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전반기. (3) >
선공은 원정 경기를 나온 리즈 유나이티드부터였다.
새롭게 합류한 팀에게 ‘웰컴 투 챔피언십 리그’를 외칠 요량인지, 상당히 전진하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리즈 유나이티드.
하지만, 포츠머스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어설프고 허술했다.
“저 봐라. 저 봐. 아직 조직력이 제대로 오르지 않았어. 새로 부임한 우베 뢰슬러 감독의 마음은 알겠지만 말이야.”
히죽거리는 소하. 리즈 유나이티드 감독의 속마음이 훤히 보였다.
‘신임 감독은 아직 팀 내 장악력이 떨어진다. 즉, 대어를 잡는다면 가장 까다로운 일은 쉽게 진행할 수가 있겠지.’
소하가 이끄는 포츠머스야말로 대어 중에서도 대어. 잡아내기만 한다면 우베 뢰슬러 감독의 리즈 생활은 탄탄대로가 펼쳐지는 거다.
그 ‘성소하’를 잡아먹은 감독으로서 주가가 펄쩍 뛰어오를 테니까.
앞으로 조금 삐걱거리더라도 ‘개막전에서 포츠머스를 혼내주었다’라는 타이틀은 든든한 방패가 될 터. 괜찮은 한 수였다.
‘위험부담도 적지. 제법인걸? 적어도 감독으로서 기본이 되어있어.’
만약 지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 어차피 포츠머스는 상당히 강팀으로 인정받은 상태. ‘졌지만 잘 싸웠다.’, 정도만 해줘도 많은 이득이 돌아온다.
게다가 현 포츠머스는 조쉬 킹이라는 주포가 없는 상황. 충분히 뒷공간을 열어주고 공격을 해도 평소보다는 안전하다.
‘하지만 아직 팀 조직력이 처참하군. 이 정도면 킹이 없어도 엉덩이를 때려줄 수 있지.’
대규모 선수단 변화는 조직력 저하의 1등 공신이다.
여기에 감독까지 새로 부임했으니.
조직력이 좋을 리가 없다.
그리고 포츠머스는 대부분이 2년 내내 발을 맞춘 선발진.
조직력 차이가 비교조차 하기 힘들다.
‘요컨대, 무르게 굳은 진흙 덩어리를 단단한 짱돌로 뚫어버리는 그림이 나온다는 것.’
좋은 공격과 수비는 ‘선수단의 질’보다는 조직력에서 나오는 법. 초반에 제법 기세를 끌어올렸지만 금방 바닥을 보일 거다.
“···.”
다소 팀이 뒤로 후퇴했음에도 심드렁한 눈빛으로 경기장을 바라보는 소하.
전반 13분쯤.
돌부처처럼 가만히 관조하던 소하가 드디어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버럭 외쳤다.
“지금이다!”
드디어 떨어진 장군의 돌격 명령.
그리고 그 시발점은 지난해에 팀에 입단했으며, 개막전 깜짝 선발로 세상을 놀라게 한 어린 선수였다.
***
데클란 라이스.
16세에 자유계약으로 포츠머스에 합류한 올해로 17세가 된 어린 선수.
14-15시즌에는 후반기에는 이따금 시간 벌이용으로 교체 출장하던 벤치 자원이기도 하다.
이런 데클란 라이스의 외부 평가는 잘라 말해 썩 좋지는 않았다.
[첼시의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버림받은 선수입니다. 일류 선수가 되기 힘들다는 진단을 받은 거겠죠.]
[하지만 유망주 키우기의 달인인 성소하 감독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보였나 봅니다. 잘못 봤을 확률이 매우 높지만요.]
냉정한 평가였지만 반박하기도 힘들다. 다른 팀도 아니고 세계적인 유망주를 긁어모으는 첼시에서 내린 진단이었으니까.
더군다나 막상 교체로 나왔을 때도 눈에 띄지 않는 경기력을 선보인지라 평가는 더더욱 내려갔다.
덕분에 포츠머스의 기적적인 챔피언십 리그 복귀 개막전에서 선발 출장이 확정되자 모두가 눈을 의심했다.
[아니, 이게 뭔가요. 데클란 라이스를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 선발로 내보내다니요.]
