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전반기. (4) >
개막전을 시원한 승리로 장식한 포츠머스. 프리미어 리그의 바로 밑에 자리 잡은 챔피언십 리그에서도 파란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한 모습이었다.
[하하. 정말 대단한 감독과 멋진 팀과 훌륭한 선수들입니다.]
[또다시 기적을 써 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소 어수선한 리즈라고는 하지만 역사가 다른 팀이었거든요.]
챔피언십 리그 개막전 리뷰 방송에서 연신 칭찬을 날려댔다.
[조쉬 킹의 어처구니없는 부상은 엄청난 악재였습니다. 포츠머스의 앞날이 절대로 밝지 않았죠.]
[맞습니다. 암만 경기를 잘 만들어주는 선수들이 많다 하더라도 ‘해결사’가 없다면 무의미하거든요.]
백번 옳은 말이었다.
암만 현대 축구가 공격의 중심축을 좌우 윙포워드로 옮겼다고 하더라도 ‘훌륭한 공격수’는 공격진에서 가장 중요했으니까.
더군다나 포츠머스는 양쪽 윙이 ‘인사이드 포워드’보다는 ‘인버티드 윙어’ 느낌이 더욱 강했기에 결정력 좋은 중앙 공격수는 더더욱 중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유망주 조쉬 킹의 부상은 엄청난 문제. 다른 팀이었다면 굉장히 흔들렸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임대로 데려온 마리오 발로텔리는 해결사다운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포츠머스의 걱정을 덜어줄 테죠.]
[글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발로텔리는 오히려 포츠머스의 걱정거리가 될 겁니다.]
잘 나가다가 서로 어긋나는 의견을 내놓는 전문가들. 개막전에서 데뷔골을 넣은 선수에게 걱정이라니? 라이트 팬이라면 조금 이해가 가지 않을 거다.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적어도 발로텔리는 개막전에서 자신이 2부리그에서 뛸 수준이 아니라는 걸 만천하에 공개했습니다.]
발로텔리를 옹호하는 주장은 이랬다.
첫째, 차원이 다른 뛰어난 기술을 보여줬다.
둘째, 자력으로 골을 만들어내는 남다른 선수이다.
셋째, 조금 굼뜨긴 했지만 나름대로 포츠머스의 원톱을 잘 수행했다.
정도였다. 보여준 모습 중 긍정적인 면을 잘 뽑아낸 평가다.
[좋게 보자면 그렇게 보이겠죠. 하지만 발로텔리는 조쉬 킹에 비해서 썩 좋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발로텔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이렇다.
첫째, 축구는 팀 스포츠다. 개인의 힘으로 우연히 들어간 골로 고평가하기엔 보여준 게 적다.
둘째, 활동량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셋째, 포츠머스의 빠른 템포를 자꾸 잡아먹는다.
넷째, 돌발행동을 억제할 수 없다.
등등. 충분히 이해할만한 주장이다.
특히나, 활동량이 부족하다는 점은 긴 리그 레이스에서 악재였다.
[자, 보세요. 발로텔리와 조쉬 킹의 활동량 지표입니다.]
전문가가 꺼낸 지표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평균 10km 이상을 뛰던 조쉬 킹에 비해 발로텔리는 8km도 간신히 달성했습니다. 이건 상당히 유의미한 차이죠.]
고작 2km 차이가 아니다.
2km나 차이가 난다는 거다.
물론, 10km도 별로 안 뛴 거 아니냐 할지도 모른다. 종종 중앙 미드필더나 측면 미드필더는 13km를 찍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중앙 공격수가 두 자릿수 활동량을 보여준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남들보다 많이 뛰어주는 공격수의 존재. 이것은 상대 수비진에 대한 압박을 넘어 팀이 가져가는 빌드업에 막대한 악영향이었다.
즉, 활동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상대방이 더 편하게 수비하고 더 편하게 패스를 주고받는다는 뜻.
괜히 현대 축구가 압박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포츠머스의 압박은 괜찮았습니다. 리즈도 포츠머스의 맹렬한 압박에 빌드업에 애를 먹었고요.]
서둘러 반론을 내놓는 발로텔리 옹호 측 전문가.
이에, 비판하던 측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음 지표를 꺼내 든다.
[그랬었죠. 왜 그랬을까요? 그건 이 지표를 보시면 됩니다.]
[무, 무슨···.]
[바로, 다른 선수들이 더 뛰어줬다는 지표입니다. 발로텔리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평소보다 수백 미터씩 더 움직여 줬기에 좋은 압박이 유지된 겁니다.]
[···.]
할 말을 잃은 발로텔리 옹호 측.
지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이 상태로 가다간 한두 달 뒤면 포츠머스는 내림세로 접어들 겁니다. 선수단 전체의 피로 누적은 경기력 저하는 물론이고 최악의 경우엔 다발적인 부상 악재의 원인이 될 테니까요.]
[···그, 그렇다면 전술을 발로텔리에게 맞춰서 변경해야···.]
