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148화 (148/306)

< 148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후반기. (6) >

아론 람스데일의 현 소속 구단은 셰필드 유나이티드 FC.

아직 리그 데뷔도 하지 못한 팀의 유소년출신 선수다.

소하가 그를 차기 수문장으로 낙점한 이유는 당연하게도 훗날 괜찮은 발밑을 가진 골키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발밑 좋은 골키퍼.

공격축구를 한다는 팀이라면 누구나 다 원하는 유형 아니던가.

괜찮은 선수의 숫자도 그리 많지 않아서 미리미리 사두면 두고두고 든든할 터. 매우 매력적이다.

‘덤으로 국적도 영국이고.’

축구팬이라면 다 알듯이 국적이 영국이면 프리미엄이 붙는다.

이래저래 선수단 구성에 혜택도 상당했으며 혹시라도 보내줘야 할 때면 가격을 두둑이 받아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우량주 같은 선수랄까.

‘게다가 솔직히 말하자면, 차세대 골키퍼 중에서 영입할만한 선수가 얘 말고는 없어.’

훗날 유명해지는 선수들은 하나같이 유명 구단의 유망주들이다.

그런 선수들을 2부리그인 포츠머스가 영입하기엔 불가능한 일.

그에 반해 아론 람스데일은 훗날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수준급 재능을 가졌을뿐더러 현 소속 구단이 3부리그다.

그러니까, 작년까지 포츠머스가 몸담았던 리그1에 자리 잡은 팀이란 말이다.

그리고 상위구단 팀이 하위구단의 선수를 영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맨날 당하고만 살 수는 없지.’

먹이사슬의 최약체에서 순식간에 포식자로 진화한 소하와 포츠머스.

선수를 유혹하는 데에는 별문제가 없다.

하지만 구단과의 협상은 난항이 예상되는바. 포츠머스의 골키퍼 자리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았으니까. 불 보듯 뻔한 일이었고 여지없었다.

“좋습니다. 20만 파운드면 바로 개인 협상을 허락하도록 하죠.”

20만 파운드.

한화로 대략 3억 원.

꽤 비싼 금액이다. 3부리그 팀의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골키퍼 유망주에게는 말이다.

급한 상환을 아니까 돈을 좀 더 쓰라는 배짱 장사였지만 의외로 소하는 매우 만족했다.

‘저 정도는 받아야지. 셰필드가 땅 파서 돈을 버는 구단도 아닌데.’

유망주 육성에 3~5년.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 주급을 생각해보면 딱 본전 회수 정도의 느낌이다.

물론 협상하면 조금 깎을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매우 부족한 상황.

괜히 질질 끌리다가 셰필드가 팔지 않겠다고 하면 그날로 정말 망해버린다.

“좋아요. 노 네고. 그대로 20만 파운드로 가도록 하죠.”

쿨거래에 응한 소하. 이에 셰필드는 무척 마음에 들어 한다.

‘제법 괜찮은 감독이군. 20만 파운드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봤어.’

소하의 예상대로 본전에 조금 얹은 수준이었으니까.

만약 조금이라도 깎을 의사를 표명했다면 피 말리게 해줄 심산이었다.

‘질질 끌다가 이적시장 마지막 날쯤에나 허락해줬을 텐데. 눈치가 좋은 건지 합리적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안목은 뛰어나군.’

구단 간의 협상이 빠르게 끝나자 곧바로 아론 람스데일과의 개인 협상에 들어갔다.

당연한 반응이지만, 아론 람스데일은 말 그대로 ‘날 듯이’ 기뻐하며 하루라도 빨리 포츠머스에 합류하고 싶어 했다.

‘포츠머스라니! 포츠머스라니! 이게 꿈이야 생시야.’

포츠머스의 명성은 상위리그보다는 하위 리그에서 더욱 맹위를 떨쳤다.

그간 걸어왔던 길은 하부리그에 몸담은 모든 팀과 선수들의 로망이었으니까.

심지어 지금은 조금 흔들리는 중이지만 승격확률은 매우 높은 포츠머스 아니던가.

이 팀에 합류한다면 다음 시즌에는 하부리그 선수가 꿈에도 그리는 프리미어 리그 입성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골키퍼 자리도 공석이야. 즉, 날 본격적으로 키우겠다는 말이지.’

주전 경쟁도 그리 어렵지 않다. 이미 포츠머스 내부 소식은 알 사람들은 다 알았으니까.

종합하자면 여태까지 아론 람스데일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큰 기회였다.

그야말로 자고 일어났더니 수십억이 들어있는 통장이 베갯머리에 놓인 상황!

거절할 리가 없었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무조건 갈게요.”

이러니 협상이 필요할 리가.

아론 람스데일의 에이전트도 상식선에서는 어떤 조건도 받아들이겠다는 열린 태도였다.

에이전트에게 선수란 고객이자 자산.

