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플레이오프. (1) >
지난 3년간 포츠머스에서 가장 번창한 가게는 ‘리 아저씨의 베팅 가게’이었다.
전설적이 베터, 리 바이런을 배출해냈고 그의 이름을 가게 이름에 붙여버린 포츠머스의 성지.
영국 남부 해안 도시 중에 이곳만큼 장사가 잘되는 곳도 없었다.
심지어 포츠머스의 철천지원수인 사우스햄튼에서도 찾아올 만큼 엄청난 방문객 수를 자랑한다.
이들의 목적은 당연히도, 제2의 리 바이런이 되기 위함이다.
“리 바이런은 최고의 베터라고. 단돈 3천 파운드로 지금은 300만 파운드를 손에 쥔 졸부가 되었지.”
제2의 리 바이런을 꿈꾸는 20세의 청년, 찰스 워커는 같이 온 친구가 굳이 런던에서 여기까지 온 이유를 묻자 열정적으로 답변했다.
“300만 파운드? 와 쩌는데?”
찰스 워커의 친구 존 앨런은 눈을 동그랗게 뜨게 흥분했다.
300만 파운드라니.
한화로 50억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이제 알았냐? 더 놀랄 게 수두룩한데.”
친우가 잔뜩 놀라자 거만하게 으스대는 찰스 워커. 상당히 재수 없는 얼굴이었지만 존 앨런은 이미 두 동공이 파운드 모양으로 바뀌었다.
“뭔데?”
“겨우 3년 만에 300만 파운드를 벌었다는 사실이지. 3년 전만 해도 리 바이런은 그냥 항구에서 일하는 흔해 빠진 노동자였다고.”
“와. 시발. 와!”
욕설과 함께 거듭 감탄을 내지르는 존 앨런. 일개 항구 노동자에서 3년 만에 300만 파운드를 벌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전부 다 베팅으로 딴 거야?”
“아니지. 베팅으로 300만 파운드를 벌면 그게 사람이냐? 승부조작 브로커지.”
“그럼 어떻게 번 거야?”
“베팅으로 유명해진 거야. 책 좀 읽어봐라. 일단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돈을 번다고 말하잖냐.”
조금 이상하게 곡해된 말이었지만 얼추 뜻은 같았으니 그냥 넘어가자. 게다가 불행하게도 존 앨런은 딴지를 걸만한 상식도 없었다.
“리 바이런이 베팅으로 딴 돈은 약 30만 파운드 정도야.”
“그것도 대단한데?”
“그래. 바로 그거야! 리 바이런은 그 대단함을 여기저기에 알려서 일약 유명인사로 발돋움했다는 거지.”
“근데?”
조금 머리가 둔한 존 앨런이 되묻자 찰스 워커는 답답한지 가슴을 탕탕 두들긴다.
“유명해지자 너튜버를 시작했다고. 그걸로 순식간에 대기업이 되었어. 돈을 쓸어 담게 된 거지.”
“···응? 그냥 처음부터 하면 된 거 아니야?”
“아이, 멍청한 새꺄. 너같이 가족 말고 아무도 모르는 새끼가 너튜브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봐주겠냐?”
찰스 워커가 험한 말을 내뱉자 존 앨런은 짜증을 잔뜩 낸다.
“새끼 너무하네. 나 아는 사람 많거든? SNS 팔로워만 해도 150명이야.”
“새꺄. 니가 만든 너튜브 채널을 150명이 본다고 돈을 벌겠냐?”
“···그, 그건 그렇지. 그런데 그거랑 우리가 집 앞 베팅 가게를 내버려 두고 여기까지 온 이유가 말이 안 되는데.”
존 알렌의 질문에 찰스 워커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생각을 해봐 봐. 여기서 우리가 역배가 터져서 대박을 터뜨린다고 치자. 그러면 엄청 유명해질 거야”
“그, 그렇지. 제2의 리 바이런이라면서 사람들이 엄청나게 부러워할지도?”
“바로 그거야. 다른 곳에서 대박이 터지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는 거지. 게다가 이곳은 역배 대박이 자주 터지기로 유명한 곳이거든.”
찰스 워커의 말은 반은 사실이고 반은 헛소리였다. 물론, 이 베팅 가게가 역 배당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제법 많긴 하다.
하지만 그 이유는 리 바이런이 되고 싶어 배당이 높은, 불리한 쪽에 돈을 거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
흔히 나오는 통계의 오류가 여기서 등장한 것이다.
“오! 역시 넌 천재야. 내가 진작 알긴 알았어.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너희 부모님께 머리는 좋은 데 공부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걸 들었거든.”
목에 모터라도 달린 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극찬을 날리는 존 앨런.
진짜 천재를 본 듯한 기색이 역력하다.
“후훗. 내가 뭐, 머리가 좋기로 유명하지. 그럼 나만 믿고 따라오라고!”
