에 공개되었습니다. 그러니까···. 1시간 만에 성소하 감독은 전술적으로 앞서나갈 방법을 선수들에게 지시한 겁니다! 놀라워요!]
[단 하나의 변화로 모든 것을 꿰뚫어 봤습니다. 이제야 단언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천재를 눈앞에서 보는 중인 겁니다!]
전문가들의 입에서 쏟아지는 순도 100%의 극찬 세례!
눈을 의심케 하는 능력이었다.
그들로서도 몇 번 보지 못한 엄청난 통찰력 아니던가.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지만, 20-21시즌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과 같았다.
희대의 명장, 펩 과르디올라.
사진 파괴자, 토마스 투헬.
이들이 이끄는 맨시티와 첼시의 결승전에서도 펩 과르디올라의 ‘귄도안 원볼란치’라는 독특한 선발을 보고 토마스 투헬 감독이 약점을 후벼파 승리를 쟁취했다.
이와 거의 흡사한 장면을 만들어낸 소하. 그리고 이게 다가 아니었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이 중요한 경기에서 자신의 통찰을 믿고 이를 밀고 나가는 승부사적 기질이야말로 그의 진가다.]
큰 경기에서는 우승을 수없이 이룬 감독들도 종종 압박감에 무너졌다.
하지만, 겨우 이제 막 30대에 진입한 비선출의 어린 감독이 이런 배짱이라니!
전문가들로서는 극찬에 극찬을 거듭해도 모자랄 지경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직 경기는 이제 초반일 뿐.
축구공은 둥글었고 언제 이변이 발생해도 놀랍지 않은 스포츠다.
결국 경기의 결과는 90분 뒤에 나오니까. 당연하게도 방심과 자만을 경계하고 이 기세를 이어가야 한다.
이토록 당연한 사실은 모를 리가 없는 소하. 하지만 그 또한 승리를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
알리의 멋진 골이 터진 순간.
소하와 밀러 또한 제정신을 반쯤 잃은 채 열광했다.
“으아아아! 됐다! 됐어!”
“감독니이이임! 골이에요! 골!”
서로 부둥켜안은 채 미친 듯이 몸을 흔드는 소하와 밀러. 언뜻 보기에는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은 친한 조카와 삼촌 같다.
“감독님 어떻게 브라이턴의 약점을 제대로 알아보신 겁니까?”
소하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고서 마구 침을 튀기는 밀러. 경기전 라커룸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거늘.
최측근임에도 너무나 놀라웠다.
“후후후···. 이것이 바로 범인과 천재의 차이랄까···?”
“···우욱.”
밀러는 소하가 콧대를 치켜올리며 잘난 체를 하자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시늉을 했다.
‘이번에도 얼버무리시는군. 하여튼.’
짐짓 소하의 속마음을 알아본 밀러는 주제를 다른 곳으로 바꾼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겠죠. 저희가 매우 유리한 상황이 됐지만요.”
짐짓 신중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매만지는 밀러. 제법 감독 흉내를 내본 듯싶지만, 소하의 눈에는 간식으로 먹을 햄버거를 고르는 중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버거는 버거왕···이 아니라. 아뇨. 이건 우리가 이겼어요.”
“네···?”
“뭘 그리 놀라요?”
“아니···. 아직 추가시간까지 생각하면 90분이 남았는데···. 이제 막 경기 시작이지 않습니까!”
밀러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소리쳤다. 그가 아는 소하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기 전까지 방심 따윈 하지 않았으니까.
분위기에 심취해 마음을 너무 놓아버렸다는 의심이 들지 않기가 힘들었다.
“워워. 진정하세요.”
“지,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한 사람의 연장자로서···. 감독님의 나태해진 마음을···!”
“시끄러워요. 아저씨가 걱정하는 것처럼 방심한 게 아니니까.”
발작 직전의 밀러를 살벌한 눈초리로 진정시킨 소하. 밀러가 도끼눈에 주눅이 들자 소하는 슬슬 입을 연다.
“불교의 핵심 사상 중에는 ‘인과율’이라는 말이 있죠.”
“···? 화장실에서 넘어지셔서 변기에 머리라도 박으셨습니까? 갑자기 웬 종교 이야기입니까.”
“아이, 참. 끝까지 들어봐요. 인과율이란 모든 결과에는 모종의 원인이 있다는 뜻이죠.”
“그런데요?”
“즉 우리는 이미 결과를 만들어낼 원인을 완성했다는 거죠. 물론, 결과란 바로 승리라는 거고요.”
