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플레이오프. (3) >
포츠머스를 두고 꽤 재미있는 이야기는 상당히 많았다. 그중 아직도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은 이야기는 포츠머스의 ‘에이스’가 누구냐는 난제.
포츠머스의 에이스 누구인가?!
이 난제는 포츠머스의 선수단 내에서도 묘한 경쟁심을 부추겼다.
‘나지. 나. 제2의 미스터 포츠머스는 바로 나라고. 포츠머스의 성골유스인 내가 아니면 적합한 사람이 없지!’
조쉬 킹의 야무진 생각! 소하가 들었다면 뒤통수를 후렸겠지만 1순위 후보란 사실은 변함없었다.
‘당연히 나 아닌가? 나야말로 천재 미드필더니까. 국가대표 청소년 대표팀에서도 내가 에이스라고.’
자신감 하나만큼은 영연방 내에서도 1, 2위를 다투는 델리 알리가 빠질 수는 없는 노릇.
실제로도 수많은 전문가에게 조쉬 킹보다 훨씬 좋은 평가를 받는 선수였다.
‘나일지도···? 다른 두 녀석은 성격이 더러워서 안 돼.’
‘주장으로서 자만은 경계해야 하지만 그래도 왠지 저일 거 같군요.’
‘휴먼들의 안구에 문제가 없다면 저를 뽑을 확률이 높을 겁니다.’
‘당연히 나지. 왼쪽 풀백으로서 100경기가 코앞이라고.’
‘당연히 슈퍼스타인 내가 에이스지. 요즘 부활했다고 칭찬이 자자하니까.’
‘1년 차는 부상으로 날려 먹었지만···. 그래도 등번호 8번인 나 아닐까?’
수많은 선수가 너도나도 탐내는 ‘에이스’의 자리!
기적을 친히 써 내리는 포츠머스의 에이스는 그야말로 기적의 주인공이란 뜻이었기에 전부 탐을 냈다.
하지만 누구도 확실하게 에이스임을 자처하지는 못했다.
포츠머스란 팀은 한 명의 선수에 기대기보다는 모두가 힘을 합쳐 유기적인 팀워크를 보여주는 팀이었기 때문임을 모두가 알았으니까.
하지만, 서포터들 입에서 제일 먼저 나온 이름은 역시나 뻔한 이름이었다.
“축구는 감독 놀음이지 멍청이들아. 당연히 성소하 아니겠어?”
당연한 정답이었고 선수들의 귀에도 들어갔지만 별다른 반론을 펼치지 못했다.
“솔직히 이건 밸런스 붕괴야. 성소하 감독은 빼고 이야기를 해야지.”
너무나도 심한 밸런스 붕괴에 오로지 선수들만 이야기하자고 합의를 본 난제의 조건.
그런데도 좀처럼 풀리지 않는 떡밥으로 남았다.
물론, 이 떡밥은 소하의 귀에도 들어갔다. 근무시간에 인터넷 댓글을 보며 종종 태업을 즐기는 사람이었으니까.
“에이스라. 조쉬 킹? 델리 알리? 다 아니야. 한참 잘못 짚었다고.”
보이지도 않는 랜선 너머의 사람들을 비웃는 소하. 그가 단언할 선수의 비중이 적자 조금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도봉산이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낼 선수는 도봉산밖에 없어.”
조쉬 킹은 키핑능력과 침투, 슈팅력과 결정력에 엄청난 강점이 있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기술이 구리니까. 좋은 패스나 컷백을 줄 동료들이 필요하지.’
반쪽짜리 선수는 포츠머스의 에이스가 될 수 없는 법.
‘델리 알리는 훌륭한 친구지만, 그 또한 침투와 연계플레이에 특화된 선수로 성장했다. 무에서 유를 만들기보다는 작은 것을 크게 만드는 선수지.’
타고난 축구센스와 소하의 채찍질로 다져진 기본기 덕분에 근시일 내, 국가대표 승선까지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델리 알리.
아직 큰 무대에서 보여준 것은 적었지만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지금과 같이 활약한다면 국가대표 자리는 따놓은 상태다.
