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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149화 (149/306)

< 149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후반기. (7) >

며칠 뒤 아침. 포츠머스의 관련 매체에서는 대대적인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무려 4건의 이적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져 아침을 시작한 서포터들은 아직도 꿈속인듯한 착각에 빠져들 정도였다.

[안토니오 그린의 풀럼FC 이적. 이적료는 50만 파운드.]

[재커리 뱅크스는 3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호주 리그로 향합니다.]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17세 골키퍼인 아론 람스데일 이적 완료. 이적료는 20만 파운드.]

[스토크시티 소속인 뉴캐슬의 레전드 골키퍼 셰이 기븐 임대 완료.]

공격수 한 명과 골키퍼 3명의 동시다발적인 이적!

지난 두 번의 겨울 이적시장을 날로 보냈던 포츠머스가 맞나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덕분에 새해가 무색하게도 화가 잔뜩 나 있었던 서포터들은 금방 마음을 풀고 행복을 만끽했다.

-아론 람스데일. 얼굴부터가 축구 잘하게 생겼어.

-밋밋한 얼굴이야말로 근본의 기본이지. 좋은 선수가 될 거야.

-셰이 기븐이 진국이야. 39세의 노장이지만 한때 ‘신’으로 불렸던 골키퍼라고.

-맞아. 아론 람스데일의 개인교습은 물론, 어린 팀의 중심을 잡아줄 거야.

-좋지 않은 상황에서 최고의 선택을 했어. 역시 성소하 감독.

오는 선수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아끼지 않는 포츠머스의 서포터들. 그리고 가는 선수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현했다.

-미안하다. 재커리 뱅크스. 수년 동안 선발에서 완전히 밀렸는데, 잘되길 바랄게.

-불만 한번 내비치지 않은 훌륭한 백업자원이었어. 호주에서는 자주 경기에 뛰길.

-욕해서 미안하다! 거짓말에 선동되었어. 너무 타이밍이 절묘하길래. 하여튼 미안하고 고마웠어.

재커리 뱅크스, 개인에는 태세 전환이라고도 느껴질 만큼 이중적인 모습이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당사자인 본인은 크게 감동했으니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불만 한번 없이 차디찬 벤치를 지켜왔던 선수답게 오해로 인한 실수는 대범하게 넘어가 준 재커리 뱅크스.

오히려 이런 그의 모습은 포츠머스 서포터들에게 더욱더 큰 벌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안토니오 그린에 대해서는 아쉬운 말이 많이 나왔다.

-안토니오 그린은 조금 아쉽다. 아직 선수단에 특별한 공격 옵션을 제공해줄 선수였는데.

-승격을 앞두고 저런 결정을 내리다니.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선수가 될 거야. 그동안 수고했다.

-주전을 원하는 건 선수로서 당연한 마음가짐이지. 우리는 널 잊지 않을 거야.

쏠쏠한 활약을 해주었던 백업선수에게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왜 팔았냐는 의문까지 가질 정도로 섭섭해했으니까.

물론 이 고마움은 포츠머스의 선수단과 프런트에도 마찬가지.

모처럼 성대한 고별식을 열어줬고 안토니오 그린의 눈가에 이슬을 만들어냈다.

“···포츠머스의 선수였다는 사실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겠습니다.”

다부진 다짐과 함께 포츠머스를 떠나는 안토니오 그린. 선수들은 사석에서 만나자는 약속과 함께 그를 쉽게 보내준다.

어차피 풀럼의 연고지는 옆 동네 런던. 외국이면 몰라도 런던 정도면 친한 직장 동료가 근처 회사로 이직한 느낌 정도였을 뿐이었다.

***

새로 포츠머스에 합류한 아론 람스데일. 처음으로 감독과 만나 사진을 찍는 자리라 무척 긴장했다.

‘후우. 저분이 세계가 주목한다는 천재 성소하 감독님인가.’

눈앞에서 프런트의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푸른 눈의 검은 머리를 가진 남자. 이 남자가 바로 성소하였다.

