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145화 (145/306)

< 145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후반기. (3) >

발로텔리와 조쉬 킹, 그리고 아다마 트라오레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속도로 가까워졌다.

이 계기에는 ‘헬스’가 있었음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했다.

“도대체 쇠질은 무엇일까?”

모처럼 생긴 소하의 의문. 감독 데뷔 이후 운동과는 담을 쌓은지라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여튼, 원래 ‘웨이트 매니아’였던 조쉬 킹과 아다마 트라오레와,

프로 데뷔 이후로 오랜만에 진지하게 위로 올라가려고 마음먹은 마리오 발로텔리.

의도와 성향이 다른 두 부류였지만 운이 좋게도 목적이 맞아떨어져 나온 결과였다.

이래저래 선수들끼리 개인적인 관계가 좋다는 건 여러모로 좋은 현상.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에게 무언갈 주고받을 확률이 부쩍 올랐으니까.

그게 기술일지 좋은 마음가짐일지, 혹은 부정적인 무언가일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말이다.

“이로써 향후 10년간 공격진 걱정은 없다.”

소하는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이것은 명백한 사실. 마리오 발로텔리까지 완전 영입에 가까워진다면, 공격수만 5명이다.

그것도 나이가 가장 많은 선수가 20대 중반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든든하다.

오히려 공격진이 너무 비대해서 감축을 진행해야 할 수준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지. 1년. 그러니까 다음 시즌까지는 유지해야 한다.’

온라인 게임에서처럼 클릭 한 번으로 기술이 배워지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천천히 시간을 들여 주전으로 낙점한 선수들이 습득을 마쳤을 때가 정리의 시작이 될 거다.

하지만 거액의 제의가 온다면 어떨까?

핵심이었다면 고려도 하지 않았겠지만, 경험치용 후보 선수라면 이야기가 다를지도 몰랐다.

***

“그러니까···. 안토니오 그린을 원하다 이 말인가요?”

눈을 샐쭉하게 뜬 소하가 뚱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에, 기술 이사 알버트 위버는 잠시 헛기침을 하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큼큼. 네. 그렇습니다.”

“놀랍네요.”

입에서 나온 말과 얼굴이 전혀 매칭되지 않는 소하.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들이 대부분이 클럽하우스에서 퇴근한 저녁과 밤 사이의 시간에 나누는 밀담의 주제는 ‘안토니오 그린의 이적 제안’.

현 시각은 2016년 1월 2일.

그렇다. 일반인들은 새해에 신경을 쓰겠지만 축구판은 겨울 이적시장이 시작한 순간이다.

시장이 열린 지 하루 만에 온 이적 제안은 매우 놀랍게도 안토니오 그린이었다.

원하는 팀은 같은 챔피언십 리그의 ‘풀럼 FC’.

액수도 만만치 않다.

무려 50만 파운드.

한화로 8억 원 정도인 챔피언십 리그에서도 평균적인 이적료다.

만년 벤치 자원에 나이도 20대가 꺾인 선수에게는 이례적인 제안!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이란 사실에는 이견을 달 여지가 없다.

그래서 모든 이적 제안을 거절하라는 소하의 지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보고를 했건만.

소하의 태도는 관심의 ㄱ자도 보이지 않는다.

“저 그게···. 역시···. 불필요한 보고였습니까?”

“그럼요. 그린은 NFS에요. 차라리 절 사라고 전해주세요. 주급 50만 파운드면 도장 찍을 테니까.”

“···.”

연봉도 아니고, 월급도 아니고 주급이 50만 파운드라니. 세계적인 초특급 선수들이나 간신히 받는 엄청난 액수다.

감독 중에서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미친 금액. 요컨대 팀을 옮길 생각이 개미 똥구멍만큼도 없단 이야기였다.

“후우. 알겠습니다. 이 정도면 제법 감독님께서 관심을 가지실 줄 알았는데요. 제가 틀렸군요.”

알버트 위버는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안토니오 그린의 실 평가금액은 10만에서 15만 파운드.

이에 비해 50만 파운드의 제안은 정가의 수배나 되는 금액이라 소하가 큰 관심을 가질 줄만 알았다.

‘보통 후보 선수는 제값만 받아도 기적에 가까웠으니까···.’

후보 선수의 비애였다.

경기에 나오는 빈도수가 적어 실력을 보여줄 시간도 적었고,

후보 선수란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적 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

아무튼 실력이 뒤떨어지기 때문에 경기에 나오지 못하는 것이었으니까.

실력도 달리고 경기력도 미지수인 선수를 제값 주고 살 팀이 어디 있겠는가? 더군다나 구단으로선 기용하지도 않은 선수라 주급을 줄이기 위해 팔고 싶어 싼값에 내놓는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정도로 두둑한 제안은 정말 예상을 벗어난 일인데···. 감독님은 안토니오 그린을 어떻게 생각하시는 걸까?’

정말 이례적인 제안이었다.

그렇기에 아무 관심도 없는 소하의 생각이 무척 궁금했다.

“왜요?”

