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후반기. (2) >
마리오 발로텔리는 원래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누군가 돌아온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그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같은 꿈을 꾸고 싶다고 상냥하게 시시덕거리며 동료애를 챙기고 싶은 건 아니었으니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다시금 ‘위’를 향해 도전하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한 중요한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금연 치료’.
‘일단 담배부터 끊어야 한다!’
담배가 백해무익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았다. 게다가 운동선수, 그것도 폐활량이 중요한 축구선수에게는 억해무익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축구선수인 마리오 발로텔리는 심각한 ‘골초’였다.
70~80년대도 아니고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뛰었던 선수가 골초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기도 했으며 다른 의미로는 대단하기도 했다.
“얼마나 재능이 넘쳐흐르면 골초 주제에 몸 상태가 저렇게 좋은 거야? 진짜 이 세상은 존나 불공평해.”
소하의 감상평은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하루에 담배를 한 갑 이상씩 태우며 딱히 식단관리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육체 레벨만은 유럽 1부리그 어디에서도 최상급으로 평가받는다.
이 어찌 놀랍지 아니하리.
그야말로 재능을 타고나다 못해 넘쳐흘러서 낭비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이 사실은 독과 똑같은 물질을 끊기만 해도 선수로서 바로 한 단계 위로 올라간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만큼 담배는 좋지 않으니까.”
스스로 걸어버린 디버프만 지워도 남들은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도 오르지 못할 경지에 오를 수 있는 미친 재능이었다.
하여튼 이렇게 금연 치료나 받으러 갈 예정이 이었던 발로텔리. 그의 앞에 모처럼 소하가 갑작스럽게 등장했다.
“금연 상담받으러 가냐?”
단정하고 곱상한 외모가 보이지 않을 만큼 껄렁껄렁한 말투. 전혀 어울리지 않은 조합이었지만 의외로 무척 어울려서 발로텔리는 헛웃음이 나왔다.
“하하. 네. 금연은 시작이니까요.”
처음과는 다르게 발로텔리의 말투는 매우 공손해졌다.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냥 지내다 보니 소하가 은연중에 내뿜는 묘한 중압감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보이는 나이가 다가 아니야···. 저 사람은 뭐가 달라.’
몇 살 차이도 나지 않은 젊은 감독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수준. 최소한 겉보기보다 10년 이상 묵은 닳고 닳은 베테랑의 냄새였다.
마치, 그간 발로텔리가 만나왔던 세계적인 명장들을 떠올리게 했다.
“아주 좋은 판단이야. 잘하고 있어.”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상투적인 소하의 칭찬. 하지만 발로텔리는 기뻤다.
그가 아는 소하는 겉치레로 칭찬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이제야 제법 축구선수다운 마음가짐이네. 물론, 언제까지 가냐가 핵심이지만.”
“···이번엔 다를 겁니다.”
소하의 날카로운 비판에 발로텔리는 강하게 의지를 보였다.
개심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에 꼭 성공하겠다는 각오가 보였다.
“정말? 정말이야?”
나름대로 진심을 보여줬거늘. 과장된 몸짓과 함께 의구심을 갖는 소하의 모습은 얄밉기 짝이 없다.
“네. 정말인데요.”
약간 토라진 발로텔리. 자연스럽게 툴툴거리며 입술을 삐죽였다.
“그러면 다행이긴 한데···. 진심이 안 보여.”
“네?”
“아니 그렇잖아. 팀 내 최고의 경쟁자가 부상에서 돌아왔는데 관심도 없는 녀석이 어떻게 위로 올라가?”
“···경쟁자요···?”
소하의 도발에 발로텔리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불편한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소하가 자신의 진심을 몰라줘서일까? 전혀, 전혀 아니다. 그저 ‘경쟁자’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경쟁자? 경쟁자라니?! 제법 괜찮은 선수들이 많지만 아직은 내 상대가 없는데.’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말 그대로 제법 괜찮았다. 잠재력은 무궁무진했고 2부리그라고는 믿기지 않는 실력을 보여줬으니까.
하지만 아직은 이들의 현재 실력이 1부리그에는 미치지 못한다.
발로텔리로 말하자면, 선수 생활 내내 최고의 클럽에서만 머문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
인테르, AC 밀란,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 등등. 포츠머스와는 차원이 다른 구단에서 밥을 먹던 선수다.
지금은 밑바닥을 쳤을지라도 가진 실력과 재능, 경험은 비교가 불허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도 발로텔리의 실력은 포츠머스의 그 누구보다 한 차원 높은 경지이기도 했으니까.
그런 그에게 경쟁자라는 단어는 자존심을 긁는 역린과도 같은 단어였다.
“왜? 촌구석 2부리그 구단에는 너와 비빌만한 선수가 없다고 생각했어?”
“···생각이 아니라 사실이죠. 지금의 저는 말이죠.”
빙글거리는 소하의 물음에 발로텔리는 다부지게 주장했다.
“글쎄.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봐야 하지 않을까?”