‘전설, 혹은 동화를 쓰고 있는 작가.’

어린 선수에게 소하의 존재란 더욱 크게 와닿았다.

그의 선택을 받았다는 건 재능있다는 품질보증서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조쉬 킹, 델리 알리, 앤디 로버트슨, 데클란 라이스, 매튜 다이스, 칼빈 필립스, 아담 웹스터. 전부 십 대 시절부터 성소하 감독님이 직접 키운 선수들이지.’

이들 중에서는 아직도 십 대가 많았고, 20대는 소수였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의 포츠머스를 만든 황금세대. 하나같이 솔솔 대형 클럽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중인 역대급 재능들이었다.

그러니 어찌 두근거리지 않으리.

하부리그의 유망주들에게 소하는 정말로 눈에 보이는 살아있는 신이었다.

‘과연 어떤 분일까. 겉보기에는 지략형 감독일 거 같은데···. 차갑고 냉정하며···. 신사 같은 느낌이야.’

단단히 착각하는 아론 람스데일.

하기야, 소하는 외모로만 보자면 이런 오해를 해도 충분했다.

동양계 피가 섞인지라 선이 상대적으로 가늘었고 푸른 눈은 이지적이며 차가운 느낌을 풍겼으니까. 여기에 검은 머리는 차분한 느낌을 더해줘서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다.

게다가 내부사정을 잘 모르는 뜬 소문에서도 마찬가지 평가였다.

-차갑고 이지적이지만 유머러스하며 대단한 승부사적 기질을 가진 감독.

소하가 들었다면 어깨를 으쓱거리며 한 달 정도는 시간 날 때마다 잘난 체를 했을 개소리였다.

아마 밀러나 다른 선수들이 들었다면 뱃속에서 소화 중인 음식을 모두 게워내도 무죄일 정도.

하지만 아쉽게도 아론 람스데일은 신입생이었고 뜬소문을 믿어버린 순진무구한 소년이었다.

게다가 지금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소하도 소하였지만, 그의 옆에는 전설적인 골키퍼 셰이 기븐이 앉아있었으니까.

“잘 부탁한다. 고민거리 있으면 언제라도 나에게 물어봐도 좋다.”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먼저 손을 내미는 셰이 기븐.

20년을 넘게 프로 생활을 한 대선배인지라 아론 람스데일은 덜덜 떨며 손을 내민다.

단순히 경력 차이가 나서가 아니다. 이미 명성마저도 하늘과 땅 차이. 셰이 기븐은 지구 반대편의 축구팬들도 모르는 이가 적은 대단한 선수였다.

이제 막 성인 무대에 어슬렁거리는 어린 선수에게는 너무 큰 상대다.

“네. 많이 배워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지. 축구선수로서 황혼기인 내가 당연히 이행해야 할 의무이니까.”

과연, 오랫동안 최상위 리그에서 버티어낸 선수다운 마음가짐이다.

소하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의식이 철철 흘러넘친다.

꽈악.

서로를 맞잡는 두 손.

연륜이 느껴지는 두꺼운 손과 탱탱한 손이 굉장히 대조적이다.

각각 17세와 39세라는, 2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악수의 모습이었다.

“이야. 벌써 친해졌어?”

마침, 세월을 뛰어넘는 악수를 목격한 소하. 껄렁껄렁한 걸음걸이로 다가와 은근슬쩍 끼어봤다.

그러자 훈훈한 분위기를 풍기던 두 선수는 순간 말을 잊었다.

‘허허. 듣던 거와는 많이 다른 모습인데? 웬 불량배 하나가 말을 건 줄 알았어.’

‘어···. 듣던 거랑 조금 다른 거 같은데. 내, 내가 긴장해서 그런가.’

20년의 세대 차이를 뛰어넘고 똑같은 감상을 받았다.

행동거지나 말투나 이거 완전히 동네 삼류 양아치 아닌가. 이런 남자가 전설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뭐야? 왜 그래. 오자마자 감독인 나를 따돌리는 거야? 이거 가슴 아픈걸.”