어깨를 당당히 펴며 인파 속을 헤치는 찰스 워커. 이미 며칠 동안 마음의 결정을 마쳤기에 주저함이 없이 돈을 걸어볼 팀을 고른다.
“포츠머스와 볼턴?”
친구인 존 알렌의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포츠머스와 볼턴이라면 2부리그 아니던가. 한참 프리미어 리그가 막바지에 들어 가장 재밌을 때였거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 바로 이거지. 이쪽이야말로 진짜배기 베터들이 모이는 경기라고. 리 바이런도 이 경기에 걸었다고 했어.”
“호오. 하긴 포츠머스면 요즘 엄청 유명한 팀이잖아.”
“맞아. 게다가 리 바이런이 지금의 그가 되기까지 포츠머스의 덕을 크게 봤어.”
“그렇다면···. 우리도 포츠머스에?”
제2의 리 바이런이 되고 싶다면 당연히 포츠머스다. 신화의 시작은 그가 3,000파운드를 포츠머스의 우승에 걸면서부터였으니까.
하지만 찰스 워커는 눈을 가늘게 뜨며 검지를 좌우로 흔든다.
“아니지. 아니야. 이거 봐봐. 배당이 압도적으로 포츠머스 쪽이 높다고. 이러면 얼마 벌지도 못해.”
“그럼 볼턴?”
“그래. 볼턴이 잘만 해준다면 우리는 50배를 먹을 수 있다고.”
“50배?! 하, 하지만 그만큼 이길 확률이 낮다는 거 아니야?”
존 앨런은 50배라는 말에 잠시 이성을 잃었지만 금세 제정신을 차렸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사실 정도쯤은 머리가 조금 나쁜 그도 알았다.
“후후. 그건 그렇지. 하지만, 내 예상으로는 포츠머스는 거품이 끼었어. 상대적으로 볼턴은 저평가가 심하고.”
“음? 볼턴이라면 망하기 일보 직전인 팀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작년부터 제법 팀이 정상화되고 있다고. 도봉산의 이적료로 영입한 선수들이 다 대박이 났어.”
찰스 워커의 말처럼 볼턴은 도봉산의 이적료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실제 역사였다면 이번 시즌에 강등당했을 볼턴이 플레이오프까지 온 원동력이 바로 이것이었다.
“즉 우리는 1차전, 2차전 승리를 모두 볼턴에 걸고 승격팀도 볼턴에 걸면 된다는 거야.”
“그래도···. 너무 확률이 낮은···.”
“멍청아. 역사는 불가능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포츠머스는 오락가락하는 중이라 기세 면에서는 볼턴이 확실히 앞서. 저거 봐봐.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
[최근 5경기 전적
포츠머스 FC: 2승 1무 2패.
볼턴 원더러스: 5승.]
압도적인 최근 성적에 존 앨런은 물개박수를 친다.
“역시. 넌 천재야. 그럼 오늘 가져온 4,000파운드 모조리 박아본다!”
“···4,000파운드나 가져왔어?”
“아르바이트 다니면서 3달 동안 모은 돈이야. 이걸로 대박 터트리고 화폐 뭉치로 사장의 뺨따귀 후릴 거야.”
“···새끼. 내 친구답군. 꿈은 그렇게 가져야지. 그럼 나도 간다!”
2,000파운드를 볼턴의 승리에 거는 찰스 워커. 그 모습을 마지막까지 바라보던 존 앨런도 4,000파운드를 과감하게 친구를 따라간다.
과연, 이 멍청한 두 청년이 제2의 리 바이런이 될 수 있을지는 곧 다가올 플레이오프 준결승전의 결과에 따라 달렸다.
***
2016년 5월 17일.
드디어 챔피언십 리그를 지켜보던 수많은 팬이 기대하던 플레이오프 준결승전이 시작됐다.
장소는 볼턴 원더러스 FC의 홈인 ‘마크론 스타디움’. 지난 시즌까지는 ‘리복 스타디움’으로 불렸지만, 이탈리아 의류 브랜드인 마크론으로 스폰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수용인원은 29,723석.
포츠머스의 홈구장인 프래튼 파크보다 작은 구장이다.
한국의 올드 해외 축구 팬들에게는 꽤 익숙한 경기장이기도 하다.
도봉산이 한때 프리미어 리그에서 찬란한 빛을 뿌렸던 그 장소였으니까.
이 때문에 많은 한국 팬들은 도봉산이 경기장에 나와 옛 추억을 상기시켜줬으면 좋겠다고 바랬다.
하지만 소하는 냉정한 감독.
3년간의 모든 경기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폼이 시궁창인 선수를 쓸 리가 있겠나. 바로 벤치 시작이었다.
“넌 이 경기에 뛸 자격이 없다. 왜냐고? 우리가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이유가 네가 필드에 싸지른 똥 때문이지.”
“···.”
소하의 가차 없는 비판에 도봉산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2016년의 폼은 정말 엉망이었으니까. 솔직히 벤치에 앉는 것만으로도 소하의 배려라고 느껴졌다.