“···.”
“적어도 나는 둘 다 아는 사람이잖냐. 누구의 말이 더 신빙성 있을까?”
“그야···. 당연히···.”
당연히도 둘 다 아는 사람의 말이 신빙성이 높다. 하나만 아는 것보다는 둘 다 아는 게 객관성이 훨씬 높았으니까.
“꼬우면 확인해봐. 아니면 말고.”
자존심을 제대로 긁은 주제에 ‘아니면 말고’라면서 뒤로 슬쩍 빠지는 소하!
정말 얄밉다. 감독이 아니었다면 마리오 발로텔리에게 죽통을 얻어맞아도 할 말이 없으리라.
어찌 보면 굉장히 유치한 도발이기도 하다. 과연 이게 평범한 성인에게 통할 장난질인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듯이 발로텔리는 평범한 성인이 아니었다.
“하! 좋아요.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 보죠.”
아주 제대로 소하의 도발에 넘어가 버린 마리오 발로텔리. 콧김을 내뿜으며 선수들이 모인 라커룸으로 거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후후후. 역시 단순한 새끼야···.”
성난 발로텔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우같이 교활한 웃음을 짓는 소하.
두 눈을 초승달로 만들고서는 살금살금 발로텔리의 뒤를 쫓아간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너무 기대되는걸. 아 팝콘이랑 콜라 땅긴다.’
모처럼 가슴을 두근거리며 불구경을 떠나는 소하. 불난 집에서 고구마를 구워 먹는 맛이 일품이라고 하지 않던가. 옛 조상님들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다만, 불을 낸 방화범이 소하라는 사실만이 조금 달랐을 뿐이었다.
***
소하의 도발에 제대로 넘어가 라커룸을 찾은 마리오 발로텔리.
문을 열자마자 익숙지 않은 거대한 몸뚱이가 그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물론, 그 흑갈빛 건장한 몸의 주인은 조쉬 킹. 드디어 두 재능이 만난 순간이었다.
‘···크네.’
조쉬 킹에 대한 발로텔리의 첫인상. 말 그대로 조쉬 킹은 거대했다.
탄탄한 가슴.
터질 거 같은 허벅지.
제대로 모양을 뽐내는 어깨 근육.
꿈틀거리는 팔뚝.
이게 축구선수인지 헬스 트레이너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그래도 너무 과하지 않은 딱 좋은 몸이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날렵한 맹수같이 잘 빠진 육체다. 그야말로 짐승 같은 육체.
이 때문에 발로텔리는 상당한 압박감을 느꼈다.
야생동물끼리의 싸움에서는 체급이 전부였으니까. 짐승 새끼인 발로텔리가 압박감을 느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과연, 감독이 자신감 있게 날 도발할 이유가 있었군.’
자기도 모르게 소하의 도발에 패배 선언을 한 마리오 발로텔리. 딱히 공을 놓고 겨뤄본 건 아니었지만 보기만 해도 감이 딱 왔다.
뭐랄까. 무협지에서 보면 ‘걸음걸이’나 ‘호흡’만으로도 상대의 경지를 눈치채지 않던가. 그것과 비슷했다.
‘최전방 공격수로서 완벽한 육체야. 저 정도 선수가 실력이 떨어질 리가 없지. 나이도 어리다는데···. 재능만큼은 그 녀석 급이야.’
발로텔리 정도의 선수면 신체 레벨만 봐도 각이 보였다. 덕분에 포츠머스에 와서 ‘그 녀석’에게 받았던 느낌을 다시 한번 받았다.
그 녀석이란, 당연히 에링 홀란드였다.
보자마자 엄청난 축구력과 재능에 몸을 떨었으니까.
에링 홀란드 같은 선수가 이런 촌구석 구단에 또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게다가 듣던 것과는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
무표정한 조쉬 킹의 얼굴을 바라보며 발로텔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간 듣던 이미지하고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발로텔리도 포츠머스에서 보낸 시간이 어언 4개월. 조쉬 킹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간 들어왔던 조쉬 킹이란, 멍청하고 해맑으며 축구에 진심인 아이 같은 선수였다.
하지만 이게 웬걸.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공격적인 육체와 더불어 저 진중한 표정은 단순한 풋내기가 아니었다.
‘저게 해맑다고? 다들 머리에 대구경 총탄이라도 박혔나?’
제법 담이 크다고 자부하던 발로텔리였지만 으슥한 골목길에서 조쉬 킹을 만난다면 지갑을 내어줄 자신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당신이···. 그 마리오 발로텔리?”
발로텔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먼저 치고 들어온 건 무섭게도 조쉬 킹이었다.
흠칫.
때아닌 선제공격에 그 발로텔리가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니, 물러설 뻔했다.
‘기 싸움에서 질 수 없어!’
어금니를 강하게 씹으며 제자리에서 당당하게 버티는 발로텔리!
일류 선수로서, 세계가 인정한 악동으로서의 자존심을 당당하게 지켜낸다.