하지만 소하의 눈에는 ‘에이스’로서 성에 차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 또한 이하동문. 각기 장점이 뚜렷했고 단점이 적은 선수들이었지만 조금은 부족했다.
“에이스라 하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야 한다. 즉 ‘크랙’ 기질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크랙.
초일류급의, 대치 상태를 깨고 혼자만의 힘으로 경기의 흐름을 뒤집을 수 있는 선수를 지칭하는 단어.
대표적인 선수로는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 네이마르 주니오르, 킬리앙 음바페. 모하메드 살라. 에덴 아자르 등이 존재한다.
“도봉산은 팀 내에서 유일하게 크랙 기질을 가진 선수지. 멘탈이 약해빠진 게 아쉽지만 말이야···.”
엄청난 드리블과 개인기, 그리고 소하의 지도로 점점 좋아지는 킥력.
이를 통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도봉산은 소하가 공언한 에이스였다.
그리고 에이스가 살아나자 포츠머스는 180도 바뀌었다.
[골입니다! 골! 도봉산의 컷백을 조쉬 킹이 강력하게 마무리합니다!]
[아! 이제 알겠어요. 포츠머스의 에이스는 도봉산이었어요! 그가 살아나니 팀이 아예 달라졌습니다!]
도봉산은 자신이 에이스임을 증명하듯 역전 골의 어시스트까지 하며 날아다녔다.
그야말로 부활의 서막!
하지만 볼턴 원더러스에게는 불행하게도 이게 끝이 아니었다.
역전 골을 헌납한 볼턴 원더러스는 활활 타오르던 투지가 꺼졌고 단단한 암반에서 물렁물렁한 두부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남은 미래는 한 가지.
포츠머스의 무자비한 폭행이 남았을 뿐.
[도봉산이 기어코 득점에 성공합니다! 친정팀을 상대로 비수를 꽂습니다!]
[보세요. 셀레브레이션을 하지 않습니다. 저게 바로 축구의 로맨스 아니겠습니까? 친정팀에게 비수를 꽂았지만, 예의를 잊지는 않았어요.]
도봉산은 제대로 미쳐 날뛰었다.
후회를 만들지 않기 위해.
부러진 다리는 다시 붙일 수 있었지만 부러진 꿈은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에.
그는 다시금 부활했고 팀의 결정적인 승리에 엄청난 공헌을 했다.
“봐봐. 내 말이 맞지? 우리 팀의 에이스는 도봉산이야.”
도봉산을 향해 엄지를 척 내미는 소하. 그의 입가에는 어느 때보다 흐뭇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
포츠머스 FC와 볼턴 원더러스 FC의 플레이오프 준결승전.
1차전을 4-1로 역전승한 포츠머스는 사실상 결승전 진출이 확정되었다.
원정경기에서도 이리도 강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홈경기라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2차전은 보지 않아도 된다. 포츠머스는 영국은 물론, 유럽을 통틀어서도 홈에서 가장 강한 팀이다. 여기에 도봉산의 화려한 부활은 무실점으로 3골 이상 넣어야 하는 볼턴에게는 재앙과 다름없다.”
수많은 전문가가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내뱉었고 모처럼 전문가에 대한 신뢰성을 되찾았다.
프래튼 파크에서 열린 2차전은 말 그대로 포츠머스의 ‘압승’으로 끝나게 되었으니까.
최종 스코어는 3-0.
단 한 개의 유효슈팅도 허용하지 않으며 완봉승을 거두었다.
이번 경기에서도 도봉산은 1어시스트 7드리블 돌파 성공을 달성하며 맹활약했다.
볼턴 서포터들에게 제대로 눈물을 뽑아냈지만, 오히려 그들은 도봉산에게 손뼉을 쳐주었다.
“잘했다! 우리 팀이 떨어진 건 아쉽지만 너만이라도 다시 날개를 펼치라고!”
“넌 우리의 자랑이었고 앞으로도 자랑일 거야. 언제나 응원한다.”
“후반기에 죽을 쓸 때는 진짜 화났는데 이제야 좀 마음에 드네.”