멀뚱히 바라보는 알버트 위버의 시선을 느꼈는지 소하가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아니···. 그게 이유라도 말씀해주시면 풀럼에게 전할 거절 의사를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흐음.”

알버트 위버의 재치 있는 변명. 꽤 괜찮은 임기응변이었던지 소하는 잠시 턱을 매만지다가 순순히 밝힌다.

“딱히 어려울 이유가 있나요. 전 안토니오 그린이 필요하거든요.”

“···이번 시즌 선발 출장 수가 3번에 교체로 9경기인 선수가 말입니까?”

컵 경기까지 포함해서 26경기 12출장. 필요하다는 선수의 출장 수가 아니다.

“필드에서의 존재감만이 필요의 범위가 아니죠. 굳이 제대로 설명하자면 세 가지 이유가 있어요.”

“경청하겠습니다.”

“첫째, 안토니오 그린은 전력 외 선수가 아니에요. 공중볼 원툴 선수가 냉대받는 시대지만 존재 자체만으로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죠.”

소하의 말에 알버트 위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공중볼만 잘 따는 선수는 현대축구의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안토니오 그린이 활동량이 좋은 선수도 아니었고. 그래서 주력으로 사용할 수가 없다.

하지만 특수한 상황에서 짧은 시간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공격적으로든, 수비적으로든 쏠쏠한 재미를 볼 수 있는 선수였으니까.

“둘째. 그린은 우리 팀의 정신을 이해한 선수이기 때문이죠. 이런 선수는 흔치 않아요.”

“하긴···. 향상심을 갖춘 후보 선수는 드문 편이죠.”

“그래서 셋째. 제가 안토니오 그린을 개인적으로 좋아해요.”

“···네?”

알버트 위버는 소하의 아리송한 선언에 들고 있던 서류 더미를 떨어뜨렸다.

‘지, 지금 뭐라고?!’

갑작스러운 커밍아웃이라니. 당황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하다.

보수적인 축구계에서 감독의 성적 지향성이 다르다는 사실은 한참 잘나가는 포츠머스에는 악재였으니까.

‘어, 어쩐지. 감독님의 외모로 여자친구 하나 없는 게 이상하긴 했어···!’

인제야 이해가 간다.

소하가 여자친구가 없던 이유가 말이다.

‘저 외모에 능력까지 갖추신 분이 만나는 여자라고는 홍보팀의 에밀리아 양밖에 없었지···. 이걸 어찌해야 하나?’

눈알을 데구루루 굴리는 알버트 위버.

기쁘기도 하며 걱정스럽기도 했다.

일단 기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큰 비밀을 자신에게 말해준다는 건 그만큼 자신을 믿는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그리고 굉장히 두려웠다. 이 사실이 밖으로 새어 나간다면. 정말 엄청난 후폭풍이 몰려올 거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엄청난 여파가 말이다.

잠시 엄청난 속도로 머리를 굴리던 알버트 위버는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알겠습니다. 이 비밀은 무덤까지 가져가겠습니다. 고문을 당하더라도···.”

비장미가 뚝뚝 넘치는 목소리.

12척의 판옥선으로 백 척이 넘는 왜군 함선을 바라보는 이순신 장군의 기개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지구 반대편에서 모처럼 괜찮은 비장미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소하의 반응은 최악이었다.

대충 의미를 짐작했는지 얼굴을 엉망진창으로 구기며 살기가 뚝뚝 흐르는 목소리로 험한 말이 튀어나온다.

“뭔 개소리세요···.”

“네? 그, 그게 커밍아웃하신 게···.”

“이런 씨발. 절 지금 뭐로 보고 그런 망상을 하신 겁니까!”

버럭! 격하게 부정하는 소하. 곤히 자다가 턱주가리에 사커킥을 한 대 맞은 듯한 격한 반응이다.

“이분이 몇 년 나이를 잡수시더니 노망이 나셨나. 개인적으로 좋아한다는 말을 그렇게 받아들이시다니. 실망이에요.”

“죄, 죄송합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에요. 아무리 봐도 알버트 위버씨의 정신상태가 문제에요!”

“···큼큼.”

“그러니까 저녁 드라마 좀 작작 보시라니까. 하여튼 요즘 영상매체가 문제야. 문제. 요즘 것들이란 쯧쯧.”

소하는 꼰대 같은 소리를 하며 한참을 혀를 차며 알버트 위버를 흘겨본다. 알버트 위버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저 머리를 지면에 박은 채 비지땀을 흘릴 수밖에.

그렇게 한참을 눈빛으로 알버트 위버를 난자하던 소하. 이내 표정을 풀고 부연 설명에 들어간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한다는 말은요, 선수로서, 한 인간으로서 좋아한다는 뜻이에요.”

“그, 그렇군요.”

“보세요. 적은 경기 출장임에도 불만 하나 없어요. 이런 선수가 세상천지에 몇이나 있을까요? 심지어 누구한테 지지 않을 정도로 성실하기까지 하죠.”

경기에 나오지 못하는데도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려 한다.