[제법 덩치는 커졌습니다만···. 글쎄요. 뭔가 보여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성소하 감독의 주사위 놀음이 이번에는 실패로 돌아갈 듯 보입니다.]
여러 별명을 가진 소하였지만 가장 대표적인 별명 중 하나인 ‘야바위꾼’을 빗댄 예측이었다.
심지어 본 포지션으로 알려졌던 중앙 수비수가 아니라 수비형 미드필더.
노림수치고도 너무나 무모한 카드였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는 건 처음 아닙니까? 성소하 감독도 사람이었군요. 이런 실수를 하다니요.]
[하부리그에서는 제법 이런 방법이 통했겠지만, 챔피언십 리그는 다르다는 현실을 하루라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포츠머스의 성지인 프래튼 파크에서 소하의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물론, 당연히 서포터들에게 욕을 얻어먹었지만 말이다.
-좀 보고 씨불여. 망할 좆문가 새끼들아. 너희들이 뭘 안다고.
-아직 성소하 감독을 모르네.
-야바위꾼? 개소리지. 성소하 감독은 승부사야. 승리하기 위해서는 뭐든 하는 사람이라고.
-조만간 SNS에 사과문 올리겠네.
-10분 뒤, ???: 대단합니다! 데클란 라이스! 정말 제가 알던 선수인가요?
경기장 내외로 난리가 났다. 제법 수위가 높았지만 별다른 문제는 되지 않았다.
곧바로 이어진 경기에서 바로 서포터들의 말이 옳았음이 증명됐으니까.
[···대단합니다. 제가 알던 선수가 맞는지 의심스럽군요.]
[···팀이 수세에 몰리자 가장 빛이 나는 선수입니다. 엄청난 활동량, 수준급의 태클과 가로채기. 심지어 짧은 패스의 정확도도 무척 뛰어납니다.]
서포터들의 예언이 실현됐다.
10분 남짓 수세에 몰린 포츠머스를 홀로 지켜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방팔방 돌아다니면서 리즈의 공격 전개를 방해하는 모습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
그리고 10분 만에 3개의 인터셉터를 달성한 그 순간.
소하의 외침이 데클란 라이스의 귓가를 후벼팠다.
“알겠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데클란 라이스. 전처럼 동료에게 짧은 패스를 주기보단 갑자기 앞으로 치고 나가기 시작한다.
1년 만에 확 달라진 탄탄한 몸이 돌파를 시도하자, 육중한 탱크 같기도 하다.
[라이스! 라이스가 전진 드리블을 시도합니다!]
[기습적인 전진이에요. 리즈의 선수들이 당황하는데요?]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는 펄쩍 뛰며 놀랐다. 수비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는 사실도 놀라웠거늘.
이런 공격적인 전진까지 선보일 줄 정말 몰랐다.
“흐음.”
순식간에 중앙선을 넘어 파이널 서드까지 진출한 데클란 라이스.
이 돌발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움직임은 리즈의 실낱같던 조직력을 순간, 완전히 와해시켰다.
“이쪽!”
잠시 다음 플레이를 고민하려는 찰나. 저 오른편에서 도봉산이 손을 번쩍 들었다.
가진 기술만큼 영리한 선수였기에 데클란 라이스가 만든 혼돈을 놓치지 않았던 것!
“네!”
데클란 라이스는 크게 답하며 도봉산의 요청 응답. 정확한 패스를 통해 공을 도봉산의 주발인 오른발에 배달한다.
“별론데.”
패스를 받은 도봉산. 하지만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패스가 좋지 않아서는 아니다. 그저, 전방의 움직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킹이었다면···. 조금 더 앞에서 달려주고 있었을 텐데.’
짜임새 있게 침투를 시도하는 포츠머스의 공격진이었지만 2% 부족했다.
원인은 당연하게도 마리오 발로텔리. 새 팀의 첫 경기인지라 제법 움직여주긴 하지만, 킹에 비해서는 너무 굼떴다.
킹이었다면, 이미 상대 수비수들을 제압하고 완벽한 득점 기회를 잡았을 텐데.
아쉬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도봉산의 움직임은 이미 중앙 공격수에게 주기 위한 포석. 다른 선택지를 고른다면 비효율적이다.
