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후반기. (4) >
포츠머스의 진형은 투 톱을 기용하는 3백이다. 투 톱을 받쳐주는 공격형 미드필더, 델리 알리까지 기용한 굉장히 중앙지향적인 대형.
이런 극단적인 전술이 의도가 무엇인지는 파악하기 매우 쉬웠다.
‘우린 중앙으로 공격할 거야. 너넨 측면으로 공격해. 중앙으로 올 생각은 하지 말도록.’
축구는 결국 국지적인 전투에서 숫자가 많은 쪽이 승리하는 스포츠.
종종 이 진리를 깨는 특별한 선수가 튀어나오긴 했지만, 챔피언십 리그에는 없었다.
하여튼, 이렇게 중앙에 선수가 밀집되어있다면 어차피 중앙에서의 승부는 포츠머스가 승리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결국 리즈 유나이티드의 공격 방향은 상대적으로 수적 우위를 점한 측면 쪽. 함정임이 분명했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중앙으로 들어간다는 건 자살행위다. 리그 최고의 압박 능력을 갖춘 팀을 상대로 사지 속으로 걸어갈 순 없지.’
리즈 유나이티드의 스티븐 에반스 감독은 울며 겨자 먹기로 측면에 집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우리는 측면으로 볼을 집중적으로 투입한다! 크로스를 과감히 시도해!”
정통적인 공격방식을 선택한 리즈 유나이티드. 이것만으로도 승리 가능성은 매우 떨어졌다.
자고로 크로스를 이용한 헤더 골은 극히 확률이 낮은 득점 루트였으니까.
게다가 이건 소하의 함정이었다.
투 톱과 양 중앙 미드필더에게 넓게 움직임을 가져가라고 사전에 명령을 내렸던 소하.
상대가 예상대로 움직여주자 입술을 씰룩이며 좋아한다.
“광전사도 안 읽어봤나?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없는 거라고.”
명작 만화의 명대사를 읊조리며 회심에 찬 미소를 짓는다.
그의 미소에 화답이라도 하듯 포츠머스는 리즈 유나이티드의 목줄을 움켜잡고서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엄청난 파상공세입니다! 측면 공격을 시도해보지만 전혀 먹히지 않아요. 이거 완전히 쥐덫을 밟은 생쥐 꼴인데요!]
[중앙으로 반전을 해보려고 해도 중앙에서 독특한 움직임을 가져가는 데클란 라이스와 델리 알리 때문에 통하질 않습니다!]
명목상 중앙 수비수인 데클란 라이스.
이 젊은 재능은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왔다 갔다 하면서 중원을 꽉 틀어쥐었다.
하프백이라 할 법도 했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며 대단한 활약을 선보인다.
게다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온 델리 알리는 3선과 2선의 사이쯤에서 어슬렁거리며 데클란 라이스와 패스를 주고받는다.
중앙 수비수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가 서로 패스를 주고받는 기괴한 장면!
이런 독특한 전술은 수년간의 프로 생활을 오랫동안 경험한 리즈 유나이티드의 베테랑들도 처음인지라 뇌 정지가 와버렸다.
“뭐야? 저건?!”
“미치겠네. 도대체 어떻게 마크를 해야 하는 거지?”
“저 둘의 움직임에 제대로 호응해주는 팀원들도 놀랍다.”
적이지만 감탄이 나올 정도의 팀플레이. 여기에 모처럼 나온 조쉬 킹도 대단한 활약을 선보인다.
[조쉬 킹! 믿기지 않습니다! 도대체 4개월간 경기에 나오지 못한 선수의 모습이 아니에요!]
[더욱 놀라운 건 큰 부상을 당했던 선수가 맞나 의심스럽다는 겁니다. 보통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마련인 데요. 여전히 우악스럽게 플레이합니다!]
부상은 육체의 피해도 피해였지만 심리적으로도 큰 후유증을 남긴다는 점이 더 좋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포츠머스에 있지 않은가. 바로, 도봉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특유의 저돌성을 잊지 않은 조쉬 킹은 정신력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으라아아아!”
챔피언십 리그를 처음 경험해 보지만 여느 때와 같이 수비수를 힘으로 제압하는 조쉬 킹!
이 모습에 사람들은 한 가지 사실을 드디어 깨달았다.
“우리가 조쉬 킹의 잠재성을 저평가하고 있었던 것인가···!”
관중들은 물론, 조쉬 킹을 지켜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스카우트들도 서둘러 평가를 바꿨다.
‘단순한 하부리그 유망주가 아니다.’
‘잘 성장한다면 1부리그에서 어느 정도는 통할 수준의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세계적으로도 통할 선수가 될 가능성이 보인다.’
