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전반기. (7) >
챔피언십 리그 6라운드의 상대, 블랙번 로버스.
장미 문양 엠블럼으로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는 팀이다.
모 매니저 게임을 오래 즐긴 옛 게이머라면, 슈퍼 유망주 ‘은존지’와 ‘필 존스’의 친정팀으로 익숙한 팀이기도 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FC, 아스널 FC, 리버풀 FC, 맨체스터 시티를 제외한 팀 중에 유일하게 프리미어 리그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
‘뭐···. 이번 시즌엔 그 기록도 깨지지만.’
현 시즌인 15-16시즌.
레스터 시티의 ‘동화’가 펼쳐지는 시즌이었으니까.
‘아직 확정은 아니야. 미래는 바뀌었으니까.’
미래는 조금이지만 바뀌었다.
챔피언십 리그에 참가 중인 팀의 목록도 조금은 바뀌었으며 결정적으로 지난 시즌 아스널은 3위가 아닌 2위, 준우승을 달성했다.
‘그렇다면 레스터에 밀려 이번 시즌에 준우승을 차지할 아스널이 우승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15-16시즌의 아스널은 정말 아쉬웠다.
메수트 외질이 19라운드 만에 리그에서만 3골 16어시스트를 찍는 미친 포스를 보여줬으니까.
‘탄식형’ 공격수 올리비에 지루가 밥상을 엎지만 않았다면.
중원의 핵심 산티 카솔라가 무릎을 다치지만 않았다면.
충분히 우승할 수 있었던 시즌이다.
‘아직은 남의 일이지만 항상 촉각을 곤두세워둬야 하지.’
소하는 블랙번 전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미래에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판도는 중요해. 위쪽 동네 판도가 얼마만큼 변하냐에 따라 나도 대응을 해야 하니까.’
현재만 봐서는 꿈을 이루기 불가능하다. 소하의 가장 큰 무기는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 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조그만 가능성이라도 생겼다.
‘이제 곧 큰 도움이 안 될 터. 최대한 본전을 뽑아야 한다.’
미래를 안다는 능력은 언젠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질 거다. 결국 미래는 바뀔 테니까.
소하가 가진 지식은 과거나, 망상으로 변할 거다.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마리오 발로텔리가 필요해.’
가진 힘이, 가진 지식이 아직 날카로운 예기를 뽐낼 때. 이때 무언가를 베어내야만 했다.
날이 무뎌져 썩은 무조차 갈라버리지 못하기 전에 말이다.
그리고 마리오 발로텔리라는 재능은 예기치 못하게 손에 쥐게 된 히든카드.
점점 부족해질 시간 앞에 선 소하로서는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
블랙번을 맞이하게 된 포츠머스.
전술 변경을 할 거란 예상과는 다르게 지난 5경기와 똑같은 포메이션인 4-3-3시스템으로 시작. 블랙번 로버스의 홈구장, 이우드 파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똑같은 건 어디까지나 포메이션이었을 뿐. 선발 구성은 작지만 매우 큰 변화를 줬다.
[마리오 발로텔리가 명단제외를 당했습니다! 벤치에도 앉지 못하다니요. 성소하 감독이 지난 3경기에서 정말 실망을 많이 했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하긴, 너무나도 좋지 않은 경기력이었죠. 그리고 또 놀라운 점은 마리오 발로텔리를 대신해서 ‘프레디 스톤’이 원톱으로 출전했습니다.]
프레디 스톤.
소하보다 앞서서 비트코인을 공부하는 선수이자, 절친한 친구인 안토니오 그린을 코인충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주 포지션은 오른쪽 윙.
가능한 포지션은 오른쪽 풀백, 오른쪽 윙백이다.
포츠머스의 원년 선수기도 한 그는 지난 2년간 오른쪽 로테이션 선수로서 팀 내의 입지를 단단히 다져놨다.
[프레디 스톤이 원톱이라니요? 최전방 스트라이커로서는 경험이 아예 전혀 없는 선수 아닙니까?]
[맞습니다. 성소하 감독이 집권한 2년은 물론이고, 프로 생활 내내 단 한 번도 뛰어보지 않은 자리입니다. 꽤 과감한 수를 던지는 성소하 감독이군요.]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의 말처럼 나름대로 강력한 승부수를 던진 포츠머스였다.
어찌 보면 너무 근본이 없는 거 아니냐는 평가를 피하기 힘들 정도의 변화.
하지만, 전문가들은 괜히 전문가가 아니었다.
[상당히 재미있는 어찌 보면 이해가 어려운 선발이지만 어느 정도 성소하 감독의 의도가 보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프레디 스톤은 공격수라는 역할에는 어색할지언정 플레이 스타일은 ‘조쉬 킹’과 매우 흡사하거든요.]
정확한 안목이었다.
프레디 스톤은 포지션은 달랐지만 조쉬 킹과 무척이나 닮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길쭉한 팔다리를 가진 신체와 아프리카계 혼혈이란 점까지 말이다.
[프레디 스톤은 상당히 빠르고 어느 정도 힘이 있는 윙어입니다. 게다가 활동량도 뛰어나죠.]