그런데도 불만은 없고 팀에 잘 녹아든 선수가 바로 안토니오 그린이다.

경기 출장 숫자 때문에 심심하면 불화가 터지는 축구계에서는 정말 희귀한 인물이었다.

“불만 없이 묵묵히 노력하는 훌륭한 무기를 가진 선수. 이런 선수를 겨우 50만 파운드에 팔 순 없죠. 최소한 100만 파운드 이상의 가치가 있는 선수예요.”

소하의 설명은 끝이 났다.

말은 제법 길었지만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사고 싶으면 100만 파운드 가져와!’

100만 파운드.

한화 16억. 안토니오 그린에게 이 정도 금액을 제시할 구단은 세상을 샅샅이 뒤져봐도 없으리라.

“잘 알겠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중요한 선수였군요.”

알버트 위버는 일말의 의구심조차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렇죠.”

“풀럼에는 중요선수라고 전하면 되겠군요. 알겠습니다.”

“바로 그거에요.”

“그럼 바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마친 알버트 위버. 종종걸음으로 천천히 사무실 문으로 다가간다.

‘따갑다···!’

찌릿찌릿. 등에서부터 살기 어린 시선이 등을 간지럽혔지만 애써 무시하는 알버트 위버.

괜한 망상 때문에 소하의 코털을 건든 게 뼈저리게 후회된다.

‘그, 그래도 앙심을 품는 성격은 아니시니까.’

이 자리만 재빨리 벗어나면 금방 잊을 거란 희망!

“잠깐.”

“!!”

소하의 나직한 목소리가 달팽이관을 후벼 파자 알버트 위버는 몸을 부르르 떨며 멈춰 섰다.

그리고 조심스레 고개를 뒤로 돌리자, 역시나 소하의 서늘한 안광이 그를 반긴다.

아무 말 없이 손을 입에 가져다 대고 지퍼를 잠그는 시늉을 하는 소하.

그 두려운 모습에 알버트 위버는 저녁드라마를 끊기도 작심했다.

이렇게 끝난 난데없는 촌극.

겨울 이적시장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을 거라 쉬이 예상이 됐지만, 세상은 언제나 변수를 만들었다.

***

한 바퀴를 돌아 후반기를 시작하는 챔피언십 리그.

포츠머스의 상대는 25라운드 포츠머스의 상대는 1라운드, 개막전에 붙었던 리즈 유나이티드였다.

리즈 유나이티드의 순위는 14위.

잘라 말해 굉장히 혼란스러운 시즌을 보내는 중이다.

여름에 팀에 새로 부임한 우베 뢰슬러 감독은 경질 당한 지 오래. 새로 부임한 스티븐 에반스 감독도 영 신통치 않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야말로 수습할 수 없는 상황.

이런 리즈 유나이티드에 기세가 부쩍 오른 포츠머스는 굉장한 부담이었다.

[2위와 14위의 경기입니다. 리즈의 홈구장 앨런드 로드에서 펼쳐지는 경기지만 포츠머스의 확실한 우세가 점쳐집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포츠머스도 꽤 여러 구설에 휘말렸었죠. 전반기 후반부터 뛰어난 활약을 선보인 마리오 발로텔리와 부상에서 돌아온 조쉬 킹. 이 두 선수의 기용에 대해서 참 많은 말들이 오갔습니다. 즉, 포츠머스도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란 이야기죠.]

아직 마리오 발로텔리와 조쉬 킹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외부의 평가였다.

소하는 일을 해결했지만, 외부에서 보기에는 아직도 시한폭탄의 타이머가 줄어들고 있는 형국이었으니까.

[때문에, 포츠머스의 선발이 무척이나 기대되는 경기입니다.]

[그렇습니다. 리즈 유나이티드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들은 이미 경쟁자가 아니니까요.]

포츠머스의 상태는 곧 리그의 판도와 직결돼있는 문제였다.

흔들린다면 우승 경쟁과 승격 경쟁은 지하세계 아래의 무저갱으로 빨려 들어갈 테니까.

요컨대, 이번 경기는 리즈유나이티드와 포츠머스의 대결보다는 챔피언십 리그의 후반기 판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경기였다.

[일단은 마리오 발로텔리의 선발출전이 예상됩니다. 정석이니까요.]

[저도 동의합니다. 조쉬 킹은 2군 리그에서 천천히 몸을 끌어올릴 겁니다.]

일단은 정석을 외치는 해설과 아나운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매번 뒤통수를 맞으면서 이런 모범적인 답변을 내놓다니.

위험부담을 가질 수 없는 자리라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이번에도 뒤통수를 맞아버리자 잠시 말을 잃어버렸다.

[···큼큼. 그···. 마리오 발로텔리와 조쉬 킹이 가, 같이 선발로 나왔군요.]

[커흐흠. 저, 정말 성소하 감독은 펴, 평범한 예측으로는 행동을 예견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 기용해버린 소하의 포츠머스.

조쉬 킹과 마리오 발로텔리의 투톱이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 145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후반기. (3) > 끝

ⓒ 블라님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