‘21세에 프로 생활이 벌써 4년 차다. 조만간 프로 통산 100경기를 달성할 테고. 성소하 감독이 물건을 키웠군.’
급격히 상향 조정되는 조쉬 킹의 평가!
소하로서는 기쁘기도 하며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자신의 애제자가 제대로 평가받는다는 뿌듯함과 탐내는 구단이 많아진다는 두려움!
‘씨발. 뺏기긴 싫은데. 세뇌는 해놨지만 자아가 커지면 쓸모가 없을 테고···.’
잘하든 못하든 언제나 근심·걱정이 많은 영세구단의 감독의 평범한 모습이었다.
하여튼 복귀부터 놀라운 활약을 펼치는 조쉬 킹. 이것은 그의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파트너의 도움도 컸다.
파트너는 요즘 부활 각이 날카롭게 섰다는 평을 받는 마리오 발로텔리!
요즘 워낙에 뛰어난 실력을 뽐낸지라 경계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덕분에 항상 홀로 수비수들과 싸우던 조쉬 킹이 부상에서 복귀하자마자 날뛸 판이 깔린 것이었다.
‘편해!’
더군다나 이들의 조합은 1+1=2가 아닌 3, 4가 되는 조합이다.
기술적인 마리오 발로텔리.
육체적인 조쉬 킹.
상반된 스타일을 가진 두 공격수가 훌륭한 하모니를 이루자 리즈 유나이티드의 수비수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흡사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들어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으니까.
[대단합니다! 이게 완전한 포츠머스의 모습입니다!]
[이거 후반기의 판도가 어떻게 변할지 너무나도 분명하게 보이네요!]
장내 아나운서와 해설의 폭발하는 극찬. 그들의 찬사처럼 그야말로 너무나 완벽한 경기였다.
단 셋뿐인 승격 자리에 포츠머스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아버리는 모습으로도 보일 정도.
하지만, 사고란 언제나 누구도 예상치 못할 때 터지는 법이었다.
***
포츠머스의 4-0 대승.
어수선했던 리즈유나이티드를 그냥 분쇄해버렸다. 잔인할 정도로 경기를 승리로 마무리를 지었다.
새해를 맞이한 팬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선사한 소하와 포츠머스.
서포터라면 절로 어깨춤을 출만했지만,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아니, 매우 형편없었다. 거의 절망에 빠졌을 정도였으니까.
[말콤 우드의 심각한 부상. 폭주 기관차, 포츠머스에서 적색 신호가 들어왔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저 사고였을 뿐. 전투적인 스포츠인 축구에서 늘상 발생하는 평범한 사고였다.
서로가 치열하게 경기하다가 벌어진 순수한 사고.
말콤 우드는 팀이 이기는 상황에서도 골키퍼로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고,
그래서 이어진 무리한 블록 시도는 상대 선수와의 대충돌을 초래했다.
최고의 프로의식이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낸 아이러니한 상황.
이에 소하도 통탄을 금치 못했다.
“잘라 말해, 말콤 우드의 이번 시즌은 끝났습니다.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프네요.”
항상 긍정적인 기자회견을 가지던 소하마저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부상 부위는 정강이뼈.
심지어 골절이다. 그렇다.
팀 동료인 도봉산이 당했던 그 악몽이 재림한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시즌아웃을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이미 노장인지라 선수 생활의 종지부를 끊을 만한 대참사였다.
그리고 이것은 크나큰 세 가지 문제를 만들었다.
첫째는 당연하게도 골키퍼의 부재.
서브 골키퍼인 재커리 뱅크스는 포츠머스로 이적한 지 3년 차였지만 10경기도 뛰지 못한 선수다.
다시 말해,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하는 팀의 주전 골키퍼로서 실력이 너무 부족한 편. 소하도 정리 1순위에 올려둔 선수다.
둘째는 영 미덥지 못한 재커리 뱅크스마저도 기용하지 못할 상황이라는 거다.
그가 다친 것은 아니다. 그저 재계약에 난항을 겪고 있을 뿐. 아니, 이미 이적시장 마지막 주에 다른 팀으로 보내주겠다는 약속까지 한 상태다.
3년 계약으로 팀에 들어온 터라 지금 재계약하지 못하면 자유계약으로 팀을 떠나게 됐으니까.
‘보스만 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공짜로 보내기엔 아쉬웠기에 약속을 해버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팀 전체의 사기가 떨어졌다는 것. 동료의 참혹한 부상은 선수단 전체의 멘탈을 갈아엎을 만한 일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서로 끈끈한 팀일수록 이 부정적인 효과는 배가 될 터.
여러모로 최악의 결과였다.
“전투에선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패배할 정도의 대참사다.”