“코리안 특급! 넌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빛났던 선수였어.”
영광의 시절을 수놓았던 도봉산에 대한 고마움을 아직도 잊지 않은 볼턴의 서포터들.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도봉산을 응원하는 이들의 모습은 축구의 참모습을 잠시나마 보여줬다.
하여튼, 포츠머스는 호쾌하게 결승전에 안착했고 이제 결승전의 상대가 누구인지 관심을 기울일 시간이 찾아왔다.
4위와 5위의 싸움!
4위 브라이턴과 5위 블랙번의 플레이오프 준결승 1차전은 브라이턴의 2-1 승리였다.
2차전 또한 포츠머스보다 하루 늦게 경기를 하는 터라 이참에 소하는 놀러 가기로 작심했다.
“그럼 밀러 아저씨. 불난 집 구경이나 하러 가볼까요?”
“네···?”
바보같이 입을 벌린 채 어벙한 표정을 짓는 잭 밀러 수석코치.
지금 시국이 어느 땐데 불난 집을 구경하러 가잔 말인가?
결승전에 진출한 것이지 아직 승격을 확정 지은 것이 아니었거늘. 평소에도 괴팍하기 짝이 없었지만, 드디어 소하가 미쳐버렸다고 생각됐다.
“다,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가서 팝콘이나 먹자고요. 결승전도 확정 지었겠다, 하루 정도는 쉬어야죠.”
“···여기서 제가 또 놀라는 게 뻔한 레퍼토리겠지만, 전 감독님의 의중을 알아차렸습니다. 허헛!”
잠시 머리를 굴리던 밀러는 무언갈 깨닫고 의기양양하게 선언했다.
“뭔데요.”
장난기 어린 눈웃음을 지으며 짐짓 모르는 척 물어보는 소하.
밀러는 이때다 싶어 재빨리 뱉어낸다.
“결승전 상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함이시겠죠. 어느 팀이 올라올지는 모르지만, 실시간으로 전력분석 하기에는 최고의 기회 아닙니까!”
“호오···!”
“물론, 감독님께서는 워낙에 괴팍하시고 정신 사나우며 놀기 좋아하시는 파렴치한 분이시긴 하죠. 하지만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농땡이부릴 분이 아니란 사실은 제가 제일 잘 압니다.”
“···.”
이게 욕인지 칭찬이지.
소하는 잠시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칭찬으로 결론을 내리고 해맑게 웃는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동양의 속담이 이번에도 맞아떨어지네요.”
“개, 개와 비교하시다니···.”
“말이 그렇다는 거죠. 그럼 빨리 가죠! 이미 좋은 자리로 예매해 뒀으니까요.”
밀러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소하. 운동은 하지도 않는 주제에 힘은 세서 통통한 밀러가 질질 끌려간다.
“자, 잠깐만요! 아, 아직 일 마무리할 것이 남았단 말입니다!”
최소한 남은 일은 마무리 짓거나 다른 이에게 부탁해야 했거늘. 하지만 소하는 밀러의 비명을 귓등으로 흘린 채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
소하와 밀러는 제시간에 맞춰 브라이턴의 홈구장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커뮤니티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자리는 소하가 호언장담했던 대로 제일 보기 좋은 중앙 2층이다.
가격을 떠나, 자리 경쟁이 치열했을 텐데 구한 것이 용할 정도다.
“이 자리는 어떻게 구한 겁니까?”
코치이자 축구광인 밀러가 이 사실을 모를 리가. 당연한 물음이 뒤따랐다.
“별거 있나요? 그냥 능력이지.”
“···차암 잘나셨습니다.”
“진짠데···.”
“네네.”
밀러는 속으로 참 비밀이 많은 사람이라고 투덜거리며 시선을 돌렸고 곧이어 경기장은 빈자리가 없는 만석이 되었다.
“와. 장난 아닙니다. 감독님. 저희 홈구장이랑 다를 게 없는데요. 색도 푸른색이고.”
“그래서 싫어.”
“···.”