자산이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성장을 하는 판국에 잿물을 뿌릴 멍청한 인간은 에이전트의 자격이 없는 거였다.

이로써 순식간에 훌륭한 골키퍼 영입을 목전까지 앞두게 된 포츠머스.

이제 구단 간에 돈이 오가기만 한다면 새로운 영입의 완료였다.

***

한편, 포츠머스 외부에서는 또 다른 고지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니, 고지전이 아니었다. 그저 점령군의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이랄까.

참혹한 댓글들이 연이어 올라왔다.

-재커리 뱅크스, 이 개새끼가 팀이 어려울 때 튀려고 하네.

-한번 벌레는 영원한 벌레지.

-은혜도 모르는 새끼. 어디 얼마나 잘난 구단으로 가길래···.

-호주 리그라던데?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아니지. 수준에 맞는 곳이지.

-주급을 엄청나게 요구했다는 소문도 돌던데.

등등. 가짜뉴스까지 나오며 재계약에 합의하지 않은 재커리 뱅크스를 맹비난했다.

종종 과한 비난을 삼가자는 착한 팬들도 나왔지만, 극히 소수였을 뿐. 그마저도 보이자마자 무자비한 학살을 당하고 종적을 감추었다.

재커리 뱅크스로서는 너무나도 억울한 일. 개인 인터뷰까지 하면서 변명해봤지만 불을 점점 켜졌다.

보다 못한 소하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왔고 기자회견을 열어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서포터에게 정말 실망했습니다. 재커리 뱅크스의 구두계약은 이미 몇 달 전에 끝났던 일입니다. 단지 시기가 잘 맞지 않았을 뿐입니다. 유언비어는 물론, 그동안 팀에 헌신한 선수에게 모욕을 주는 행위는 제가 알던 멋진 포츠머스가 아닙니다.”

매우 험상궂은 얼굴로 통렬한 비판을 작렬한 소하. 이토록 굳은 얼굴로 기자회견을 가지는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보는 이들은 모두 숨을 멈추었다.

“물론, 골키퍼의 부재 때문에 불안감이 가중되어 민감한 반응을 보이실지도 모릅니다. 이 점은 이해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유망주, 아론 람스데일 영입에 초근접 했다는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임대를 고려 중인 선수와도 곧 접촉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제가 알던 서포터들로 돌아와 주시길 바랍니다.”

감독이 직접 나서서 카메라 앞에 서서 경고와 소식을 알리는 색다른 이벤트를 펼쳤다.

참으로 보기가 드문 장면이었고 그 덕에 효과는 매우 좋았다.

-누가 감독님 화나게 했냐?

-들었지? 다들 입 다물어.

-죄송합니다.

-역시 성 감독은 다 계획이 있었어.

-욕 처먹어도 쌌다. 우리는.

순식간에 화재를 진압해 버렸다.

잉글랜드에서는 축구가 종교.

그 종교를 관장하는 소하는 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신의 입에서 터진 불호령은 미쳐 날뛰던 서포터들의 입을 봉인하기에는 너무나도 효과적이었다.

게다가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재커리 뱅크스가 아닌 새로운 영입생과 임대생에 눈이 돌아갔다.

그야말로 대중을 다루는 데에는 도사의 경지에 오른 소하였다.

-아론 람스데일은 누구야?

-유망주인가 본데···. 일단 성소하 감독의 선택이니 믿어봐야지.

-3부리그 유망주라. 좀 애매하지만 성소하 감독의 안목을 믿어봐야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임대 제안을 한 선수는 누구야? 정보가 없는데.

화제에 오른 아론 람스데일과 신원미상의 임대선수.

놀라운 건 임대선수에 관한 정보는 구단 프런트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소하의 오른팔인 잭 밀러마저도 말이다.

“그래서···. 누굽니까? 그 선수는?”

밀러는 자신에게도 비밀로 했다는 사실에 섭섭함을 감추지 않고 소하에게 물었다.

“뭐야. 왜 얼굴에 ‘나 삐졌어.’라고 써두셨어요?”

눈치가 없는 건지. 무신경한 건지.

평소와 다름없는 뚱한 소하의 반응에 밀러의 심사는 더욱 뒤틀렸다.

“당연하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한테까지 임대선수를 비밀로 할 것까진 없잖습니까!”

버럭! 성난 중년 아저씨의 구슬픈 고함이 울려 퍼졌다.

어찌나 속이 상했던지 3년 내내 처음으로 소하에게 소리친 밀러.

이에, 소하는 오랜만에 관자놀이가 지끈지끈했다.

“진짜 갱년기 오셨나 봐.”

“흥. 그게 아닙니다. 믿음의 등뼈가 부서졌달까요.”

“···.”

믿음의 등뼈는 또 뭐란 말인가.

한숨이 절로 나오는 소하였지만 알 수 없는 등뼈를 다시 붙여주기로 마음먹는다.

“오해에요.”

“뭐가 말입니까?”

