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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150화 (150/306)

< 150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후반기. (8) >

말콤 우드의 은퇴 소식은 포츠머스 선수단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팀의 큰형으로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던 말콤 우드가 영영 필드에서 떠난다니. 강한 유대감으로 묶인 포츠머스 선수들에게는 최악의 소식이었다.

“···.”

죽상이 된 선수들.

이 모습을 잠시 즐긴 소하와 말콤 우드는 사악한 미소를 지은 채 서로를 바라보다 사실을 말해줬다.

“대신 부상에서 돌아오면 코치로 팀에 합류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얼굴 풀어. 무슨 상갓집 왔냐?”

“···!”

코치로 복귀한다는 소하와 말콤 우드의 설명에 선수들의 얼굴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화색이 돌았다.

“오. 아저씨 쉰내를 계속 맡겠군요. 비염에 걸리겠어요.”

“질기디질기네요.”

“코칭은 할 수 있죠? 목발 잡은 코치는 믿음이 안 가는데!”

“코치하기 전에 결혼이나 좀 하세요. 안 좋은 어른의 표본이니까요.”

“우리 회사 좋네. 퇴직 후에 직장도 따로 잡아주고. 충성충성!”

금세 농담하면서 하하 호호 웃고 떠드는 포츠머스의 선수들.

다른 팀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에 이번 겨울에 합류한 신입생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20년이 넘는 선수 생활 중에서 이 정도로 끈끈한 팀은 처음인데?’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팀의 모습이지. 포츠머스에 온건 정말 운이 좋았어.’

좋은 모습은 새로 온 이적생들에게도 좋은 영향력을 끼쳤다.

저 사이에 합류하고 싶다는 마음은 아직 온전히 섞이지 않은 상황을 쉽게 타파해줄 테니까.

하지만, 모두가 웃은 것은 아니다.

그간 계속해서 어두운 안색을 유지하던 한 동양의 검은 머리 선수만은 표정 변화가 없다.

그의 모습을 목격한 소하는 슬쩍 말콤 우드에게 속삭인다.

“저거 봐. 저거. 쟤 어떻게든 안 되겠냐. 네 다리 부러지는 거 보고 애가 아예 맛이 갔어.”

“···그런 거 같아 보이네요.”

병상에서도 포츠머스의 경기를 단 1초도 놓치지 않고 모조리 시청한 말콤 우드.

첫 경기를 보자마자 알았다. 부상 장면을 목격하고 트라우마가 제대로 도져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던 대로 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쟤가 금붕어냐? 똑같은 방법이 두 번이나 먹히게?”

“···그건 그렇죠.”

말콤 우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하는 평소에 선수들에게 이런 류의 질문을 하지 않았으니까.

즉, 코치로서의 연수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는 뜻.

그리고 생각보다 어려웠다. 코치로서 선수에게 다가가는 건 선수 시절과는 결이 달랐으니까.

“일단···. 제 처지에서 말하자면 이런 상처는 스스로 극복해야 진정으로 아물었죠.”

“그래?”

“네. 억지로 봉합 수술을 한다고 해도 아물지 않으면 다시 터지기 마련이니까요.”

“역시 그렇군.”

슬며시 눈웃음을 지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하. 역시 20년의 경력을 가진 선수 출신에게 듣는 조언은 남달랐다.

‘이러니까 선출, 선출 노래를 부르는 거지. 비선출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게 많은 세계니까.’

포츠머스를 잘 알며 현대 축구의 새로워진 골키퍼의 역할을 잘 이해하는 말콤 우드.

그가 필드에서 사라진 건 아직도 아쉬웠지만 길게 보자면 오히려 포츠머스에는 매우 큰 선물이었다.

포츠머스를 잘 알며 선수 경력이 매우 길었던 코치의 존재. 이것은 아직 젊은 포츠머스의 선수단에 천군만마 같은 존재였으니까.

‘이참에 셰이 기븐까지 꼬셔볼까?’

눈을 번뜩 뜨며 셰이 기븐을 흘겨보는 소하. 탐욕스러운 악마의 눈빛이 따로 없다. 혀까지 날름거리는 것이 사악함 그 자체다.

“흡···.”

이런 질척거리는 시선을 느끼지 못할 사람이 있을 리가. 셰이 기븐은 소하의 욕심 가득한 눈빛을 바라보며 늪지대 같은 불안감에 몸이 적셔졌다.

***

“안녕하세요. 톰 힉스입니다.”

“반갑습니다. 나단 필립스에요.”

오랜만에 등장한 뚱보와 삐쩍이, 톰 힉스와 나단 필립스.

그들의 너튜버 채널은 이미 구독자 백만 명을 넘은 지 오래다.

현 구독자는 300만 명이 넘은 상태.

포츠머스에서는 물론, 영국에서도 가장 큰 축구 채널로 성장했다.

이제는 유럽 최고의 자리를 넘보기까지는 하는 초거대 너튜버.