“그런데도 널 벤치에 두는 이유는 조그만 가능성 때문이지. 네 고향에서 현재와 과거의 동료들이 뛰는 걸 잘 지켜보도록.”
“알겠습니다.”
해서, 플레이오프 준결승전을 나서는 포츠머스의 선발진은 기존의 4-3-3시스템이었다.
[GK: 셰이 기븐.
LB: 앤디 로버트슨.
CB: 케빈 도슨.
CB: 아담 웹스터.
RB: 아다마 트라오레.
DM: 데클렌 라이스.
MC: 델리 알리.
MC: 칼빈 필립스.
LW: 마리오 발로텔리.
RW: 잭 해리슨.
ST: 조쉬 킹.]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패를 들고 왔다.
조금 독특한 부분은 매튜 다이스 대신 아다마 트라오레가 나왔다는 점.
큰 이유는 없었다.
그저, 매튜 다이스가 경기 전날 감기에 걸렸기 때문이다.
“뭐, 작은 부상 정도야 언제나 나오는 법이지. 타이밍이 더럽지만 말이야.”
덕분에 오른쪽 수비 부분이 취약해졌고 스티븐 데커를 대신해 칼빈 필립스가 오른쪽 중앙 미드필더로 나왔다.
스티븐 데커가 만능형 미드필더라지만 칼빈 필립스보다는 수비력이 떨어졌으니까.
이 말은 즉, 공격진이 좀 더 분발해줘야 한다는 뜻. 그리고 델리 알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넌 오늘 어려운 임무를 맡았다. 조금 벌어진 미드필더진과 공격진 사이를 잘 이어줘야 해.”
“누워서 피쉬 앤 칩스 먹기죠. 걱정하지 마세요.”
“···너만 믿는다.”
소하는 그 쓰레기 음식을 누워서 먹으면 더 힘들지 않을까 싶었지만 자신만만한 델리 알리의 태도에 그냥 아무 말 없이 넘어갔다.
“자, 그럼 1차전에서 준결승전의 결과를 완전히 마무리 짓고 와라. 2차전에도 괄약근 조이기 싫으니까.”
“넷!”
우렁차게 답변하는 포츠머스의 선수들. 그 모습에 소하는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
‘경기력이 오락가락한다고? 아쉽지만 틀렸어. 그저 챔피언십 리그가 강했을 뿐이야.’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소하가 생각하기로 포츠머스는 강했다. 그저 챔피언십 리그는 그만큼 강했을 뿐.
포츠머스의 경기력이 좋지 않다기보다는 상대가 너무 잘한 거다.
‘3년 전만 해도 4부리그에 있던 팀이 이 정도면 미친 거지. 후반기의 좋지 않은 성적은 리그가 어느 정도 우리 팀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이번 시즌 홈에서의 성적은 13승 9무 1패. 전반기에 충격적인 패배 이후로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유럽 10위안에 드는 리그라고. 물로 보면 안 됐지.’
즉, 포츠머스는 기적적인 행보 덕분에 고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결국 올라가는 건 우리다. 미래가 상당히 바뀌어 제법 치고 올라왔지만, 아직 우리는 상대는 아니야.’
자신만만한 소하.
준결승 1차전에서 빠르게 승부를 결정짓고 결승전을 준비하기를 단단히 기대했다.
자신의 제자들이 자신의 바람을 분명히 이루어줄 거라 굳게 믿으며.
***
[골입니다! 골! 볼턴 원더러스! 전반 25분, 개리 매딘의 환상적인 발리슛이 그대로 포츠머스의 골망을 찢어발깁니다!]
[셰이 기븐 골키퍼가 팔을 쭉 뻗어봤지만, 코스가 너무 좋았어요!]
전반 25분.
변한 미래 탓에 날카로운 공격수로 변모한 개리 매딘이 엄청나게 환상적인 골을 만들어냈다.
오른쪽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27M 밖에서 그대로 발리슛으로 연결. 푸스카스상을 받을만한 슈퍼 골이었다.
“···씨발···.”
볼턴을 강하게 압박하는 포츠머스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소하의 표정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굴에 야차가 어리며 흉포한 고함을 내지른다.
“야 이 새끼들아!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먹히기 전에 골을 집어넣었어야지! 리드하고 있었으면 저런 어림도 없는 슛을 시도하지도 않았을 거 아니야!”
소하는 불같이 분노했다.
저런 원더골은 어쩔 수가 없긴 했지만 애초에 여지를 준 것이 문제였다.
정상적인 공격수라면 팀이 지고 있을 때 저런 골로 연결될 가능성이 희박한 슛을 시도하지 않았을 테니까.
“후우. 역시 축구는 한 경기 앞조차 볼 수 없구나.”
한숨을 내쉬는 소하. 순간, 험난해질 플레이오프 준결승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 151화. 플레이오프.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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