“아저씨만 모르는 게 아니라 다 몰라요. 왜냐고요? 저 혼자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네?!”

깜짝 놀라는 밀러.

혼자만 고려 중인 일을 언론에 밝히다니. 눈앞에서 푸른 눈을 번뜩이는 젊은 청년의 간덩이 크기가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실패하면 난리가 날 텐데요. 또···. 프런트 쪽이랑 이야기도 해봐야 하고. 반대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반대라니요. 완전 우리 팀에 적절한 선수인데요.”

“에이. 뭐 뻔하지 않습니까? 또 어디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매물을 들고 오시겠죠.”

“···.”

할 말을 잃은 소하.

하긴, 그간 영입한 선수들은 하나같이 현재로서는 무명이었으니까.

미래에는 3살짜리 어린아이도 아는 이름이었지만 말이다.

“흥. 아니거든요. 이번에는 축알못인 밀러 아저씨도 굉장히 잘 아는 선수거든요.”

“···축알못이라뇨.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명색에 제가 수석코치인데···. 근데 갑자기 웬 임대입니까? 이럴 거면 처음부터 임대하시지···.”

“그러고 싶었는데, 임대료조차 없다는 걸 어떡해요.”

“···여름에 너무 시원하게 썼군요.”

“그러니까요.”

동시에 한숨을 내쉬는 감독과 수석코치. 영세구단의 슬픔이란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모를 거다.

“하여튼, 아다마의 이적료와 계약금은 둘째 치더라도 발로텔리의 주급 부담과 임대료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비쌌어요.”

리버풀 측에서 60%의 주급을 내주지만 40%만으로도 포츠머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었다.

이 주급 소비를 채우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이적 예산을 박아버렸던 포츠머스였다.

“그래도 돈값은 잘하니까 다행이죠. 그나저나 도대체 누굽니까 감독님 머릿속의 그 골키퍼는.”

“후후후. 그건 말이죠.”

진득하니 웃던 포츠머스는 밀러의 귀에 자그맣게 속삭였다.

“셰이 기븐.”

우리나라에서는 ‘기븐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레전드였다.

“호오. 과연! 명안입니다!”

이름을 듣자마자 펄쩍 뛰는 잭 밀러.

셰이 기븐이라면 현 팀 상황에서 최고의 선수였다.

베테랑 중에서 베테랑이라 팀에 부족한 멘토 역할을 맡을 수 있었으며,

골키퍼로서도 단기간 버텨주기에는 최적이었다.

심지어 그의 소속팀인 스토크시티에는 ‘잭 버틀란드’가 미친 활약을 유지하는 중이라 경기에 나오지 않고 주급만 축내고 있는 상황.

밀러가 물개박수를 칠만한 멋진 선택지였다.

“어때요? 이 정도면 제멋대로 언론에 밝혀도 아무 문제 없잖아요.”

소하가 콧대를 치켜세우며 으스댔지만 밀러는 그저 행복해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고 말고요.”

밀러의 말처럼 포츠머스 내에서 반대할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설령 브라이언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

“흐음. 좋군요. 전 포츠머스행에 대단히 큰 관심이 있습니다.”

스토크시티의 허락을 받자마자 진행된 개인 협상.

이번에도 선수는 포츠머스로 이적하는 것에 매우 긍정적이었다.

선수 생활의 막바지에 이런 기회라니. 솔직히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내 커리어에 포츠머스의 역사적인 승격을 추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심지어 당분간은 확고한 주전으로 사용할 예정이라는 말에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로써 단 3일 만에 돈만 보내면 되는 상황으로 만들어둔 소하.

정말 번개 같은 속도였으며 놀라운 행동력이었다.

“뭐, 사실 2주 동안 돈을 어떻게 마련할 건지 고민만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지난 두 경기를 괜히 버린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안토니오의 선택일 뿐.

남겠다고 한다면 시원하게 마이너스 통장이나 하나 만들 예정이다.

신념 하나를 포기하는 격이지만, 결국 그 신념도 팀을 잘 되게 하려고 세운 것 아니던가. 일단 살고 봐야 했다.

“자···. 그럼 이제 약속한 3일째인데.”

천천히 차를 음미하며 안토니오 그린을 기다리는 소하. 찻잔의 온기가 사라졌을 무렵. 드디어 기다리던 안토니오 그린이 소하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감독님 마음을 정했습니다.”

“···.”

묵묵히 바라보는 소하를 응시하던 안토니오 그린은 천천히 자신의 결정을 내뱉는다.

“전···. 새로운 도전을 해보겠습니다. 풀럼에서 말이죠.”

안토니오 그린의 결정은 이적이었다.

박수 칠 때 떠나야 아름다운 이별이었으니까.

“그래. 넌 잘할 수 있을 거다.”

굳은 결심에 많은 말은 필요 없었다.

< 148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후반기. (6) > 끝

ⓒ 블라님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