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136화 (136/306)

< 136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전반기. (2) >

소하는 솔직히 단맛 쓴맛 다 봤다고 자부했었다. 회귀 이야기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람 이야기다.

‘뭐지···? 이런 경험은 처음이야···.’

아다마 트라오레와 마리오 발로텔리를 떠올리며 사무실에서 입맛을 다시는 소하.

‘미지의 생물’을 만난 기분이다.

모두를 정식으로 소개하는 자리에서 ‘루틴’에 맞춰 스쿼트를 하는 새끼나,

선수는 물론, 스태프까지 각을 잡고 서 있는 자리에서 ‘클럽’에 가자고 ‘감독’에게 제의하는 새끼라니.

‘이 어찌 놀랍지 않으리.’

다만, 놀랍거나 당황한 마음은 처음 그 순간을 제외하고선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럼 화가 났을까? 전혀 아니다.

그저, 재미있었다.

‘온갖 일을 다 겪었다고 자부했건만. 너무 오만했어. 너무 새로워. 맛있어. 더 먹고 싶어.’

너무 맛있었다. 이미 현재의 선수단은 정리가 끝난 상태. 조금 싫증이 날 만도 했으니까.

돌대가리에 배신자인 조쉬 킹은 종종 열 받게 했지만, 충신에 떠오르는 샛별로 개조했으며,

기본기가 부족하고 자만에 쉽사리 빠지던 델리 알리는 스파르타식 교육에 예전보다 훨씬 더 잘 성장했다.

‘이것뿐만은 아니지.’

케빈 도슨은 프리미어 리그 승격만 달성한다면 잉글랜드 ‘성인’ 국가대표 자리도 슬쩍 노려봐도 충분했으며,

찰스 말로리는 신임감독을 괴롭히던 폐급에서 나이를 잊게 하는 훌륭한 선수로 환골탈태한 상태.

여기에 마이클 반즈도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정석’이라 불리며 부족한 수비력을 활동량으로 메꾸는 수준급 선수로 진화한 지 오래다.

그 외 앤디 로버트슨이나 칼빈 필립스는 애당초 좋은 선수들이라 건드릴 필요도 없었다.

‘에링 홀란드, 데클렌 라이스는 두말하면 입 아프지.’

5년 뒤면 세계축구가 놀라 자빠질 원석들은 아무 하자 없이 쭉쭉 크고 있다.

에링 홀란드야 이번 시즌에 합류했지만, 재능은 알아주지 않는가.

훗날 자주 부상에 빠지는 약점만 고쳐주면 탄탄대로다.

‘이런 상황에서 요상한 놈들이란 크림 스파게티의 반찬으로 나온 김치 같은 존재들이지.’

2년간의 매운맛은 벌써 잊어버리고선 새로운 매운맛을 원하는 소하.

그런 그에게 새로운 두 명의 신입생은 입맛을 제대로 달궈주었다.

‘어디 한번 제대로 고쳐보자. 만만치 않겠지만 말이야···.’

돌대가리와 또라이.

이미 한번 고쳐 쓴 전적이 있지 않은가. 남들이 포기한 선수를 고쳐 쓴다는 건 소하에겐 너무나도 즐거운 일일뿐더러 경험도 넘치는 일이었다.

“후후후.”

진득하게 썩은 미소를 짓는 소하.

그의 본격적인 인간개조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잘 될지는 소하 본인도 몰랐지만 말이다.

***

챔피언십 리그에 복귀한 포츠머스.

그 영광스러운 1차전은 다름 아닌 ‘리즈 유나이티드’였다.

“첫 상대로는 나쁘지 않죠.”

소하는 경기 이틀 전, 수석코치와의 회의에서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자신감이 넘치시는 건 좋지만 무려 ‘리즈 유나이티드’라고요. 감독님.”

잭 밀러 수석코치가 슬쩍 핀잔을 줬다.

리즈라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2부리그 팀 아니던가.

축구의 축자도 모르는 사람도 ‘리즈시절’을 말하고 다녔으니까.

이제 갓 올라온 승격팀이 만만히 볼만한 팀이 절대 아니다.

“그러니까 할 만하다는 거죠.”

물론 소하는 밀러의 의견 금방 부정을 표했다.

“···챔피언십 리그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저력 있는 팀입니다.”