정신이 어질어질할 정도의 대사건.
소하는 임진왜란 때 칠천량에서 판옥선이 모조리 불태워졌다는 보고를 받은 이순신 장군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간접 체험했다.
“후우. 그래도 포기는 없다. 머리를 굴려봐야지. 내 사전에 포기란 배추 셀 때나 쓰는 거다.”
머리를 털어내며 빠르게 계획을 세워보는 소하. 이제 챔피언십 리그를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소하는 위기에 강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감독이었으니까.
***
소하가 가장 먼저 시도한 방법은 정석이었다. 어려울수록 정석은 살길이 되다고 하지 않던가. 현명한 판단이었다.
‘일단 재커리 뱅크스와의 재계약을 맺어보자. 약속은 했지만, 도장은 찍지 않았으니까.’
조금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전반기에 벌어둔 승점으로 버텨보자는 계산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시작부터 혼란에 빠지게 됐다. 왜냐하면 재커리 뱅크스가 재계약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죄송합니다. 팀이 어렵다는 건 알겠지만 전 저의 미래를 재설계해야 할 중요한 시기입니다.”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재커리 뱅크스.
미안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 뱅크스의 모습에 소하는 차마 그를 나무랄 수 없었다.
‘그래. 녀석은 녀석 나름대로 인생을 개척해야 할 시간이니까.’
경기 수가 적어도 불편한 기색 한번 내비치지 않던 선수다. 이 선수가 모처럼 다른 구단에 관심을 받는 상황에서 약속을 어기고 계약을 이행하라고 윽박지른다? 너무나도 인간미가 없다.
‘인간성을 버리는 순간 감독으로서는 실패하는 거다.’
누누이 소하가 말하듯이 감독은 서비스업.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인간미가 없다면 고객이 만족하겠는가?
무자비한 처사를 일삼는다면 선수단 내부부터 신임을 잃을 거다.
약속은 약속. 신뢰는 인간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했고, 축구는 인간이 하는 공놀이였다.
‘그래도 일단 설득은 해보자.’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한다면 마음을 돌릴지도 몰랐다.
매우 낮은 확률이었지만 말이다.
“단기계약으로 해줄게. 딱 일 년만, 일 년만 더 있어 주면 된다.”
“죄송합니다. 전 하루라도 빨리 경기에서 뛰고 싶습니다. 저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팀에서요.”
“···다음 시즌에 프리미어 리그에 간다면 네 가치는 더 높아질 거야.”
“그렇겠죠. 하지만 전 지금 절 원하는 팀이 좋습니다.”
재커리 뱅크스는 완고했다. 사실 그럴 만도 하지 않은가.
그동안 냉대 아닌 냉대를 받다가 급해지니까 부름을 받는 꼴이었으니까.
게다가 자신을 원하는 팀에서 제대로 경기를 뛰고 싶다는 열망은 소하의 상상 이상이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많이 사무쳤나 보다···.’
조금 더 경기에 내가 보내줬어야 하는 반성의 기미까지 보이는 소하.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후회는 나중에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두 번째 계획으로 간다.’
곧바로 두 번째 계획을 실행하기로 마음먹는다. 두 번째 계획도 굉장히 정석이었다.
‘모처럼 겨울 이적시장에서 돈을 써봐야겠군!’
뭐겠나. 마침 이적시장도 열렸겠다, 그간 악착같이 모은 돈주머니를 풀면 그만이었다.
“···감독님. 아시다시피 이번 시즌에 남은 이적 예산은 0파운드입니다.”
“···.”
아차차. 깜빡했다.
재무 이사 니엘 비숍의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소하는 잠시 잊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뭐···. 원하신다면 자금을 마련할 수는 있습니다. 사실 은행에서 자꾸 대출받으라는 권유가 오거든요.”
포츠머스는 프리미어 리그 승격이 유력한 우수고객. 돈놀이하는 은행에서 꼬리를 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건 안 돼요.”
대출을 받는 것만은 절대 안 됐다. 물론, 회사 운영에 어느 정도의 빚을 질 필요는 있다.
하지만 소하는 대출이나, 빚에 굉장히 민감한 인물. 사랑하던 구단을 말아먹은 원흉이었으니까.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조금 더 팀이 재정적으로 안정권에 들었을 때. 그때를 기다려야 해. 아직은 시기상조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한 가지다.
바로 이적을 통해 이적료를 버는 방법.
그리고 마침, 소하의 머릿속에는 며칠 전 받았던 안토니오 그린의 이적설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녀석은 필요한데···.’
깊은 고민에 빠진 소하.
그가 가지고 있던 신념과 신념이 맞부닥치는 복잡한 상황에 마주하게 되었다.
< 146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후반기. (4)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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