점점 더 가관이다.

짐짓 가슴을 부여잡으며 슬픈 척하는 연기를 선보이기까지 한다.

“뭐 됐고. 이제 슬슬 사진이나 박고 빨리 쉬자고. 피곤해 죽겠어. 그래도 어쩌겠어. 팬들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사진인걸. 애초에 잘못 시작된 문화 아닐까? ”

투덜투덜. 쉬지 않고 투덜거리며 계약 사진회를 진행하는 소하.

그런 그의 모습에 셰이 기븐과 아론 람스데일은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환상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

골키퍼 문제를 완벽히 해결한 포츠머스! 이제 다시금 정상을 향한 폭주가 시작되리라 예상이 된다.

하지만, 축구는 단순한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게임이 아니었다.

빈 공간을 채웠다고 완벽한 그림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 아쉽습니다. 3연패는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간신히 무승부를 거두었습니다.]

[거의 질뻔한 경기였어요. 아직 팀의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모될 것으로 보입니다.]

대규모 이적이 끝내고서 곧바로 이어진 26라운드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거뒀다.

선발로서 데뷔전을 치른 셰이 기븐의 평가는 평범. 어쩔 수 없었다. 나이도 나이였고 꽤 오랜 시간 경기에 나서지 못한 상태라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긴 어려웠다.

썩 좋지 않은 경기력이었지만 내리 2연패를 당했을 때보다는 훨씬 좋았던 모습이라 서포터들이 기대하기엔 충분했다.

“중요한 건 흐트러진 선수단의 분위기야. 이걸 바로 잡아야 한다.”

축구는 기세가 중요하다.

경기 중에서도 기세를 타면 남다른 경기력을 보여주며 약팀이 강팀을 잡아내기도 하지 않던가.

이것은 리그 레이스에도 통용되었다.

그리고 한번 주춤한 기세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승리’가 보약.

일단 1승을 거두고 이후에 연승을 이어나간다면 말콤 우드의 부상에 충격받은 선수들도 제정신을 차릴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니란 게 문제지.”

소하는 폭풍 같은 개인 면담 로테이션을 가동했음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땐 방법은 한가지. 바로 믿음이지. 일단 시간을 죽이며 믿어보자. 내 새끼들은 그리 약하지 않아. 아니···. 않겠지? 큼큼.”

그와는 정말 어울리지 않은 단어를 입에 담으며 상황을 주시하는 소하.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렀고 포츠머스는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며 리그를 계속 이어나간다.

결국 2월 말까지 순식간에 도착해 버린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리그의 막바지에 들어선 순간에도 연승을 거두지 못하며 리그 5위까지 떨어지고 만다.

아직 승격 플레이오프 권이긴 했지만, 전반기의 마지막에 보여줬던 칼끝은 너무나도 무뎌진 상태.

특별한 대책이 슬슬 필요할 때쯤. 소하에게 생각지도 못한 응원군이 도착했다.

***

“이야. 늙은이치고는 금방 낫네. 어디 병원이야? 천재 의사가 집도했나? 아니지. 거의 힐링 마법이네. 미리 알아놔야겠어.”

소하의 우스갯소리에 응원군, 말콤 우드는 씨익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 의사 말로는 다리가 잘려도 다시 자라게 할 수 있다던데요.”

“이야. 뭔 사이버 펑크 세계에서 회귀라도 했대? 하여튼 잘 걸어 다니니 다행이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님.”

큰 부상 이후 두 달이 지나 클럽하우스에 모처럼 모습을 드러낸 말콤 우드.

아직 목발 신세는 면치 못했지만, 얼굴은 상당히 밝다. 아마도 수술과 재활의 경과가 무척 좋은가 보다.

“그나저나 아픈 몸 이끌고 여긴 왜 왔냐? 우리 팀 경기보다가 화병 날까 봐 혼내러 왔지?”