[쉽게 말하자면 슛을 못 하는 조쉬 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능력치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체적인 육각형의 모습은 비슷한 두 선수였다.
[게다가 프레디 스톤은 투박한 외모 때문에 오해할지도 모르지만, 상당히 머리가 좋은 선수입니다.]
[그렇습니다. 포츠머스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지능적인 선수죠. 공격수라는 새로운 포지션도 그리 어렵지 않게 수행할 겁니다.]
프레디 스톤의 외모는 해설과 아나운서의 말처럼 상당히 투박하다. 비니 씌우고 손에 .44 매그넘을 쥐여준다면 완벽한 슬럼가의 은행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의 취미는 비트코인. 그것도 이미 3년 전부터 파고들었다.
2022년이야 누구나 비트코인을 알았지만, 당시에는 존재 자체도 모르는 사람이 절대다수.
요컨대, 남다른 뛰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다는 뜻. 상당히 똑똑한 선수였다.
괜히 여러 가지 포지션을 뛰는 것이 아니었다.
[즉, 성소하 감독은 결단을 내린 겁니다. ‘조쉬 킹’의 부재가 팀을 어렵게 만든다면 조쉬 킹의 ‘복제품’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겠다는 의지입니다.]
[하지만 복제품은 어디까지나 복제품일 뿐입니다. 열화판이란 뜻이죠. 심지어 프레디 스톤은 슛 기술이 굉장히 좋지 않습니다. 오히려 악수가 될지도 몰라요.]
경기 시작부터 수많은 화제를 일으킨 선발명단.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작된 경기는 아쉽게도 확실한 정답을 내려주지 않았다.
[0-0 무승부로 경기가 이렇게 끝납니다! 골은 나지 않았지만 치열한 경기였습니다!]
결과는 무득점 무실점, 0-0 무승부.
과감한 카드를 들이민 소하와 포츠머스에는 상당히 아쉬운 결과로 보였다.
하지만, 반응은 전해달랬다.
“오. 나쁘지 않은데? 경기력이 확 살아났어.”
“정말 아쉽다. 프레디 스톤의 영점만 잡혔다면 3-0도 나왔을 텐데.”
“국가대표 경기를 뛰고 온 도봉산이 조금 지치지만 않았어도···.”
호평이었다.
1무 2패로 마감한 지난 3경기와 비교하면 완벽히 달라진 경기력이었으니까.
0-0의 결과는 그저 블랙번에게 신의 도움이 함께 했다고밖에 설명되지 않을 정도.
-드디어 포츠머스가 부활했다. 오늘의 모습은 리그2와 리그1을 무자비하게 파괴했던, 그 포츠머스였다.
축구평론가와 전문가들도 파괴적인 모습을 되찾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전성기의 80%쯤. 급조한 땜빵으로 이정도 모습을 보일 거라고는 정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과연 성소하 감독. 위기의 상황에서는 언제나 해결책을 가져온다. 이것이 바로 시대를 써나가는 감독이란 것을 증명해냈다.
과할 정도의 칭찬!
그만큼 포츠머스의 분위기를 제대로 역전해낸 경기였다.
하지만, 소하는 뾰로통했을 뿐.
“···왜 못 이겨?”
경기 종료 후 라커룸에서 소하는 이 한 마디만 남기고 사라졌다.
칭찬을 넘어 찬양을 받는 감독의 모습이라고는 눈 씻고도 볼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외부의 평가에 대해서도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흥. 이정도로 어깨춤을 추기엔 너무 이른데···.”
코웃음을 치는 소하. 변화는 이제 시작이었을 뿐이니까. 지금부터 너무 비행기를 태워주면 곤란했다.
***
6라운드에 극적인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포츠머스. 2승 2무 2패, 승점 6점으로 순위표의 중간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시작된 리그 7라운드.
상대는 제법 약체로 평가받는 버튼 앨비언이었다.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포츠머스! 이제 승점을 벌어야 할 시점입니다!]
[그렇습니다. 본격적인 승격 경쟁의 시작이니까요. 초반에 상당한 승점을 날렸기에 이번 경기는 더욱 중요합니다.]
벌써 2무 2패다. 승률 30%로는 절대 승격하지 못한다.
따라서 어떻게든 승점 3점을 벌어내 날려 먹은 승점을 복구해야만 했다.
이래저래 매우 중요한 경기.
모두가 프레디 스톤을 선발로 내세운, 블랙번전의 선발명단을 예상했다.
그리고 여지없이 뒤통수를 맞았다.
[···이게 뭔가요? 승리가 절실한 경기에서 또 다른 전술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하하. 우,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군요. 이번에는 투톱을 사용하는 3백으로 나왔습니다. 심지어 이번에는 안토니오 그린과 존 말로리의 조합이에요!]
또다시 새로운 공격 조합을 들고 온 소하. 모든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성소하 감독의 배짱 하나는 월드클래스입니다. 이토록 중요한 경기에서 또다시 변칙을 가져오다니요.]
[혹은 중요한 경기이기 때문에 바꾼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겁이라고는 없는 감독이에요.]