냉혹한 팩트 공격에 화살을 전술을 짜는 감독에게 돌린 발로텔리 옹호 측.
당연하게도 무리수였다.
그리고 이를 놓칠 반대 측이 아니다. 곧바로 비릿한 미소와 함께 거친 공격을 퍼붓는다.
[선수 하나를 위해 팀 전체의 전술을 바꿔라? 발로텔리는 그 정도 선수가 아닙니다.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아니에요. 그는 현재 2부리그 팀에게도 계륵인 선수입니다.]
[···.]
[물론, 성소하 감독은 워낙에 뛰어난 사람이라 전술적 대응책을 마련하겠지만 큰 효과는 보기 어려울 겁니다. 포츠머스란 팀은 그런 팀이니까요.]
2년간 다지고 다져온 고강도 전방 압박 전술. 이것은 소하가 이끄는 포츠머스의 ‘오리진’이었다.
이 오리진은 팀의 구심점이다. 포츠머스가 가진 경험과 실력보다 좋은 경기력을 뽐낼 수 있는 원동력이란 이야기다.
이런 오리진을 임대 온 선수를 위해 수정한다면? 당연하게도 그만큼 경기력의 하락이 올 터. 굉장히 좋지 않은 악수였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중요한 시점에 전술적 일관성을 잃는다면 목표를 이루지 못할 거다.
[결론은 하나입니다. 바로, 마리오 발로텔리란 선수죠. 그 자신이 변해야지만 상황이 좋아질 겁니다. 개인적으로도 팀전으로도 말이죠.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성소하 감독의 조련이 남았다는 거죠.]
포츠머스의 리뷰를 정리하는 사회자.
결론은 그가 말했듯이 하나였다.
마리오 발로텔리는 변해야 했으며 그것을 위해선 소하의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
“흐으으으음.”
모두가 마리오 발로텔리를 주목할 때쯤. 소하도 모처럼 대세에 따라 발로텔리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상한 새끼란 말이야.”
“누가요?”
소하의 중얼거림에 밀러가 귀를 쫑긋거리며 되물었다.
“누구긴 누구겠어요. 이름은 마리오요, 성은 발로텔리인 저 미친 개또라이 새끼죠.”
“큼큼. 가, 감독님 목소리를 조금 낮추셔야···. 맞는 말이긴 하지만요.”
소하의 거친 발언에 주의를 시키는 밀러. 말리는 처지긴 했지만 소하의 말에 가슴이 시원해지는 건 참지 못했다.
“어차피 쟤는 남의 말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애라 이정도 목소리로는 들리지도 않을걸요.”
“그건 그렇죠. 자신만의 세상이 있고 거기에서만 사니까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밀러. 제법 축구판에서 오래 굴렀다고 자부했지만, 발로텔리 같은 인간 유형은 처음 봤다.
“그나저나 뭐가 이상한 겁니까? 물론 그냥 존재 자체가 이상한 녀석이긴 하지만요.”
발로텔리는 이상하다. 이것은 옆집 사는 유치원생도 아는 이야기 아니던가. 인제 와서 소하가 이상하다고 말할 이유가 없었다.
“음? 모르겠어요?”
밀러의 물음에 뚱하게 반문하는 소하.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선 조목조목 설명하기 시작한다.
“봐봐요. 발로텔리는 이상한 놈이잖아요. 그런데 훈련은 저렇게 열심히 하는 게 평범한 걸까요?”
“아니요.”
밀러는 단호하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상한 놈이라면 훈련 태업이나 지각 정도는 해줘야 인지상정.
“게다가 몸 상태도 굉장히 좋아요. 저 근육 봐봐요. 저건 철저한 몸 관리가 아니면 유지할 수 없죠. 아무리 타고난 육체라고 해도요.”
“그렇죠.”
“그런데, 이상한 놈이 철저한 몸 관리를 한다는 게 평범한 걸까요?”
“아니요.”
다시 한번 도리도리하는 밀러. 고개를 저을 때마다 흔들리는 턱살과 볼살 때문에 소하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이야기를 마무리를 짓는다.
“이상한 놈이 평범한 짓을 하면 이상한 거죠. 이제 이해가 가죠?”
“그러네요···. 뭐죠? 저 녀석은.”
소하의 말처럼 정말 이상했다.
경기장에서는 그렇게도 불성실한 선수였거늘. 훈련은 참으로 열심히 하는 이유가 뭔지 절로 궁금해진다.
“그래서···. 감은 잡으셨습니까? 다들 감독님의 ‘조련’을 기대하고 있던데요.”
말을 꺼내는 밀러도 내심 기대 중이다. 소하라면 발로텔리를 저 4차원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데려와 줄 유일한 사람이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소하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아니요. 말했잖아요. 아직 감도 못 잡았다고.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수술도 어디가 다쳤는지 알고 시작해야 하는 법. 무턱대고 배부터 째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은 진단하는 단계였다.
“허헛. 감독님께서 오랜만에 강적을 만나셨네요.”
“부정은 하지 못하겠네요.”