한 달에 벌어들이는 금액만 해도 어마어마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평범한 아저씨였다. 그것도 축구와 포츠머스에 미쳐버린 흔해 빠진 영국 중년 아저씨.

덕분에 이들의 인기는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나날이 상승 중이다.

“벌써 4월 말입니다. 올해가 시작된 지 벌써 4개월이나 지났어요.”

“정말 하는 것도 없이 나이만 먹어가네요. 정말 옆자리의 뚱땡이가 지방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빨라요.”

“허허. 다 필립스 씨에게 나눠주기 위해서입니다.”

“···.”

나단 필립스의 맹렬한 공격에 톰 힉스는 늘 그랬듯이 매끄럽게 받아넘겼다.

하지만 살을 뺄 필요가 있긴 했다.

2년 사이에 2배는 불어버린 덩치는 나단 필립스의 구박이 합당해 보였으니까.

버는 돈을 모조리 지방을 키우는 곳에 썼다 해도 믿을만한 수준이다.

고도 비만을 넘어 초고도 비만은 확실. 시청자들마저도 건강을 걱정한다.

-살 좀 빼세요. 진짜 옷은 어떻게 입은 거야.

-이제 대기업인데도 뚱보가 아직도 구형 차를 타고 다니는 이유지.

-소문으로는 진짜 치마를 입고 다닌다던데. 바지 입는 게 힘들다고.

우스갯소리 같은 유언비어까지 퍼진 상태. 아쉽게도 유언비어가 아니었다.

“허허헛. 맞습니다. 이웃사촌인가요? 요즘 치마를 입고 다니죠.”

벌떡 일어나 입고 있는 치마를 보여주는 톰 힉스. 발랄한 17세 여고생 같은 제스처를 보여주며 귀여운 척을 작렬한다.

이 모습에 시청자들은 폭소했지만 나단 필립스의 이마에는 굵은 힘줄이 불끈 세워졌다.

“···같은 인간이라 죄송해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축구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죠.”

“좋습니다. 먼저, 프리미어 리그입니다. 참 재미있는 시즌입니다.”

금세 정색하며 정중한 모습으로 변신한 톰 힉스. 그 모습에 다시금 채팅창은 난리가 났지만 그들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먼저, 클롭 감독의 리버풀이 대단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그렇죠. ‘다크 나이트’ 엠레 잔의 자책골로 브렌던 로저스 감독이 경질되고 그 뒤를 이은 위르겐 클롭 감독은 벌써 자신만의 색을 보여주고 있어요. 역시 대단한 감독입니다.”

혀를 내두르는 나단 필립스.

반쯤 초토화된 선수단으로 유로파리그 결승전까지 진출한 리버풀은 기적 그 차제였다.

“리버풀의 반등과 더불어 우승 경쟁 또한 치열합니다.”

“네. 레스터 시티가 동화를 쓰며 아스널과 치열한 우승 다툼 중이에요. 이 기세라면 마지막 라운드에 우승팀이 결정될 거 같아요.”

15-16시즌,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이 이끄는 레스터 시티는 포츠머스보다 훨씬 장대한 동화를 쓰고 있었다.

영세구단으로서 소위 BIG 4의 아성을 깨고 우승에 도전하는 상황.

정말 전설을 쓰고 있다.

원래의 세계였다면 우승을 달성하며 동화의 결말을 완벽히 마무리하는 레스터 시티.

하지만, 조금 달라진 이 세계에서는 아스널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탄식형 공격수 올리비에 지루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득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부상으로 잠시 이탈했던 산티 카솔라까지 조기 복귀한지라 시즌 초반의 강력함을 다시 보여주는 아스널이에요.”

“그렇다면 우승은 누가 할 거 같습니까? 나단 필립스 씨?”

여지없이 우승의 향방을 물어보는 톰 힉스. 나단 필립스는 너튜브계의 ‘문어’였으니까. 예측하는 족족 다 맞추는 터라 이쪽 업계에서는 대단한 신뢰를 받고 있었다.

뚱보와 삐적이라는 b급 감성의 축구 채널이 여기까지 성장한 가장 큰 요인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정말 어렵습니다. 사실 한 달 전만 해도 레스터 시티의 동화를 예측했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어요.”

“그렇다면···?”

“네. 아스널이 37~38라운드 사이에 우승을 확정 지을 거에요. 아르센 웽거 감독이 12년 만에 리그 우승컵을 들 거라 확신해요.”

나단 필립스의 확언!

그의 예측이 이번에도 맞아떨어질지는 한 달만 기다리면 밝혀질 것이다.

“그럼 이제 포츠머스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전반기의 환상적인 모습을 잃어버렸지만 그래도 승격을 향한 꿈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쉬운 시즌이에요. 여러 악재만 겹치지 않았다면 우승 경쟁을 하고 있었을 텐데요.”