“아니요, 망해버리고 다시 위로 올라가지 못한 채 부유하는 그저 그런 팀이죠.”

“···리즈 서포터가 들었다면 감독님 댁에 몽둥이 들고 쳐들어갔을 겁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밀러. 그의 말처럼 소하의 발언은 리즈에겐 모욕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사실인걸.’

심한 말이긴 했지만 사실이긴 했다.

더군다나 아직 ‘마르셀로 비엘사’라는 명장이 부임하기도 한참 전.

챔피언십 리그 복귀전으로는 너무나도 만만한 상대다.

게다가 과거와 미래를 고려하지 않아도 현재의 리즈 유나이티드는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현재 리즈는 어수선해요. 지난 시즌인 14-15시즌이 개판이었거든요.”

다르코 밀라니치 감독의 시즌 도중 경질. 그 뒤를 이은 유소년팀 감독 닐 레드피언도 지휘봉을 내려놨다.

“이제 막 지휘봉을 잡은 우베 뢰슬러 감독은 특출나지 않은 무난한 감독이죠. 게다가 이번 이적시장에서 대규모 선수단 감축이 이루어졌어요. 무려 15명이 넘는 선수가 팀을 떠났죠.”

15명. 거의 한 팀 정도의 숫자가 날아간 거다.

리즈의 열악한 재정상 주급 다이어트는 필수적이라지만 그 수가 너무 많다.

“굉장히 혼란한 상태에요. 아직도 그 시절의 피해를 다 복구하지 못했죠. 그러니까 망할 거면 우리처럼 제대로 망했어야지. 쯧쯧.”

소하는 씨익 웃으며 혀를 찼다. 포츠머스는 제대로 망한 덕분에 ‘주급 다이어트’를 할 선수도 없었으니까.

끽해야 마이클 반즈 하나였는데, 이젠 제법 덩치가 커진 포츠머스로서는 부담이 전혀 없다.

“감독님···. 혹시 길 가다가 리즈 서포터한테 강도질이라도 당하셨습니까···?”

계속 나오는 소하의 리즈 억지로 까기에 밀러가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설마요. 전 리즈에 간 건 딱 한 번뿐이에요.”

오묘한 미소를 짓는 소하. 그의 말처럼 딱 한 번이었다. 그것도 부임 첫해인 2년 전에 말이다.

“그때 이니셜 S, 그 자체였죠.”

소하는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2년 전, 데드라인에 이루어진 이적 협상 때문에 낡은 자동차를 타고 리즈까지 폭주한 사건!

당시, 아무도 가능성을 몰랐던 유망주 조쉬 킹과 야비한 협상가가 아닌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알버트 위버가 사건의 피해자였다.

그리고 이 사건은 2년이 지난 지금, 포츠머스 프런트에서 전설로 회자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게 자랑거리십니까?”

밀러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조쉬 킹은 몰라도, 알버트 위버는 아직도 ‘조수석 공포증’에 시달렸거늘. 어지간해서는 조수석에 절대 타지 않았다.

-감독님이 운전대를 잡은 차를 타느니 차라리 물구나무서기로 가겠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회식 자리에서 할 만큼 위버에게 그날의 기억은 악몽이었다.

하지만 소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보다.

“제가 담을 키워준 거예요, 담을요. 원래는 배포가 작아서 큰일을 맡기에는 부족한 사람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슬슬 이름을 알리는 협상가로 변했죠. 다 제 덕이에요.”

“···퍽 그러시겠습니다.”

쓴소리를 내뱉는 밀러지만 크게 부정하지는 않았다. 공무원 유형이었던 알버트 위버가 각성한 계기가 소하이긴 했으니까.

“하여튼, 전 리즈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냥 기분이 좋은 거예요.”

“흥. 기분이 좋다고요?”

코웃음 치는 밀러. 기분이 좋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소하말고 없을 거다.

“그럼요. 2년 전엔 얼굴도 똑바로 바라보질 못했을 팀과 드디어 ‘같은 리그’에서 붙게 되는 거잖아요.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까요? 하하.”

환하게 웃는 소하. 모처럼 썩은 미소가 아닌 진심 어린 미소라 빛이 난다.

“그러게요. 2년 전에는 꿈도 못 꿨던 일이긴 하죠. 허허.”