소하의 뜬구름 잡는 소리에 밀러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가뜩이나 뇌용량이 작은 터라 불교의 핵심 사상까지 들먹이자 과부하 직전까지 갔다.
“쉽게 말해서 예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왜 강팀이었을까요? 왜 항상 밥을 먹듯이 리그를 제패했을까요?”
“그거야···. 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전설적인 감독이기도 하고 선수들도 최고의 선수들만 있으니까요.”
“바로 그거에요. 위대한 감독과 뛰어난 선수. 이것이 절대 강호라는 결과의 원인이라는 거죠. ”
“호오···.”
슬슬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밀러. 그런데도 감을 잡지 못하자 소하가 부연 설명을 한다.
“현 상황을 예를 들어볼까요? 일단 숫자로만 봐도 1-0 리드죠. 게다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우리는 뛰어본 적이 있어요. 그것도 결승전 무대에서. 이건 엄청난 이득이죠.”
“그렇죠.”
“그리고 강심장 4인방이 만들어낸 이른 골은 긴장했던 선수들의 몸을 풀어줄 겁니다.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정상 컨디션을 찾았단 말이에요.”
“!!”
밀러는 드디어 깨달음을 얻은 듯 눈을 부릅떴다. 그 또한 축구계에서 오래 구르고 구른 인물.
중압감에 의한 긴장 때문에 큰 경기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는 수도 없이 봐왔으니까.
“이제야 좀 머리가 굴러가시나 보네요. 맞아요. 우리는 중압감에서 벗어났고 상대는 더욱 긴장하게 됐죠. 심지어 시작하자마자 한 골 따라잡아야 해서 더욱 급하죠. 이건 절대적인 우위를 우리가 가졌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감독께서 말씀하신 인과율이란···?!”
“네. 원인이 쌓이면 결과는 바뀌지 않아요. 승리로 향한 모든 원인이 쌓여있는 지금! 우리는 절대 질 수 없어요. 이건 우주의 섭리거든요.”
씨익 웃으며 호언장담하는 소하. 그의 미소에 밀러의 마음속에 승리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
소하가 말한 인과율은 여지없이 경기장에서 나타났다.
너무나도 수월하게 경기를 진행하는 포츠머스.
너무나도 불안하게 수세에 몰려버린 브라이턴.
둘의 차이는 너무나도 극심해 경기는 시종일관 포츠머스의 맹공으로 이어졌다.
슈팅하나 기록하지 못하고 전반전 내내 두들겨 얻어맞은 브라이턴.
5분여만 더 버티면 후반전에 분위기를 반전시킬 기회를 얻을 수 있었지만, 포츠머스는 호락호락한 팀이 아니었다.
“헤이! 공 줘!”
또다시 시작된 지공 상황.
이번에도 조쉬 킹은 여지없이 공을 달라고 동료들에게 성화를 내었다.
“새끼. 넣지도 못할 거면서 맨날 달라고 해! 그래도···. 네가 마무리 지어줘야 한다.”
“이번에도 놓치면 넌 후반전에 강판일걸? 장담한다.”
동료들은 쉰 소리를 했지만 조쉬 킹에게 볼을 투입하는데 망설이지 않는다.
조쉬 킹이야말로 그들이 가장 신뢰하는 강력한 총알이었으니까.
[선제골의 주인공 델리 알리가 멋들어진 턴으로 리암 로세니어를 무장해제 시킵니다!]
[아! 안타깝습니다. 균형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려 바닥에 넘어지는군요.]
델리 알리는 말 그대로 펄펄 날았다.
그를 전담마크 하는 브라이턴의 미드필더, 리암 로세니어로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받아라! 멍청아!”
날카로운 목소리로 고함치며 전방을 향해 아웃프런트 패스를 내지르는 델리 알리!
상당히 고난도의 패스 기술이었지만 누워서 스마트폰 보듯이 쉽게 성공한다.
-쉬익.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날카로운 패스. 정상적인 패스 궤도의 범주를 한참 넘었던지라 브라이턴의 수비진은 어찌할 수가 없다.
사신의 낫처럼 수비진 사이를 날카롭게 가르는 패스는 정확하게 조쉬 킹의 진로에 당도한다.
“쓸만하네. 내 친구의 자격이 있어.”
엄청난 패스였음에도 평가절하는 조쉬 킹! 믿음인지 친구 간의 장난인지는 모르겠지만 결정적인 기회를 잡은 그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너의 임무는 골을 때려 넣는 거다.’
