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전반기. (6) >
한 달이 지나서야 수술을 집도하기로 마음먹은 소하.
이것은 단순히 마리오 발로텔리의 파악이 끝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구단이란 수많은 사람의 집합체.
한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춰 움직이기에는 너무나도 유기적이었다.
만약, 마리오 발로텔리를 살리기 위해 과하게 비위를 맞췄다고 치자.
과연 다른 선수들이 가만히 있을까?
전혀 아니다.
‘뭐야? 왜 쟤만 특별대우지?’
‘스타 출신이라고 차별하는 건가?’
‘실망이다, 실망.’
개인을 살리기 위해 집단을 무너뜨리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컸다.
휴가 기간, 방송에 나와 소하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있다.
“감독의 가장 큰 자질은 무엇인가요?”
골백번도 더 들었던 질문.
이에 소하는 운과 함께 항상 말하던 요소가 이었다.
“초등학교 교사의 마음이죠. 아마 감독은 은퇴하고 보육원 차리면 잘할 거예요.”
뚱딴지같았지만 의외로 많은 동업자의 공감을 받았던 답변이다.
축구선수들은 머리가 여물기 전부터 운동만 하는 인종들. 평균적으로 나이에 비해 훨씬 정신연령이 어리다.
당연한 결과였다. 공만 차느라 사회 경험도 없었고 어린 나이에 상상도 할 수 없는 부를 이루기도 했으니까.
요컨대, 좋게 말해 순박하고 천진했으며, 나쁘게 말해 머리가 비었다.
게다가 일류 선수일수록 ‘자아’가 강한 편이라 자존심에 상처도 잘 입었다.
이런 언제라도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될 수 있는 선수들을 수십 명이나 관리하는 게 감독이란 직업이다.
“전술만 잘 짜는 게 능사는 아니지. 선수단 장악력은 전술적 능력만큼 중요해.”
예를 들면,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이 있다.
리버풀을 이끌고 ‘이스탄불의 기적’을 써내린 세계적인 명장.
그의 로테이션 시스템과 강한 압박 전술은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감독으로서 최고의 자리는 가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 ‘인간적’으로서 선수단을 장악하지 못하는 냉소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허구한 날 선수단과의 불화, 선수 개인과의 다툼은 잘 짜인 전술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결국 축구는 사람이 하는 거니까.’
축구선수는 기계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같은 나이대보다 정신연령이 어리며 순박한, 어떻게 보면 조금 모자란 인간들이 축구선수였으니까.
‘한쪽이 뛰어나면 한쪽이 조금 모자라기 마련이지. 이런 놈들을 잘 다독여서 개처럼 뛰게 해야 한다.’
소하의 철학!
이 때문에 한 달의 기간에 선수단의 반응을 예의주시하던 그였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현재. 선수단과 발로텔리는 꽤 독특한 상황에 부닥쳐있었다.
***
마리오 발로텔리가 겪은 최악의 시즌, 14-15시즌이 끝난 직후.
발로텔리는 자신의 에이전트가 언급한 포츠머스행을 쉽게 결정했다.
에이전트가 주장한 ‘부활의 시작’은 큰 이유는 아니었다.
‘부활이란 죽은 놈들이나 하는 거 아닌가?’
사자가 생자로 귀환하는 것이 부활.
그런 의미에서 발로텔리는 자기 자신이 부활이란 걸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엄청난 명성, 존나 많은 돈. 난 존나 살아있다고. 내가 왜 부활을 해야 해?’
가진 돈은 썩어 넘쳤고, 명성도 전 세계 축구팬 모두가 그의 이름을 안다.
발로텔리는 이런 자신에게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이없었을 뿐이다.
이런 그가 포츠머스를 선택한 건 지극히 단순한 이유다.
‘편하고 재밌을 거 같아.’
축구선수라고는 믿을 수 없는 마음가짐이다. 어차피 리버풀에서는 더는 머물기 힘들었고 고생을 많이 해서 왕 대접 좀 받으며 편하게 지내고 싶었다.