밀러도 소하를 따라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웃느라 자글자글해진 눈가엔 물기가 어렸다.

2년.

길고도 짧은, 짧으면서도 긴 모호한 시간. 이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그리고 밀러는 종종 믿기지 않았다. 폭삭 망해버린 구단이 이런 순간을 맞이하게 될 줄 말이다.

종종 잠에서 일어나면 꿈인지 아닌지 볼을 꼬집는 습관마저 생겼으니까.

“···왜, 왜 좋은 날 울고 난리에요. 재수 옴 붙게···. 아니, 웃다가 울면 엉덩이에 뿔나는 거 모르세요?”

소하는 밀러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거리자 기겁을 했다.

“우, 울긴요.”

밀러는 서둘러 반론해 봤지만, 때마침 고인 눈물이 볼을 타고 또르르 흐른다.

“···.”

“···.”

잠시 어색해진 분위기. 물론, 소하도 밀러의 심정이 어떤지 알았다.

밀러보다도 훨씬 더 감회에 젖은 게 소하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같이 눈물을 흘릴 시간이 아니었다. 이제 첫 경기이지 않은가. 눈물은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승격을 확정 지었을 때 흘려도 충분했다.

“···그···. 뭐냐, 갱년기는 어쩔 수 없이 오는 거니까···. 제가 이해해드릴게요.”

괜히 밀러의 감정에 동화되기 싫어 농담을 연신 내뱉는 소하. 이에, 밀러도 너털웃음을 흘리며 감정을 떨쳐낸다.

“허헛. 갱년기라뇨. 이, 밀러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큼큼. 그나저나 녀석도 잘 지내겠죠?”

애써 화제를 바꿔보는 밀러. 그가 말하는 ‘녀석’이란 소하에게도 꽤 특별한 친구였다.

“그럼요. 듣기로는 챔피언십 리그의 오른쪽 풀백 자리에선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뛰어난 선수라고 하던데요.”

“저도 듣기는 했습니다. 데클렌 마이어스, 이 녀석은 될 놈이었어요.”

“그렇죠? 물론 제 손에서 큰 거보다야 못하겠지만요.”

“그렇고 말고요.”

소하와 밀러가 말하는 선수는 바로, 2년 전 리즈로 떠난 원년 선수인 데클렌 마이어스였다.

‘녀석, 내 신흥 포츠머스의 오른쪽 풀백으로 단단히 점찍어뒀었는데···.’

독일계 잉글랜드인이었던 데클렌 마이어스. 상당한 재능을 갖춰 소하가 결코 팔기 싫어했던 선수였다.

‘참 축구판이 재밌어. 만약 녀석이 리즈로 가지 않았더라면···.’

요즘 이름을 알리는 중인 매튜 다이스는 세상에 없었을 터. 아마도 그냥저냥 잊히는 유망주였을 거다.

‘그리고 아다마 트라오레의 영입도 없었겠지. 나비효과란 건가?’

작은 이적이 아다마 트라오레의 영입까지 온 현실이 그저 재밌기만 한 소하.

문득 리즈와 관련된 또 하나의 선수가 생각났다.

“그나저나 칼빈은 어때요? 아직도 열렬한 서포터던데.”

칼빈 필립스. 수년 내로 잉글랜드 성인 국가대표팀에 승선이 확실한 초특급 유망주.

이제는 마이클 반즈를 밀어낼 정도로 성장한 포츠머스의 핵심 선수였다.

“글쎄요···. 그래도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워낙에 프로페셔널한 녀석이니까요.”

“역시 그렇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소하와 밀러. 그만큼 칼빈 필립스의 프로의식이 뛰어나다는 뜻이기도 했다.

“자···. 그럼 슬슬 선발을 짜보도록 하죠. 물론, 이미 생각해 뒀지만요!”

다시금 본래 목적으로 돌아가는 소하. 모두가 궁금해할 챔피언십 리그 개막전의 선발은 이미 그의 머릿속에 있었다.

***

[드디어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개막전입니다! 수많은 축구팬들이 기다렸던 시간이 기어코 왔어요.]

[그렇습니다. 24개의 팀이 꿈과 별의 리그, 프리미어로 가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지는 순간이 왔어요!]

포츠머스와 리즈의 개막전에서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가 침을 튀기었다.