동시에 깊은 한숨을 내쉬는 나단 필립스와 톰 힉스. 그들이 사랑하는 포츠머스만 떠오르면 아쉬움에 입맛이 썼다.

“후반기에는 들쑥날쑥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5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리그가 10경기밖에 남지 않아 우승은 이미 힘들어요. 10연승을 한다면 모르겠지만요.”

1위인 울브스와 승점 차이는 21점 차이. 상당이 멀리서 앞서나가고 있다.

따라잡기엔 매우 불가능한 상황.

이제는 현실적인 목표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다.

“이제 눈을 돌려야 합니다. ‘승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포츠머스의 새로운 조합인 마리오 발로텔리-조쉬 킹의 조합은 굉장히 파괴력이 넘친다는 거죠.”

팀이 흔들리는 상황에도 꾸역꾸역 골을 삽입하며 승격 플레이오프 권을 지켜낸 건 공격진의 힘 덕분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불안한 수비진과 측면 공격은 팀의 불안 요소입니다. 특히나 도봉산은 신입생인 아다마 트라오레에게 밀릴 정도로 폼이 떨어졌습니다.”

도봉산을 대신해 오른쪽 윙어로 자주 얼굴을 들이미는 아마다 트라오레.

폭발적인 드리블과 주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플레이가 너무 ‘무식’했다.

동료들의 영리한 움직임을 허사로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플레이는 이 선수가 한참이나 발전해야 한다는 증거였다.

“도봉산의 부재가 포츠머스의 약화에 가장 큰 이유에요. 반대발 윙포워드를 사용할 때 가장 강한 팀이거든요. 도봉산이 흔들리며 정발 윙어나 투톱 전술로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종종 발로텔리가 왼쪽 윙포워드로 나오긴 하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아요.”

제법 괜찮아지긴 했지만 공격수 자리에서 보여주던 모습을 도봉산의 자리에서는 보여주지 못하는 마리오 발로텔리.

그래도 계속 괜찮아지는지라 훗날을 기대하게 했다. 완전 영입이 된다면 반대발 왼쪽 윙포워드는 걱정이 없을 거다.

“그래도 나쁜 소식만 가득하지는 않습니다. 세 경기만 승리하면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 짓습니다.”

“그렇죠. 승격 플레이오프에만 진출하면 승격의 가능성이 매우 크죠. 포츠머스는 지난 시즌 토너먼트의 꼭대기까지 올라갔던 전적이 있으니까요.”

승격 플레이오프.

3위부터 6위까지의 4개 팀이 한자리 남은 승격 자리를 두고 다투는 토너먼트다.

3위와 6위, 4위와 5위가 먼저 1, 2차전을 치른 뒤에 승자끼리 단판으로 승부를 가리는 방식이다.

“물론, 제일 좋은 경우의 수는 역시 바로 진출하는 1위나 2위를 하는 거겠지만요. 그럼 나단 필립스 씨는 포츠머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톰 힉스의 마지막 질문에 나단 필립스는 모처럼 긴 고민의 시간을 가진다.

워낙 들쑥날쑥한 포츠머스의 경기력 때문에 계산이 어려웠다.

“흐음···.”

인상을 잔뜩 찌푸린 나단 필립스. 어찌나 고민했던지 순식간에 없던 볼살이 더욱 홀쭉해지고서야 입술을 뗀다.

“이번에는 확신은 못 한다고 미리 밝힐게요. 운이 좋으면 준우승. 운이 나쁘면 3위를 할 거라고 생각해요.”

평가를 할 때는 누구보다 냉정한 나단 필립스. 영혼의 동반자인 포츠머스에도 자비가 없다.

이미 우승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 냉철한 예측에 시청자들은 절로 고개를 끄떡일 정도.

“역시나, 나단 필립스는 가짜 서포터입니다. 암만 그래도 포츠머스인데 조금 후하게 쳐줬어야죠. 쯧쯧.”

혀를 차며 기습공격을 감행하는 뚱보, 톰 힉스. 이에, 나단 필립스는 평소처럼 얼굴을 붉히며 일장 변명을 하려 하지만 재빨리 막아버린다.

“자 그럼, 여기까지 뚱보와 삐쩍이였습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만날 때까지 지방을 넉넉히 축적해주시길!”

“야 이··· 개···!”

포츠머스에 대 유행중인 한국 욕설의 앞글자와 함께 끝나는 방송.

그들다운 유쾌한 마무리였고, 나단 필립스의 예측은 또 한 번 들어맞는다.

그 후 두 달간 운이 나빴는지 결국 3위로 시즌을 마감하게 되는 포츠머스.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6위와 맞붙게 되었다.

그리고, 신의 장난인지 상대는 기적적으로 6위를 달성한 볼턴 원더러스.

그렇다. 도봉산의 친정팀과 승격을 앞둔 일전을 남겨두게 된 것이었다.

< 150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후반기. (8)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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