문뜩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소하의 한 마디. 그랬다. 그는 골을 넣어야 하는 골잡이였다.
“난! 때려! 넣는다!”
고함을 지르면 슈팅력이 강해지기라도 하는 걸까? 비과학적인 소리였지만 조쉬 킹에게는 예외였다.
-쾅!
패널티 에어리어 근처에 터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폭발음!
순간, 공은 사라졌고 브라이턴의 골키퍼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눈에 보여야 몸을 날리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골입니다! 골! 조쉬 킹의 대포알 강슛이 승격을 결정짓는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공간을 가로지른 조쉬 킹의 슛은 그대로 골망을 갈랐고 포츠머스의 승리를 코앞까지 앞당기었다.
***
전반전에만 2-0으로 앞서나간 포츠머스. 조쉬 킹의 추가 골은 브라이턴에게 있어선 악몽이었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까지 처한 팀 상황임에도 휴튼 감독은 최대한 자신의 임무를 이어나갔다.
“우린 할 수 있다! 포츠머스는 계속 공격적으로 플레이할 터. 공격수와 윙어는 항상 역습을 머릿속에서 잊지 마라.”
맞불을 놓을 상황은 아니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역습을 통해 한 골 따라잡아야 했으니까.
공격적인 운영은 일단은 한 골이 필요했다. 2-0과 2-1은 다가오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으니까.
하지만, 소하는 박수가 나올 만큼 영리했으며 독사처럼 냉정했다.
“천천히 경기해라. 슬슬 숨통을 조여.”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행자랄까.
소하가 브라이턴이 어떻게 나올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후반전의 양상은 지루하게 흘러갔다.
[점점 포츠머스가 승리를 굳혀갑니다. 템포를 확연히 늦추고 브라이턴의 목숨줄을 앗아가고 있어요.]
[브라이턴! 이제 방법을 바꿔야 합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장내 아나운서와 해설의 비명 섞인 조언. 물론 휴튼 감독도 알았다.
이대로 가다간 천천히 질식사할 거란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나오길 기다리고 있을 거다···!’
빤히 보이는 함정이었다. 그래서 참아야 했지만,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너무 침착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으며 순식간에 후반 75분까지 경기를 짓밟았으니까.
결국 남은 방법은 한가지뿐.
“전원 공격이다!”
크리스 휴튼 감독은 어쩔 수 없이 공격을 명했고 소하는 이에 맞춰 선수교체를 감행했다.
[아! 두 번째 골을 넣은 조쉬 킹이 경기장을 나가고 신예 ‘에링 홀란드’가 나옵니다.]
[플레이오프 결승전 기록을 갈아치웁니다. 최연소 선수예요. 성소하 감독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에링 홀란드의 등장. 겨우 16세에 불과한 그가 경기장에 등장하자 모두가 의문을 가졌다.
종종 교체 출장을 하며 얼굴을 알리긴 했지만, 실력에는 아직 의문이 따랐으니까. 너무 어렸다.
‘흥. 뭐긴 뭐겠어. 여러모로 이득이니깐.’
중요한 무대를 함께 경험하며 팀에 대한 충성심을 챙기려는 수작이다.
이래저래 포츠머스의 미래는 에링 홀란드에게 있었으므로.
‘그리고···. 녀석은 괴물이야. 엉망진창이 된 브라이턴 정도면 한 건은 해줄 거다.’
1년간의 성인팀 무대 경험은 에링 홀란드에게는 최고의 훈련이었다.
덕분에 홀란드의 실력은 1년 전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경지에 올랐다.
그리고, 소하의 생각처럼 에링 홀란드는 그가 가진 재능이 역대급이란 사실을 여실히 증명했다.
[잭 해리슨의 영리한 컷백입니다!]
[기회에요! 에링 홀란드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잭 해리슨이 만들어줍니다.]
비어버린 뒷공간을 예리하게 베어버린 잭 해리슨의 돌파.
그 후 이어지는 컷백에 에링 홀란드는 완전한 기회를 잡았다.
“제 얼굴만큼 멋진 컷백이네요.”
황당한 소리를 지껄이며 침착하게 주발인 왼발로 다이렉트 슛을 내지르는 에링 홀란드.
16세 답지 않은 엄청난 침착함이었다.
-철썩.
정확하게 골대로 빨려 들어가는 에링 홀란드의 포츠머스 데뷔골!
1년 만에 성공한 데뷔골이자 포츠머스의 새로운 미래가 열렸음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골이었다.
< 156화. 플레이오프. (6)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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