“뭐···.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죠.”

진심이었다. 솔직히 포츠머스의 경기를 보다가 부상이 재발할 정도로 열불이 터졌으니까.

단순히 못 해서가 아니었다. 부상을 당해 어린 동료들을 흔들리게 한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얼굴이라도 보여주면 좀 괜찮아질 거라 생각한 거냐?”

“아닌가요?”

능글맞게 되묻는 말콤 우드.

물론, 소하는 최고의 도움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존나 좋은 어시스트지. 거의 외질 급 킬러패스다.”

“하하. 그럴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제가 쩔뚝이며 이 먼 곳까지 온 거 아니겠어요? 올리비에 지루처럼 날려 먹지만 마세요.”

“···암만 그래도 탄식형 공격수랑 비교하냐. 요즘 아스널 팬들한테는 최고의 욕이야. 그거.”

서로 낄낄거리며 농담을 주고받는 소하와 말콤 우드. 회귀 전에도 죽이 잘 맞던 사인지라 친한 형과 동생 같다.

그렇게 한참을 잡담을 떠는 감독과 선수. 어느 정도 시간이 무르익자 소하가 눈을 치켜뜨며 기습공격을 가한다.

“나머지 이야기는 나중에 고기나 구워 먹으면서 하자고. 아픈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응원단장’을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잖아?”

“···역시 감독님의 눈을 속일 순 없군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말콤 우드. 이 눈앞의 자기보다 나이 어린 감독은 동생이 아닌 형 같은 느낌을 자주 뿜어냈다.

“사실대로 말할게요. 솔직히 좀 망설였지만요.”

“역시 그거냐?”

“···대단하시네요. 미리 병원에 가서 알아보신 건가요?”

“내가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그냥 척 보면 척이지. 원래 너 같은 성격은 아플수록 더 아픈 척하지 않지 않냐. 다 경험이야 경험.”

“경험이라···.”

말콤 우드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감독 중에서는 풋내기와 다를 바 없는 경력을 지닌 소하가 경험 운운하다니. 참 여러모로 비밀이 많은 남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하지만, 지금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 자신의 존경하는 보스에게 일생일대의 보고를 해야만 했다.

“맞아요. 전 이제 더는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없어요. 은퇴를 해야 해요.”

“···.”

씁쓸하게 웃으며 선수 생활의 종지부를 이야기하는 말콤 우드.

그런 그의 미소에 소하는 모처럼 심장 부위가 바늘로 찔리듯이 아파졌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어림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말콤 우드의 미소가 모처럼 소하의 마음을 울렸다.

“그 집 수술 잘한다며.”

“잘해서 일반인 수준으로 복귀가 가능한 거죠. 가뜩이나 오랜 선수 생활로 녹슨 발목과 무릎의 관절이 골절의 충격에 많이 망가졌다네요.”

“그러냐···.”

잠시 소하와 말콤 우드의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그저 침묵으로 대화하며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밖에.

“후우. 그래서 너는 어쩔 생각이냐.”

긴 침묵을 깬 소하는 말콤 우드의 미래에 관해 서두를 꺼냈다.

과거는 이미 지난 일. 백날 후회하고 생각해봤자 되돌릴 수는 없다.

소하가 겪었던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글쎄요.”

“하긴. 아직 현재도 수습이 어려운데 미래를 생각하긴 어려웠겠지.”

“그게 보통이에요.”

“그렇지.”

“하지만 감독님은 보통이 아니죠. 뭔가 생각해두신 게 있을 텐데요.”

장난기 어린 웃음과 함께 소하에게 문제를 던져주는 말콤 우드.

그리고 그 문제는 이미 소하가 답안지를 작성해둔 문제였다.

“너, 코치로 들어와라.”

소하의 빠른 답안지 제출에 말콤 우드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는 환한 미소와 함께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감독님.”

선수로서의 꿈은 끝났어도 아직 그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소하의 답은 그가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던 환상적인 답안지였다.

< 149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후반기. (7)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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