‘나 정도 선수가 합류하면 다들 받들어 모시겠지. 몇몇 놈들을 꾀어서 포츠머스에서 재미 좀 봐야겠어.’
하지만, 포츠머스 선수들은 발로텔리의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어? 신입이네. 안녕. 그럼 난 훈련하러 가야 해서.”
발로텔리가 제일 먼저 접근한 선수는 델리 알리. 그가 관상을 알 리는 없었지만, 왠지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포츠머스의 몇 되지 않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돌아온 건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말이다.
‘뭐···지?’
자아가 유독 강한 발로텔리가 당황할 만큼 예상외의 반응. 분명 델리 알리는 겉보기에 망나니 기질이 넘쳐흘렀으니까.
인상과는 정반대로 정규 훈련 시간이 끝나도 훈련에 매진하는 프로였다.
‘보기와는 다른 녀석이군. 그럼 다른 녀석을 꾀어볼까.’
델리 알리에게 퇴짜를 맞은 발로텔리는 다른 사냥감을 물색했다. 그러다가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마이클 반즈.
“아아. 오늘 바람이 선선한 게 낚시하기 딱 좋은 날이구만···.”
훈련 중에도 유유자적한 모습에 발로텔리는 강하게 느낌이 왔다.
‘저 녀석이다. 저놈은 나처럼 축구에 관심이 없는 놈이야···!’
기질은 조금 달라 보였지만 축구를 ‘수단’으로 삼는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오. 나랑 놀러 가고 싶다고? 좋아.”
함께 즐겨보자는 발로텔리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마이클 반즈.
이에, 마리오 발로텔리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좋아. 일단 내 편 한 명.’
일이 잘 풀릴 거란 희망에 차는 발로텔리. 물론 너무 섣부른 판단이었다.
약속 당일, 낚시가방을 양어깨에 짊어진 마이클 반즈의 모습은 절망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했으니까.
“자, 그럼 가볼까. 네가 쓸 낚싯대까지 챙겨왔어. 요즘 동료 중에서 같이 가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참 고맙기도 하지.”
“···.”
덫을 놓은 건 발로텔리가 아니었다.
거미줄에 걸린 파리 신세였음을 너무나도 늦게 깨달아버렸다.
그렇게 해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간 낚시. 발로텔리의 성격에는 너무도 맞지 않아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후후···. 어때···? 오늘도···.”
“꺼, 꺼져···!”
오히려 발로텔리가 마이클 반즈를 피해 다니는 기묘한 상황까지 와버렸다.
“씨발. 여긴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한 구단이었다. 먼저, 2부 리그 선수 주제에 자신을 그냥 신입생 취급하는 거부터가 이상했다.
하지만 발로텔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원래 또라이란 어느 부분에서는 독한 면모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머리를 친다.’
선수단의 머리는 단장이나 감독이다. 하지만 선수단의 선수 중의 머리는 무엇일까? 바로, ‘주장단’이다.
수십 명의 선수 중에서도 가장 발언권이 강한 골목대장들. 이들을 포섭한다면 나머지는 일도 아닐 터.
곧바로 작업에 착수한다.
“헤이. 리더. 새로웠는데 동네 구경이나 시켜주면 안 될까?”
정통적인 방법이자 무적의 권유.
모범적인 주장이라면 결코 거절할 수 없었다. 이것은 주장의 의무였으니까.
일단 퇴근 후에 여가를 같이 보낸다면 급속도로 친해질 테고, 이후는 발로텔리의 계획이 착착 진행될 가능성이 컸다.
“좋습니다. 주장으로서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을 먼저 권유하지 못한 것이 죄송스럽군요.”
역시나. 케빈 도슨은 거절하지 않았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부록까지 따라 들어왔다.
“음? 그런 중요한 일은 주장 혼자에게 모두 떠넘길 순 없는 법입니다. 주장 곁엔 부주장이 있습니다. 미약하지만 저도 한 손 거들도록 하겠습니다.”