장소는, 포츠머스의 홈구장 프래튼 파크. 당연하게도 만석이다.

포츠머스의 프런트에서 티켓 사무국이 가장 바쁘다는 말은 어떠한 과장도 없는 사실이었다.

[포츠머스가 2년 만에 챔피언십 리그로 복귀하다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11-12시즌에 강등당하고 4년 만에 돌아왔군요. 리그2까지 찍고 왔으니 성적 그래프가 해구 모양일 겁니다.]

급격한 내리막과 급격한 오르막.

아무도 포츠머스가 4부리그까지 떨어질 줄 몰랐고,

그런 포츠머스가 다시 챔피언십 리그로 복귀할 거라고는 지구상에 단 한 명도 믿지 않았다.

[정말 놀라운 팀이에요. 법정관리가 끝나자마자 부임한 성소하 감독의 마술, 그 자체입니다.]

[스컨소프 유나이티드도 포츠머스와 비슷한 기적을 써 내렸지만, 양 팀의 상황은 아주 다릅니다.]

스컨소프 유나이티드는 프리미어 리그에 참가한 적은 없지만, 나름대로 하부리그에서의 강자였다.

하부리그에서 닳고 닳은 팀이랄까. 순식간에 쫄딱 망해버린 포츠머스와는 질적으로 수준이 달랐었다.

[스컨소프는 아쉽게도 강등 1순위 후보입니다. 러시 윌콕스 감독의 뛰어난 전술로 어찌어찌 승격은 했지만, 기초체력이 부족하거든요.]

[그에 반해 포츠머스는 아주 탄탄합니다. 성소하 감독의 참모습은 단순히 팀을 경기에서 이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팀의 성장을 주도하는 것이죠. 포츠머스는 상당히 높은 승격확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컨대, 전술과 전략의 차이였다.

러시 윌콕스 감독이 전술적 승리로 전략적 성공을 거두었다면,

소하는 이미 전략적으로 이겨두고 전술적 승리까지 가져간 거다.

[이에 맞붙는 리즈 유나이티드는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가만 보면 참 축구의 신은 얄밉다고 느껴져요.]

[그렇습니다. 동류끼리 맞붙는 것 아닙니까. 몰락한 구단끼리의 진검승부. 여기에 양 팀의 선수들이 각각 얽혀있어 볼거리가 많은 경기에요.]

장내 아나운서의 말처럼 정말로 볼거리가 많은 경기다.

몰락했다는 공통점.

친정팀을 서로 상대하는 칼빈 필립스와 데클렌 마이어스.

포츠머스의 승격 여부 등등.

개막전으로서는 최상의 승부가 아닐 수 없다.

[자, 그럼 잠시 후 포츠머스의 선발명단을 공개하겠습니다. 공개에 앞서 조쉬 킹 선수의 부상이 엄청난 악재였는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마리오 발로텔리라는 거물을 리버풀에서부터 임대하며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발로텔리가 개막전 선발로 나올 확률은 낮다고 봅니다.]

[어째서입니까? 지금 포츠머스는 주포가 고장이 난 전함입니다.]

[그렇습니다만, 발로텔리는 아직 팀에 합류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성소하 감독의 철학에 적응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마도 존 말로리가 나올 확률이 높습니다.]

소하의 축구는 현시대에서는 상당히 이질적이다. 공격수에게도 엄청난 활동량을 요구하는, 훗날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역할이었으니까.

그에 반해 발로텔리는 다른 걸 다 떠나서 활동량이 0에 수렴하는 선수.

아직 소하의 인간개조가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한 상태라 승리를 위해서라면 존 말로리가 확실한 정답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범인들의 정답이었지만 말이다.

[GK: 말콤 우드.

LB: 앤디 로버트슨.

CB: 케빈 도슨.

CB: 찰스 말로리.

RB: 매튜 다이스.

DM: 데클렌 라이스.

CM: 칼빈 필립스.

CM: 델리 알리.

LW: 도봉산.

RW: 잭 해리슨.

ST: 마리오 발로텔리.]

드디어 공개된 개막전 포츠머스의 선발명단. 모두의 예상을 항상 비웃는 소하답게 마리오 발로텔리가 선발이었다.

< 136화. 15-16시즌 챔피언십 리그 전반기.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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