아니, 애초에 이건 자존심 문제가 아니었다.
존재를 건 최후의 항전이었다.
“···.”
“···.”
파직파직.
순식간에 때아닌 살벌한 기류에 휩싸인 포츠머스의 라커룸.
이를 지켜보던 선수들도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두 선수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본다.
‘와. 누가 팝콘 좀 가져와 봐.’
‘올해 영화는 다 봤다.’
‘킹 저 새끼 저거, 병원에 처박혀 있는 동안 키가 더 컸네.’
‘저 머저리 같던 킹도 발로텔리를 엄청 신경 쓰고 있었구나.’
‘악동 VS. 꼴통. 누가 이길까?’
누가 그 스승에 그 제자 아니랄까 봐 즐거워 미치겠다는 표정이다.
이렇게 얼마간 소강상태에 빠진 조쉬 킹과 발로텔리의 기 싸움.
결국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검을 빼 든 건 마리오 발로텔리였다.
고수 간의 싸움에서 선수를 쓰는 건 약세를 인정한다는 뜻.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곳은 포츠머스. 손님 신분인 발로텔리로서는 안방마님인 조쉬 킹을 상대로 너무나도 불리했다.
옆집 똥개도 자기 집 앞마당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가는 법이었으니까.
“뭐, 뭐?!”
일시적인 지능 퇴행이라도 찾아온 것일까. 언어를 잊은 채 한가지 단어만 내뱉는 발로텔리. 어떤 말로 공격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게 말이죠···.”
이에 묵묵히 화답하듯 묵묵히 입을 여는 조쉬 킹. 과연 어떤 말이 나올까?
-당신은 내 상대가 아니야!
-주전 자리는 제겁니다.
-별거 아니었네?
같은 호기로운 선제공격일까?
하지만, 조쉬 킹은 모두의 예상을 뒤집어버렸다.
“루틴이 어떻게 되시나요?”
“···?”
루틴. 그러니까, 운동 루틴이 어떻게 되냐는 뚱딴지같은 질문이었다.
모두가 얼이 빠질만한 전개였지만 조쉬 킹은 아랑곳하지 않고 재잘거린다.
“놀랐어요. 몸이 무슨···. 너무 좋아서 홀려버릴 뻔했거든요. 이참에 같이 웨이트나 쪼개러 가죠! 역시 사나이는 몸으로 친해지는 법이니까요!”
대기 중이던 아마다 트라오레와 정신적 충격에 혼이 나간 마리오 발로텔리를 질질 끌고 라커룸을 나서는 조쉬 킹.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잔뜩 긴장해서 촌극을 바라보던 선수들은 혀를 차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하긴 저 새끼가 기 싸움할 인간이 아니지. 자기 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할 놈이 무슨 심리전은···. 쯧.”
“어휴. 퇴근이나 해야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포츠머스의 선수들. 조쉬 킹은 그저 조쉬 킹이었다.
***
‘후후후. 역시는 역시군.’
라커룸 문에 코를 박고 상황을 훔쳐 듣던 소하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예상했던 시나리오였다.
세상천지에서 조쉬 킹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소하였으니까.
아마 조쉬 킹의 부모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거다.
‘이로써 두 선수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군. 좋아.’
예상은 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열길 우물 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이번 사건은 예상을 확신으로 바꾸는 과정이었다.
‘이로써 퍼즐은 완성되었다. 축구란 결국 공격수가 가장 중요한 법. 완벽한 공격진을 만들 수 있는 계기다.’
11명 모두가 중요한 스포츠가 축구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역할은 공격수였다.
일단 골을 넣어야지만 승리하는 스포츠였으니까.
단순히 보자면 몸값이 가장 비싼 선수는 언제나 공격수였다는 게 증거다.
‘조쉬 킹의 힘. 마리오 발로텔리의 기술. 안토니오 그린의 공중볼, 존 말로리의 영리함.’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포츠머스의 공격진들.
‘서로에게 배워가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겠지. 이건 공격진의 질적 향상으로 바로 이어진다.’
기술이 부족한 조쉬 킹이 마리오 발로텔리의 기술을 가진다면?
좋은 몸을 쓰지 않는 발로텔리가 조쉬 킹의 육체 플레이를 익힌다면?
완전무결한 선수가 탄생하는 거다.
여기에 안토니오 그린과 존 말로리까지 잡아먹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이건 시작일뿐.’
소하가 눈빛을 빛냈다. 최종 목적은 조쉬 킹이나 마리오 발로텔리가 아니었다.
‘에링 홀란드. 이 녀석을 역사에 남을 선수로 만들겠어.’
각기 다른 장점을 가진 4명의 선수의 장점을 모조리 이어받을 선수는 바로, 에링 홀란드.
아직 그릇만 더럽게 컸을 뿐, 백지 같은 초특급 유망주를 포츠머스는 물론이고 축구계 역사에 영원히 남을 전설로 만들 계획을 세운 소하였다.
< 144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후반기.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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