감히 말을 붙일 엄두조차 나지 않던 인간 로봇, 부주장 잭 해리슨까지 꿰였다.
그야말로 일거양득. 1타 3피!
‘하핫. 일이 쉽겠는걸?’
이미 포츠머스에서 물 좋다고 소문난 클럽은 발로텔리의 머릿속에 완벽히 저장되어있는 상태.
살짝 소금만 뿌리면 완벽한 요리가 나오기 일보 직전까지 왔다.
“···.”
분명 왔다고 생각했거늘. 발로텔리는 인생에서 가장 최악의 시간을 보내며 말을 잃었다.
“이곳이 바로, HMS 빅토리입니다. 호레이쇼 넬슨 대제독의 기함이었죠. 해군의 꽤 재밌는 정통이 존재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해군 장관이 매주 1회는 이곳에서 식사하지요. 어때요? 재미있지 않습니까?”
“이곳은 포츠머스 대성당입니다. 기초 돌은 1185년에 세워졌습니다. 역사가 아주 오래된 포츠머스 성공회 교구의 중심입니다.”
여행하러 온 유치원생들을 인솔하는 인솔 교사가 따로 없는 케빈 도슨과 잭 해리슨.
너무나도 모범적인 포츠머스시 소개에 발로텔리는 기겁했다.
‘이게··· 뭐야?!’
소름이 쫙 돋았다. 분명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멀쩡해 보였지만 자신보다 훨씬 또라이 같았으니까.
심지어 관광 안내를 하는 도중에도 길가의 쓰레기를 줍지 않나, 노모의 짐을 들어주지 않나, 온갖 선행을 아낌없이 베푼다.
“위, 위험해···.”
질려버린 발로텔리. 그 자리에서 재빨리 도망쳐버렸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미친 구단이야···.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는다.”
독기가 제대로 오르고 오른 발로텔리. 여러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포기를 모른다.
그 집념과 끈질김이란. 아마 이 열정을 축구에 쏟아부었다면 정말로 역대급 선수가 됐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인생이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열정이 있다고 굽혀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아, 술? 난 술을 마시지 않는다. 알코올은 뇌세포를 파괴하거든. 너도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으면 끊는 게 좋을 거다.”
겉만 본다면 술독에 빠져 살 거 같은 찰스 말로리는 금주가였으며,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요? 좋아요. 저도, 발로텔리도 부활해야 하니까요. 어디 한번 부활을 위한 날갯짓을 해보죠.”
감독과 같은 국적이라는 한 아시안 선수는 입만 열면 발로텔리가 가장 싫어하는 부활이란 단어가 나왔으며,
“미안하군. 난 요가를 가야 해서. 이참에 요가에 한 번 입문해 보는 게 어떤가?”
스티븐 데커라는 인간은 낚시를 요가로 바꾼 마이클 반즈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건드려 볼 수 있는 성인 선수들은 하나같이 축구 말고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나마 안토니오 그린이 제법 솔깃해했지만, 주제가 이상했다.
“비트코인이란 말이죠···. 지금은 별 가치 없는 무형의 가치지만 언젠간 엄청난 돈이 될 거란 말이죠. 술 한잔하면서 배워 보실래요?”
비트코인은 또 뭐란 말인가. 파칭코 코인은 알아도 비트코인은 금시초문이었다.
그렇다고 어린 선수들은 만만했냐? 전혀 아니다. 오히려 더욱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전 아직 놀 나이가 아닙니다. 감독님께서 향후 몇 년간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누구처럼 정점 찍고 망해버리긴 싫어서.”
“···듣지 못한 거로 하죠.”
“댁 옆에 있으면 내 존재감이 사라져서 별로예요.”
오히려 제안하는 발로텔리를 벌레 보듯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 아닌가. 믿기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했으니까.
이곳은 그가 알던 축구팀하고 근본적으로 무언가가 달랐다.