결과를 떠나서 재미 하나만큼은 제대로 챙겨주는 소하. 물론, 결과 없는 재미는 그저 속 빈 강정일 뿐이었기에 결과마저 깔끔하게 챙겨온다.
[4경기 무승의 사슬을 끊고 드디어 포츠머스가 승리를 거두어냅니다! 2-0! 완승이에요!]
[이것이 포츠머스입니다. 완벽한 전방 압박에 상대가 꼼짝도 하지 못했습니다.]
90분 내내 상대 팀 진형에 살림을 차린 채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8라운드, 반즐리 FC와의 홈 경기.
존 말로리를 원톱으로 내세워 1-0 신승을 달성.
9라운드, 셰필드 웬즈데이와의 원정경기.
다시금 프레디 스톤을 선발로 내세워 1-1 아쉬운 무승부를 달성.
10라운드, 허더즈필드와의 원정경기.
오랜만에 마리오 발로텔리를 선발로 내세워 2-1 승리를 거둔다.
순식간에 5경기에서 3승 2무라는 엄청난 성적을 거둔 포츠머스.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였지만 팬들은 다소 아쉬웠다.
이유는 10라운드의 경기력이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했기 때문이었다.
-이기긴 했는데···. 뭐랄까. 내가 알던 포츠머스가 맞나 싶더라고.
-선수빨로 이겼어.
-답답한 경기였다.
오랜만에 선발 출장한 발로텔리는 또다시 팀 내 최하 평점을 받았고 우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순식간에 흘러간 9월.
포츠머스는 5승 3무 2패, 승점 18점으로 3위에 올라서며 10월을 맞이했다.
***
10월 리그 일정은 총 6경기.
홈 경기 3경기, 원정경기 3경기라는 공평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응답하듯, 어느 정도 원래 폼을 되찾은 포츠머스는 공평한 결과를 얻어냈다.
[포츠머스가 10월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합니다. 상당히 혼란하며 평등한 한 달이었습니다.]
[2승 2무 2패. 득실 차도 0입니다. 굉장히 오묘한 성적표에요.]
16경기 7승 5무 4패, 승점 26점으로 6위로 마감한 포츠머스.
썩 좋지 않은 결과였지만 아직 승격권이라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사람들은 10월이 끝나고서야 무언갈 눈치챘다.
-발로텔리가 나올 때마다 경기력이 구려. 이건 통계가 증명하지.
-왜지? 객관적으로 본다면 발로텔리는 다른 공격진보다 한 차원 높은 선수인데.
-경기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야. 나름대로 초반보다 활동량도 많이 가져가 주고 있다고.
바로 발로텔리의 영향력이었다.
그가 나온 10월의 경기 결과는 1승 1무 1패. 나온 경기마다 지거나 비긴 건 아니었지만 경기력이 눈에 확 띄게 달랐다. 좋지 않은 쪽으로 말이다.
그렇다고 발로텔리가 열심히 뛰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지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모든 지표가 다른 공격진들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묘하게 그가 나오면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
이에, 가십 좋아하는 축구판에서 헛소문까지 돌았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포츠머스의 기존 선수단과 불화가 생긴 마리오 발로텔리.]
[겉도는 마리오 발로텔리.]
[모두가 따돌리는 것인가? 모두를 따돌리는 것인가?]
[성소하 감독의 잔인한 증명. 프런트의 영입이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고 경기로 주장했다.]
등등. 다양한 헛소문이 온라인,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떠돌았다.
심지어 가십의 중심이 된 포츠머스 선수들과 소하가 대답을 회피하는 반응을 보이자 사람들은 더욱 날뛰기 시작.
이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
‘삼인성호··· 라는 건가.’
쓴웃음을 짓는 소하.
세 사람만 우기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냈다고 했거늘. 소하나 다른 선수들에게는 어이없는 일이었다.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 그나저나 슬슬 때가 무르익었는데.’
소하는 턱을 매만지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반박하지 않은 건 반박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 달간의 여정은 결국 소하의 설계였으니까.
이제, 수술을 마무리하려면 한 선수가 그를 찾아와야만 했다.
-똑똑.
그리고. 소하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요.”
가벼운 소하의 내방 허락에 모습을 드러낸 건 역시나, 마리오 발로텔리였다.
처음으로 감독 사무실에 방문한 그의 표정은 어둡기 짝이 없다.
평소 자신의 세상에서 혼자 놀던 표정이 아니다. 무언가 두렵고 혼란스러운 어두운 낯빛이다.
“감독님···.”
소하가 건넨 차를 한 모금 홀짝인 후 천천히 입을 때는 마리오 발로텔리. 떨리는 목소리는 그의 심적 동요가 얼마나 큰지 엿보였다.
“저도···. 동료들과 같은 꿈을 꿀 수 있을까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의미는 불분명했지만, 긍정적인 물음이었다. 이대로 잘 어르고 달랜다면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말뜻을 알아들은 소하는 냉소적이었다.
“꿈 깨. 넌 안 돼.”
감정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는 차가운 소하의 목소리에 발로텔리의 표정은 무너졌다.
< 141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전반기. (7)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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