소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혀를 찼다. 모처럼 만난 강적. 해결법조차 보이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포기했겠지만, 소하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사람. 오히려 전의를 활활 불태운다.
“한 달 정도는 지켜봐야겠죠. 그리고···. 혹시 모르죠. 의외의 상황 덕분에 제가 손쓸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알 수 없는 소리를 읊조리는 소하. 이에 밀러가 무슨 헛소리냐고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포츠머스의 2라운드 상대는 더비 카운티였다. 해버지, 유해진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뛸 당시 프리미어 리그에 잠깐 얼굴을 비추기도 했던 팀이다.
5년 만에 돌아온 07-08시즌의 프리미어 리그. 결과는 최악이었다.
1승 8무 29패.
역대 최소승점, 최다패전, 최소득점, 최다 득실 차를 모조리 갈아치우며 강등행 직행열차에 올라탔다.
그 후 절치부심했지만, 프리미어 리그로의 복귀는 무척이나 험난한 일.
하지만 이번 시즌은 조금 달랐다.
현 시즌인 15-16시즌에는 초거대 구단 ‘레알 마드리드’의 수석코치였던 폴 클레멘트 감독을 선임했으며,
대런 벤트라는 제법 괜찮은 공격수까지 자유계약으로 영입에 성공.
모처럼 승격에 도전할 만한 시즌이라는 평가를 받는 중이다.
“제법 치열한 경기가 될 것이다. 그래도 더비 카운티의 홈경기인 만큼 포츠머스의 약세가 예상된다.”
프리미어 리그의 물을 조금이라도 먹은 팀은 체급 자체가 다르다.
따라서 암만 기세등등한 포츠머스라도 상대의 안방에서는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쳤지만 소하의 생각은 딴 데 가 있었다.
‘더비라···. 내가 좋아하는 구단이지.’
그저 개인적인 감상을 즐기는 중이다.
소하가 더비를 좋아하는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엠블럼이 귀여워.’
독특한 ‘양’ 그림 엠블럼을 평소에 매우 좋아했다.
둘째는,
‘망하는 구단이니까.’
현재로서는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21-22시즌에 법정관리에 들어간다.
그렇다. 2년 전 포츠머스가 받았던 그 법정관리다.
승점도 21점이나 삭감되어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을 정도다.
‘여기서 웨인 루니가 감독으로 등장해서 팀을 살리지. 캬. 이래서 축구가 재밌어.’
소하는 ‘로망’을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선수 시절 ‘악동’으로 유명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웨인 루니가 감독으로 등장해서 팀을 구해냈다는 이야기는 ‘로망’이 흘러넘쳤다.
‘승점 21점 차이를 극복하고 강등에서 구원해내다니. 그것도 루니가!’
승점 21점 차이. 7경기를 모조리 승리로 마무리 지어야 얻는 승점이다. 어지간해서는 99%의 확률로 강등이다.
그리고 1%의 확률은 기적과 같은 뜻.
기적을 이루어낸 소하가 더비를 좋아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뭐···. 봐줄 생각은 없지만.”
동병상련을 겪는 구단이지만 알 바는 아니다. 게다가 개인적인 취향보다는 팀의 승리가 가장 중요했으니까.
개막전 때와 같은 최고의 선발진으로 더비 카운트 홈으로 걸어 들어간 소하. 90분 뒤, 결과가 나왔다.
[2-1! 포츠머스의 승리입니다! 마리오 발로텔리의 멀티 골! 제법 답답했던 경기를 혼자 힘으로 풀어냈습니다!]
[데뷔골에도 비판받던 발로텔리가 자신이 누구인지 여실히 보여줬네요.]
단단한 더비 카운티에 고전을 면치 못하던 소하와 포츠머스. 막힌 혈을 뻥 뚫어준 건 발로텔리의 원맨쇼였다.
앤디 로버트슨의 날카로운 얼리 크로스를 놀라운 터닝슛으로 이어받아 동점 골을 달성.
27m 거리에서 엄청난 중거리 슛으로 역전 골을 뽑아내며 귀중한 승점을 챙겼다.
“당신네는 날 너무 몰라. 아니, 축구를 너무 몰라. 주유소에서 일이나 시작하지, 그래?”
거만하기 짝이 없는 인터뷰로 비판하던 사람들을 실컷 조롱한 발로텔리.
논란에서 승리를 쟁취한 승자의 횡포였다.
-맞는 말이야. 축알못들이 괜히 꼬투리 잡았지만, 발로텔리는 결과로 보여준다고.
-혼자서 승점을 가져왔어. 그것도 두 경기 만에. 이제 논란의 여지는 없다.
-역시는 역시 역시인가···.
-내가 축구를 잘 몰랐다.
반으로 쪼개졌던 서포터들도 하나로 통합돼버리는 상황까지 왔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발로텔리가 어떤 선수인지,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곧 밑천이 드러나겠군···.”
소하만이 여느 때보다 예리한 눈매로 발로텔리를 바라봤을 뿐이었다.
< 138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전반기. (4)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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