‘일단 주고 다시 받자.’
도봉산은 팀 전술 훈련에서처럼 2:1 패스를 통해 부족한 마리오 발로텔리의 움직임을 보완하기도 결정.
발로텔리에게 패스를 건네고 민첩하게 몸을 돌리며 침투한다.
요컨대, 공을 다시 나에게 보내달라는 무언의 요청이었다.
하지만,
“오우. 좋은 패스.”
발로텔리는 도봉산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선수였다. 아니, 인간이었다.
툭, 앞으로 찔러주기만 했어도 결정적인 기회가 왔겠지만, 마리오 발로텔리의 선택은 어렵고도 멍청한 길이었다.
“그럼 내 화려한 신고식을 치러볼까!”
호기롭게 외치며 공을 질질 끄는 마리오 발로텔리. 마치, 마실 나온 할머니 같은 움직임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화려한 발재간. 눈을 즐겁게 하는 엄청난 기술과 타고난 육체 능력으로 제법 공을 오래 지켜낸다.
[지금 뭐 하는 거죠? 그냥 도봉산에게 리턴을 줬으면 쉽게 골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요.]
[포츠머스가 순식간에 엄청난 속도로 템포를 올렸지만, 다 잡아먹혔습니다! 그것도 같은 팀 동료한테요!]
경악을 금치 못하는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
-뭐 하는 거냐. 이 새끼야!
-저 시발 템포 처먹는 거 봐라.
-내 저럴 줄 알았지.
욕설을 아끼지 않는 나무로 변한 서포터들.
“···야 이 새끼야! 뭐해! 너 씨발, 리즈에 전 재산 박았냐?!”
머릿속에 90% 이상 그려졌던 선제골이 사라지는 환영에 발작하는 소하.
물론, 이미 자신의 세상에 심취한 마리오 발로텔리에겐 들리지 않는 공허한 외침이었을 뿐. 들렸어도 결과는 같았을 거다.
이것은 매우 좋지 않은 플레이였다. 기회의 낭비도 낭비였지만, 동료들의 신뢰와 사기를 무너뜨리는 행위였으니까.
역시 발로텔리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흉물스러운 플레이.
하지만, 발로텔리는 이런 개망나니 같은 모습 말고도 다른 모습도 있었다.
바로, 세계를 놀라게 한 천재라는 모습 말이다.
“어휴. 이제 뺏기겠는걸.”
두 명까지는 어찌어찌 잘 버텼지만, 세 명째가 다가오자 너스레를 떤 마리오 발로텔리.
“흐압!”
순간, 엄청난 힘으로 수비수들의 압력을 이겨내고 작은 공간을 만들어냈다.
-뻥!
찰나의 시간만 존재할 수 있었던 공간 속에서 강력한 슛에 성공한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공간을 만들어낸 발재간과 힘도 놀라웠고, 물 흐르듯 이어지는 슈팅 기술은 차원이 달랐다.
“···뭔데, 저 발목 힘은?”
작은 공간이란, 슛을 위한 준비가 짧다는 뜻. 하지만 발로텔리가 내지른 슛은 멀리서 보던 소하도 강맹한 힘을 느낄 정도였다.
-철썩!
그대로 골네트를 갈라버리는 조쉬 킹급의 강슛!
눈을 의심케 하는 슈퍼플레이이자, 슈퍼 골이었다.
[골입니다! 골! 저걸 저렇게 골로 만들어버립니다!]
[과연 발로텔리. 발로텔리란 선수의 명암을 한 번에 보여주는 멋진 골이었어요! 포츠머스가 전반 14분, 마리오 발로텔리의 데뷔골에 힘입어 앞서갑니다!]
어처구니없는 골에 잠깐 조용해졌던 경기장은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에 의해 불이 붙었다.
-미친, 저게 발로텔리야?
-와···. 단 3초 동안 천국과 지옥을 다 보여주네···.
-외쳐! 갓로텔리!
길길이 날뛰는 관중들. 그 와중에도 쉬운 길을 어렵게 가는 재주에 혀를 내두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걸 이렇게 하네?”
이래저래 골은 넣었지만 찜찜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소하. 웃어야 하는지 화를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뭐···. 일단 골은 소중하니까···.”