소하는 공평하게 푸른색 팀을 전부 다 싫어했다. 그에게 있어서 푸른색은 오로지 포츠머스만이 어울린다는 뒤틀린 신념이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결승전 상대로는 브라이턴이 올라오길 바라시겠군요?”
“역시 절 어머니 다음으로 잘 파악한 사람은 밀러 아저씨라니까요. 맞아요. 웸블리에서 콧대를 부러뜨릴 거예요. 그래도 전 일단 블랙번을 응원할 겁니다.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거든요. 홈구장에서 원정팀 응원하기!”
소하가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며 호기롭게 외치자 순간, 주변의 모든 시선이 쏠렸다.
“···브라이턴의 홈구장에서 그런 소리를 참으로도 크게 말씀하시네요···.”
엄청난 수의 시선에 비지땀을 흘리는 밀러. 괜히 따라왔다가 브라이턴 팬들에게 몰매를 맞을까 봐 걱정됐다.
“왜요?”
“아니···. 저···. 사람들이···.”
“뭘 쫄아요. 저기 경기장 내 스크린에서 우리 모습이 나와서 보는 거예요.”
시큰둥한 소하의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경기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놀랍게도 어제, 플레이오프 결승전 진출을 확정 지은 포츠머스의 성소하 감독이 경기장을 찾아왔습니다!]
[옆자리의 중년은 포츠머스의 살림꾼이라 불리는 잭 밀러 수석코치겠군요.]
-오오오오오!
웅성. 웅성. 웅성.
엄청난 관심을 받는 소하와 밀러의 귓가에 벌떼가 윙윙거리는 소리가 사정없이 휘몰아쳤다.
“···뭐, 뭡니까? 어, 어떻게 저희를 바로 알아본 거죠?”
“저의 빛이 나는 외모 덕분···은 아니고.”
소하는 능청을 떨려다가 고리눈이 된 밀러를 바라보고선 말을 바꾼다.
“원래 브라이턴에서 정식으로 초청이 왔었어요.”
“네?!”
“귀빈석을 빛내 달라는 요청이었죠. 물론 거긴 너무 높아서 제가 거절했지만요.”
“왜 초대했데요?”
“별거 있겠어요. 절 이용하려는 거겠죠. 서로 상호이익이랄까.”
블랙번의 홈에는 찾지 않았던 성소하 감독이 브라이턴의 홈구장을 찾아왔다? 그것도 브라이턴의 진출 가능성이 큰 상태에서?
이는 브라이턴 선수들에게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 분명했다.
소하의 존재란 이미 선망의 대상이었으니까.
천재로 소문난 감독이 자신들을 맞이하기 위해 친히 방문해서 대책을 마련하는데 어찌 힘이 나지 않으리.
나름대로 브라이턴 측에서 머리를 굴린 결과였다. 물론, 소하도 결승전에 만날 상대를 분석하기에 좋은 기회였기에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큼큼. 그나저나 좀 불편하군요.”
많은 수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경험이 적은 밀러가 불편한지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좀만 참아요. 어차피 이제 곧 경기 시작이니까요.”
“이런 시선은 처음인지라···. 그나저나 참 낯짝이 두꺼우시네요. 아무렇지도 않아 하시니···. 이거야 원.”
“맨날 기자회견 해봐요.”
“허헛. 하긴 그것도 그렇겠습니다.”
소하의 핀잔에 너털웃음을 흘리는 밀러. 다시금 소하의 대범함에 절로 감탄스러웠다.
소하의 말처럼 경기가 시작되자 따가운 시선은 모조리 사라졌고 본격적으로 경기에 집중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
두런두런 의견을 주고받으며 경기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소하와 밀러.
결국 승자는 많은 이가 예측했듯, 브라이턴이었다.
“결국 브라이턴과 맞붙게 되는군요.”
“재미없게 이변은 없었네요.”
브라이턴의 서포터들 사이에서 열심히 블랙번을 응원하던 소하는 툴툴거렸다.
“후우. 그럼 이겨볼까요? 두 번 다시 웸블리에서 지지 않을 작정이니까요.”
투지를 불사르는 소하. 작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치러진 리그컵 결승의 패배를 떠올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 153화. 플레이오프. (3)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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