“내가···. 여기선 정상?!”
놀라운 사실을 깨달은 발로텔리.
모처럼 신선한 충격에 몸을 가볍게 떨 때, 한가지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평가까지 들려온다.
-하하, 발로텔리? 쫄딱 망해서 2부 리그 선수로 전락한 별 볼 일 없는 선수잖아. 아마 포츠머스에서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할걸?
누가 들었어도 분노했을 신랄한 비판이었다. 하지만 발로텔리는 분노하지 않았다. 그저 깨달음을 얻었을 뿐.
드디어 선수로서 각성하는가 싶지만 그건 절대 아니었다.
‘바로 이거야. 워낙 깡촌에 처박혀 있어서 내 실력과 명성을 몰랐던 거였어.’
말도 되지 않은 깨달음이었지만 발로텔리에게는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것 말고는 선수단에서 받는 대접은 설명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이를 바득바득 갈며 경기를 기대한 발로텔리. 결과는 모두가 알던 대로다. 2경기 연속골을 뽑아내며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며 화려하게 이름을 떨쳤으니까.
“후후. 이제 날 다르게 봐주겠지?”
의기양양한 발로텔리. 세간의 평가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그냥 자신에게 퇴짜를 놓은 동료들이 한 번쯤 돌아봐 주기만 했으면 만족했을 거다.
물론, 아쉽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럴 순 없어.”
발로텔리의 마음이 꺾여버렸다. 그리고 이것은 곧바로 경기장에서 나왔고 최악의 3경기를 보내게 된 자초지종이었다.
***
“이렇게 됐단 말이죠.”
“···.”
소하의 말에 밀러는 항상 그래왔듯 말문이 막혔다.
“이걸 어떻게 알아내신 겁니까?”
“개인 면담은 일이니까요.”
개인 면담. 지금도 하루에 1회씩은 꼬박꼬박해주는 일이다. 마치, 식후 커피 한잔하는 느낌이랄까. 너무 일상적인 일이라 언급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일부러 선수들에게 놀아주라고 하시게요?”
“설마요.”
밀러의 물음에 소하는 코웃음을 쳤다. 선수들은 오롯이 축구에만 집중해야 한다. 누군가의 비위를 맞춰주는 건 감독인 소하만으로 충분했다.
“이적생의 적응을 도와달라고 부탁할 순 있지만, 발로텔리는 예외죠. 괜히 어울렸다가 애 조질 수도 있고.”
“···큼큼. 신랄하시군요. 그래서 무슨 방법을 쓰실 겁니까?”
“동양에는 근묵자흑이란 말이 있죠. 요컨대, 검은 놈 근처에 있으면 검게 물든다는 거예요.”
“그거 인종 차별성 발언은 아니리라 믿습니다···.”
소하의 말에 찔끔하는 밀러. 발로텔리는 흑인이었으니까.
“에이 동양계 혼혈이 인종차별을 하겠어요? 일평생 인종차별을 받고 왔는데?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은 제가 제일 싫어하는 거예요.”
“큼큼. 아, 알겠습니다.”
“하여튼, 이 근묵자흑이란 말을 역으로 바꿔보자는 거죠.”
“네?”
소하가 늘 그렇듯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자 밀러는 눈을 질끈 감았다.
굳이 되묻진 않았다.
곧 설명해 줄 테니까.
“검은 놈을 흰 놈들로 하얗게 만드는 거죠. 요즘 말로 하면 화이트워싱이랄까요. 맞나? 하여튼. 사자성어로는 ‘마중지봉’이죠.”
“···?”
마중지봉.
구부러진 쑥도 삼밭에선 곧게 자란다는 사자성어. 소하의 이번 작전은 2년 동안 키워온 선수단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키워놨으면 밥값을 해야 하는 법이죠. 하하하!”
낭랑한 웃음을 터뜨리는 소하. 그리고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한 밀러는 스마트폰으로 사자성어를 검색하느라 바빴다.
< 140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전반기. (6)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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