축구는 22명이 투덕거리며 ‘골’을 넣어야 하는 스포츠. 골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였다.
“잘했다!”
마지못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마리오 발로텔리를 칭찬하는 소하.
제멋대로 행동하는 발로텔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소하의 머릿속에는 모처럼 불가능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
이후 경기는 포츠머스의 일방적인 학살극이 시작되었다.
마리오 발로텔리의 선제골에 기어코 완전히 부서진 리즈 유나이티드는 제정신을 차린 포츠머스의 상대가 되지 못했으니까.
그나마, 전 포츠머스 소속 선수인 데클렌 마이어스가 멋진 오버래핑으로 리즈 서포터들의 마음을 위로해줬을 뿐.
대세를 막기는 힘들었다.
-삑삑삑!
[경기 종료됩니다! 포츠머스의 4-1 대승! 자신들이 운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 아니라고 외치는 듯한 경기였습니다.]
[발로텔리의 선제골, 이어진 도봉산의 추가 골 이후로 리즈는 완전히 무너졌어요.]
오늘의 MOM은 도봉산. 2골 1어시스트를 달성하며 하부리그로 이적을 선택한 자신이 옳았음을 여실히 증명했다.
“삼보 전진을 위해 일 보 후퇴해야 할 때도 있죠. 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잠시 몸을 추스른 것뿐입니다.”
덤덤하게 인터뷰를 마친 도봉산의 모습은 듬직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를 지도하는 스승인 소하는 표정이 썩 좋지 않다.
“···하, 이거 상상 이상의 미친놈인데.”
이유는 당연하게도 마리오 발로텔리 때문. 선제골 장면 때문이 아니다.
그 후에 벌어진 일 때문이다.
“골키퍼를 제치고 나서 뒤돌며 힐킥을 시도하는 건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그, 글쎄요.”
소하의 악귀 같은 표정에 겁을 먹은 밀러가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하아···. 예전에 맨체스터 시티의 프리시즌 때도 저러지 않았나요?”
“그랬었죠. 만치니 감독이 극히 분노해서 기사까지 났었죠.”
“···모르겠네요. 모르겠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소하. 어디부터 건드려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일단 차차 알아내기로 하고···.’
일단 골칫덩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소하.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남아있다.
“아! 여기 계셨군요. 감독님.”
“어디 갔다고 하던데 날 보러 왔구나?”
바로, 데클렌 마이어스와의 재회였다. 2년 만에 만난 스승과 제자.
눈치 빠른 밀러는 슬그머니 자리를 비워준다.
“잘하던데?”
소하는 싱긋 웃으며 칭찬을 남발했다. 평소의 그였다면 절대로 볼 수 없던 모습! 겉치레는 아니었다. 리즈의 한 골을 도와준 것이 그였으니까.
심지어 전 동료였던 잭 해리슨을 꽁꽁 묶어 공격포인트를 올리지 못하게 방해하기도 했다.
“칭찬 감사합니다. 정말 강력한 팀으로 만드셨습니다. 2년 전 제가 뛰던 팀이 맞는지 아직도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데클렌 마이어스도 칭찬으로 시작. 그 또한 겉치레가 아니었다. 이제 챔피언십 리그 3년 차에 접어드는 그로서도 포츠머스는 놀라울 정도로 강했으니까.
“후후. 말했잖냐. 우린 위로 올라갈 거라고. 구란 줄 알았어?”
“설마요. 전 믿고 있었습니다.”
싱긋 웃는 데클렌 마이어스. 포츠머스의 서포터라고 할 만큼 자주 지켜봤던 그로서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우린 프리미어 리그로 갈 거야. 그때 돼서 다시 영입해달라고 해도 늦었어. 애원해도 안 받아줘.”
소하가 농담을 던지자 마이어스도 농담으로 응수한다.
“그럼 감독님께서 절 원하시도록 더욱 노력해서 좋은 선수가 되어야겠군요. 애원하면 조금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하하하. 기대해 주십시오.”
환한 미소와 함께 모처럼 경기장에서 해후를 푸는 소하와 마이어스.
같이 보낸 시간은 한 달 남짓한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들은 여실히 끈끈한 스승과 제자의 모습이었다.
< 137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전반기. (3)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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